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Vietnam from Pyongyang and Seoul: Translations and Circulation of Vietnamese Revolutionary Novels in North and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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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2 - 12: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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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2 - 1: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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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304호
 


Speaker: Do Dieu Khue(SNU)

Moderator: YoungKyun Kim(SNU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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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일 Do Dieu Khue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의 아시아연구소 브라운백 세미나에서는 <한반도의 베트남 인식: 베트남 혁명소설의 북한과 한국에서의 번역 및 유통>을 주제로 한 발표가 아시아연구소 304호에서 진행되었다. 해당 발표는 베트남 혁명소설이 남북한에서 번역되고 유통된 과정을 살펴보며, 이러한 흐름을 추동한 정치·역사적 맥락을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Trần Đình Vân이 1964년에 발표한 소설 Sống như anh의 남북한 번역본―북한의 『그처럼 살자』와 한국의 『불멸의 불꽃으로 살아: 한 베트남 혁명전사의 삶과 죽음』―을 비교한다. 더하여, Nguyễn Văn Bổng의 1972년 작품 Áo trắng이 한국에서 『사이공의 흰 옷』으로 번역되어 폭발적 인기를 끌었으나 북한에는 알려지지 않은 현상을 추적한다.

Do Dieu Khue 연구원은 번역이 중립적이지 않음을 강조하며 발표의 포문을 열었다. 타자의 문화적 산물을 해석하고 변형하는 행위를 통해 초국가적 상상력이 형성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에서 혁명문학이 떠올랐다. 1975년 이후에는 저항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이어갔는데, 이는 두 차례의 전쟁과 궤를 같이한다. 반프랑스 문학과 반미 문학으로 구분되며 주요 주제는 애국심, 전쟁, 혁명, 군인, 승리, 통일, 사회주의적 이상이다. 남베트남의 민족해방 투쟁을 내용으로 삼고 있지만 출판된 곳은 하노이였다. 즉, 남부 전선에서 문학이 쓰였고 북부에서 출판된 것이다. 선전의 목적으로 기획된 소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모두에게 사랑받은 사실은 인상적이다.

첫 번째로 소개된 사례는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일원 Nguyễn Văn Trỗi의 이야기이다. 그는 로버트 맥나마라의 남베트남 방문 당시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사이공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 후 하노이 정부에 의해 반미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국제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소설 『Sống như anh』이 출판되었다. 1965년 9월 북한으로 유입되었고 노동신문은 세 차례에 걸쳐 번역본을 실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연극 <사이공의 별>이 평양에서 공연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이 직업 ‘전기공’을 계급 정체성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그의 계급의식이 민족해방 투쟁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하는데 원작에 없는 북한식 재해석이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나서야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한국은 민주화운동의 정점에 이르렀고, 반미 정서와 민족주의가 결합한 386세대 학생운동이 변혁의 주축이었다. 한국어판은 무려 60쪽을 할애해 쯔이의 생애와 유산, 베트남 해방투쟁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한국의 젊은 활동가들에게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 독재정권’에 맞선 역사를 교육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연구원은 북한과 한국의 차이점을 조명했다. 북한은 베트남에서 출판된 직후 노동신문 연재와 혁명연극 각색을 통해 그를 사회주의 영웅으로 재탄생시켰다. 반면, 한국의 번역은 학생운동과 반독재 투쟁이라는 국내 정치적 맥락과 연결된다.

두 번째 사례는 여성 학생운동가의 이야기이다. 사이공의 고등학교에서 지하조직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고, 고문 후유증으로 북베트남으로 보내졌다. 이후 국제 청년 행사에 베트남 대표로 참가하며, 그녀가 입은 흰 아오자이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이후 소설 『Áo trắng』(흰 옷)이 출판되었고 전시 풍경과 지하 학생 운동을 그려내 관심을 끌었다. 한국을 이를 사이공의 흰 옷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널리 읽혔다. 2010년에는 소설을 기반으로 한 연극이 서울에서 공연되었는데 원작에 없는 한국군이 등장한다. 또한, 소설 속의 노래가 빈호아 평화 순례, 유튜브 가수 등으로 확장되며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문화기억이 되었다. 이에 반해 북한은 미온적이다. 1968년에서 1989년 사이 평양과 하노이의 관계 악화가 그 배경으로 지적되었다.

두 작품 모두 전쟁기 사이공을 배경으로 하노이에서 출판된 혁명소설이다. 그러나 유통 경로는 극명하게 달랐다. 남북한은 동일한 작품을 전혀 다른 시기와 정치 환경 속에서 받아들였다. 북한은 쯔이를 상징으로 삼아 초국가적 사회주의 공동체를 상상했다. 한국은 두 소설을 통해 독재에 대한 투쟁, 나아가 한국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반성을 담은 자기서사를 펼쳤다. 연구원은 이러한 차이가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베트남과 맺은 관계와 결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해당 발표를 들으면서 각 체제가 지닌 정치적 갈망이 번역에 투영됨을 배웠다. 북한이 베트남 혁명서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시기, 남한은 베트남 전쟁의 상흔과 미국과의 동맹 구도 안에 있었다. 1975년 베트남이 통일을 이루었지만 한국에서 번역본이 등장한 것은 10년 뒤의 일이었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단순히 번역이 오래 걸려서가 아니라, ‘우리는 왜 그 전쟁에 갔으며 어떤 의미였는가’라는 한국 사회의 질문이 축적되면서 생겼던 시차임을 강조했다. 또한 60년 사이공 학생저항은 독재에 맞선 80년 광주와 겹쳐 보였다.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프랑스, 미국 등 외세의 압력 속에서 통일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미국 주둔과 군사정권을 견디던 시민에게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하얀 아오자이』 번역본은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과 호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학적 관심에 그치지 않고 반성의 감정과 기억을 매개하는 통로가 되었다.

결국, 한반도를 관통한 베트남 문학은 활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냉전과 분단이라는 구조 아래 ‘타자에 대한 집단적 표상’을 상징한다. 북한이 사회주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베트남 영웅을 호출했다면 한국은 민주화, 반독재, 미국과의 관계, 전쟁범죄에 대한 성찰 등 시대적 고민을 투영했다. 발표는 이처럼 번역·유통이 사회가 스스로를 구성하고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경로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 사진 | 박지수(학술기자단, 연구연수생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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