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민주주의는 인류가 만든 최선의 정치체제이지만 완벽하지 못하다.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거꾸로 국민을 지배한다. 만민평등의 이상과 다수지배의 현실이 충돌한다. 다수지배 아래 소수배제로 인한 대립과 반목이 나타난다. 국민발안 국민소환 민관협치 시민참여 등을 보완해도 여전히 대의민주주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인민주권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항시 졸(卒)이다. 루소(J-J. Rousseau)가 지적한대로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 선거를 통해 중앙과 지방에서 대표자들을 주기적으로 바꾸어도 나아지는 게 없다. 시민들은 정치적 박탈감 아래 투표장에 가기보다 온라인에서 의견을 나누고 거리로 나서 행동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선거가 의미를 잃고 있다.
이번 총선은 최악의 깜깜이 선거다. 코로나19 사태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관심을 밀어내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비접촉 선거운동이 벌어진다. 가까이하기에는 먼 유권자와 후보자 사이지만, 코로나19로 더 벌어져 교호작용이 없는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격이다.
선거운동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보니 후보의 인물됨이나 정책 내용을 알지 못한다. 청년과 여성 후보도 미미하다. 사회적 소수자는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는 정당의 공약과 후보의 정보에 대해 알기 어렵다. 선거운동을 통한 소통과 대화는 원활하지 못하다.
코로나19로 역대 최악의 깜깜이 선거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은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야당이 공격적이고 여당이 수세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시되다 보니 국정안정론도 정권심판론도 잘 먹혀들지 않는다. 민생 안보 외교 경제 환경에 대한 정책공방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 양당이 한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비례대표용으로 만든 위성정당으로 제3지대라 할 중도좌우의 소수정당은 거의 입지를 잃고 있다. 거대 여야정당은 상식도 염치도 없다. 선거에 대한 냉소가 환멸로 이어진다.
인터넷에서라도 정책과 공약에 대한 공론이 활발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가짜뉴스가 흑색선전에 더해진다. 정책 이슈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투표율은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래 가장 낮았던 2008년 18대 총선의 46.1%는 넘어서겠지만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다.
무당파 중도층의 적극적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대양당의 열혈지지층이 진영논리에 따라 결집되는 과다대표 문제가 생긴다. 제21대 국회는 협치는커녕 다시 동물·식물국회를 오갈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어설프게 흉내내려다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선거법 개정 때에는 한국사회의 복잡다기화 추세에 맞게 사표를 방지하고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허언이 됐다.
독일은 지역과 비례 각각 299석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지역 253석에 비례 47석 이다. 그중에서도 30석만 연동을 시켰다. 소수정당의 진입을 용이하게 한다고 했으나 비례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군소정당이 나타나는 난당제(亂黨制)가 되고 있다. 통합당의 위성정당을 ‘쓰레기’라고 비난하던 민주당은 자신도 위성정당을 급조하는 반칙과 꼼수를 썼다. 모두 35개의 정당이 비례의석을 얻기 위해 나섰고, 투표용지만 해도 50cm에 가깝다. 유권자는 헷갈릴 수밖에 없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 패전 후 사회통합 과정에서 승자독식을 지양하고 소수정당을 포용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지금껏 단일 정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한 적이 한번밖에 없었다. 다당제 아래 어느 정당도 지배정당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대연정이나 소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정을 통해 제1다수당을 중심으로 총리의 연임이 기본이 되면서 콘트라 아데나워, 헬무트 콜, 앙겔라 메르켈 등은 장기집권까지 해왔다. 거대정당의 과다대표는 막을 수 있으나 선거 때마다 군소정당이 난립한다. 지역구에서 확보된 의석을 기본으로 정당득표율에 의해 비례의석을 배분함으로써 하원의원 총의석이 계속 늘어나는 문제도 있다. 하원의원 정수는 598명에서 현재 709명으로 늘어났다.
제21대 국회, 선거제 바로 잡아야
한국을 둘러싼 국내외 정치경제 환경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되기까지 우리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비록 총선이 난장판이 되고 있지만 국민은 주권재민의 의식 아래 신성한 권리인 중요한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할 일이 많다. 국회를 상시 개원하여 민의의 대변을 위해 일하는 선량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총선판을 어지럽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오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대로 200명 지역구에 100명 비례제로 나아가되 지역구를 중대선구제로 바꾸고 단순형이라도 비례제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