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칼럼 – ‘이해관계자 모델’(Stakeholder model) 지붕만 얹어서야

[내일신문] 임현진칼럼 – ‘이해관계자 모델’(Stakeholder model) 지붕만 얹어서야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올해로 세계경제포럼이 50주년을 맞이했다. 매년 1월 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국가정상 기업총수 정부관료 학계명망가 등이 참석하여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굵직한 얘기를 나눈다.

유럽경영포럼으로 작게 출발했지만 지구적 현안에 대해 뛰어난 의제설정 능력을 보임으로써 세계 정치와 경제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 ‘공동미래 창조’ ‘제4차산업혁명’ ‘세계화4.0’ 등이 지난 5년간 대표적 주제였다. 매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매겨 세계의 관심을 유도하면서 지구 차원에서 위험, 성별격차, 여행 및 관광, 무역능력 등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다보니 UN보다 인지도와 신뢰도가 높다.

다보스, 지구적 위기에 수사만 내세워

오늘의 세계는 경제·환경·정치·자원위기가 서로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극복이 쉽지 않다. 특히 급격한 세계화 와중에서 국가 간, 그리고 국내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옥스팜(OXFAM)에 의하면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0명이 소유한 자산은 세계인구의 2/3이라 할 50억명의 것에 해당한다.

올해 세계경제포럼 주제는 ‘서로 화합하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 for a Cohesive and Sustainable World)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급속히 번지듯 오늘의 세계는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정개인 집단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 기업 시민사회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같이 노력해 기후위기 무역분쟁 사회분열 기술변화 경제격차 등을 해결해야 한다.

다보스에서 신자본주의라 명명되었지만 ‘이해관계자 모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등에서 오래전부터 참여 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의 결합을 내용으로 운영되어 왔다.

기업 소유자를 포함한 주주만을 배당의 대상으로 삼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와 달리 주주뿐만 아니라 경영자 종업원 고객, 나아가 기업과 관련된 은행 하청업자 공급자 가맹점 지역시민의 이익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경제주체가 효용과 생산을 공동으로 책임짐으로써 가치와 자원배분 상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계급 지역 세대 성별을 넘어 ‘하나의 국민’(one nation)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합력을 지닌다.

한국은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가 대세다. 개발독재의 유산으로 정부의 간섭이 여전히 심하고 기업은 주주가치 확대에 주력한다.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기업이 주주 자본주의 기반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바꾸려면 지배구조 개선을 시작으로 엄청난 변화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주주 자본주의 기초 위에 이해관계자 모델이란 지붕만 얹는 꼴이 될 수 있다.

노사 간의 공동결정과 이윤공유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내가 면담해 본 기업의 대표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사회적 공헌에 대해서는 개방되어 있지만 아직도 기업은 주주들의 것이지 이해관계자 모두를 포함하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이 주장하듯 전지구적 차원에서 국가 민족 종교 인종의 차이를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협력과 연대에 의해 공존공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미명 아래 실제로는 ‘나라들 사이의 약탈’(global pillage)이 심해지고 있다.

자국 중심주의로 국제연대가 무너지는 현실에서 초국적기구들이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협치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보고 있듯 미국에 끌려가는 WTO의 무기력, 중국의 눈치를 보는 WHO의 편향성이 좋은 사례다.

이해관계자 모두가 더불어사는 포용과 융합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제공조의 플랫폼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전략과 방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작년 다보스에서 16세 환경운동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은 돈과 성장만을 얘기한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번 회의에서 지구종말을 앞에 두고 세계 지도자와 기업가들이 기후위기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래전부터 그리피스와 옥스팜 등 국제NGO가 세계경제포럼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다보스가 지구적 복합위기의 해결에 대해서는 수사만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문화를 살리자

자본주의는 부단한 교정과 변신에 의해 내구력을 키워왔다. 일찍이 케인즈가 ‘기린의 우화’에 빗대어 과도한 경쟁 탐욕 낭비를 자본주의의 결함으로 지적했듯이, 사회구성원들이 공생할 수 있는 혁신과 변화가 마련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지속가능성을 잃게 된다.

바로 여기에 공동체적 비전을 지향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이 지니는 특장이 있다. ‘나와 우리의 패러다임’(I&We Paradigm)으로서 이해관계자의 자본주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키울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형평이 서로 맞물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협력 포용 연대 공생의 가치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