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적 사회재난의 최전선에 놓인 한국

이재열 (서울대학교)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많은 나라에서 빈발한 압사 사고와 닮았다. 좁은 면적에 군중이 밀집해서 생기는 ‘군중 난기류’라는 ‘상전이’로 인해 사전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참사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사고는 재난을 대비하는 총체적인 국가의 위험 거버넌스 역량의 부실을 잘 드러낸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과거 재난으로부터 배우지 못해 과거형-숙성형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은 빠르게 초연결사회로 진입하면서 정상 사고나 ‘블랙스완’과 같은 미래형 재난의 위험에도 직면하고 있다. 복합적 재난 사회가 된 한국,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제대로 학습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미래도, 아시아의 안전 모범국으로서의 역할도 기약할 수 없다.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사고 현장 부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미국인 희생자 2명의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출처: https://www.news1.kr/articles/?4849889

군중 난기류와 상전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압사 참사로 15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멀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위도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로부터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서 더 참담하다. 압사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군중이 좁은 면적에 밀집하였기 때문이다. 제곱미터 당 6~8명 이상이 모이면 신체 간 접촉이 강해져 엄청난 압력의 파동이 생겨나고, 이보다 더 밀집되면 결국 지진의 충격파와 같은 힘이 만들어지는 것이 ‘군중 난기류’인데, 물리학에서는 이를 ‘상전이(相轉移·phase transition)’의 일종으로 본다. ‘상전이’란 물질이 온도, 압력, 외부자기장 등 일정한 외적 조건에 따라 하나의 상에서 다른 상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평방 미터당 10명이 넘으면 마치 액체처럼 떠밀려 흐르던 군중들이 고체처럼 밀착되어 엄청난 압력을 사방에서 받기 때문에 호흡할 수 없어지고, 의식을 잃게 된다.

수만 마리가 군무를 추며 이동하는 기러기나 거대한 덩어리로 떼지어 움직이는 물고기는 미세한 압력 차이를 지각해 개체 간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인간에게는 그런 단순한 지각 기능이 없다. 인간의 거리 감각은 훨씬 더 복잡하고 심리적이다. 그래서 압사 사고는 많은 이들이 사전에 위험 요소를 간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밀집되다 보면 나타나는 ‘출현적(emergent) 속성’을 가진다.

압사 사고는 갑자기 인파가 몰리는 성지순례, 축제, 운동경기 등의 이벤트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2010년 7월 독일 뒤스부르크에서는 음악 축제인 ‘러브 퍼레이드’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는데, 수십만 명이 몰려든 축제장에서 유일한 출입로로 이어진 좁은 터널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일어난 참사였다. 21명이 사망하고 65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를 분석한 물리학자 헬빙(Dirk Helbing)의 결론도 ‘군중 난기류’, 즉 상전이였다. 단위 면적당 밀집도가 높아지면 각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작은 몸부림도 난기류처럼 증폭되어 엄청난 압력 파동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압사 사고는 빈발했다. 캄보디아 프놈펜 본움뚝 물축제(2010)에서 350명, 인도네시아 칸주루한 축구경기장(2022년 10월)에서 132명, 이스라엘 유대교 축제(2021)에서 44명, 중국 상하이 와이탄 해맞이 행사(2014)에서 36명, 홍콩 란퐈이퐁 새해전야축제(1993)에서 21명이 사망했다.

세계 이슬람 신도들에게 일생의 의무인 성지 메카 순례는 매년 200만 명 이상이 모이는 이벤트다. 메카에서 1990년 순례객 1천4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압사 참사가 발생했는데, 2006년에도 363명의 순례자가 사망했다. 악마를 쫓아내는 ‘미나’ 의식을 일몰 전에 하기 위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린 결과였다. 참사는 2015년에도 이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2400여 명의 순례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재발한 것이다.

압사 사고는 종교성이 강한 인도에서도 빈발했다. 2005년 1월 마하슈트라주 사원에 힌두교 순례자가 몰려 265명이 사망했다. 2008년에는 라자스탄주 조드푸르 근처 차문다 사원에서 힌두 순례자 147명이, 그리고 히마찰프라데시주 나이나 데비 사원에 몰린 순례자들이 산사태 소문으로 인해 최소 145명 사망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카슈미르에서 힌두교 순례자들이 몰려 12명이 압사하는 일이 재현되었다. 최근 인도 구자라트주 마추강 현수교가 무너지며(2022년 10월) 141명이 사망했다.

