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농촌, 뉴꾸닝 마을 이야기
이야기는 발리섬 중남부에 위치한, ‘노란 코코넛 마을’로 해석되는 ‘뉴꾸닝 마을’에서 시작한다. 뉴꾸닝 마을은 관광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전형적인 발리 농촌이었으나, 우붓 지역이 관광지로 변화하면서 마을도 새로워진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부를 획득한 주민,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주민, 부의 획득에 밀린 주민이 하나가 되어 전통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 가운데 여러 의견이 충돌하지만 주민 간의 사회적 협의를 통해 원활히 해결한다.
『노란 코코넛 마을』은 발리의 한 농촌이 관광 마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관광과 전통에 대한 담론이 어떤 방식으로 마을공동체에 투영되는지 논의한다. 특히 마을공동체의 전통 보존과 활용에 대한 실천적 행위에 중점을 두고, 주민 집단의 문화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역사적 과정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주목한다.
저자 소개
정정훈 (Jeong Jeong Hun)
문화인류학자. 인도네시아(발리섬)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글쓰기를 한다.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중남부 지역에 위치한 뉴꾸닝 마을의 문화관광과 전통의 재구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물로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공저), 『키워드 동남아』(공저), 「‘실존적 고유성’과 관광매력물의 재인식: 발리 지역 거주관광객의 문화적 실천」, “Involution of tradition and existential authenticity of the resident group in Nyuh-Kuning Village”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제1장 관광과 전통 그리고 마을 공동체
- 발리인의 정체성과 문화접변
- 선행연구 검토와 이론적 배경
- 노란 코코넛 마을에 살다!
제2장 ‘관광 발리’ 마을 공동체의 역사적 생성
- 관광을 통해 본 발리의 정치경제적 변화
- ‘문화예술마을’ 우붓의 생성과 변화
제3장 관광과 마을 발전의 사회ㆍ문화적 환경
- 우리는 발리인이다
- 거주관광객과 마을 주민
제4장 수박과 생태관광
- 생태관광담론과 수박
- 수박의 지속과 변화
- 토지는 상품인가?
제5장 반자르와 문화관광
- 문화관광과 반자르에 대한 인식
- 관광객과 함께 살아가기
- 문화관광의 실천과 전통에 대한 재인식
제6장 “잘사는 마을 만들기”
- 뉴꾸닝 주민 모임
- 의례를 통한 문화적 실천과 활용
- 전통의 재구성과 지역 활성화
제7장 노란 코코넛 마을의 공동체성
- 관광발달의 역사적 과정과 사회·문화적 전개
- 문화관광발달과 전통의 정교화
- 고유성, 전통, 문화관광에 대한 재인식
맺는말
본문 중에서
우붓은 발리 남부 지역과는 상이한 자연환경을 가졌다. 꾸따, 사누르, 누사두아 지역의 해안 중심의 환경과는 다른 자연환경을 보인다. 우붓의 북쪽 지역은 해발 2,000미터 이상의 화산이 여러 개 있고, 계곡과 협곡을 따라 현지 주민이 경작한 계단식 논이 있다. 더하여 목공예 상품, 회화 그리고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종교 의례가 있어 자연환경과 문화상품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발리 남부 지역과 비교하여 관광발전에 소외된 이 지역 주민이 경제적 이득을 얻고 전통문화에 대한 자존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혜택과 무형의 자신감은 자연환경 보존 담론을 추동하는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 나아가 그동안 대중관광이나 문화관광은 실행 과정에서 발리 외부에서 들어오는 대자본의 투자가 필수적으로 여겨졌다. 호텔, 대형 리조트, 공항, 도로,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이의 효율적 활용 역시 필요하다. 이에 반해 생태관광은 상대적으로 소자본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히 우붓 지역은 뛰어난 자연환경과, 수박과 같은 전통문화유산이 관광의 주요한 대상이다. 이러한 연결고리가 결국 현지 주민에게 마을 전통 보존과 상품화의 필요성을 고취시킨다. (111쪽)
발리가 관광지화되기 이전부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생산 체제에서 수리조합이자 관개수로를 일컫는 ‘수박’은 발리 전통 생산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였다. 고고학자의 발굴과 사회-경제적 작동 방식, 즉 관개수로 시설 설립을 위한 정치권력과 청동기와 철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발리 지역에서 약 2,000년 전부터 관개를 통한 농경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Pringle 2004: 33-35). 과거부터 현재까지 발리에서 농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물의 효율적 관리다. 특히 발리와 같은 화산섬에서 농사의 성공 여부는 산 정상의 물이 산 아래 지역까지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되느냐에 달려 있다.
