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탈레반은 변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20년 전과 달라요”
[구기연 HK연구교수(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서아시아센터)]
“주목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학교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갈 곳이 없어요. 거긴 학교가 없으니까요. 여러분은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마세요. 아무리 장벽이 높아도 하늘은 더 높습니다. 언젠가는 세계가 이 사정을 알고 도와줄 거예요. 남이 해주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단결해야 합니다.”
2002년 개봉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칸다하르> 초반의 한 장면이다. 난민으로 살다가 미군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란 국경에서 아프간으로 넘어가는 여학생들은 남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인형 속에 숨겨진 지뢰를 피하는 훈련을 받는다. 아프간 내전을 피해 캐나다로 떠나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주인공 나파스는 조국에 홀로 남아 꿈을 잃고 “개기일식 때 목숨을 버리겠다”는 여동생의 전갈을 받는다. 아프간 남부의 칸다하르로 향하는 여정에서 나파스는 “이곳(아프간) 여성들은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이름도 이미지도 없다. 베일에 가려져 있으니까”라고 자신의 녹음기에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