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나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온 세계의 관심이 11월 3일 치러질 미국 대선에 쏠린다. 3개월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8%p 이상 밀리고 있다. 3조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잘못된 대처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편가르기로 몰아감으로써 트럼프가 어려운 입장이다.
미국은 독일 영국 미국 제약회사로부터 무려 5억명분의 코로나19 백신을 미리 구매했다. 가능하면 대선전에 국민에게 백신을 제공해 비상상황을 수습함으로써 지난 4년 전처럼 역전을 노린다. 하지만 ‘샤이 트럼프’조차 등을 돌리고 있어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물론 바이든의 우세가 트럼프의 실책에 따른 반작용이라는 점에서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할 것이다.
미국을 건설한 국부들은 유럽이라는 구세계와는 달리 신세계에 법 관습 제도에서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고자 했다. 유럽의 여러 정치사회 사상과 이념 중에서 국가와 사회에 선행하는 인간의 자연권과 그에 따른 개인권리 중시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인간의 권리는 생명 자유 재산의 향유라는 점에서 서로 상충하기 때문에 일정한 긴장관계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생동력을 잃어가는 미국 민주주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권력의 남용을 가능한 방지한다는 점에서 겉으로 상당히 진보적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부의 축적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짙게 깔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보수적이기도 하다. 미국이란 사회는 여러 인종 계급 직업 배경을 지닌 이주민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이해집단들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개인주의와 다수의 횡포를 중화시키는 기제로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수용했다. 여기서 계급갈등보다는 집단갈등의 이해대표체계로서 기능하는 미국적 민주주의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로서 미국은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를 통한 경제적 역동성과 물질적 축적을 체제의 원리로 채택했다.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는 기회의 균등을 중시할 뿐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지 않는 보수주의적 면모를 보여준다. 아울러 공화주의 이념에 자리잡고 있는 집단정치의 융합이라는 본래의 속성으로 인해 공동체의 이상이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자본가단체들이 일종의 ‘사적 이익정부’(private interest government)를 구성함으로써 공적 영역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오늘의 미국에서 한때 서민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배운 자들에 의한 엘리트 정당이 되었고, 노예해방을 명분으로 출발한 공화당은 인종편견에 갇힌 부자들의 정당이 되었다. 제3의 정당이 나오기 힘든 이유는 다수결에 입각한 승자독식의 단일선거구제도와 유권자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하는 투표접근 요건에 있다.
이러한 양당제도는 다양한 계층 지역 집단 부문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광범한 포괄조직체이기 때문에 대체로 선거과정에서 중도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민주·공화 양당제도가 정치안정에는 기여하지만 각기 그 산하 정파의 개혁적인 관점을 정책으로 수용하는 데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미국은 250년이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대국에 올랐다. 항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과 돌파가 힘이었다. 햄버거 전구 라디오 비행기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 등은 모두 미국의 걸작품이다. 특히 미국 헌법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시대정신에 맞게 진화해 세계 180여국가에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가장 국제경쟁력을 지닌 소프트 파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를 겪으면서 미국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4일 현재 500만명에 근접하는 확진자와 15만명이 넘는 사망자로 세계 1위다. 최고 수준의 의료시설·기술·인력을 지녔다고 하지만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비싼 입원비로 인해 제대로 된 감염병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학은 발달해 있지만 보건의료(public health)는 엉망인 셈이다. 특히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연방정부가 주정부에 책임을 돌림으로써 팬데믹에 대한 협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효과적인 방역과 관리에 구멍이 생겼다. 미국이 자부하는 튼실한 시민사회도 영업중지와 이동제한에 대한 이견과 흑인차별에 따른 경찰개혁을 두고 갈라졌다.
최고라는 자만이 새로움 향한 창발력 막아
미국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효율 경제운영 사회해체 인종갈등 빈부격차 가치혼란 등에 대해 상당할 정도의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이질적 문화의 토양을 지닌 사회에서 자유 안정 번영 풍요라는 가치 아래 이데올로기적 통합력의 기능을 행사한 ‘미국의 꿈’이 깨진지 오래다. 세계 제일이라는 자만감이 문화적 자폐성을 가져옴으로써 새로움을 향한 창발력이 멈칫하고 있다.
게다가 좌충우돌하는 지도자의 제멋대로 리더십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제국의 흥망성쇠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세기는 황혼기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미국이 자기교정력으로 궤도를 수정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