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돈 보다 사람 챙기는 사회적 경제가 시장 빈 틈 메울 것”

[중앙SUNDAY] “돈 보다 사람 챙기는 사회적 경제가 시장 빈 틈 메울 것”

2200중앙SUNDAY는 사회적 경제 분야 석학인 마거릿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장을 단독 인터뷰했습니다. 사회적 경제란 협동조합·사회적 기업을 통해 이윤 추구보다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 제공에 집중하는 경제 활동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일자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의영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정치외교학부 교수)도 참여해 멘델 소장의 얘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편집자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시장경제 체제를 비판한 경제학자 칼 폴라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이 20여 년 만에 새로 번역돼 출판되기도 했다. 폴라니는 시장경제를 ‘악마의 맷돌’에 비유했다.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면 경제 논리가 맷돌처럼 모든 것(인간·자연)을 갈아 가루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왜 폴라니 열풍인가.
“시장경제 체제의 한계를 정확히 짚어낸 경제학자다. 그에게 시장경제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는 유토피아적 망상’일 뿐이다. 그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100년간 번영을 누리던 유럽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 원인을 시장경제의 출현으로 봤다. 본래부터 상품이 될 수 없는 인간과 자연·화폐를 상품으로 보고 ‘시장’에 맡겼기 때문에 문제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폴라니 연구는 시장경제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도 도움이 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선 정부가 나서서 돈을 풀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정책은 성공한 동시에 실패했다. 최악의 대재앙을 피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여전히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나서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장경제는 국가의 도움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다는 의미다. 더욱이 각국 정부는 시장을 지키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통을 받거나 피해를 입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스페인에선 ‘분노한 사람들(2010년)’, 미국 뉴욕에선 ‘월가를 점령하라(2011년)’는 운동이 펼쳐졌다. 최근엔 ‘분노의 표심’으로 통하는 미국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와 시장 둘 다 신뢰를 잃고 있다.”

-시장 자본주의 폐해가 나타났다면 칼 마르크스에게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폴라니는 마르크스 철학에 영향은 받았지만 그의 대표적인 사상인 경제결정론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노동과 자본, 계급 투쟁에만 초점을 맞춰 비판했다면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미치는 사회적 효과나 파급력에 관심을 뒀다. 시장 작동 방식이 사회를 지배할 뿐 아니라 환경이 파괴되고 경제 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고 봤다. 노동자 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몰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폴라니 이론은 시장경제에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보완책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나.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사회적 경제가 공공영역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다. 다만 정부의 기능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를 채울 수 있다. 사회적 경제는 이익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만 벌어선 풀 수 없는 환경 훼손 문제도 사회적 경제 활동으로 접근하면 해결할 수 있다.”

김의영 교수는 폴라니의 사상이 전세계에 일고 있는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을 끝내고 경제가 다시 사회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인간과 자연을 ‘탈상품화’하는 움직임이다. 사회적 경제는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장경제와 달리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 조직은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이 있다.

-사회적 경제를 실현한 성공 사례가 있나.
“대표적인 곳이 캐나다 퀘벡주다. 1990년대 초 경제 위기가 왔을 때 이곳의 실업률은 14%에 달했다. 이 문제를 풀기위해 사회적 경제 운동이 벌어졌다. 20년이 지난 지금 퀘벡주는 인구(약 800만명)보다 협동조합 조합원 수(약 880만명)가 더 많다. 2000개가 넘는 사회적 기업에서 6만명이 일하고 있다.”

-퀘벡에는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있다고 들었다.
“3년 전에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경제를 일자리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경제주체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사회적기본법을 만든 것이다. 기본법에 따라 앞으로 퀘벡주의 모든 부처는 기존의 정책을 고치거나 새로운 정책을 만들때 사회적 경제를 고려해야 한다.”

김 교수는 사회적 경제 성공 모델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몬드라곤은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의 작은 도시다. 이곳에 부임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마을 아이들을 위해 1956년 세운 석유난로 공장이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출발이다. 현재 몬드라곤 건설 등 250여 개 사업체를 거느린 이 조합은 스페인에서 7번째로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이곳을 휩쓸었을 때도 오히려 1만5000명의 인력을 더 채용해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 운동 활성화가 가능한가.
“한국 전문가는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현 정권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회적 경제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다보니 위험 요인인지, 아니면 적극 지원을 할 지 판단이 안 서는 듯하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의 핵심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지역 풀뿌리’ 운동이다. 며칠 전 아이쿱생협이 전남 구례에 만든 친환경식품생산단지에도 초청받아 다녀왔다. 개관 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5000여 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활동도 늘고 있는것 같다. 다만 2014년 유승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경제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안타깝다. 법안이 통과되면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손을 잡고 연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번 총선결과가 앞으로 사회적 기본법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관심이 크다.”

김 교수도 한국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 운동이 일고 있다고 봤다. 대표적인 곳이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추진하는 ‘따복(따뜻하고 복된) 공동체’다. 공동 육아는 기본이고 교육·복지·일자리 등 마을의 공통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려는 풀뿌리 자치운동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향약·두레·계(契)처럼 이웃 간에 서로 돕는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사회적 경제 참여자들도 정부 지원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립 모델을 찾아 경제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지현 기자 yjh@joon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