더욱이 우기와 건기의 구분이 명확하고 2년 동안 4모작이 이루어지는 자연환경에서 물 관리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관개배수 시설의 신설과 보수 관리를 위해 주민 상호 간의 협동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수박이라는 조직이 구성되었다. 특히 물의 관리와 더불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모내기와 추수 등 농업 생산 체계 전반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수박이 생성되었다. (120쪽)
발리섬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문화관광은 이 지역을 여타 휴양지와 차별화된 관광대상물로 부각시켰다. 발리 관광의 다양성을 부여하는 전통문화의 일차적인 생산 장소이자 이를 유지하는 집단은 반자르와 반자르의 주민이다.
반자르는 크게 2개로 구별되는데 반자르 아닷(banjar adat)과 반자르 디나스(banjar dinas)가 있다. 반자르 아닷에서 아닷은 아라비아어로 ‘관습’을 의미하며, 반자르 아닷은 종교적인 활동을 공통으로 실천하는 집단이다. 반자르 디나스는 국가에 의해 구획된 행정 마을이라는 의미다. 반자르 아닷과 반자르 디나스의 책임자인 끌리안 아닷(kelian adat)과 끌리안 디나스(kelian dinas)는 각각 주민에 의해 선출한다. 일부 마을은 1명이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발리에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반자르 아닷과 반자르 디나스의 범위는 일치하고 전통 행사 등을 주관하는 끌리안 아닷과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끌리안 디나스를 구별하여 선출한다. 일부 마을은 두 가지 임무의 중복으로 1명의 끌리안을 선출하기도 한다. (152-153쪽)
오달란 준비와 실천에서 가장 뚜렷한 차이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의 명확한 구분이다. 여성은 사원 제례에 쓰일 음식과 제물로 만든 탑인 그봉안을 장만하고, 그봉안을 머리에 이고 오달란 기간 동안 매일 저녁 6시 발레에 모여 달럼 사원까지 행진한다.
남성은 오달란 의례를 위해 사원을 정비하고 의례 진행을 담당한다. 달럼 뉴꾸닝 사원의 오달란 의례 이틀 전부터 마을 남성들은 사원 주위를 청소하고 사원 건물에 노란 천을 두른다. 행사 전날에는 의례에 쓰일 제물을 아내와 함께 준비한다. 부부가 새벽시장에 가서 그봉안 제작에 쓰일 바나나, 사과, 오렌지, 쌀, 닭고기 등을 구매한다. (258쪽)
이갈기 의례는 발리인의 장례와 성인식 의례 중 가장 중요한 의례다. 사회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한 의례로, 성인식은 남녀가 함께 진행한다. 뉴꾸닝 마을 성인식에 참석한 아이는 80여 명이다. 이갈기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이를 갈아주는 사제인 상깅(sangging)인데, 브라만 계급 출신의 사제인 뻐다단(pedadan)만이 이를 갈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초청하는 비용과 의례 관련 음식 등을 장만하는 데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기에, 이갈기 의례는 3년이나 5년에 한 번 진행한다. 2014년 이갈기 의례의 경우 5년 만에 진행되었다. 이갈기 대상은 미혼이며 아직 이를 갈지 않은 주민인데 대체로 20대 전후의 아이들이다. 이갈기 의례가 발리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갈기를 하지 않고 죽은 사람은 사후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