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 ‘사회연대경제기본법’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 [주민자치] ‘사회연대경제기본법’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https://snuac.snu.ac.kr/2015_snuac/wp-content/uploads/2026/10/6741_18372_447.jpg)
[주민자치] ‘사회연대경제기본법’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
왜 지금 다시 사회연대경제인가: 사라지는 ‘협동하는 시민’
사회연대경제가 다시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정책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사회연대경제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사회연대경제를 돌봄·주거·에너지·농어촌 등 주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영역의 주요 정책수단으로 제시하였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소셜벤처 등 그동안 서로 다른 법과 부처 아래 흩어져 있던 조직들을 하나의 정책 틀 안에서 연결하고, 사회연대금융과 공공구매, 지역혁신, 인재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정책적 전환은 한국만의 흐름은 아니다. OECD(2022)와 유엔(2023) 역시 사회연대경제를 사회혁신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중요한 제도적 영역으로 인정하고 각국 정부의 정책적·제도적 지원을 강조해 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법제화 역시 사회연대경제를 주변적 대안경제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의 한 축으로 재평가하려는 국제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복합위기가 있다. 초고령화와 저출생, 지방소멸, 사회적 양극화, 기후위기와 디지털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종합계획 역시 이를 ‘복합위기polycrisis’로 진단하고 기존 정부와 시장만으로 돌봄과 지역서비스, 일자리,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특히 지역소멸과 사회적 자본의 약화를 사회연대경제가 대응해야 할 핵심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덧붙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는 경제성장률의 둔화나 협동조합 숫자의 부족만이 아니다. 서로 협동할 수 있는 시민의 감소가 더 근본적인 위기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발견되는 ‘손절사회’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불편하면 관계를 끊고, 상처받기 전에 거리를 두며, 다른 사람과 협상하고 조정하기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연결되는 경향이다.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적 연결의 약화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자본의 위기로 지적되어왔다(Putnam 2000).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은 이러한 관계의 문제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고 있다(Zuboff 2019). 정치에서는 팬덤정치와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상에서는 이웃과의 접촉과 대화가 줄어든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제도의 위기이기 이전에 관계의 위기이자 돌봄의 위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연대경제의 법제화가 갖는 의미도 달리 보아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아니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지역에서 사람들이 다시 만나 공동의 문제를 발견하고, 협동하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복원하는 사회적 장치가 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가 만난다.
법제화가 성공을 보장하는가: 네 가지 역설
사회연대경제의 법제화는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무엇보다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던 정책을 통합하고 중앙과 지방정부의 계획, 범정부적 추진체계, 통합 통계와 성과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 정책의 초점 역시 기존의 창업 및 개별기업 지원에서 지역혁신 생태계와 조직 간 협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연대경제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법제화 이후 우리는 최소한 네 가지 역설을 경계해야 한다.
첫째는 제도화의 역설이다. 지난 한국 사회적경제 정책의 경험을 돌아보면 정부 지원이 확대되었을 때 조직의 숫자와 사업 규모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정책기조가 바뀌고 예산과 중간지원체계가 축소되자 생태계 전체가 쉽게 흔들렸다. 여기서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 함께 사라지는 사회연대경제를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연대경제라고 할 수 있는가?
사회연대경제는 정부가 만들어 주는 경제가 아니다. 국가정책과 공적 지원은 필요하지만 가장 깊은 뿌리는 시민의 자발적 협동과 지역사회의 필요에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국가가 지원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국가의 지원이 시민의 자율적 협동을 가능하게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대체하고 국가에 의존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공적 지원은 주민과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역량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성장하고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법제화 이후에는 지원의 규모뿐 아니라 국가의 계획·평가·지원체계가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자율적 의사결정과 지역의 다양성을 얼마나 보장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공모사업이 있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고, 지원금이 있기 때문에 사업을 유지하며, 성과평가를 받기 위해 주민을 동원하는 방식이 지속된다면 외형적으로 조직의 수는 늘어날 수 있어도 사회적 기반은 취약해질 수 있다.
둘째는 성장의 역설이다. 정부는 사회연대경제를 우리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GDP와 고용 비중 확대,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과 고용을 달성하는 선도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사회연대경제조직 역시 지속가능한 수익구조와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뜻만으로 조직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연대경제를 일반기업과 같은 성장과 규모화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순간 본래의 목적이 뒤집힐 수 있다.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한 농촌 마을의 노인 스무 명에게 지속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은 중요하다. 고용 규모가 크지 않아도 주민들이 함께 빈집을 고쳐 지역의 공동공간으로 만드는 마을기업 역시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사회연대경제의 성과는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가와 함께 지역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셋째는 참여의 역설이다. 정부 정책문서에는 ‘주민’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통합돌봄에서는 주민 중심 서비스가 강조되고, 사회주택에서는 주민이 설계와 공동체 운영에 참여하며, 햇빛소득마을에서는 주민협동조합이 사업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민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가 아니다. 주민에게 실제로 어떤 권한이 부여되는가가 중요하다.
