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56명의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핼로윈 참사에 대해 “이번 사고는 재난을 대비하는 총체적인 국가의 위험 거버넌스 역량의 부실이 드러난 것”이라며 “복합적 재난 사회가 된 한국이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제대로 학습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뉴스1
30년 넘게 재난과 위험의 사회학을 연구해온 이 교수는 14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발간한 ‘아시아 브리프’ 기고문에서 “한국에서 압사 사고는 과거의 일이었다”며 1959년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비를 피하려다 벌어진 67명의 압사 사망 참사 등 다수의 과거 사례를 제시했다. 그런 뒤 “그래서 이태원 압사 참사는 뼈아프다. 국내외 많은 재난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재난이 재발하는 이유에 대해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이론을 인용해 “‘이중 순환학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재난의 원인을 학습해 재발을 막지 못하게 하는 배경에는 ‘비난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ㆍ책임자처벌ㆍ 국정조사를 위한정의당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한국에서)재난이 발생하면 누구의 책임인지는 먼저 따지고, 처벌하거나 사표를 받는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 간판을 바꾸기도 한다”며 “이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패의 원인을 점검할 수 있게 내부의 실패 요인을 과감하게 외부 전문가들에게 공개하는 ‘이중 순환 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학습을 통한 재발 방지에 기여했던 대표적 사례로 1989년 리버풀 축구팬 97명의 압사사고가 발생한 뒤 영국 정부가 20여년에 걸친 대대적 조사를 통해 만든 ‘이벤트 안전 관리 지침(Event Safety Management Plan)’을 들었다. 해당 지침은 정부 기관이나 민간단체 등 누구나 행사를 조직할 때 활용할 수 있게 온라인상에 공개하고 있다.
국회 예결특위 비경제부처 예산안 심사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일본 역시 2001년 효고현 아카시(明石)시 불꽃축제 압사로 11명이 사망한 뒤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아무도 악의를 가지지 않았지만, 밀집된 공간에서는 갑작스럽게 끔찍한 재난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혼잡경비안내서’를 발간했던 경험이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의 대응에 대해선 “1990년대 빈발한 대형 재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후 여러차례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곤 했지만, ‘비난의 정치’만 증폭됐다”며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는 정치적 갈등은 커졌는데, 정작 8년이 지나고도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임현동 기자
이 교수는 이어 “한국은 과거형, 숙성형 재난의 위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데, 현재 미래형 정상사고나 블랙스완형 재난이 몰려오는 복합적 사회재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비극적 재난의 재발을 막으려면 비난의 정치를 넘어 소를 잃더라도 외양간을 확실하게 고치는 조직학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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