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과학기술 경쟁력의 현황과 전망 (3)
글로벌 기술패권에 대응하는 일본의 ‘반도체 전략’

최해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는 경제성장 전략의 첫 번째로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문구를 제시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디지털화, 데이터, 반도체 분야의 문건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기술패권에 대응하기 위한 과학기술을 중심에 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산업분야에 있어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 및 공급망 강화와 투자의 확대가 핵심적 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 분야의 전략을 설정하는 데 있어 국가 안전 보장상의 문제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의 플라자 시대 개막을 선언한 일본

일본 정부는 반도체 분야의 육성에 있어 자국의 강점인 제조 및 재료 분야에 집중하는 동시에 외국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업체)를 자국에 유치하는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제2의 플라자 시대 개막을 선언하고 있다. 즉, 일본은 현재 미·중 패권 경쟁, 코로나 19 사태, 르네사스 나카 공장화재 등으로 인해 반도체 부족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 관련 경쟁력 강화와 공급망 안정화의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경쟁력과 공급망을 강화하여 국가 안보를 추구하겠다는 발상이다.

일본은 ‘성장전략 2021’을 통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였고, 경제산업성은 2021년 6월 ‘반도체·디지털산업 전략’과 ‘반도체 전략’을 발표하였다. 체계적인 정책추진을 위해 ‘반도체·디지털산업 전략 검토회’를 설치하여, 반도체 및 디지털 인프라 발전 방향성을 검토하며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전략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적으로 필요한 반도체 산업역량의 강화와 공급능력의 확보이다.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활성화 및 최첨단 반도체의 개발/제조를 위해 해외 파운드리 업체를 유치하고자 한다. 특히 정부는 메모리, 센서, 파워 반도체 등의 미래형 반도체 공급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경쟁국에 필적하는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둘째, 디지털 투자 가속 및 첨단 로직 반도체(논리적인 연산을 수행하는 반도체) 설계를 강화한다. 향후 수요가 예상되는 자율주행, 스마트 시티 등의 애플리케이션에 필요한 로직 반도체 설계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특히 첨단 로직 반도체 수요기업, 설계기업, 또한 통신 업체까지의 협력을 통해 엣지 컴퓨팅(사용자와 가장 근접한 곳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용 반도체 설계기술의 개발을 가속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였다. 셋째, 반도체 기술의 그린 이노베이션을 촉진한다. 디지털 투자로 인한 데이터양의 급증으로 2030년경 급격한 전력 소비 증대가 예상되므로, 저전력화를 위한 주요 부품인 파워반도체의 소재 혁신을 위한 기술개발을 추진한다. 넷째, 국내 반도체 산업의 포트폴리오 및 회복력을 강화한다. 로직반도체 외에도 메모리, 센서, 파워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일본 기업은 여전히 존재하나 세계적으로 각국의 산업정책 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국가의 강력한 지원 정책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경영과 인재 부문을 포함한 국제적 협력하에 각종 금융, 세제,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업 확대/재편, 첨단기술개발 등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반도체 개발 추세에서 필수적인 주요 핵심 소재/제조장비 기술의 공급망을 파악하여 해당 기술의 육성을 정책적으로 추진한다. 특히 반도체 강대 제조국과의 글로벌 협력/연계를 통한 산업정책의 협조를 언급하고 있다.

<그림> 반도체 강대 제조국과의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
출처: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83093691

국가안보와 연결된 반도체 전략

과거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었던 미국, 유럽 등과 협력하여 업계를 주도하였다(1988년 일본의 반도체 점유율 50.3%, 전 세계 매출 상위 10대 기업 중 6개가 일본기업). 반도체는 모든 전자제품에 필요한 기초 부품이었으며 전자기기 업계와의 활발한 협업을 바탕으로 일본 내수 및 수출 경기가 매우 호조인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은 기술 선도국으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비즈니스 전략보다는 최첨단 기술개발에 치중하였다.

