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시민운동, 초심으로 돌아가야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요즘 시민단체들은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활동가들은 불안한 노동에 시달린다. 본래의 역할인 권리주창 정책감시 대안제시에서의 입지도 줄어들었다. 특히 개혁성 전문성 도덕성 공정성 투명성을 덕목으로 하는 시민단체에서 일부가 회계부실과 정치관여로 과거의 신뢰도와 영향력을 까먹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일부 지도자들은 진보와 보수정권 아래 제각기 권력친화적으로 나아감으로써 시민운동의 공공적 가치를 훼손해 순수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은 바 있다. NGO를 ‘New Government Office’라고 꼬집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조국사태’ 이후 진영논리에 의해 심각하게 갈라지면서 본연의 계도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회통합에 역행하는 불행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시민단체라고 얘기하는 NGO는 전세계에 1500만여개가 있다. 이중 환경 인권 평화 여성 복지 등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는 120여만개로 10%가 채 안된다. 대부분의 NGO는 말이 시민단체지 개인적 용도나 정치적 목적, 또는 세금감면이나 재정지원을 위해 만든 것으로 시민의 권익증진과 사회개혁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도 대략 10만여개의 NGO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 통계에는 매년 신규 시민단체가 보태지고 기존 단체 중 활동을 중지한 것도 잡히기 때문에 규모가 부풀려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NGO 중 순전히 시민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1만5000여개에 달한다. 비영리 사단·재단 형태의 법인이 5000여개로 법적으로 주무부처에 재정을 보고하게 되어 있다.
질적발전 전환기에 놓인 시민단체
지금 시민단체들은 양적성장에 비춰 질적발전을 해야 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놓였다. 우리 사회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해와 욕구를 수용하고 대변해야 하는데 엘리트 중심의 종합형 시민운동으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시민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풀뿌리를 강화하면서 특정 이슈 중심의 전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 사이의 역량 격차가 여전하고 여러 부문 운동들 사이의 병행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너지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시민들이 시민단체보다 더 빨리 SNS를 통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에 나서는데, 시민단체들은 이념적 정파성에 입각해 거대 이슈를 다루려다 보니 시민과 시민단체 사이에 괴리가 나타난다. 시민은 살아나는데 시민단체는 약해진다.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카페나 밴드, SNS에서 만나는 제3의 시민사회(tertiary civil society)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민들은 홀로 혹은 같이 직접 행동에 나선다.
1990년대에는 시민이 시민단체를 찾아와 권리를 위탁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시민단체를 찾는 시민은 줄어들었다. 후원회원은 있지만 시민단체와 같이 활동하는 회원은 많지 않다.
문재인정권 출범과 함께 시민사회의 독자적 활동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시민사회발전기본법’이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었다. 시민사회의 공익증진을 위한 상호협력, 즉 시민참여를 통한 협치를 늘려 민주주의의 심화에 기여하자는 것이 취지였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 내부에서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홀로 설 수 있겠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래도 독자적인 제도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법이 필요하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 기본법에 대해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양식과 덕망이 있는 모 국회의원이 필자에게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기업이나 권력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본심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시민사회가 힘을 갖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아직도 국회에 계류중인 이유를 알 만하다.
필자는 ‘시민단체는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이중적 자율성(dual autonomy)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내일신문 2018년 5월 11일 칼럼) 공공영역에서 사익을 배제하고 공익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시민단체는 권력과 자본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민단체는 헌정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법에 의한 지배를 인정하면서 시민적 연대감이란 덕성을 통해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시민단체, 정부·기업과 적당한 거리 둬야
우리는 김영삼정권 이래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단체 일부 구성원들의 과도한 정치권 진출로 이중적 자율성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보아왔다. 문재인정권에서 시민단체 일부 핵심인사들의 지나친 정치참여가 개혁이란 이름으로 시민사회의 독자성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시민단체 출신들이 감시와 비판이라는 경험을 토대로 정치권에서 공공적 가치를 확장하는 것은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시민단체 경력을 디딤돌로 정치권으로 진출하게 되면 시민사회의 독자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시민단체의 지도자들은 민주화를 위해, 자유와 정의의 가치확립을 위해 분투했던 시민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 시민권익과 사회개혁을 위해 다시 자존감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