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국가의 소환’ 만능해결사인가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코로나 팬데믹이 지구촌을 뒤흔든 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먹고 살기도 팍팍하고 따로 지내기도 힘들다. 우리의 규범 제도 의식 생활 등 모든 것이 뉴노멀이다. 바이러스의 급증은 환경파괴에 따른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 이번 기회에 지구도 살리고 인류도 살리기 위해 새로운 문명의 길을 찾으면 좋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국제사회에서 진지한 고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 신흥국 개도국 거의 모두 각자도생의 자국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백신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국민의 안전과 민생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국가를 불러들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지고의 권력논리로 인해 관습적 지배와 억압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전락할 수 있다. 사회로부터 부단한 견제가 없는 한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리바이어던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 와중에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물러나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복음이다. 감세 규제완화 재정축소 복지감축 등 작은 정부가 추세였다. 그러나 국가가 전면에 나서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을 뿐 정부는 시장만능적 세계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기업을 통제하고 시민을 규율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의 경우 소득주도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케인즈주의적 재정투입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정부에 다름 아니다.
원래부터 무적이었던 한국의 국가
한국의 국가는 무적(無敵)이다. 과거엔 위로부터 시민사회를 압박할 수 있는 ‘전제적’(despotic) 권력만 누렸지만, 지금은 아래로부터 시민사회를 동원할 수 있는 ‘하부구조적’(infrastructural) 권력도 지니고 있다. 정부는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는 이른바 ‘국가자율성’도 갖추었다. 한국이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개도국들 중에서 드물게 중심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한국의 국가는 민주화 이후 정당성의 바탕 위에서 효율성을 추구했다. 개발독재 아래 국민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先)성장-후(後)분배 정책을 펴면서 부족한 정당성을 효율성으로 메우려 했던 것과는 다르다.
일반적 통념과 달리 민주적 정부가 독재적 정부보다 정책수립과 집행에서 유리하다. 민주적 정부가 시민적 참여 아래 인력과 자원 동원을 통해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 따라 성장 분배 복지 등 발전가치에 대한 역점이 달랐지만 역대 정권은 선거를 통한 정당성 기반 아래 효율성을 통해 역량을 발휘하려 했다.
2000년대 들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은 커졌고 재정도 늘어났다. 우리 정부 조직은 18부 4처 18청으로 일본의 1부 22성청에 비해 크다. 우리 중앙 공무원 숫자는 68만명으로 인구규모가 2배 이상인 일본과 거의 비슷하다. 근래에 정부가 공공부문을 확대하면서 지방공무원 정원이 최근 4년간 5만명이 늘어났다. 최근 시·군·구 지역 226곳 중 165곳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공무원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중앙과 지방 공무원이 103만명, 입법 사법부까지 합치면 110만명이 넘는다.
코로나 비상상황 아래 경기부양과 재난지원을 위해 재정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저성장 아래 세수는 줄고 지출이 늘어나 정부재정이 나빠지고 있다. 그간 완만하게 늘어났던 국가채무가 문재인정부 들어 무려 약 300조원이나 가파르게 증가했다. 올해 국가채무는 846.9조원으로 GDP의 43.9% 수준이며, 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상 24년 국가채무가 1334.5조원, GDP 대비 58.6%에 도달할것으로 전망된다.
국난 극복을 위해 확장재정은 불가피하지만 정부부채와 재정적자가 만성화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재정투입만 있지 구조조정이 안 보인다. 산업구조의 재편과 노동시장의 변화없는 재정투입은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국민의 안녕과 보호를 위해 쓸 것은 써야 하지만 조세체계와 복지제도의 선제적 개편없는 방만한 재정지출은 다음 세대에 커다란 부담을 줄 수 있다.
민주적이면 역량도 크다
최근 국가자율성이 시민사회의 분열에 따라 흔들리고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침식되면서 정책수행 과정에서 공공성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국민동의를 구하지 않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은 정부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이 실물경제의 부진에 따라 자산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규제도 필요하지만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일련의 부동산 관련 정책에서 해결사로 나선 정부가 문제아가 되고 있는 사례다.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한 한국판 뉴딜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공존을 시도한다. 성장과 고용을 늘리면서 사회안전망도 강화하려는 야심적 구상이다. 하지만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지역균형 뉴딜 모두 새롭고 혁신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전시성 사업을 넘어서야 한다. 막대한 재정조달도 쉽지 않다.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정부가 해결사로 성공하려면 미래창발적 비전을 확고히 갖고 국가, 기업, 사회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협치를 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