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제18회 규장각 한국학 국제심포지엄 개최

<고대 한국 속의 아시아인, 고대 아시아 속의 한국인>
아시아의 문명교류 프로그램 기획 패널

2025년 11월 6일 제18회 규장각 한국학 국제심포지엄에서 아시아의 문명교류 프로그램 기획한 패널 발표가 진행되었다. 패널은 아시아 지역 내에서 한반도 그리고 다른 여러 지역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었다.

첫번째 발표자인 한지선은 4~5세기에 조성된 하남 감일동 유적 석실묘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분석하여 중국계 문화와의 연결성을 도출해내었다. 석실묘의 구조적 계보는 낙랑, 대방 지역과 연결되며 금속제 장신구, 청자호수호 등 부장품에서는 피장자와 육조 문화의 강한 연결성을 상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감일동 유적에서 보이는 군현계, 중국계 문화와의 융합은 외래 이주민들이 백제 중앙에 함께 편입된 모습을 반영한다고 결론지었다.

두번째 발표자인 김수진은 현종 대인 개원·천보 연간(8세기 전반~중반)에 걸쳐 활약한 고구려 유민 후속 세대의 존재 양상에 주목하여 발표를 진행하였다. 특히 당시 활약한 인물 가운데 <구당서>와 <신당서>에 입전된 왕모중, 왕사례, 고선지를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들의 활동 양상을 살펴보았다. 안사의 난을 전후로 활동한 고구려 유민 출신들이 당조의 권력의 중심에 직접적 영향력을 미쳤음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현종의 등극과 안사의 난 전후 시기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끝으로 당조의 군사 운영에 있어 고구려 유민 출신 사이의 네트워크, 고구려 유민 출신과 백제 유민 출신 사이의 네트워크에 대한 분석 과제가 남아있음을 밝혔다.

세번째 발표자인 박지현은 일본 백제계 이주민, 도래인과 망명 백제인의 이주 양상에 대해 비교하였다. 우선 이주의 개념에 대해 검토하며 이주민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합의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이후 도래인과 망명 백제인의 이주 양상에 대해 이주의 계기, 이주민의 성격, 정착의 정도, 정착지 사회의 인식을 바탕으로 비교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주민으로서의 망명 백제인의 이주는 가장 강제된 이주, 영구적인 정착, 정착지 사회의 부정적 시선 등의 속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이유로, 내부적 결속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네번째 발표자인 야마다 쿠니카즈는 교토의 도래인과 도래문화에 대해 발표하였다. 고대 일본 열도에는 고훈시대(3세기 후반~7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중국과 한반도에서 다수의 인적 집단이 이주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도래인 집단에는 동아시아 대륙의 사람들을 핵심으로 하면서도 왜인 가운데 혼인과 혈연에 준한 계약을 통해 집단에 속한 사람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일본서기> 등의 사료에 나타나는 도래인들에 대한 기록과 고분군과 수리시설 등의 고고자료를 통하여 대표적인 도래인 집단 가운데 하나인 하타씨(秦氏)를 중심으로 일본 내 도래인의 활약을 개괄적으로 설명하였다.

토론에서는 우선 본 발표가 고대 동북아시아에 있어 이주에 대한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는 평가가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근대국가로서 한국, 중국, 일본을 단위로 고대 아시아를 이해해서는 안되며, 또한 중국에서 한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문화 전래가 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유념할 필요성이 제시되었다. 다음으로 이주민과 관련된 연구에서 고토와의 네트워크가 유지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이주민이 더 이상 이주민이 아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이 제시되었다. 끝으로 이주민과 유민 가운데 유민은 복합적인 개념에 해당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문헌에서 유민이라는 표현은 망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의식이 강할 때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의식적인 면도 중요한 요소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