조직학습의 실패

한국에서 압사 사고는 과거의 일이었다. 1959년 7월 부산 공설운동장 시민 위안잔치에 참석한 3만여 명이 소나기를 피하려 좁은 출입구에 몰리며 67명 압사 참사를 빚은 이후, 1960년 1월 설맞이 고향 방문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에서 승객들이 계단에서 한꺼번에 넘어지며 31명이 압사한 적이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05년 10월 경북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MBC ‘가요 콘서트’ 공개 녹화 중 수천명의 관중이 한꺼번에 출입문 한 곳으로 입장하려다 11명이 사망하고, 145명이 부상한 바 있다. 그래서 이태원 압사 참사는 뼈아프다. 국내외 많은 재난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아지리스(Chris Argyris)는 재난이 재발하는 이유를 ‘이중 순환 학습’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되는 ‘단일 순환 학습’은 내부화를 의미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누구 책임인지를 먼저 따지고, 처벌하거나 사표를 받는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 간판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결의대회를 한다. 이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꼴이다. ‘이중 순환 학습’의 핵심은 외부화다. 실패의 원인을 점검할 수 있게 내부의 실패 요인을 과감하게 외부 전문가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조직 대응의 토대가 되는 가정(假定)이나 전제에 잘못된 것이 없는지 검토하고,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개선책을 찾는 것이다.

복잡계적 군중 난기류는 일단 발생하면 사후적 조치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전적 통제가 훨씬 중요하다. 1989년 4월 15일 리버풀 축구팬 97명이 압사하고 766명이 부상한 ‘힐즈버러 압사 참사’를 겪은 영국은 이후 약 20여 년에 걸친 대대적이고 철저한 조사 이후, 이것이 군중 안전을 사전에 관리하지 못한 경찰 통제력의 부재에서 기인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대대적인 재발 방지책을 만들었다. 영국 정부가 만든 ‘이벤트 안전 관리 지침(Event Safety Management Plan)’은 정부 기관이나 민간단체 등 누구나 이벤트를 조직할 때 활용할 수 있게 온라인상에 공개하고 있다[관련 사이트 : 글 뒷부분 소개]. 이 지침서는 이벤트를 주최하는 조직이 장소, 음식물, 음향효과, 커뮤니케이션, 군중 관리, 교통관리, 재난 대비 계획 등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계획을 짜며, 유사시에 대비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준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2001년 효고현 아카시(明石)시 불꽃축제에서 압사로 11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한 경험이 있는 일본에서도 사고 원인을 철저히 분석했다. 결론은 ‘아무도 악의를 가지지 않았지만, 밀집된 공간에서는 갑작스럽게 끔찍한 재난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임계점을 넘으면 쏟아져 내리는 눈사태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군중 난기류’라는 것이다. 사고를 분석한 후, 효고현 경찰은 이벤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혼잡경비안내서’ 만들었다.

미국이나 안전 선진국에서 이중 순환 학습은 대체로 백서를 만드는 형태로 나타난다. 드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사고나 9·11 테러 때 미국 의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조사단을 만들고 방대한 조사보고서를 만들어 청문회를 거친 후, 여기서 제시된 처방을 법제화하여 재난의 재발을 막는 방향으로 갔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빈발한 대형 재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중 순환 학습’을 하여 외부화하고 분석하여 대안을 만들지는 못했다.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백서가 만들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세월호 참사 후 여러 차례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곤 했는데, ‘비난의 정치’만 증폭됐다.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는 정치적 갈등은 커졌는데, 정작 8년이 지나고도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

복합적 사회재난

바야흐로 복합적 위험사회다. 과거의 전통적 위험과 달리, 문명 그 자체가 위험의 원천이 되는 사회로 진입했다. 코로나19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들어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이 초래한 사회적 재난이다. 그에 보태 아시아의 위험은 다중적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에 걸쳐 있는 단층과 지진대, 빈발하는 태풍 등으로 아시아는 자연재해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대륙이다. 또 높은 인구밀도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재난도 빈발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지진이나 태풍 등과 같은 자연재해의 피해는 적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압축된 근대성으로 인해 초래된 숙성형 재난이나, 빠르게 초연결사회로 이행한 결과 나타난 미래형 재난이 결합한 이중적 위험사회가 되었다. 이태원 참사는 소통의 실패와 돌발형 복잡계적 현상이 결합한 한국형 재난의 한 단면이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재난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숙성형 재난’은 90년대 빈발한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 위도 페리호 침몰, 그리고 8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발견되는 유형이다. 여러 위험 요소들이 간과되거나 무시되고, 개인이나 개별 조직에서 인지한 위험이 상층부에 모이지 않거나 긴급상황에서 소통되지 않는 경우, 또한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적 안전 기준들을 타협하는 규제 완화가 지속되면, 축적된 위험이 일정 기간 숙성되어 폭발하면서 생겨난 재난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형의 재난은 중국이나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도 광범하게 발견된다.

