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사회갈등, 합의 민주주의가 답이다

[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사회갈등, 합의 민주주의가 답이다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대한민국은 ‘갈등공화국’이다. 최근에는 지역 계층 이념의 전통적 갈등에 세대 젠더 고용갈등이 겹쳐지고 있다. 세계에서 갈등 수준이 터키 그리스 칠레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데 정부의 조정능력이 뒤떨어져 국민분열이 심각하다 .

사회갈등이 소모적으로 치달으면 비용과 피해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사회갈등으로 지출하는 손실이 연간 80조원 안팎에 이른다. 2021년 1년 예산 558조원의 1/7에 해당한다. 교육예산 71조원보다 많다. 사회적 피해도 적지 않다. 소통이 끊어지고 불신이 쌓이면서 공감은 줄어들고 균열이 심해진다.

세계화 와중에 중산층이 몰락하고 특히 코로나19 이후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오늘의 국제적 현실이다. 우리의 경우 여러 사회갈등의 정점에 두개의 극단적 진영이 서로 반목하고 있다. 이들은 뉴미디어를 통해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고 동조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짜뉴스를 만들고 허위정보를 퍼뜨린다. 민주주의의 약속인 게임의 규칙을 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협과 공존이 어려워진다.

사회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가치 자원 보상을 둘러싼 개인이나 집단 간 이해다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갈등에 따른 불안과 긴장은 문제해결을 위한 진단과 처방을 가르쳐준다. 갈등없는 사회는 역동성이 떨어지고 변화를 위한 잠재력을 갖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엔진’으로서 사회갈등

사회갈등이 제도화를 통해 흡수될 수 있을 때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회는 와해하거나 붕괴한다.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갈등이 지니는 양면성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사회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다. 소수에 의한 독점을 막고 승자와 패자의 교체를 통해 기회의 균등을 늘려줄 수 있다. ‘민주주의의 엔진’으로 사회갈등을 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갈등이 논쟁(disputando)으로 가면 긍정적인데 투쟁(combattendo)에 빠지면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나면 대화로 풀기보다 싸움으로 해결하려 한다. 게임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조직이해에 따라 극단으로 싸우다가 원칙없는 타협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토론 협상 타협의 문화가 부족하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 학교 직장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 매사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세대간의 갈등은 당연하다. 할매 할배가 본 손주들의 행태는 이해하기 힘들다. 자식들이 본 부모는 답답하다. 세대가 같더라도 ‘이대남’과 ‘이대녀’가 의미하듯 현실의 여건이 공정하지 못해 젠더의 벽이 나타난다. 임금격차가 클뿐만 아니라 미래보장이 어려워 대기업은 자리가 없고 중소기업은 사람이 모자란다. 특히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려운데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약(空約)이 남발되어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정책은 공공성이 중요한데 근시안적 권력이해에 빠져 미래를 담보로 한 현실추수적 사업이 남발한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는 복지정책, 남혐과 여혐을 가져오는 역(逆)차별정책, 유연안정성이 없는 실업정책 등이 그것이다.

얼마 전 국회 국민통합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현역 국회의원 178명중 93%가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구조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아래 대통령의 권력분산’ 70.5%, ‘국회가 선출 혹은 추천한 총리가 대통령과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혼합형 정부’ 13.6%, ‘국회 다수당 출신 총리가 국정을 운영하는 의원내각제’ 8.5%, ‘현행 5년 단임대통령제 유지’ 4.5%였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현행 대통령중심제에서 벗어나길 희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요즘 국회에 대한 불신을 고려할 때 권력구조 개편과 그에 따른 선거구제 변화를 국민이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 특히 정권말기의 개헌론은 특정 정치세력에 의한 권력농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의 대선주자가 확정된 뒤 이들이 개헌론에 합의함으로서 국민의 동의를 대선에서 구하는 방식이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권력공유 가능한 연합정치 기대

민주주의는 완성된 정치체제는 아니지만 최선의 것이다. 유럽 일부 국가의 합의제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 경험을 살려 지금의 권력구조 아래 권력공유가 가능한 연합정치를 시도해 볼 수 있다. 한국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갈등은 하나의 정당, 한 정권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연합정치를 통해 적어도 반세기를 내다보는 한국의 미래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필요하면 소수당의 정책을 차용할 수 있고, 다른 정당의 인사도 각료에 임명할 수도 있다. 일종의 연정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그전에 여야 사이의 협치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