주민은 정책의 수혜자인가, 서비스를 선택하는 소비자인가, 사업을 돕는 자원봉사자인가, 아니면 지역의 문제를 정의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사업의 운영과 평가에 참여하는 공동의사결정의 주체인가. 사회연대경제가 진정 주민 중심이 되려면 주민은 마지막 단계까지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 참여 자체도 자동적으로 민주적이라고 볼 수 없다. 실제 주민자치 현장에서는 시간과 자원이 많은 일부 주민이나 기존 활동가가 발언권을 독점하기 쉽다. 반면 청년, 맞벌이 부부, 돌봄부담이 큰 여성, 1인가구, 이주민, 장애인, 임차인 등은 참여에서 배제되기 쉽다. 따라서 주민자치는 단순히 “몇 명이 참여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빠져 있는가, 누가 발언권을 갖는가, 누가 책임과 돌봄의 부담을 떠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넷째는 공공책임 전가의 역설이다. 사회연대경제는 돌봄과 주거, 농어촌 생활서비스 등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중요한 주체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와 지방정부가 책임져야 할 공공서비스를 지역공동체에 떠넘기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돌봄 분야에서 사회연대경제조직이 저비용·유연한 서비스 공급자로만 활용된다면 국가의 책임이 주민과 저임금 돌봄노동자에게 전가될 위험이 있다. 공공서비스의 비용 절감이 사회연대경제조직의 경영 부담과 돌봄노동자의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전가되어서도 안 된다. 사회연대경제의 활성화가 현장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연대경제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사회연대경제는 ‘공공서비스의 값싼 외주화’가 아니라 ‘공공책임+주민참여+전문서비스+지역의 상호돌봄’이어야 한다. 핵심은 국가의 책임을 공동체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공공책임을 전제로 주민과 전문기관, 사회연대경제조직이 함께 지역의 필요에 대응하는 데 있다.
요컨대, 법제화 이후 사회연대경제의 성패는 이 네 가지 역설을 얼마나 극복하는가에 달려 있다.
가장 중요한 질문: 주민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를 연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주민은 어디에 있는가?”이다. 정부 종합계획은 지방정부와 사회연대경제조직, 중간지원조직이 참여하는 지역협의체를 만들고, 광역단위 민·관·공·산·학 협력체계와 기초단위 지역역량 거점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이는 중요한 진전이지만 주민자치회와 주민총회, 그리고 일상적인 주민모임이 이 거버넌스에서 어떤 위치와 권한을 갖게 될지는 상대적으로 불분명하다. 이 연결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주민자치와 사회연대경제는 서로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주민자치회가 사회연대경제와 연결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누가 누구에게 편입되는가이다. 주민자치회가 국가와 지방정부가 설계한 사회연대경제 정책을 지역에 전달하고 집행하는 행정적 하부체계로 편입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주민총회에서 형성된 주민의 필요와 공동의제가 사회연대경제의 방향을 결정하고, 사회연대경제조직과 전문기관, 지방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연결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 ‘행정→주민자치회→주민’이라는 하향적 전달체계가 아니라, ‘주민의 필요→주민총회와 공론화→공동의제→사회연대경제 방식의 실천→행정과 전문기관의 지원’이라는 상향적 연결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주민의 실제 생활에서는 경제와 자치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 동네의 혼자 사는 노인을 누가 돌볼 것인지, 아이들의 방과 후 시간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사라지는 동네 상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빈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대중교통이 줄어드는 농촌의 이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태양광 발전에서 발생한 수익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환원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들은 모두 주민의 일상과 직결된 경제적 문제이자 동시에 자치의 문제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행정서비스의 목록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생활세계의 공동의제이다. 따라서 법제화 이후 필요한 것은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를 각각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자치의 경제적 기반을 만들고 사회연대경제의 민주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주민총회의 역할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주민총회가 “우리 동네에 무엇을 만들어 달라”거나 “어떤 사업에 예산을 배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주로 초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지역의 필요를 발견하고 이를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연결하는 공론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노인 돌봄이 지역의 핵심 의제로 확인되었다면 단순히 행정에 예산과 서비스 확대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어떤 돌봄을 필요로 하는지, 지역사회에 활용할 수 있는 인적·조직적 자원은 무엇인지, 행정과 복지기관은 어떤 공적 책임을 담당해야 하는지, 사회적협동조합은 어떤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주민은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과 상호돌봄에 참여할 것인지를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주민총회가 ‘요구와 예산 배분의 장’에서 ‘필요의 발견과 자원의 연결, 역할의 분담과 공동실천을 결정하는 장’으로 확장된다면, 주민총회는 단순한 참여예산의 통로를 넘어 지역 사회연대경제를 민주적으로 구성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협동하는 시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가벼운 공동체와 돌봄 민주주의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의 궁극적 목적은 새로운 조직을 많이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협동하는 시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경제조직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구성원들은 함께 의사결정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며 공동의 책임을 부담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협동을 배운다. 