기획특집: 아시아 도시의 도전과 미래(3)
김정은 집권이후 북한의 도시: 변화와 지속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의 김정은은 공식 권력 승계 이전인 2010년부터 대대적인 살림집 건설과 도시미화사업을 시작하였다. 2012년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기념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의미가 컸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1992년 경제난으로 중단된 이후 사실상 18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평양 일대 거리를 중심으로 조성된 새로운 아파트 및 빌딩 건설은 전국적으로 ‘건설 붐’, ‘부동산 열풍’으로 이어졌다. 국가 기획, 민간 자본, 지방권력이 결합된 3자 건설동맹이 형성되고,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아파트가 대규모로 조성되면서 자재시장, 인력시장, 시멘트시장, 철근시장 등이 확장되면서 건설경기가 경제 전반을 견인하는 상황이 됐다. 김정은의 도시개발과 대규모 건설 사업은 최고통치자의 치적 과시, 주민들의 주택 수요, 지방권력의 이해관계, 민간자본의 수익이 결합된 하나의 새로운 발전모델이 됐다.

<사진 1> 미래과학자거리 건설현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최초 비행 현지지도(2015년 2월 15일, 노동신문)

2015년 2월 15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을 여러 장 게재했다. 드론 촬영으로 김 위원장 전용비행기 참매 1호가 상공을 비행하는 사진, 미래과학자거리 건설 현장 부감(high angle shot) 사진, 건설 현장을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김 위원장의 사진이 실렸다. 현지지도 역사상 최초로 ‘비행 현지지도’ 장면이 등장한 것이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이 주로 지도자 중심의 절제된 이미지였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다양한 앵글 사용은 물론 건설 현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도자, 건설 현장과 도시를 파노라마식, 어안렌즈 프레임에 가득 채워 보여 주는 방식은 이후 김정은 건설 현장 방문 사진의 대부분에서 발견된다. <사진2>는 2017년 1월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방문한 사진들인데, 부감과 로우 앵글(low angle), 길게 사선 찍기, 어안렌즈 샷 등 건설 현장을 스펙터클하게 연출하는 모든 기법이 동원했다. 이들 사진의 앵글들은 도시를 시각적으로 경관화하는 통치자의 관점을 보여준다.

<사진 2> 김정은 위원장의 여명거리 현지지도(2017년 1월 26일, 노동신문)

문명화, 도시건설, 모빌리티

김 위원장의 도시 사랑은 각별하다. 집권 이후 대내 통치코드는 ‘문명화’, ‘도시건설’, ‘모빌리티’로 꼽을 수 있다. 2012년 처음 등장한 ‘사회주의문명화’는 김정은 정권의 ‘건설정치’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건설은 곧 “국력과 문명의 높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척도”(2016년 신년사)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를 ‘건설의 대번영기, 새로운 문명개화기’로 규정했다. 사회주의문명화 담론과 건설정치는 시장화를 촉진하며 도시의 모빌리티를 한층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시켰다. 시장화는 도시 내·외부를 연결하는 이동성– 인간·상품·화폐·정보·기술의 네트워크와 흐름 –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 도시는 하나의 시장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정치적 메시지로서 도시건설

집권 이후 나타난 김 위원장의 건설현장 현지지도 사진들은 도시질서를 창조하는 지도자 이미지의 구축과정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도시건설 기획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양시 대규모 살림집 건설은 김일성 생일(60, 70, 80회) 및 당 창건 정주년에 맞춰 기획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개혁·개방, 서울올림픽 등 정세 변화에 대응한 과시적 건설도 있었다. 1992년 통일거리 조성을 마지막으로 평양시 대규모 건설사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경제난의 여파였다. 2010년 시작된 ‘평양 10만호 건설’ 사업은 18년 만에 대규모 건설 재개와 김정은 위원장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춰 추진된 이 사업은 이후 전국적인 ‘건설 붐’을 만들어냈다. 억눌려 있던 주택 욕구를 폭발시킨 것이다. 사회주의문명국론은 이런 건설 붐을 합리화하고 촉진했다. 이후 건설은 고강도 대북제재의 ‘무용론’과 체제의 건재함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가령 2017년 4월에 북한 당국은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4월 13일 있을 예정이라고 알리고 취재 참석을 요청했다. 외신기자들은 빅 이벤트를 보기 위해 대거 행사장에 참석했고 김정은이 외신 언론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김정은이 등장한 행사장은 바로 여명거리 완공식장이었다. 성대히 치러진 이날 완공식을 노동신문은 “미국이 아무리 강한 제재를 가해도 우리는 끄떡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밝혔다. 소위 ‘대북제재 무용론’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리고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지도자의 강한 의지를 국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평양시 건설 프로젝트가 활용된 것이다. 고강도 대북제재가 이뤄지는 국면에서도 대규모 건설들이 이뤄진 것은 이런 정치적 계산 속에서 가능했다.

