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에 대비하는 일본 방재과학의 집합실험을 민족지의 형식으로 기술한 [재난과 살다]. 일본의 방재과학이 대지진 등의 재난을 어떻게 대비해 왔는지를 인류학자의 눈을 따라가며 살펴볼 수 있게 구성한 책이다.
‘재난 직전’ 및 ‘재난 직후’에 주목하기보다는 재난과 재난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실험들과 그것들이 이루는 일련의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이 책이 다루는 세계는 “질서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혼돈 속에 빠져 있지도 않은, 과정 속의 세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과정 속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지진 재해(재난)의 존재 방식을 살펴보는 일과도 연관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집합실험을 통해 지진 재해의 존재 방식이 다중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생산’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저자는 집합실험에 개입,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가 공중의 목소리를 이루는 모습을 추적하면서, 비인간 행위자를 포함한 모든 행위자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열려 있는 것이 재난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라 주장한다. ‘재난과 살다’라는 명제로 집약되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지진 등의 재난을 고정된 대상으로만 바라봐 왔던 기존의 관점을 돌아보게 한다.
더하여 저자는 인류학의 민족지 또한 집합실험의 한 성원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학의 민족지가 집합실험, 나아가 재난 대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기술을 담고 있다.
이는 실제로 민족지를 작성하는 인류학자뿐 아니라 사회과학 및 여타의 이론적 틀을 필요로 하는 학술 분야의 연구자에게도 유용한 방법론적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