시장만으로 만들기 어려운 신뢰를 만들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공급할 수 없는 시민성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의 사회적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주민자치도 마찬가지다. 주민자치는 행정에 의견을 전달하는 참여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차이를 조정하며,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경험을 축적하는 생활세계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의 강한 결속과 헌신을 요구하는 폐쇄적 공동체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가벼운 공동체light community’이다(Manzini 2015). 이는 구성원에게 과도한 희생이나 동일한 정체성을 요구하기보다 필요할 때 참여하고 작은 역할을 나누며, 각자가 관계의 거리를 조절하면서도 연결을 지속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합의나 강한 소속감이 아니라 작은 문제라도 함께 해결해 본 반복적인 협동의 경험이다. 동네 텃밭이나 공동식사에 가끔 참여하고, 혼자 사는 노인의 일상을 살피거나 아이들의 방과 후 돌봄에 몇 시간을 보태며, 햇빛협동조합이나 마을축제·빈집재생과 같은 지역 프로젝트에 자신이 가능한 만큼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작지만 반복되는 접촉과 협동을 통해 주민은 타인과 관계 맺고 공동의 문제에 책임 있게 참여하는 시민적 역량을 키워갈 수 있다(공석기·임현진 2026).
이러한 가벼운 공동체의 논리는 돌봄 민주주의caring democracy와도 연결된다(Tronto 2013).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가족과 개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시장의 서비스로만 해결할 수도 없다. 돌봄 민주주의가 제기하는 질문은 단순히 ‘누가 돌봄서비스를 공급할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돌봄을 필요로 하는지, 누가 돌봄을 담당하는지, 그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결정 과정에 돌봄의 당사자와 주민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를 함께 묻는 것이다. 따라서 돌봄은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가 돌봄의 필요와 책임을 어떻게 발견하고 분담할 것인가를 공동으로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문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봄의 공동체화가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 축소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가는 주민을 대신해서는 안 되지만, 주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주민과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자율성과 주도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기본적인 돌봄·주거·이동·건강처럼 시민의 권리와 직결되는 영역에서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분명한 공공책임을 져야 한다.
돌봄 민주주의는 공공책임을 주민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공공책임을 확고히 하면서 주민의 참여와 전문기관의 역량, 지역사회의 상호돌봄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민자치회는 직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라기보다, 지역의 돌봄 필요를 발견하고 당사자·주민·사회연대경제조직·전문기관·지방정부를 연결하여 역할과 책임을 함께 논의하는 지역 돌봄 거버넌스의 민주적 조정자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법제화 이후 주민자치가 준비해야 할 다섯 가지
그렇다면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시대에 주민자치는 실제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역의 필요와 자원을 함께 지도화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생활세계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필요를 발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동네에서 누가 고립되어 있는지, 어떤 돌봄이 부족한지, 활용되지 않는 빈집과 공간은 어디에 있는지, 교통·먹거리·에너지 등 일상생활에서 주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주민과 함께 조사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동시에 문제와 결핍만 찾을 것이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사람, 조직, 공간, 경험과 관계망 등 지역이 이미 보유한 자원과 역량도 함께 찾아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이러한 필요와 자원을 연결하여 주민이 해결할 수 있는 것, 사회연대경제조직과 협력할 것, 지방정부가 공적 책임을 담당할 것을 구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역 구성원이 공동의 자원과 문제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에서(Ostrom 1990), 사회연대경제는 공모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필요와 지역이 가진 역량의 만남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하나의 과정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지역의 필요 발견→지역자원·역량의 발견→주민 공론화→공동의제 형성→역할과 책임의 분담→사회연대경제 방식의 공동실천→성과의 지역사회 환원.
