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한국, 다윗의 지혜가 필요하다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 G7에 옵서버로 초대받은 한국의 변화된 위상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G7이 누구인가? 과거 제국주의 본류를 이루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다. 약소국이었던 한국은 강대국을 상대하기 버거워 자강(自彊)을 버리고 사대(事大)를 앞세우곤 했다. 지금도 바뀐 게 없다. 세계경제 10위권에 든다고 해도 한국은 분단국이라는 한계에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가 되지 못한다. 중견국(middle power) 위상이다.
원래 G7은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들 모임이다. 러시아가 밀려났고, 중국은 끼지 못했다. 이번 모임에서 G7이 대만해협, 홍콩 민주화, 위구르 인권, 코로나 기원 조사 등을 거론하면서 반(反)중국 연대가 구상되었다. 코로나 이후 국제연대와 공조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서 세계질서를 양분하는 시대역행적 발상이다 .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를 자국에 대한 포위전략으로 받아들이고 G7과 함께 ‘더 나은 세계재건’(Build Back Better World, B3W)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권력전이가 일어나면서 두 나라 사이에 패권다툼은 이제 무역 외교 기술 군사 문화 등 전방위로 넓어지고 있다.
미중 사이의 패권경쟁은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을 자국편으로 유리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격화되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떼어놓으려고 한다면, 중국은 동남아시아를 발판으로 독자적인 생산 교역 소비의 지역적 네트워크를 만들려 한다. 최근 미중간 반도체전쟁이 좋은 보기라 할 수 있다.
일대일로와 B3W 전략의 격돌
미국 주도의 B3W 전략이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개도국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G7은 40조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합의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개도국에 대한 중국 원조 규모의 20%에 지나지 않는다.
트럼프행정부 시절 미국이 일본 호주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푸른 점(Blue Dots) 네트워크’는 중국의 동남아지역 투자와 원조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지나친 자본투입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들 또한 인프라 건설에서 부채의 늪에 빠져 있다.
중국은 개도국에 무상으로 자국산 코로나 백신을 공급하는 ‘보건 실크로드’를 폄으로써 인류공동체를 위한 공공보건 서비스 증진을 역설한다. 그간 자국민 백신접종을 서둘렀던 G7이 중국에 맞서 개도국을 위해 모두 10억도스의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것도 그에 대한 역공이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이한 중국은 2049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유일의 종합강대국으로 자리잡으려 한다. 미국 선도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중국 중심의 사회주의 세계체제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필자는 중국이 이미 자본주의를 향한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본다. 중국식 사회주의라고 하나 실상은 국가주도 자본주의 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다. 경제운영 방식에서 이윤 극대화의 논리 아래 개인의 사적소유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
개인이 지배하는 대기업이 출현하면서 중국당국은 이를 견제하고 있다. 알리바바와 같은 대기업의 출현에 따른 사유재산권의 확대를 막기 위해 마윈을 총수에서 제거한 것이 좋은 보기라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재산권의 확대에 따른 다원주의 정치체제의 등장을 우려한다.
중국은 미국식 시장 자유주의에 대해 국가 권위주의를 지향한다. 그 중심에 당이 있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공산당 강경파가 주도한다. 이들은 평화공존을 냉전시대의 산물로 간주하고 세계지배를 위해 하드, 소프트, 샤프 파워를 통한 ‘전랑’(戰狼)외교에 주저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대해 자국의 시노팜을 무상 지원해주고, 공자학원을 통해 중화사상을 전파하고, 정보조작을 통해 세계각국의 여론을 조종하려 한다.
최근 클라이브 해밀턴은 ‘중국의 조용한 침공’이라는 저서에서 중국은 세계 각국의 여론주도층을 대상으로 친중파를 형성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의 중국화를 위한 팽창적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
한국을 중국의 종번(宗藩)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국의 소수민족 역사로 왜곡하고 심지어 김치 한복 한류조차 중국 것이라는 문화공정을 펼친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두 골리앗을 동시에 상대하려면
미국과의 동맹이 약화되고 중국이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한국은 두 골리앗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다윗의 지혜를 살려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미국식 시장 자유주의가 지니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모순, 중국식 국가 권위주의가 갖는 억압과 통제의 위험이 그것이다.
코로나 변이로 인해 팬데믹이 악화되는 지구인류적 전환기에서 새로운 문명체제에 대한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다차원의 복합적 사회갈등 정점에 있는 진영대립을 넘어 자율과 참여의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것만이 우리도 살고 국제사회에서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