최근 글로벌 패권으로 인한 반도체의 전략적 무기화 기조가 발생하고 있으며, 국가 간 무역 분쟁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주요국은 반도체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략관리 사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5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선언하는 등, 세계 각국은 반도체 공급망의 현지화에 치중하고 있다. 반도체가 중요한 이유는 5G, 빅데이터, AI, IoT, 자율주행 시대를 지지하는 주요 기반 기술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의 내재화라는 세계적인 추세에서 반도체 기술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은 자국의 장단점을 명확히 분석하여 정책 추진

일본의 반도체 전략 추진에 있어 자국의 장·단점을 명확히 분석하여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관련 자국의 약점을 파운드리 부재로 인식하는 한편, 반도체 제조 및 재료 장치 산업에서 보유한 장점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21년 2월 대만 TSMC가 일본 쿠마모토현에 첨단 3D 패키징 기술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할 것을 발표한 바와 같이 외국 첨단 파운드리 유치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대만과 일본 간의 지속적인 반도체 분야 협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2019년 TSMC와 도쿄대학은 얼라이언스 계약을 통해 반도체 관련 공동연구를 진행하였고, NEDO(일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의 과제를 통해 지속적인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등 지속적인 협력관계에 있어왔다.

기업과 정부 간의 불균형으로 인한 회의적 견해도 존재

지금까지 일본의 반도체 관련 정책에 있어서 기업과 정부 간의 불균형으로 인한 회의적 견해가 있어왔다. 일본 반도체 기업은 종합반도체 즉, 반도체 가치사슬 상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공정을 포함한 기업을 꿈꿔왔지만, 2010년대 이후 사업구조 정상화를 위해 경쟁력이 떨어진 반도체 부분은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반도체 대기업이었던 후지쯔, 파나소닉 등은 파운드리를 부분 매각하고, ROHM, 르네사스사 등이 이를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반도체 기업 중에서는 그동안 매각한 파운드리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첨단반도체 기술이 아닌 자동운전 등을 위한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2020년 이후 코로나19 사태, 르네사스 나카 공장화재 등을 경험하면서 반도체 관련 정부 연구개발 지원을 늘리고 집중 육성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미 일본 내 대학에서는 반도체 관련 학과 진학자 수가 줄어들어 실제 연구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금만 갑자기 늘어나는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전략이 국내에 주는 시사점

일본은 전략적 관점에서 한국을 제외한 미국, 중국, 대만을 협력해야 할 반도체 강대 제조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협력은 소재/장비(일본)-제조업체(한국) 관계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메모리, 이미지 센서를 포함한 제조업은 경쟁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 수출규제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비협력 기조가 확대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므로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기초역량 강화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투자가 증가하고 있고, 미국, 중국, 유럽, 대만, 일본 등의 반도체 전략화 기조로 인한 대규모 투자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대부분 국가가 연구개발 예산상 큰 규모의 예산을 배분하고 있으며,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 협력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국내의 경쟁력이 강한 분야는 지속적으로 정상급 수준을 유지하되, 취약분야(예를 들어 소재 등)는 전략적 협력국을 확대하고 국내 개발을 병행할 필요성이 있다.

앞으로 수요 증대가 예상되는 시스템반도체는 통신기술 발전, 클라우드 컴퓨팅의 발전으로 데이터양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주요 부품이 되는 반도체 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연구개발이 가능하도록 도울 수 있는 인력양성이 중요하다. 첨단 반도체 제작 기술 및 설계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점점 높아지는 연구개발 난이도에 대응하기 위한 고급 인력 양성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29호 (2021년 10월 18일)

Tag: 일본반도체전략, 국가안보, 연구개발투자, 첨단반도체, 국제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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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최해옥(hochoi@stepi.re.kr)

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개발전략연구본부 혁신제도연구단 부연구위원
전) 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 중국 칭화대학교 건축학부 도시계획학과 박사후연구원, 일본 오사카시립대 창조도시과 박사후fellowship

주요 논문: “규제 샌드박스 정책 동향 및 시사점.” 『동향과 이슈』,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7).
“일본의 4차산업혁명 대응 정책과 시사점.” (공저) 『동향과 이슈』,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7).
『스마트시티의 혁신정책과 발전방안 탐색을 위한 사전연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8).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마이크로 작동기제 주요 쟁점 및 대응방안.” (공저) 『STEPI Insight』,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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