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19 백신의 정치와 외교 (2)
이스라엘은 어떻게 백신 접종 선도국가가 되었나?
인구 약 900백만의 이스라엘이 백신 선도국가가 된 것은 총리의 리더십 덕택이었다. 총리가 직접 화이자 대표와 17차례 통화하면서 보여준 리더십이 백신 구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빠른 백신 접종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는 네 개의 HMO 보험사 병원들의 쉬운 접근성,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을 골자로 한 공공의료체계이다. 비상사태 훈련이 잘된 병원 인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의 백신 정책 성공의 네 가지 요인
이스라엘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세계 1,2위를 달리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테스트 베드’ 국가를 천명하고 조속히 집단면역을 이루겠다며 노력한 성과이다. 이스라엘은 작년 12월 19일부터 화이자 백신 대규모 접종을 시작해 3월 22일 기준으로 이스라엘 전체 인구(약 930만 명)의 약 57%가 백신 1차 접종을 받은 셈이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Worldometer)’ 집계를 보면 이스라엘 내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전반적으로 백신의 면역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의 최대 의료보험사 클랄릿 산하 연구소는 2월 14일, 화이자 백신을 두 차례 접종한 60만 명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감염 증상자 수가 미접종 집단에 비해 94% 줄어든 것으로 발표했다. 또 화이자 백신을 두 차례 맞은 사람이 코로나19 중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92%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클랄릿 관계자는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두 차례 맞으면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 준다”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을 백신접종 선도국가로 만든 결과, 네타냐후 총리는 유능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네타냐후가 글로벌 지도자 반열에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1월 화이자 백신 800만 회분을, 12월에는 모더나 백신 600만 회분을 각각 계약했다. 어떻게 이스라엘은 치열한 백신 확보 전쟁에서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이른 시일 내에 높은 접종률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의 코로나19 백신 정책 성공의 비결을 네 가지다. 즉 총리의 리더십, 통합의료체계, 공공의료보험제도와 정보 공개, 고도의 비상사태 대응능력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총리의 리더십과 조기 백신 확보
이스라엘이 자국민을 접종하고도 남을 충분한 양의 백신을 조기에 확보한 비결은 이스라엘 정부가 시세보다 높게 백신값을 지급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 이스라엘은 2회 접종에 당시 백신 시세보다 40% 높은 56달러를 지불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 총리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런 가격에 구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작년부터 이미 모든 국가가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구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지만 이런 가격을 제안하기는 쉽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와 에델슈타인 보건부 장관은 앨버트 불라 화이자 대표이사(CEO)와 17번이나 통화했다. 일각에서는 불라 대표가 유대계 그리스인으로 이스라엘에 동질감을 느껴서 백신 계약에 우호적이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네타냐후 총리의 빠른 판단력과 제약사 대표와 끈질긴 협상을 직접 주도한 것이 주요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작년 말 이스라엘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해결책이 절실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백신 확보 작전은 이미 작년, 백신 개발 선두에 있던 소수의 제약사와 접촉하고 계약을 타진했다. 어느 백신이 효과가 좋을지, 보건부의 접종 승인이 언제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필요량보다 많은 수량의 백신을 선제적으로 계약해 최악의 상황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켰다.
