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한국, 시간이 없다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요즈음 어르신들은 서럽다. 갈 곳도 없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나가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집콕하기에는 삼시세끼 먹는 것이 눈치가 보인다. 하루가 멀게 바뀌는 디지털 세상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데 감염병의 공포는 가뜩이나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더욱 조여온다.
정부 당국의 조치로 이번 설에도 온 가족이 함께 모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아니라도 갈수록 집안의 모임은 북적거리지 않는다. 독신으로 지내는 조카와 자녀들이 많기 때문이다. 집안에 아이 울음소리가 그친지 오래다. 우리 주변의 일반적 풍경이다.
한국이 ‘인구 데드크로스’에 마주했다. 지난해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새로 태어난 출생아보다 사망자 숫자가 많아 인구가 자연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1962년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된 이래 인구감소가 일어난 것이 처음이다. 예상한 것보다 3년 정도 앞당겨졌다.
오래전부터 가족이 무너지고 지역이 사라지고 있다. 전체가구 중 1인가구 비율은 작년 30%를 넘었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부부와 미혼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 1인 가구, 자녀없이 부부만 사는 가구 순이다.
문제는 젊은이들이 연애 취업 주거 양육 교육 등을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는 데 있다. 올해 기준으로 시군구 215곳 중 절반이 인구소멸 위험에 처했고, 3400개 읍면동 중 1383곳이 사라질 수 있다. 대도시를 빼놓고 전남 전북 경북 경남이 심각하다. 기초지자체의 많은 곳에서 아이들이 없어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있다.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수 있다
한국의 고령화 추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에서 15%에 도달하는데 일본이 24년 걸렸다면 우리는 19년 만에 돌파했다. 불과 2년 전 2019년 일이었다. 출산율도 세계에서 가장 낮다. 국가재난 시기에나 나타나는 0.8 이하의 초(超)저출산율을 2020년 기록했다.
우리의 경우 이러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인구절벽을 통해 국가절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인구는 5200만명을 정점으로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이 추세면 2096년 반토막이 되고, 2136년 1000만명, 급기야 2275년에는 제로가 된다. 한국이 지도에서 지워질 수 있다. 물론 세계지도에서 없어질 나라가 비단 대한민국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옥스퍼드대학교의 인구전문가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교수는 OECD 35개 국가 중 ‘인구소멸국가 1호’가 한국이 될 것이라는 끔찍한 경고를 한 바 있다.
현시점에서 남북통일의 전망이 밝지 않지만, 북한 2500만명과 해외동포 800만명 을 고려하면 한국이란 나라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아무리 AI로봇이 있다 하더라도 생산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단일민족의 신화를 넘어 피부색이 달라도 서로 섞여 사는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차분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 존속을 위해 걱정해야 한다. 진영싸움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20년 후 한국인구의 중위연령이 52세로 올라가고, 대략 25%의 일하는 사람들이 65세 이상 노령자와 14세 이하 유년층을 먹여살려야 한다. 2056년이면 젊은세대 100명이 부양해야 할 어린이와 노인이 1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유년과 노년의 부양인구 증가로 인해 경제성장도 둔화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100조원 가량을 재난지원을 위해 써야 하는데 그간 과도한 복지지출로 인해 정부의 재정적자가 이미 1000조에 이르고 있다. 모두 젊은세대에게 넘겨진 빚이다. 복지조달을 위한 젊은세대의 조세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에 따른 세대갈등을 넘어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가정과 사회에서 전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이십여년 동안 200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을 늘리는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경제생활이 나아지면서 양성평등 아래 일과 삶의 균형이 중시되는 가운데 ‘욜로족’이나 ‘딩크족’이 증가하고 결혼과 출산을 회피하는 풍조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주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아동수당 건강보험 무상보육 교육수당 주택보조 등 맞춤형 복지를 제공해준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구조와 문화를 과감히 바꿔야
한국의 인구를 5000만명 안팎으로 유지하는 정책기조를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토면적과 천연자원 등을 고려하면 그 정도가 적정인구다.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을 필요가 없다. 제4차산업혁명 시대의 AI를 활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안보와 통상을 꾸려가면서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내는데 부족한 대로 모자람을 이겨낼 수 있다.
이제 돈만 쏟아붓는 정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문화적 분위기를 바꾸어 젊은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정을 꾸려 두명 안팎의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의식변화와 제도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혼인을 통하지 않은 가족도 포용해야 한다. 비혼동거도 받아주어야 하고, 국내입양도 넓혀야 한다. 서로 마음을 열고 생각을 바꾸어 행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