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근식 칼럼 – 평화를 위한 전쟁기억의 딜레마
[정근식 교수(동북아시아센터장)]
1994년 10월 26일, 북한에서 탈출한 조창호 포병 소위는 자신의 군번 212966을 밝히면서 국방장관에게 복귀신고를 했다. 그리고 한달 뒤에 그는 국립묘지를 찾아 전사자로 처리돼 17년 동안 영현 봉안실 대리석에 새겨져 있던 자신의 위패를 손수 지웠다. 이로부터 다시 26년이 지난 올해,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군 유해 봉안식에서 한 노병의 복귀신고가 있었다. “이등중사 류영봉 외 147명은 2020년 6월 25일을 기하여 조국으로 복귀 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유해 복귀신고라는 형식이 좀 어색하지만,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이들 대부분 1950년 12월, 장진호에서 미군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한 병사들로, 이들을 대신하여 복귀신고를 한 류영봉 이등중사는 미7사단 17연대 소속의 전우였다고 한다. 70년 전 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매서운 눈보라와 칼바람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듯이 흩날리는 부슬비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