네타냐후 총리가 발 벗고 직접 백신 구매를 위해 노력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의 발현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올해 3월 23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나 여론을 환기시킬 이슈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네타냐후는 작년 말 매일 3-4천명으로 늘어나는 폭발적인 확진자, 그리고 사망자 수가 5천명까지 늘어나면서 악화된 민심을 잡고 지지율을 높일 확실한 돌파구로 백신 접종에 사활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3월 23일 선거에서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30석을 얻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돼 네타냐후의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해온 종교 정당과 우파 정당을 합쳐도 연립정부 구성에 필요한 61석을 확보하지 못한다. 네타냐후가 재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아랍정당과 연정을 하는 것인데 만약 우파 정당이 반대할 경우 난관이 예상된다. 36석을 얻은 작년 3월 선거와 비교해도 6석이 모자라 백신정치를 통해 지지율을 높이려는 네타냐후 총리의 선거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백신 조기 확보의 비결은 통합 의료체계
이스라엘은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업체가 매력을 느낄만한 ‘테스드 베드’ 국가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화이자 측에 백신 공급만 원활히 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체계를 이용해 가장 빠르게 백신 접종을 추진하고, 백신 접종과 관련된 데이터를 화이자와 완전히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화이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백신을 공급했다. 에델슈타인 장관은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 FT)에 “제약사로선 접종 성과를 바로 홍보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제안”이라며 “그렇지 않았다면, 100배나 큰 시장을 놔두고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협상 성공의 비결은 의료체계임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이 계약에 따라 이스라엘 전역의 병원들은 접종 후 항체가 형성되는 데이터와 2차 접종 후 감염률이 감소하는 현상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화이자와 공유한다. 화이자 대변인은 FT에 “이스라엘 보건부와 감염병을 공동으로 분석함으로써 백신 접종률이 어느 단계에 집단면역을 일으키는지, 또 감염률 감소 현상이 백신 덕분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어 소중하다”고 말했다.
공공보험제도와 정보 공개로 백신 접종율 높여
이스라엘은 대규모 공공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전국민건강보험과 4개의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외에 추가로 판매하는 보충 의료보험(Supplemental Insurance), 그리고 민간보험으로 구성된다. HMO가 운영하는 4개의 반민영 의료보험 (클랄릿, 마카비, 메우헤뎃, 레오밋) 소속 병원이 이번 코로나 백신 접종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병원들이 전국에 고루 퍼져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네 개 HMO 의료보험사는 누가, 어떤 백신을, 언제 접종을 받았는지 관련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접종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초 백신에 독극물이 주입되거나 백신에 심어진 칩이 사람들을 통제할 것이라는 등의 가짜뉴스가 퍼졌으나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로 백신 불신을 종식 시켰다. 이스라엘 정부는 확보한 백신의 수, 지불한 금액, 백신의 종류 등의 모든 정보를 자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 보건당국은 백신이 들어오면 접종 대상자들에게 바로 문자 및 음성 메시지를 보내 접종 예약을 권하고 있다. 법무부는 페이스북 본사와 접촉해 백신 불신을 부추기는 히브리어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고, 의료 전문가가 수시로 언론 매체에 나와 백신 접종을 권고하며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젊은 층의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로 접종 후에 현장에서 피자와 맥주를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비상사태 대응능력 향상이 백신의 순조로운 배분과 접종에 기여
2000년 9.11 테러 이후 이스라엘은 대규모 비상사태 대응능력 향상에 시간, 에너지와 예산을 투입한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실전 경험이 있지만 중소국으로 이스라엘만큼 능력을 갖춘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수년 동안 “모든 위험 접근법(All-Hazards Approach)”을 적용하여 안보, 자연재해 혹은 의료 분야의 대규모 비상사태 대응책 마련에 꾸준히 투자를 해왔으며 특히, 모의 훈련을 통해 충분한 실전 능력을 키워왔다. 비상시 정책을 결정할 각 지역과 구역의 정책 결정 기구와 실행 팀을 구성함과 동시에 대응 매뉴얼을 발전시키고 직원 교육과 함께 모의 훈련을 해왔다. 코로나19 이전에 시행한 대규모 모의 훈련 내용에 이미 대규모 백신 접종도 포함돼 있었다. 이스라엘의 HMO 운영 병원도 국가 비상사태를 가정한 모의 훈련에 참여하게 돼 있다. 게다가 수많은 전쟁을 경험한 특이한 안보 상황 탓에 이스라엘은 대규모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실전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예컨대 HMO 운영 병원은 주기적인 군 생물학 테러 모의 훈련에 참여하면서 비상시 이스라엘군과 다른 관련 조직과 공동으로 대처하는 공조 능력을 연마해 왔다. 또한 HMO 병원 직원은 매년 시행해온 독감 접종 캠페인을 통해 대규모 환자 수용시 요구되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일정 관리 능력을 키워왔다. HMO 운영 병원이 다년간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화이자 백신의 순조로운 배분과 접종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실제 네 개의 HMO 보험사들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면서 400개가 넘는 백신 배포처에 신속히 백신을 조달하는 성공적인 작전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린 패스 제도로 경제활동 재개 준비
