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념 특별기고
문명의 전환과 아시아 – 생명화·상생·창조력의 新문명시대에 대한 메모 –

이어령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오늘날 지구촌에서 문명의 전환이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 4차 산업혁명의 영향, 아시아지역의 지경학적·지정학적·지오컬쳐(Geoculture)의 영향, 상생과 창조력이 중시되는 문명전환기적 영향 등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포스트코로나의 생명화 문명

코로나 팬데믹이 지구촌을 강타했다. 새로운 이머징 바이러스인 코로나는 개인을 넘고 경계 와 국가를 넘어 지구촌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인류에게 생명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산업화 문명과 정보화 문명을 넘어 생명화 문명으로 진입하고 있다. 단적인 현상으로 인류 문명을 진단해온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가 “생명경제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저서를 2020년에 출간한 것 등이다. 필자는 이미 10여년 전에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로부터 생명 자본주의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을 예고한 바 있다. 물질이나 산업 기술이 아닌 사랑과 공감과 생명이 원초적 자본이 되는 징후군이다.

생명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바이오필리아(생명애)가 중심이 된다. 마스크는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남에게 옮기지 않기 위한 자리행 이타행(自利行 利他行)의 상징물이 되었다. 생명사랑을 바탕으로 한 문명시대에서는 집단이나 개인이 따로 존립할 수 없고 상호주의와 윈-윈의 상생 주의가 사회적 바탕을 이룬다. 포식->기생->공생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포스트 코로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개인이나 국가와 문명전체의 흥망이 갈린다.

「自利行 利他行」

생명 가치가 중심이 되는 포스트 코로나 생명화 문명은 사람과의 일상적 만남으로서의 아날로그적인 ‘접촉’과 온라인의 디지털 ‘접속‘이 모두 중요한 디지로그(Digilog) 시대로 급진전되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산업화시대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①농업, ②의료, ③교육, ④엔터테인먼트, ⑤지식의 다섯 분야에서 급부상하게 될 것이다. 가령 농업 분야의 경우 드론으로 농사를 짓는 1인 농장 등이 가능해지고 이미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일본의 경우처럼 열대지방의 산물인 바나나를 재배해 공전의 소득을 올리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형 디지털 ABC문명

21세기 후기정보사회에서는 과거의 ABC(Atom 원자, Botanic 식물, Chemical 화학)이 디지털 ABC(AI, 빅데이터, 클라우드)로 바뀐다. 인공지능은 의료 로봇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편화되어 갈 것이며 생명자본주의에 응용되면 새로운 문명의 물결을 열 것이다.

「문명의 흐름」

문명의 흐름은 생명(Life)→지혜(Wisdom)→지식(Knowledge)→정보(Information)→데이터(Data)에서 인공지능 등 신기술에 의해서 역으로 ‘데이터(D)→정보(I)→지식(K)→지혜(W)→생명(L)’의 DIKWL 피라미드로 전환하게 된다.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암 환자 대상의 임상실험 데이터를 AI로 분석할 수 있고 AI를 활용하면 실용성 있는 정보를 도출해 의학지식을 시스템화할 수 있고 그것을 보건의료 정책에 적절히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인류는 새 생명(new life)을 향유하게 된다. 디지털 ABC와 DIKWL이 융합되는 생명화 시대의 성공 여부는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달려있다.

지경학·지정학·지오컬쳐의 아시아 문명

과거부터 아시아는 유럽과의 대립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가장 오래된 지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헤카타이오스의 지도에는 북쪽의 유럽과 남쪽의 아시아라는 두 지리적 구분밖에 없다. 당시의 세계관은 유럽과 아시아로 양분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원으로 보면 아시아(Asia)는 해가 뜬다는 ‘아수(asu)’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고 유럽(Europa)은 해가 진다는 ‘에레브(erubu)’에서 나온 것이다. 서양의 고지도나 고어 속에서 세계는 유럽과 아시아로 지리적 양분이 이뤄졌고 해가 뜨고 지는 대립공간으로 존재해왔다.

서방 중심의 문명이 지경학적 측면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아시아의 경제가 떠오르고 있다. 영국의 경제비즈니스연구센터(Cebr)의 세계경제리그 2021자료는 글로벌 경제4강체제의 변화를 전망하고 있다. 2020년의 세계경제규모 순위는 미국-중국-일본-독일 순이었는데 10년 후인 2030년에는 중국-미국-인도-일본 순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독일이 4위에서 5위로 밀려나고, 동북아의 중국이 2위에서 1위로 올라오며, 남아시아의 인도는 지금의 6위에서 3위로 급부상하게 된다. 글로벌경제 G4중에서 아시아가 3개국(중국, 인도, 일본)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정학적 차원에서도 동북아를 비롯해 아세안(ASEAN), 벵골만, 인도·태평양지역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 지역에 중국의 일대일로가 지나고 있다. 이처럼 아시아 문명이 지경학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지구촌의 중심문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아시아 쪽으로 오고 있는 새로운 문명을 뒷받침하는 것은 문화이다. 경제와 정치가 풀지 못하는 사회 현상을 문화로 해동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 지역을 하나로 꿰뚫는 뚜렷한 문화적 동질성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아시아적 지오컬쳐 지도를 유일하게도 한류문화가 그려가고 있다. 일본에서 한류의 본격적 시작을 알린 ‘겨울연가’는 지난 100년 동안 탈아시아를 추구해온 일본의 기성세대들에게 아시아적 정서와 가치로 복귀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 등 수십억의 인구가 한류를 함께 즐기고 울고 웃는 현상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BTS, 엑소를 비롯한 아이돌의 보는 음악과 듣는 음악을 융합한 K팝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공유되고 대히트를 치고 있다. 한류문명의 발상지인 한국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 첨단의 스마트 기술과 문화기술(CT)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형 한류플랫폼을 만들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와 공유하고 공감하는 ‘슈퍼한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Asian Union」

