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이게 나라냐

[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이게 나라냐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이 또 다시 “이게 나라냐”라고 반문한다. 촛불혁명이 어느덧 5년이 흘러 세상이 나아지리라 기대했지만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고 국민의 마음은 허전하다.

문재인정부는 평등 공정 정의의 기치 아래 포용적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그러나 집값폭등 LH투기 인국공사태 코인광풍 아빠찬스를 보면서 젊은 세대는 공정의 가치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교육을 통한 이동의 사다리는 이미 무너졌다. 벌어진 출발선에서 열심히 뛰어야 결과는 뻔하다. 능력주의는 새로운 신분과 계급을 만드는 신세습주의에 다름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노동,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모두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조급했다. 한국의 발전경로를 되돌아보면 한 정권 임기안에서 마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시간의 완급조절 없이, 산업별·지역별 차등을 두지 않고, 직종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영세상인은 죽어가고, 중소기업은 버티기 힘들고, 특고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어렵다.

세계화 시대 개방적 민족주의는 국제협력과 연대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국에게는 열려 있고 일본에게는 닫혀 있다. 제국주의 본산으로서 미국을 비판하려면 비단 일본만 배제할 것이 아니라 중국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을 변방 속국이라 할 종번(宗藩)으로 하대한다. 용미(用美)가 반중(反中)이 아니다. 한미동맹의 변화에 따라 중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원교근공의 지혜가 아쉽다.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 책임론과 중국 역할론에 머물러 남북관계에서 신뢰는 밑바닥이다. 북한에 대해 ‘눈치보기’만 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보다 미군철수에 관심이 더 많다. 비핵화와 제재완화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면 당근만 줄 생각만 하지 채찍도 사용해야 한다.

역사는 뒤로 가는가

1987년 직선제개헌 이후 7차례 대선을 치르면서 보수와 진보정권이 이어졌다. 권력의 교차과정에서 좋은 정책은 받아들이고 나쁜 정책은 버려야 하는데 보수와 진보는 진영논리에 빠져 서로 관용이 없었다. 거의 모든 정권이 거창한 명제를 내걸고 출발했지만 종국은 아름답지 못했다. 협애한 정권이해에 묻혀 국민의 시계(視界)를 닫아버리고 미래를 과거로 풀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생존을 위한 비전이나 전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파 사이의 정략과 정쟁만 있지 정책경쟁이 보이지 않는다. 시대정신이라 할 공정과 통합을 향한 반성과 성찰은 없다. 중첩된 사회갈등의 진영화를 넘어서기 위한 통합의 세계관, 차별과 소외를 넘기 위한 공정의 방법론은 어디 있는가.

20대 대선에 나선 여야후보들 하나같이 최고의 경력을 내세운다. 하긴 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은 물론 감사원장 검찰총장을 한 분들이다. 역대 대선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인품과 실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후보자는 당내 경선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다 풀어 국민을 위하겠다는 표(票)풀리즘 후보가 오히려 더 우세하다.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을 놓고 벌이는 민주당의 ‘명락대전’, 조국 일가 수사를 두고 입씨름 한 국민의힘의 ‘조국수홍’ 등 최근 여야 후보들 사이의 난타전은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후보를 둘러싼 ‘고발사주’로 인해 공수처는 ‘윤수처’가 되고 있다.

더욱 꼴사나운 것은 국회의원들이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내부에서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블랙코미디 같은 정치의 희화화는 정당 무용과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여야의 유력 의원들이 대선 캠프에 들어가면서 ‘일하는 국회법’은 온데 간데 없다. ‘일하는 국회법’은 21대 국회에 들어와 수퍼 여당인 민주당이 만든 국회 1호 법안이다. 17개 상임위중 법안 소위를 월 3회 이상 연 곳은 하나도 없다. 권력놀음에 지역구관리에 입법활동은 뒷전이다. 입법은 부업도 못되고 잔업이다.

일 안하는 국회

그나마 의원들이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입법을 남발한다. 대체로 내용이 부실하고 문제가 많다. 국회 미래연구원에 의하면 20대 국회에 4년 동안 접수된 법안수는 의원 1인당 80.5건이었다. 이 수치는 미국 연방의원의 2배, 영국 의원의 91배, 프랑스 의원의 23배에 해당한다.

국회란 문자 그대로 ‘말하는 의회'(parliament)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는 주요 정책을 토론을 통해 경합하고 협치하는 곳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대통령 눈치나 살피고 자리보전을 위해 파당이나 짓는 곳이 국회다. 삼권분립을 확립하는데 가장 앞서야 할 국회가 스스로 권위를 내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