이스라엘은 국민 절반 이상이 화이자 백신을 한 번 맞았다. 그리고 2차 접종을 기준으로 코로나 예방 효과는 95.8%, 중증 환자와 사망자 억제율은 약 99%로 나타나는 등 백신 효과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백신 접종이 효과를 보이자 2월 20일 이스라엘 정부는 코로나 백신 접종자에게 한해 ‘그린 패스’를 발급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3차례 봉쇄조치를 단행했던 이스라엘이 ‘그린 패스’ 제도를 시작해 경제 활동 재개를 준비 중인 것이다. 상점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체육관, 수영장, 호텔, 극장은 접종을 마치고 ‘그린 패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해 제한 운영을 하고 있다. ‘그린 패스’를 소지 하더라도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는 여전히 적용된다. 그린 패스의 유효기간은 항체 지속 기간을 고려해 예방접종 후 6개월이고 이후 다시 발급을 받도록 정했다. 일부 국가가 이스라엘처럼 그린 패스와 유사한 백신 여권 도입을 준비 중이지만 백신 접종자들에 대한 특혜 또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네타야후 총리의 백신 외교에 제동 걸려
네타냐후 총리는 남은 코로나19 백신 10만 회분을 우호국과 예루살렘으로 공관을 이주한 국가나 향후 이주를 약속한 국가 등 15개국에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백신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비하이 만델블리트 검찰 총장은 총리에게 여분의 백신을 처분할 권한이 있는지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백신 제공을 중단시켰다. 베니 간츠 국방장관은 합법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생략한 백신 제공 결정에 반대하고 아직 집단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만큼 유사시를 대비해 백신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확실히 이스라엘은 신속한 백신 확보와 빠른 접종으로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갈 기대감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주는 교훈도 있다. 백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남용되거나 당리당략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이스라엘 채널 12와 인터뷰에서 “50세 이상 57만명만 접종을 마치면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끝낸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전염병학자이며 前이스라엘 의사협회장 하가이 레빈 교수는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은) 정치적 발언이지 전문가의 발언이 아니다”며 일축했다. 레빈 교수는 “아직 접종을 마치지 못한 50세 이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만약 지금 접종하는 백신이 막을 수 없는 새로운 변이가 발생하면 어떤 해법이 있는지” 반문했다. 벤구리온 대학의 면역학자인 토메르 헤르츠 교수는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이전에도 그랬듯이 선거 캠페인용 발언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상황이 조금 나은 것은 맞지만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젊은 층과 어린아이들은 여전히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접종이 진행되는 동안 접종자와 비접종자 간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접종자만이 대우받는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상 불이익을 당한다. 접종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과 호텔 등을 이용할 수 없고 그린 패스 소지자만이 여행할 수 있는 그리스와 키프러스도 갈 수 없다. 비접종자 소수는 그린 패스가 새로운 사회 계급을 만든다며 경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린 패스 정책은 도덕적인 질문도 던지고 있다. 비접종자 대상으로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지방 당국이 비접종자의 신원과 정보를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타마르 잔드버그 의원은 개인신상 정보를 쉽게 공개하는 것은 개인 사생활 “침해로 갈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소수지만 일각에서는 접종을 거부할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스라엘의 접종 정책에 오류가 있었던 점은 이제 접종을 막 시작한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Tag: 코로나19, 이스라엘, 의료체계, 의료보험, 백신정책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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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성일광(ilkwangs@hotmail.com)
현 한국이스라엘학회장
현 서강대 유로메나문명연구소 책임연구원
현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
연구성과: 『세계의 이슬람』. (청아출판사. 2018)
“20세기 초중반 한국 지식인에 비친 유대인 이미지.” (『통합유럽연구』 11권 1호. 2020)
“이스라엘의 안보 전략 변화와 그 함의.” (『한국중동학회논총』 36권 2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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