이처럼 지경학·지정학·지오컬쳐 패러다임이 융합된 아시아문명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더 나아가 아시아의 독자적 지역공동체를 단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유럽의 초국가 형태인 EU와 같은 아시아의 지역연합체인 AU(Asian Union)가 태동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별국가 단위를 뛰어넘어 새로운 문명차원의 아시아적 상생공동체가 구현될 때, 글로벌리즘은 더욱 균형잡히게 될 것이고 ‘해뜨는 지역’이란 의미를 지닌 아시아의 황금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상생·순환·창조력의 ‘가위바위보’ 문명과 한국

공존과 창조력이 핵심가치로 떠오르는 문명의 전환기에 놓여있다. 아시아에서도 크고 작은 충돌과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동북아만 하더라도 미중간, 중일간, 한일간, 한중간 대립구도가 존재한다. 상생을 향한 창조적 접근이 요구된다. 서양문화는 이항대립체계로 되어 있어 한쪽을 배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한 대립구도에서 공존과 상생과 균형의 양자병합을 위해서는 창조적 해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름밤 “바람이 들어오게 창문을 열어라”는 아버지와 “모기가 들어오니 창문을 닫아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지혜를 발휘, 창문에 방충망을 달면 바람은 들어오면서 모기를 막을 수 있다. 이러한 해법이 창조적 전략이다. 한국이 한·중·일 세 종류의 밤(栗) 품종의 장점만을 살린 삼원교배의 육종기법으로 맛과 크기도 좋고, 병충해에도 강한 신품종 ‘대보밤’을 만들어낸 것도 창조적 해법이다. 물고기인 넙치, 참치, 날치의 활동을 비교해보면 넙치는 물속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 참치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물속을 헤엄치며 이동한다. 그런데 날치는 트랜스포머다. 바닷속 지느러미가 수면 밖에선 날개 역할을 한다. 물속의 천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해수면 위로 높게 뛰어올라 30초 이상 비상하는 놀라운 변환 능력을 통해 광활한 바다를 볼 수 있는 ‘날치’형의 혁신. 이 또한 창조적 해법이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은 해양과 대륙의 양대 파워게임에서 충돌이 아닌 상생으로 이끌어가는 창조적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신지정학적 전환기에 놓여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DMZ가 놓인 한국은 반도국가로서 양대 파워를 조율하고 ‘양자택일(either-or)‘을 탈피해 ’양자병합(both and)‘이라는 창조적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이미 노이만식의 0과 1의 이항대립에서 0과 1이 포개진 융합 코드로 컴퓨터의 개념을 바꿔놓고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 (이스라엘과 제휴 등), 캐나다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때 IT최강국이었던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상생의 가위 바위 보」

그동안 실제로 무역관계에서 한국은 중국에서 흑자를 내고 일본은 한국에서 흑자를, 그리고 중국은 일본에서 흑자를 내는 모두가 이기는 (흑자를 내는)순환 구조로 발전해 왔다. 가위·바위·보와 같은 삼항순환(三項循環)의 원리,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주먹을 이기고 주먹은 가위를 이기며 때로는 비기기도 하는,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창조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가위바위보 패러다임에서 반은 열리고 반은 닫힌 가위역할을 하면서 대립적 이념을 뛰어넘어 신지정학·신문명론의 큰 틀에서 특유의 상생과 창조력을 발휘할 때, 한국은 대륙문명과 해양문명과의 전례없는 공존·상생·균형·번영의 중심지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양세력과 중국을 축으로 한 대륙세력이 각축하고 있을 때 반도의 한국은 두 세력을 갈등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피봇(Pivot,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던 옛날의 비극에서 작은 새우의 코리언 드림이 고래의 꿈을 좌우하는 기적의 역전극이 대륙·반도·해양의 삼항 순환으로 가능해 지는 것이다.

* 이번 호에는 이범준(조각-설치작가)의 그림과 사진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1권 6호 (2021년 4월 12일)

Tag: 생명화,생명자본주의,디지털ABC,DIKWL,슈퍼한류,가위바위보패러다임

 

저자소개

이어령 (pyongdo@gmail.com)

현) 문학평론가
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현) 중앙일보 상임고문
현)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현)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전) 문화부 장관
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저서:

『이어령, 80년 생각』 (김민희 저; 위즈덤하우스, 2021)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열림원, 2017)
『지의 최전선』 (아르테, 2016)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마로니에북스, 2015)
『생명이 자본이다』 (마로니에북스, 2013)
『젊음의 탄생』 (생각의 나무, 2008)
『디지로그』 (생각의 나무, 2006)
『축소지향의 일본인』 (기린원, 1986)
『흙속에 저바람속에』 (현암사, 1963)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편집위원장: 김용호 편집위원: 이명무 객원편집위원: 김윤호 편집간사: 최윤빈 편집조교: 민보미, 이담, 정민기 디자인: 박종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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