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코로나와 더불어’ 아직은 이르다

[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코로나와 더불어’ 아직은 이르다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하느님! 우리가 얼마나 서로 거짓과 막말을 했으면 주둥이를 마스크로 다 틀어막고 살라 하십니까. 이제 서로 다투고 싸우지 않고 사랑하고 살겠으니 거리두기를 그만 끝내게 해주십시오.” 경기도 오포성당의 신부님이 한 말씀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지 일년 반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쳤다.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은 전쟁 공황 재난을 뛰어넘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회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립감이나 무력증에 있다. 최근 국제여론조사기관에 의하면 “코로나 때문에 인간관계를 다 망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거의 과반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접촉과 대면, 대화와 소통을 통해 공감능력을 키우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오래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백신보급이 팬데믹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알파에서 델타를 거쳐 람다에 이르는 코로나 변이가 이어지면서 확산이 그치지 않는다. 한동안 인류와 함께 지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코로나19 치명률은 올해 초까지 1.5% 수준이었으나 제4차 파동이 발생한 최근에는 0.1%로 낮아졌다. 독감의 치명률이 0.15% 수준임을 고려하면 코로나19가 독감에 가까운 감염병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독감으로 수만명 이상 환자가 발생하고 3000명 정도가 사망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독감과 같은 호흡기 전염성 유행병으로 접근하려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독감이 되다

최근 영국과 싱가포르는 ‘코로나와 더불어 살기'(live with Corona)로 방역정책을 바꿨다. 두 나라는 ‘전파 0′(Zero Transmission)라는 종래의 방역조치를 폐기했다. 독감처럼 되다 보니 확진자 발표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사망자 발표만 한다.

그러나 영국의 ‘빅뱅’ 과 싱가포르의 ‘패기키 딜’이라는 서로 다른 대처방법이 매우 흥미롭다. 자유주의 국가인 영국이 봉쇄조치를 전면적으로 해제한 것과 달리 권위주의 국가인 싱가포르는 일단의 봉쇄조치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인구 6600만명 중 68%가 2차접종을 끝낸 영국과 인구 570만명 중 40%가 2차접종을 마친 싱가포르 모두 전국민의 80%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거리두기도 아예 없애버렸다. 접종여부에 관계없이 30명까지 실내에서 회동할 수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예방접종을 완료한 사람을 포함해 8인까지 실내에서 만나는 것을 허용했다. 영국이 국적에 관계없이 입국자 모두에게 격리를 면제한 것과 달리 싱가포르는 자국민과 영주권자를 제외한 입국자는 여전히 14일간 격리를 고수한다. 작금 영국은 비접종자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델타변이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그렇지 않다.

한국의 고민은 백신 확보가 지체되면서 1일 현재 1차 접종률이 37.9%, 2차 접종률은 13.9%에 불과하다. 아직은 코로나19를 독감과 같은 감염병으로 취급하기 어렵다.

최근 제4차 유행은 높은 전파도에 비해 치명률은 낮다. 확진자 수효의 증감에 따라 저강도와 고강도 방역지침을 바꾸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민의 일상적 불편은 늘어나고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가 무너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소상공인에게 봉쇄기간 동안 정부소유 건물의 경우 임대료를 면제해주며 개인 소유 건물인 경우 임대료의 50%를 보조한다. 소상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임금 60%를 지원한다. 국민이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 실질적 재난지원정책에서 배울 점이 적지 않다.

미국의 인문학자인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주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근래 20년간 30여종이 넘는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2002년 이후 사스 아프리카돼지열병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 등 팬데믹이 거의 3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

지구의 지속불가능성 고민해야

인류는 지나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과다배출에 따라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세계 각지에서 범상치 않은 폭염 산불 홍수 가뭄 등 자연의 재앙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는 닫혀진 생태체계다. 이산화탄소가 생겨도 그것을 다시 균형 잡아준다. 그러나 지나친 배출이 일어나면 자연의 균형이 깨진다. 최근의 기후재앙은 지구의 생태체제가 균형을 잡기에 한계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의 연이은 발생은 인류세(人類世)의 도래를 의미한다. 지구를 못살게한 만큼 인간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전망하기 전에 지구의 지속불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GDP 중심의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잘사는 나라들이 도와주지 않는 한 못사는 나라들은 성장없이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다. 국제상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향한 녹색전환은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