둘째, ‘정상사고(normal accident)형 재난’이다. 찰스 페로(Charles Perrow)는 미래형 재난 중에 기술발전과 관련한 재난의 새로운 형태에 대해 분석했다. 미국은 1970년대에 드리마일 아일랜드 원자력 발전소에서 냉각수가 유출되는 사고를 경험한 바 있다. 대규모 조사관이 파견되어 원인을 조사하고 문제를 진단하여 처방을 내리는 방대한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페로는 보고서를 토대로 <정상 사고>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점점 많은 부품이 복잡하게 얽히고, 긴박하게 결합하게 되면, 아주 사소한 기계적 결함이나 인간적 실수도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한번 터지면 파국적 피해를 낳는다는 점에서 원전사고, 챌린저호 폭발사고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03년 2월 발생하여 192명의 승객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역시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셋째, 정상사고의 특수한 유형인 ‘네트워크 도미노형 재난’이다. 초연결 네트워크로 구성된 송전망, 고속철도망, 인터넷망,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 등은 선호적 연결을 통해 ‘좁은 세상’을 만들지만, 동시에 허브가 공격받으면 일시에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특징을 보여준다. 2003년 해외에서 침입한 웜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 대란을 일으킨 혜화전화국 사건은 그 효시다. 2019년 KT 아현국 지하통신구 화재로 초래된 KT망 정지사태는 서울의 일부 지역이지만, 유무선전화, 인터넷, IPTV, 카드결제 서비스 등 생활의 인프라가 모두 마비되는 위험성을 보여주었다. 2022년 10월 15일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촉발되어 이곳에 서버를 둔 카카오와 네이버 등의 인터넷서버가 먹통이 되어 국민 일상이 정지된 사태는 정보화와 플랫폼화에 가장 앞서 있는 한국이 네트워크 도미노형 재난에서 매우 취약함을 드러냈다.

넷째,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블랙스완형 재난’이다. 내진설계 한계를 훌쩍 넘는 쓰나미로 인해 비상발전기가 침수되어 초래된 2011년 히로시마 원전 폭발사고, 전세계에서 66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해수면 온도 상승의 결과 이상 발달한 태풍 힌남노가 뿌린 기록적 집중적 호우로 인한 냉천 범람의 피해를 당한 포스코의 공장침수와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참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단 벌어진 재난은 향후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대비를 요한다.

한국은 과거형-숙성형 재난의 위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데, 미래형 정상사고나 블랙스완형 재난이 몰려오고 있어 복합적 사회재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학습능력이다. 비극적 재난의 재발을 막으려면, ‘비난의 정치’를 넘어서 소를 잃더라도 외양간을 확실하게 고치는 조직학습을 통해 보다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아시아의 안전 선진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군중난기류, 상전이, 숙성형 사고, 정상사고, 네트워크 도미노, 블랙스완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Shao, C. H. et al(2019). “Stampede events and strategies for crowd management.” Journal of Disaster Research, 14(7).
  • 이부하(2015). “위험사회에서 국민의 안전보호의무를 지는 보장국가의 역할-현행 안전법제에 관한 고찰을 겸하며.” 『법학』 56권.
  • Government United Kingdom(2018). “Event Safety Management Plan.” (March). https://www.midandeastantrim.gov.uk/
  • 한애란 기자(2022). “사람 많은 것만으로 큰 위험…‘군중 난기류’ 이해하기[딥다이브]” (동아일보) (11월 2일). https://www.donga.com/
  • Wikipedia(2022). “힐즈버러 재난.” https://en.wikipedia.org/

저자소개

이재열(jyyee@snu.ac.kr)
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자료원 원장,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부장,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장

저서와 논문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공저) (오름, 2017)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공저) (한울, 2015)
『위험사회, 위험정치』 (공저)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0)
“이중적 위험사회형 재난의 구조: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를 중심으로 한 비교사례연구.”
『한국사회학』 38권 3호. 2004.
“Risk Society as a System Failure: Sociological Analysis of Accidents in Korea.” Korea Journal.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