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한류에서 희망을 찾다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요즈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어 매사가 답답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역을 맡았던 윤여정 배우가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작년 봉준호의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데 이은 쾌거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내리사랑이라 한다면 그 원조가 할머니가 아닌가 싶다. ‘미나리’는 영어는 못해도 가족을 위해 멸치 고춧가루 미나리씨 등을 싸들고 한국에서 미국 아칸소로 온 할머니의 손주들에 대한 헌신을 담은 코메리칸 소재 휴먼 드라마다.
세계적 호응에서 보듯 이제 한류(K-wave)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음악 드라마 영화에서 시작해 소설 체육 상품으로 확산되면서 한류는 세계인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는 한류의 확산에서 반(反)한류와 혐(嫌)한류를 겪었듯이 인류보편의 입장에서 다른 지역 문화를 존중하고 인간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류의 특징은 혼종성(hybridity)에서 나오는 포용성과 독창성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문화권의 중국적 일본적 요소와 해방 이후 서구문화권의 미국적 유럽적 요소가 혼재·융합하면서 다양성속에서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지닌 한류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세계화 과정에서 외래의 것과 재래의 것 사이의 연결이 이루어지면서 문화전파는 초기에는 중심부의 영향아래 ‘세계지방화’(glocalization)로 나타났다면 후기에는 주변부 나름의 ‘지방세계화’(locabalization)로 이어진다. ‘지방세계화’는 필자가 만든 개념인데 영어로 localization과 globalization을 합친 것이다. 필자는 한류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는 지방세계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혼종성이라고 본다.
시대정신을 알리는 방탄소년단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경우도 매우 흥미롭다. 춤과 음악을 통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점은 기존 한류 아이돌 그룹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만 BTS가 그 정점이다. 한류 연구의 권위자인 서울대 홍석경 교수가 말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새로운 남성상이다.
BTS는 해외출신이 없지만 세계시장의 추세를 읽고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의 고뇌와 애환을 가사에 담음으로써 MZ세대의 시대정신을 진정성 있게 표출한다. ‘FIRE’ ‘Save Me’ ‘Dynamite’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등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뉴노멀 시대 우울증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이것이 소셜미디어를 통한 직접 소통으로 파급력을 확산시켰다. 단순히 사랑이나 이별을 넘어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억압을 이겨내고 힘든 시대를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생소한 말춤이라는 댄스를 통해 문화충격을 주었지만 팬덤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BTS의 비상은 무엇보다도 팬덤 아미(ARMY)와의 공감이다. ARMY가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청춘을 위한 사랑스러운 대표자)의 약자이듯이 방황하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의 대변자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약함을 통해 고민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는 열정을 새겨주면서 공감대를 넓혀왔다. BTS는 아미와 같이 성장했다. 아미를 통한 상호공감이야말로 BTS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다양한 개성을 상호공감 아래 공동체로 묶어주는 것이다.
한류의 세계적 확산은 공공외교를 위해 좋은 여건을 마련해준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신뢰를 통해 국격을 높여주고 있다. 한국학의 내실화를 위해서도 절호의 기회다. 지난날 일본학과 중국학에 비해 초라했던 한국학이 일대 반전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대학 과정에서 한국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열기는 일본학 중국학을 능가한다.
해외 한국학 연구의 흐름을 보면 지역학으로서 한국의 역사 언어 사상 지리에 대한 관심에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영역으로 전개되어 왔다. 최근 한류의 확산은 K-팝 K-드라마 K-영화 K-소설 K-뷰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K라는 미명으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코로나19 대처에 성공적이라고 뽐내다가 백신개발과 공급에 뒤쳐져 접종률이 4월 말 기준으로 고작 인구의 6%에 지나지 않는 K-방역이 대표적이다. 영국과 미국이 집단면역을 조만간 달성한다는데 우리는 갈 길이 매우 멀어 안타깝다.
인류보편의 우애와 연대 가치를 향하여
이제 인류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공간과 시간 속에 갇혀 있기보다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로서 언제 어디서도 제3의 문화를 즐김으로써 보다 보편적 인류의식이라는 감수성을 가질 수 있다. 세계화에 대한 부정과 긍정을 넘어 대안세계화론(alt-globalization) 입장에서 한류는 세계화가 가져온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분열과 대립을 문화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인간적 세계화’(humanistic globalization)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구촌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한류를 국가주의적 테두리에 가둬놓기보다 인본주의적 우애와 연대의 가치로 보완함으로써 평화와 공존의 가교를 놓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