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사회대타협이 답이다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임인년 올해 우리는 20대 대선을 치른다. 글로벌 대전환의 도전 아래 모든 국민이 함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축제로서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 잘 치르면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해방 이후 최악의 진영대립을 넘어 우리가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새로운 문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과연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여야 유력후보들의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앞선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언사와 행태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교언과 실언이 심하다. 불과 선거 두달을 앞두고 후보교체론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대선이 될 수 있다. 초유의 피동적 대선이다. 후보에 대한 실망이 선거에 대한 회의로 이어져 정치에 대한 혐오를 더 키우고 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보면 치세(治世) 보다 난세(亂世)가 지배했다. 오늘의 한국이 겪고 있는 갈등과 혼란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거짓과 위선이 진실을 덮고 정의와 공정은 무너져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데 우리 주변에는 요설과 변신으로 국민을 오도하는 얄팍한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것 같다. 과거 인물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金)이 가끔 호출되는 이유도 역사적 공과를 떠나 그들이 큰 정치가(stateman)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그러한 정치가를 찾아볼 수 없다.
시대정신으로 공정과 통합
작금 우리는 4차산업혁명 아래 디지털변혁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탄소중립 미중갈등 등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있다.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에서 보듯 한국은 지도위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미래 생존과 안정을 위한 비전이나 전략을 고심해야 할 때다. 하지만 정책대결이 실종된 가운데 서로 나쁜 후보라고 비방하는 어둡고 침침한 네거티브 선거가 되고 있다. 촛불정신은커녕 국가경영에 대한 소신 철학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시대정신이라 할 공정과 통합을 향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중첩된 사회갈등의 진영화를 넘어서기 위한 통합의 세계관, 반칙과 특권을 물리치기 위한 공정의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러가지 갈등이 심각하다. 계층 이념 지역 세대 젠더 고용 갈등이 중첩된 가운데 진영대립이 악화되면서 두개의 국민으로 분열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온갖 갈등으로 쌓인 것은 공정이란 이름 아래 매사 게임의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른 것을 뜻한다. 출발의 불평등을 줄여야 경쟁의 과정과 결과의 평등에 기여할 수 있다. 작금 청년세대가 좌절하는 이유는 기회의 문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기회균등조차 지도층의 위법과 특혜에 의해 망가지고 있다. 능력주의가 또 다른 세습을 낳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 주는 것이 출발에서 결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사회성원들이 합의한 게임의 규칙이다.
이번 대선이 끝나면 여야후보 승리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될 것이다. 진영대립의 와중에서 선거불복종 운동이 전개되면 일종의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DJP연합과 같은 거국내각을 꾸려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DJP연합은 대선 승리를 위한 지역야합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공동정부는 아니다.
필자는 대선 후 극심한 진영대결을 극복하기 위해 협의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로의 제도개선을 제안한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 아래에서 단순다수제(majority rule)는 승자독식 아래 권력독점을 가져오는 폐단이 있다. 소수의 이익을 포함해 국민의 선호를 가감없이 대변하는 정치체제로 협의민주주의 만한 것이 없다. 연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보듯 패자도 승자와 함께 권력을 공유한다.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특장이 있다.
역대급 비호감선거라 할 이번 대선에서 여야후보중 누구도 국민을 대표하기 어렵다. 여야 가리지 말고 총리를 포함해 각료를 등용하고 정책도 반영하는 적극적 의미의 공동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공동정부를 구성하라
협의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권력구조만 아니라 선거구제를 포함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개헌에 앞서 과감히 사회대타협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는 부족하다. 진보 대통령이라면 사민주의자 슈뢰더의 ‘하르츠개혁’, 그리고 보수 대통령이라면 비스마르크의 ‘위대한 전환’에서 배워야 한다. 진보는 진보를 타이르고 보수는 보수를 깨우쳐 글로벌 대전환 아래 존망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위기를 기회로 돌파하는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