둘째 주민총회와 사회연대경제조직을 연결하되 주민의 결정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에너지협동조합 등이 주민총회와 지역의제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주민자치회도 지역 사회연대경제 관련 정책협의체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연결이 주민자치회를 사회연대경제 정책의 행정적 전달체계로 만드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주민총회에서 형성된 지역의 필요와 공동의제가 사회연대경제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주민총회는 행정에 예산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의 필요와 사회연대경제를 연결하는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셋째 생활권 단위의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는 어느 하나의 조직만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주민자치회, 사회연대경제조직, 복지관, 의료기관, 학교, 지역상인, 종교기관, 대학, 지방정부 등이 생활권을 단위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주민자치는 ‘행정에 요구하는 조직’에서 지역의 수요와 자원을 조직하는 주체로 변해야 한다. 먹거리 공동구매, 공동돌봄, 빈집 활용, 주민에너지, 이동지원 등 작은 생활경제를 연결하면서 지역 안에서 생산·소비·돌봄·투자가 순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넷째 작고 가벼운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주민 모두에게 장기적 헌신을 요구할 수 없다. 한 달에 한 번 참여해도 되고, 특정 프로젝트에만 참여해도 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참여할 수도 있어야 한다. 특히 기존 주민조직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청년, 맞벌이 가구, 1인가구, 이주민, 임차인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과 방식, 역할을 다양화해야 한다. 주민 참여에서 중요한 것은 몇 명을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주민에게 반복적인 협동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섯째 성과의 기준을 ‘관계적 성과relational outcomes’까지 확장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의 성과를 매출과 고용, 조직 수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주민자치 역시 회의 횟수나 참여 인원, 사업 수만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양적 성과와 함께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의 활동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 관계적 성과란 새로운 만남과 연결이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세대와 계층을 넘어 관계망이 확장되었는지, 고립되었던 주민이 지역의 관계 속으로 들어왔는지, 주민 간 신뢰와 상호성이 높아졌는지, 돌봄의 책임과 부담이 더욱 공정하게 분담되었는지, 그리고 주민들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역량을 갖게 되었는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물어야 한다. 무엇이 ‘사회적 가치’인지를 누가 정의하고 평가할 것인가? 국가가 만든 표준화된 지표만으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한다면, 지역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신뢰와 호혜, 비공식적 돌봄과 상호부조, 새롭게 형성된 주민관계와 같은 중요한 성과가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와 관계적 성과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부터 주민과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평가 역시 행정기관이나 전문가가 주민을 평가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주민과 사회연대경제조직이 스스로 지역사회의 변화를 성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물론 관계와 신뢰를 단순한 수치로 환원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측정하기 쉬운 것만을 성과로 인정하는 순간, 사회연대경제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관계·신뢰·호혜·돌봄이 오히려 평가에서 주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계적 성과의 평가는 획일적인 수치화보다는 주민의 경험과 관계의 변화, 새로운 협동의 형성과 지속 여부를 함께 살펴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의 성과평가는 ‘경제적 성과–사회적 가치–관계적 성과’라는 세 축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경제적 성과가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사회적 가치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보여준다면, 관계적 성과는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얼마나 더 연결되고 협동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을 가치 있는 성과로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주민자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맺음말: 사회연대경제의 주민자치화, 주민자치의 사회연대경제화
사회연대경제의 법제화는 중요한 출발이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고 연대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예산이 늘었다고 공동체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숫자가 증가한다고 해서 협동하는 시민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법제화 이후 사회연대경제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조직을 만들고 얼마나 큰 매출과 고용을 창출했는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으며, 지역사회가 얼마나 더 협동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공공책임을 확고히 하면서 주민에게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보장하고, 기존 주민조직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주민에게도 참여의 문을 열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는 주민을 대신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공공책임을 다하고, 주민은 행정의 전달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필요와 공동선을 스스로 형성하는 주체가 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지역의 필요와 자원을 연결하고, 작은 협동과 상호돌봄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결국 사회연대경제의 지속가능성은 정부 지원의 규모만이 아니라 이러한 지역사회의 관계적 역량에 달려 있다. 앞에서 제안한 ‘관계적 성과’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이후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사회연대경제기업을 얼마나 더 만들 것인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으로 “사회연대경제를 통해 얼마나 많은 협동하는 시민과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여기에 주민자치의 미래도 걸려 있다. 사회연대경제는 주민자치에 공동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과 실천수단을 제공하고, 주민자치는 사회연대경제에 주민의 참여와 숙의, 공동결정이라는 민주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연대경제의 주민자치화’와 ‘주민자치의 사회연대경제화’이다. 전자가 사회연대경제를 주민의 필요와 공동결정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주민자치를 행정에 의견을 제시하는 참여제도를 넘어 지역의 필요와 자원을 스스로 연결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실천적 자치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때 사회연대경제는 국가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값싸게 대신 처리하는 보완경제를 넘어설 수 있다. 사람을 다시 연결하고, 서로 돌보며, 협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생활세계의 경제’가 될 수 있다. 주민자치 역시 행정과 주민 사이의 중간기구를 넘어, 서로 다른 주민들이 만나고 경청하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협동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생활세계의 민주주의 학교’가 될 수 있다.
결국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진정한 성과는 법과 제도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을 통해 지역에서 협동하는 시민과 지속가능한 관계를 얼마나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사회연대경제와 주민자치의 만남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