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혼돈의 브라질, 과두적 족벌체제의 한계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오늘의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살펴보면 오래전 최고의 지성이었던 갈브레이스(John K Galbraith)의 날카로운 통찰이 생각난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시아는 ‘자본’, 아프리카는 ‘교육’,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사회도 변화가 없으면 정체되기 마련이다. 혁명조차도 개혁이 지속적으로 뒤받쳐주지 못하면 이상만 남고 현실은 초췌해진다. 민주집중제라는 허상 아래 소비에트 인민의 국가는 해체되면서 러시아혁명은 잔영만 남았다. 프랑스혁명은 자유 평등 연대라는 가치를 제시해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는 나라는 여태껏 없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멕시코 쿠바 칠레 니카라과 등에서 혁명이 일어났지만 성공한 나라는 쿠바밖에 없다. 미미한 게릴라 세력을 이끌고 산악에서 출발한 카스트로는 농민과 도시의 노동자를 파고들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미국의 노리개에 불과한 바티스타정권의 압제와 부패가 상층계급을 뺀 전 구성원을 저항에 동참하게 한 것이다.
쿠바는 미국이라는 외세를 몰아냈지만 구(舊)소련에 대한 종속으로 대신했다. 카스트로 독재를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의 일탈로 받아들인 체 게바라는 영구혁명을 위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밀림으로 떠났지만 볼리비아에서 비극적은 운명을 맞았다. 쿠바가 공산당 일당독재 아래 계획경제를 추종했지만 직업선택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의료 보건 교육에서 일단의 성과를 거둔 것이 특이하다.
주요 가문이 정치와 경제를 지배
브라질은 독립 이후 어느 계급도 주도권을 장악하기 못한 가운데 군부의 쿠데타를 통한 집권이 끊이지 않았다. 1937년 쿠데타에 의한 ‘신국가’(Estado Novo)는 식민지 이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자본에 대한 배외주의 정책 아래 국유산업의 확대와 민간기업의 육성을 내걸었다.
1964년의 쿠데타는 산업화 심화를 위해 국가의 기술관료적 역할을 증진시킨 가운데 다국적기업과 국내자본가 사이의 3자동맹을 통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성과에서 대다수 노동자와 농민이 배제됨으로써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다. 아시엔다라고 불리우는 대토지소유제의 유산으로 지금도 인구 1%가 농지 45%를 소유하고 있다. 지니계수로 보면 소득에서는 0.5가 넘고 자산에서는 무려 0.9에 이른다.
이러한 빈부격차는 지역 신분 계급 성별 연령 인종 등에 의해 서로 얽혀 있다. 이른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특히 순혈 백인이 아니면 브라질 사회의 정·관·군·재·법조계의 중심에 낄 수 없을 정도로 인종적 장벽이 높다. 해방신학과 종속이론이 나올 만하다.
브라질은 막강한 부를 갖는 주요 가문을 중심으로 정치권력이 세습되는 과두적 족벌체제를 이루고 있다. 현재 리우데자네이루시는 일곱 가문 출신들이 행정을 장악하고 도시를 운영한다. 족벌체제를 중심으로 부정부패가 구조화되어 있고, 정권이 바뀌어도 주요 가문 출신들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통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중앙과 지방 정부 예산을 좌지우지하며 지대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룰라 다 시우바(Lula de Silva) 대통령 8년과 이어진 노동당 진보진영의 집권을 제치고 등장한 극우 성향의 자이르 메시아스 보우소나루(Jair Messias Bolsonaro) 대통령은 열렬한 트럼프주의자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와 소통하면서 자기 중간이름의 의미대로 메시아를 자처한다.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와중에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그 자신도 감염되었다가 회복한 전력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는 코로나19를 가벼운 감기로 치부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외면하고 지역봉쇄도 거부하면서 “죽을 사람은 죽는다. 신은 우리 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것 위에 브라질,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외치는 브라질 국가 우선의 복음주의자다. 그는 대학과 언론을 좌파 이데올로기가 장악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가족의 가치를 되살릴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가족은 소외받고 차별받고 억압받는 하층민을 외면한 껍데기 복음주의라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도 새로운 신분과 계급 등장
최근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사면초가다. 코로나19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아래 경제가 망가지고 정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미국 인도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은 브라질에서 사망자가 미국을 능가해 의료체계는 거의 붕괴직전이다. 현재 하원의장을 맡고 있는 호드리고 마이아(Rodrigo Maia)는 브라질에서 가장 오랜 정치가문 출신으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탄핵이 성사될 일은 없다.
한국은 해방 이후 토지개혁 등을 통해 신분사회를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신분과 계급이 나타나고 있다. 세습과 혼맥으로 얽힌 가문의 등장은 족벌체제의 전조다. 청년세대는 흙수저라고 자학하며 분노한다. 일자리도 없고 삶은 고달프다. 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공정과 정의는 수사가 아니라 실천이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