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파병은 어쩔 수 없는 선택?

[경향신문] 파병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지난 9일 아침, 이란에 사는 교민에게서 다급한 메시지가 왔다. 하루 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한글로 올린 문구 때문이었다. 에스마일 바가이 대변인은 7일 엑스(X)에 “위험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썼다. 다른 나라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면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부를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영어도 페르시아어도 아닌 한글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메시지라는 뜻이다.

교민은 파병이 현실이 되면 ‘적국 사람’으로 여겨질 것 같다고 했다. 기우가 아니다. 이란은 중동에서 한류가 일찍 뿌리내린 나라이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 남다르다. 2018년 이후 교역은 사실상 끊겼어도 사람과 문화의 교류는 이어져 왔다. 그 호감이 파병 하나로 뒤집힐 수 있고, 그때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것은 현지의 우리 국민이다.

하지만 최근 전문가들과 정치권의 논의를 들여다보면 호르무즈 파병은 이미 결론이 난 듯하다. “파병은 피하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2003년 이라크 파병의 선례까지 소환된다. 나는 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냉정한 예측의 언어를 빌린 선택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외교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반복되는 순간 파병은 토론의 대상에서 기정사실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무엇을 잃게 되는지, 잃어도 되는지 따져볼 시간은 그렇게 사라진다.

지금 파병을 논하고 구체화시키는 나라가 과연 존재하는가? 미국 의회의 승인도, 다국적 함대의 구성도 보이지 않는다. 영국도 프랑스도 군을 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분단 상황을 고려하면 어려운 결정이라는 데는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전시 상황에서 파병을 ‘자주적 안보’와 ‘평화 정착’이라고 부르는 주장까지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남의 전쟁터에 군을 보내는 결정이 평화체제를 위한 우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진정한 자율성은 미국의 요구와 이란의 경고 사이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힘에 가깝다. 교전 당사자가 ‘침략의 지지’로 간주하겠다고 공언한 해역에 함정을 보내면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군사적 존재는 중재자가 아니라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수사가 위험을 가리고, 자주라는 말이 동맹의 요구에 대한 순응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게다가 지금은 서두를 때가 아니다. 이란과 미국 사이의 협상은 지리하게 이어지고, 그 사이 이란의 국내 경제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여기에 10월 중순 이스라엘 총선과 11월 미국 선거가 겹친다. 각국 지도자들의 강경한 언사가 국내 정치용인지 실제 작전의 신호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기에 파병을 약속하는 것은 무모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은 이란과 미국, 걸프 국가 모두와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외교적 중재와 다자 협의, 인도적 기여라는 자산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지 이제라도 다시 물어야 한다. 위험한 선택에 대가가 따른다는 경고는 이란만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