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④ “이제는 아시아 시대”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기획 ④ 대안 에너지 찾기
시민의 힘이 키운 일본 태양의 도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 중인 아시아에서도 핵심 3국으로 꼽히는 한국·중국·일본. 이 세 나라는 세계 인구의 21.9%(15억2172만 명, 2011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4%(2011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 또한 급증하고 있는 점이다. 예컨대 3국은 석유·석탄·원자력 등 1차 에너지의 소비량은 24.9%(2010년 기준)다. GDP 비중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참사는 아시아의 에너지 미래에 큰 질문을 던졌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아시아는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을까. 아시아에는 어떤 에너지 대안이 가능한 것일까.
태양광발전 패널이 설치된 일본 나가노현 이다시의 마을회관 옥상. 2005년 이다시가 태양광 사업자인 ‘햇님진보에너지 주식회사’에 무상으로 대여해줬다. [이다=서승욱 특파원]
시민들 12억엔 태양광발전 출자
누구보다 원전 사고의 당사국인 일본엔 ‘발등의 불’이다. 일본은 대안 에너지와 관련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지혜를 모색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중앙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공동 취재팀이 지난달 24~25일 일본 나가노(長野)현 이다(飯田)시를 찾았다. 그곳은 변화의 움직임을 축약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다시는 2008년 선정된 일본 13개 ‘환경 모델 도시’ 중 한 곳이다.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0~50% 줄이고 2050년엔 70%를 삭감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풍부한 태양광, 목재 바이오매스(Biomass·에너지원으로 이용되는 생물체) 이용을 늘리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연평균 일조시간이 1985시간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고, 산림면적이 시 전체의 85%를 차지하는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이 이 같은 발상의 토대가 됐다.
‘태양의 도시’란 별칭에 어울리게 현재 3만8000가구 중 5.5%인 2300여 가구의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 패널이 설치돼 있다. 공공건물인 시 한복판 마을회관의 옥상에도, 보육원 꼭대기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선 시 정부와 민간부문의 협업이 특히 눈에 띄었다. 협업은 2005년 사회적기업인 ‘햇님진보에너지주식회사’(이하 햇님에너지)가 시민 출자금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시 정부가 마을회관 옥상을 무상으로 빌려주면서 시작됐다. 임대료 부담이 없고 중앙정부(환경성)에서 설치비의 3분의 2를 지원했기 때문에 출자한 시민들은 은행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햇님에너지는 2004년 ‘현지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소비한다(地産地消)’는 목표를 내걸고 비영리단체로 출발했다. 200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시민 출자 펀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12억 엔(약 135억원)을 모아 이 지역에서 태양광 사업을 이끌고 있다. 햇님에너지의 하라 아키히로(原亮弘·64) 사장은 “시민의 변화 의지를 담은 출자금으로 각 지역에서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을 늘려가면 원전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다시는 일반 가정의 태양광발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최대 6만 엔을 지원하고 있다. 또 전력회사인 중부전력이 이다시에 공급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대규모 태양광발전 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시 정부 소유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집에서 전기 만들어 팔아 수익
최근에는 일본 최초로 “시민들은 자연 에너지 사업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 조례를 채택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업계획서를 들고 오면 시가 자문하고 지역 신용금고 대출도 알선한다. 시 전체 예산 800억 엔(약 9048억원) 중 자연 에너지 관련 예산은 6000만 엔(약 6억7800만원) 정도다. 큰 예산 부담 없이 민간부문의 노력을 자극함으로써 자연 에너지를 확대시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지난해 7월부터 실시된 자연 에너지 고정가격매입제도도 큰 힘을 보탰다. 태양광뿐 아니라 풍력·지열·소수력(3만㎾ 이하)·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가 일정가격에 매입해 주는 제도다.
태양광은 2009년 시작됐고, 지난해엔 구매대상이 다른 에너지로도 확대됐다.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당시 집권 민주당이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대폭 선회한 결과다. 태양광의 경우 2012년에는 1㎾h(시간당 전력량)에 42엔, 2013년에는 38엔에 사들였다. 그 결과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9개월 만에 200만㎾ 용량의 태양광발전 시설이 추가로 건설됐다. 그 이전까지 설치됐던 규모의 2배에 해당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연구소’(ISEP)의 이다 데쓰나리(飯田哲也)소장은 “고정가격매입제도가 전기요금 인상으로 연결됐지만 한 가구의 한 달 평균 추가 부담액은 120엔(약 1570원) 정도로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설치된 일본의 태양광발전은 90% 이상이 기업 소유다. 태양광발전 시설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의 경우 개인 소유가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미흡하다.
이다시는 설치비 최대 6만엔 지원
물론 일본의 자연 에너지 전망이 반드시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재집권한 자민당이 산업계의 입장을 반영해 원전 재가동 쪽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민당이 고정가격매입제도 등을 후퇴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는 ISEP 이다 소장의 말처럼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는 이제 시대적 흐름이 됐다.
이다시를 포함한 일본의 경험은 활발한 시민참여를 통해서만 ▶재생에너지 기반이 튼튼해진다는 사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중요한다는 점 ▶소규모 발전사업이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고정가격매입제도 도입이 절실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아시아 시대의 에너지 대안 찾기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 스스로의 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다 ·도쿄=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일본 전문가 2인이 본 미래
“시민 1인당 평균 100만엔 … 주민이 발전 이익 가져가야”?
이다 소장(左), 하라 사장(右)
일본 도쿄에 소재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연구소(ISEP)’의 이다 데쓰나리(飯田哲也·54) 소장과 햇님진보에너지주식회사 하라 아키히로(原亮 弘·64) 사장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다 소장은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원전 반대운동가이고, 하라 소장은 샐러리맨 출신의 자연 에너지 발전 사업가다. 두 사람에게서 일본 원전의 미래와 대안 에너지 운동의 비전을 물었다.
-일본인의 60~70%가 원전 재가동에 반대했지만 선거에선 왜 원전을 지지하는 자민당이 승리했나.
“원전의 존폐를 놓고 국민투표를 하면 원전 반대론이 이기겠지만 선거엔 정당에 대한 신뢰 등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이다 소장)
-자발적 에너지 생산을 강조했는데.
“식민지형 에너지 개발은 대기업 주도의 개발을 뜻한다. 그런 방식보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어디에 어떤 발전시설을 만들지를 결정해야 한다. 또 발전에 따른 이익을 지역 주민들이 가져가야 한다.”(이다 소장)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후 자연 에너지 사업을 비교하면.
“시민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평균 투자액이 크게 늘었다. 원전 사고 전엔 평균 40만 엔(약 452만원) 정도였는데 사고 이후엔 100만 엔(약 1131만원) 정도가 됐다. 평균 출자액이 2.5배 늘었다.”(하라 사장)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는 이가 많다.
“원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써야 하는 돈을 자연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투입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하라 사장)
-새로운 에너지 대안을 찾는 아시아에 해 줄 조언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주도할 지역의 맨파워(Manpower)다. 이다(飯田)시의 성공도 지역사회가 맨파워를 갖췄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 환경성은 ISEP에 재생에너지 인재 육성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이다 소장)
이다·도쿄=서승욱 특파원
이강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