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아시아는 通한다] 위아래 따지는 아시아 문화가 天才를 평범하게 만든다

[기획보도] [아시아는 通한다] 위아래 따지는 아시아 문화가 天才를 평범하게 만든다

[아시아는 通한다] 위아래 따지는 아시아 문화가 天才를 평범하게 만든다

서울대 심리학과 김청택 교수

[3] 서구보다 창조성 떨어져

77개國 창조·혁신 지표 비교… 한국 21위, 日 23위, 中 44위
재능·기술 수준 뛰어나지만 권위·질서 중시, 다양성 막아

서울대 심리학과 김청택 교수

지난 2005년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각각 2만3200달러와 2만2700달러로 엇비슷한 두 나라가 있었다. 전자는 창조 경제의 본보기로 꼽히는 이스라엘이고, 후자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었다. ‘창조성’으로만 본다면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더 성공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2년 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1인당 GDP는 이스라엘이 2만9800달러, 한국이 3만800달러로 오히려 한국이 앞섰다.

세계 벤처캐피털의 35%가 몰리는 ‘창조 경제의 나라’ 이스라엘이 대한민국을 제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새로운 ‘창조’와 기존 기술의 ‘혁신과 개선’ 중 어느 것이 진정한 국가 경쟁력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조선일보와 서울대아시아연구소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이 만든 세계 창조성 인덱스와 미국 코넬 대학의 세계 혁신(개선) 인덱스를 기반으로 ‘종합 창의(創意) 지수’를 개발했다. 창의성 측면에서 한 나라의 종합적 국력을 따져보자는 취지다.

혁신은 잘해도 창조성은 떨어지는 아시아

분석 결과 창조성과 혁신성을 골고루 갖춘 1위 국가는 스웨덴으로 나타났다. 2위는 스위스, 3위는 미국, 4위는 핀란드, 5위는 네덜란드였다. 반면 이스라엘은 18위, 한국 21위, 일본 23위, 중국은 44위로 나왔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순위가 엇비슷한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창조·혁신성에서 두 나라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아시아 국가들의 종합적 창의성은 그리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인구 5000만명 안팎의 국가 중 영국(8위) 독일(15위)에는 밀리지만, 프랑스(17위) 스페인(19위)은 상당히 추격했고, 이탈리아(22위)는 뛰어넘었다.

다만 창조성 측면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약점(弱點)은 명확히 드러났다. 한국은 혁신성은 16위지만, 창조성은 26위였다. 일본은 혁신성 20위, 창조성 29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이 격차가 더 커서 혁신성 32위 창조성 54위였다. 홍콩(14위)도 혁신성은 7위였지만 창조성은 19위였다. 반면 미국은 혁신성은 5위지만 창조성은 2위를 기록해 종합 3위를 차지했고, 이탈리아는 혁신성 26위지만 창조성에선 18위였다. 결국 동아시아가 지금까지 이룬 경제 발전을 넘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창조성을 높이는 일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창조성엔 과학보다 문화가 중요

토론토 대학의 연구진은 창조성을 결정하는 세 요소로 기술(technology)·재능(talent)·다양성(tolerance)을 꼽았다. 여기서 다양성은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포용해 주느냐를 나타내는 지표다.

아시아 국가는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기술과 재능 수준은 서구 국가에 비해 높았지만, 다양성 수준은 매우 낮았다. 예를 들어 기술에선 일본이 2위, 한국이 8위, 중국이 25위였지만, 다양성에선 일본이 61위, 한국이 62위였고, 중국은 아예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 다양성 측면에선 우간다(59위)보다 낮고, 터키(64위)·키르키스스탄(65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양성 1위 국가는 캐나다, 2위는 아일랜드, 3위는 네덜란드였다.

사회적 다양성이 낮으면 그 사회의 ‘창조적 효율’이 떨어진다. 각 개인이 똑똑해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해도 비슷비슷한 아이디어만 나올 수 있다. 아이디어의 양은 적더라도 전혀 다른 아이디어들이 나와줘야 사회 전체적 아이디어의 크기도 늘어난다. 사회적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개인과 집단의 창조성을 높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쉽고 효율적일 수 있다. 다양성은 ‘수입’이 가능하다. 집단 내에서 갑자기 다양성을 높이기 어렵다면 해외의 인재를 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창조성 강조하지만…

긍정적인 점은 동아시아의 한·중·일 모두 창조성 향상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창조 경제가 화두가 돼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됐고, 중국에선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 제출된 보고서에 1992년 8번 언급됐던 창조성이란 단어가 2002년엔 41번, 2007년엔 65번이 나올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 일본도 아베 총리가 창조성 증진을 위한 ‘이노베이션 회의’ 의장을 직접 맡고 있다. 그런데도 아시아 국가의 창조성이 쉽게 높아지지 않는 것은 수직적 질서와 집단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때문으로 여겨진다. 아시아의 창조성이 기존 기술과 질서를 발전시키는 ‘혁신’ 형태로 발현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중·일 등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기술 경쟁력과 교육 수준은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제 남은 문제는 다양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직된 문화를 풀어주는 것이다. 기술이 아니라 문화의 혁신에 좀 더 ‘창조 경제’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