<표 1> 평양시 주요 살림집 및 거리 조성, 1970-2017년

건설사업명 기간 비고
천리마/서성거리 1970 5, 8, 10, 12, 15 층 아파트
비파거리 1971 탑식, 평천식 2-3층 연립주택 * 김일성 60회 생일 기념
대통로 1980 20, 30층
창광거리 1단계 1980
문수거리 1981-1983 * 김일성 70회 생일 기념
창광거리 3단계 1984
버드나무거리 1984
천리마거리 2단계 1984-1987
북새거리 1984-1987
창광거리 2단계 1985
만경대/동성구역 1988
순안구역 1988
광복거리 1985-1989 12-30층
안상택거리 1985-1989 10-30층
광복거리 2단계 1990-1992 *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
통일거리 1990-1992 * 전승 40돌(정전) 기념
만수대거리 2008 45층 아파트, 13개월 완공
평양 10만호 건설사업 시작(2010)
창전거리 2012 * 김일성 탄생 100주년
은하과학자거리 2013
김일성대학교육자 살림집 2013
체육인살림집 2013
위성과학자주택지구 2014 * 당창건일 완공 목표
김책공대교육자살림집 2014 * 당창건일 완공 목표
미래과학자거리 2015
여명거리 2017 4. 13 완공기념식 외신공개

<표 2>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대북제재와 주요 건설 사업, 2012-2017년

세계적 추세와 도시 스펙터클의 창출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유독 ‘세계적 추세’를 강조했다. 세계적인 도시들이 보여주는 세련됨과 현대화된 양식을 모방하고 따라가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20여 년, 낙후한 국가의 이미지를 일신하고 싶다는 욕구, 발전 및 개방의 욕구가 투영된 담론이다. 평양국제비행장 건설, 여러 대규모 거리 조성, 스카이라인 기획, 대동강 수변 경관 조성, 4D 영화관(입체율동영화관),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야경(불장식) 강조 등이다. ‘시각적 경험’에 기초하는 ‘상품’으로서 도시와 닿아 있다.

세련된 도시 이미지는 평양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소비생활을 통해서도 구현된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평양의 활기, 세련됨, 화려함 등을 공통적으로 얘기한다. 도시 경관화는 평양의 야경에서 절정을 이룬다. 도시 조명효과를 통해 야경을 화려하게 연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불장식(야경)을 잘 할 것에 대한 강령적 과업’을 내리는가 하면, 내각 산하에 ‘직관불장식지도국’ 신설, 지도국 산하에 ‘선경불장식연구소’를 만들어 불장식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했다. ‘사회주의 선경’으로서 야경 효과는 주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긍지를 높이는 차원이기도 하다. ‘선경’은 아름다운 경관, ‘직관’은 말 그대로 감각적으로 인지되는 사물에 대한 정보인데, 도시를 일종의 직관적인 경관 차원에서 보여주려는 의도다.

건설 스토리 창출을 통한 주민 결속

대규모 거리 및 살림집 건설은 극적인 건설 드라마로 재구성된다. 당 창건일이나 김일성 탄생일에 완공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극적인 요소를 갖는다. 촉박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일정에 맞춰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면 이 기념일의 의미와 상징성을 배가시키고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전 국가적, 전 사회적 관심 이슈로 마치 한편의 건설 드라마를 극적으로 써 가듯이 연일 북한 모든 매체들이 건설 현장 소식과 미담을 전하는 데 몰두한다. 건설 중간에 김정은이 수시로 방문을 한 사진들이 대거 공개되면서 극적인 효과를 고조시킨다.

지방 도시개발 욕구 속 경제발전의 미래

김 위원장이 지난 주 삼지연과 원산을 방문하여 4개월여 만에 현지지도를 재개했다. 역점을 뒀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완공시기를 10월 당 창건일에서 6개월 연장했다. 두 번째 연장이다. 대북제재로 그만큼 내부 사정이 어렵고 절박하단 뜻이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도시개발 프로젝트가 ‘총계획도(마스터 플랜)’ 형태로 계속 공개되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만 해도 원산, 삼지연, 신의주, 청진, 혜산, 양덕군 등이다. 도시별 총계획도를 들여다보면, 김 위원장이 가고자 하는 경제발전의 전략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그해 4월부터 미사일 실험 활동을 재개하면서 북한의 대외 기조와 내부 건설 동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거리 조성이나 살림집 건설을 평양 외곽이나 지방도시 건설로 이동시킨 것이다. 대미 장기전과 어려운 경제 형편 속에서 자칫 평양 중심의 호화로운 건설이 위화감을 불러올 것을 염려한 탓이라고 본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중앙의 재정 지원 없이 지방 도시의 자체 건설 체제다. 지방도시 건설의 관건은 핵무기 고도화만큼 북중 교역이 얼마나 빨리 정상화될 수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들은 북중 교역을 통한 물자의 수출입을 통해 생존해 가고 있다. 유입된 물자는 도시시장을 통해 전국의 소비 유통망으로 흘러간다. 시장으로부터 장세, 보관료, 창고료를 포함하여 각종 시장 관련 세금을 받고, 이것을 지방 재정에 충당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지방도시의 공원이나 도로, 각종 건설이 이렇게 시장 활동의 세원을 통해 확보된다. 건설시장 역시 북중 교역을 통해 들어오는 자재를 통해 돌아간다.

<사진 3> 북한이 공개한 원산 개발 총계획도(마스터플랜)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48호 (2022년 12월 5일)

Tag:
건설정치, 도시정치, 아파트, 통치테크놀로지, 모빌리티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전영선(2022). 『북한 아파트의 정치문화사: 평양건설과 김정은의 아파트 정치』. 경진출판
  • 홍민(2017). 『김정은 정권의 통치 테크놀로지와 문화정치』. 통일연구원
  • 홍민(2015). 『북한의 시장화와 사회적 모빌리티』. 통일연구원

저자소개

홍민(mhong@kinu.or.kr)

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정책자문위원

주요 저서와 논문

『김정은 시대 주요 전략.정책용어 분석』 (공저), (통일연구원, 2021)
『한반도형 협력안보와 평화경제 연계 구상』 (공저), (통일연구원, 2020)
『북한의 발전전략과 평화경제: 사회기술시스템 전환과 지속가능한 발전목표』 (공저), (통일연구원, 2020)
『북한 실태 연구: 도시경제의 네트워크와 로지스틱스』 (공저), (통일연구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