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청년이 미래다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확산이 끊이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이 일거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수도권보다 작은 규모의 지역 공동체가 감염병으로부터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역의 경기와 고용사정이 나쁘다 보니 올해 들어 3만여명이 수도권으로 들어왔다. 지난해 1만5000여명의 2배다. 이중 75%가 20대 청년이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취업난으로 비정규 임시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 지역의 공동화(空洞化)를 막을 방법이 없다.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이 0.5 미만이면 인구소멸지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소멸지역이 계속 늘어나 2020년 5월 기준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05곳이 이에 해당한다.
경기도 여주·포천, 강원도 동해·강릉, 충청북도 제천, 부산 서구, 대구 서구, 인천 동구 등도 위험하다. 이제 지역소멸 위험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소멸은 인구오너스(Demographic Onus,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현상) 시대의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재생산 연령기 청년인구의 대도시 유입으로 지역 인구감소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역에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에 젊은이들은 수도권으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청년세대 이탈로 지방소멸 가속화
중앙과 지방의 격차 실태는 이른바 ‘수도권으로 파멸적 집중현상’으로 요약된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어섰다. 경남도민일보 이일균의 책 ‘지방에 산다는 것’에 따르면 사업 종사자 55%, 100대 기업 본사 95%, 전국 20대 대학 80%, 의료기관 52%, 공공청사 80%, 정부투자기관 89%, 예금 70%, 총사업체 47%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일본 총무대신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는 저서 ‘지방소멸’에서 일본의 수도권 집중현상을 ‘극점(極點)사회’로 표현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이처럼 지방의 중앙 종속과 같은 수도권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역은 새로운 성장동력인 청년을 붙잡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히려 그들을 떠나보내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지방분권·지역균형 정책, 그리고 지역 혁신도시 실험은 여전히 성공적이지 못하다. 전남 나주와 같이 지역의 재생 가능성을 보여준 혁신도시조차도 소멸 위험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새롭다는 모든 정책이 위쪽 중앙정부에서 결정되어 지방으로 하향식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의 목소리를 이른바 떼쓰기로 치부한다. 국세와 지방세를 8 대 2 비율로 나누어 지방에 떡을 떼어주는 식의 달래기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역 주민이 스스로 답을 찾고자 함께 궁리하고 도전적으로 실험할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의심하고 불신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식의 접근은 지역에서의 새로운 혁신과 실험을 가로막는다. 지방이 새로운 기회의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저 수도권을 보조하는 곳으로 전락해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지금까지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마을에 정착하거나 사업을 일구면 돈을 주는 방식의 지원정책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입증됐다. 지방에 유사한 거대도시를 만들어 이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면 된다는 발상도 너무 순진하다. 돈을 풀면 사람이 모이지만 그것이 없어지면 모두 사라진다.
청년들이 지방으로 돌아오기를 주저하는 이유를 알아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지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패권정치가 팽배해 있는 곳에서 지역으로 내려온 청년들이 새로운 도전 기회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수도권 각자도생의 치열한 경쟁에 지쳐 지역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청년들에게 상생과 협력의 공동체를 만들어 연대감과 소속감을 회복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 되찾는 데 해법 있어
해답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늘 가까이 있다.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찾는 것이다. 소통과 참여의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설 때 지방의 특색이 새롭게 발견되고 그 과정에서 각 지역에 맞는 활력이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지역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에서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화려한 홍보문구로 선전하기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실제로 보여줄 때 청년들은 혁신의 장소로 지역을 찾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 속에 지역 주민 스스로도 자학적인 혐오표현-지잡대 지방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방은 토건세력이 이익을 독점하는 불신의 장소, 소통과 협력이 막혀 있는 패거리와 연줄정치가 작동하는 곳이라는 낙인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이론이 아니라 실천에 바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주민자치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청년을 비롯해 여성, 이주민에게 책임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어야 지역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