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ers
Start
2026년 2월 23일 - 2:30 pm
End
2026년 2월 23일 - 5:00 pm
Address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304호
2단계 총서 『아시아의 상상과 부딪힘의 현실』은 우리가 사유해 온 ‘아시아’라는 개념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오늘날의 정치·사회·문화적 현실과 어떻게 충돌하고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기획되었다. ‘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범주를 넘어 제국과 냉전, 세계화의 경험 속에서 구성된 담론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현실의 권력 관계와 지역 간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도전받아 왔다. 본 세미나는 이러한 긴장과 교차의 지점을 학제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상상된 아시아’와 ‘경험되는 아시아’ 사이의 간극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단일한 아시아상이 아니라, 충돌과 협상 속에서 형성되는 다층적 아시아의 모습을 모색하고자 한다.
Review
이번 2단계 총서 『아시아의 상상과 부딪힘의 현실』 세미나는 우리가 너무 쉽게 사용해 온 ‘아시아’라는 말이 사실 얼마나 복합적이고 불안정한 범주인지를 다시 묻는 자리였다. 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구획이 아니라 제국, 냉전, 세계화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구성되어 온 담론적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추상적인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각 사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역사 기억, 문화적 자기이해 속에서 늘 다르게 호출되고 재구성되어 왔다. 이번 세미나는 바로 이 지점, 곧 ‘상상된 아시아’와 ‘경험되는 아시아’가 만나는 접점과 어긋남을 여러 지역과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검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하의 각 발표는 추후 발간될 총서의 각 장 내용 초안에 해당한다.
고일홍의 발표 「고대 제국에 대한 저항, 그리고 기억의 정치: 한국과 베트남의 사례 비교」는 기원후 1세기경 한 제국의 지배에 저항한 베트남의 쯩자매 반란을 중심으로, 이 사건이 오늘날 역사적 기억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분석하였다. 베트남이 쯩자매를 자주와 저항의 상징으로 적극 기념해 온 반면, 한국에서는 왕조가 오랫동안 타자화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발표는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사료의 많고 적음보다 전통적 역사관, 민족주의적 서술, 식민지기의 해석 틀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채수홍의 발표 「도이머이, 산업화, 그리고 베트남 노동자의 아시아에 대한 상상」(가제)은 베트남의 도이머이와 산업화,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아시아’가 추상적 문명 담론이 아니라 노동 이동과 산업 구조, 발전의 열망 속에서 경험되는 범주임을 논의하였다. 여기서 아시아는 단지 외부에서 주어진 지리적 이름이 아니라, 국가 발전의 비전과 노동자의 이동 경험, 그리고 산업화의 국가 간 투자 위계 속에서 구체적인 감각과 욕망으로 번역되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고가영의 발표 「소련 ‘제국’에 대한 기억의 정치와 중앙아시아 지역 단위에 대한 상상과 현실: 카자흐스탄 카를락 수용소 박물관을 중심으로」는 소련 ‘제국’에 대한 기억의 정치와 중앙아시아 지역 단위에 대한 상상과 현실을 카자흐스탄 카를락 수용소 박물관을 중심으로 살폈다. 특히 이 발표는 중앙아시아가 종종 ‘아시아’ 담론 안에서 주변화되거나 단일한 후소비에트 공간으로 뭉뚱그려지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각 국가의 위치성과 자기 위치짓기에 따라 아시아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미화됨을 명확히 짚어내었다. 여기서 아시아는 단순히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상상될 수 없으며, 각 국가별 역사적 잔여와 기억의 배치를 통해 다시 그 범위와 의미를 질문받는 공간임이 드러났다.
남치형의 발표는 「국제기전의 창설과 동아시아 상상」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국제기전의 역사는 한중일 삼국이 바둑 규칙을 둘러싸고 어떻게 충돌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으로 드러났다. 발표는 바둑이 흔히 동아시아의 공통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제도와 규칙의 차원에서는 각 국가가 서로 다른 전통과 기준을 내세우며 경쟁해 왔음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적 연대의 상상 역시 현실에서는 국가별 이해관계와 주도권 다툼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되고 균열된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어진 논의에서는 최근 LG배에서 벌어진 몰수 실격패 사례를 함께 언급하며, 이러한 규칙의 차이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쟁점임이 확인되었다. 아울러 한중일 이외의 바둑 경기에서는 어떤 규칙이 채택되고, 그러한 선택이 어떤 역사적·제도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질문도 덧붙여지면서, 국제기전이야말로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성과 국가적 경쟁이 동시에 드러나는 장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김백영의 발표 「동해의 상상, 환동해의 현실: 동해를 통해 본 동북아시아 국가와 지역의 갈등과 공존」은 동해와 환동해라는 두 층위의 상상을 대비시키며, 해역을 둘러싼 인접 국가 간 갈등과 지역 차원의 공존 가능성을 함께 검토했다. 다시 말해 동일한 바다가 어느 시선에서는 경계와 대립의 공간이 되고, 다른 시선에서는 연결과 순환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 내부의 공간이 단일한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국가와 지역, 중심과 주변의 스케일에 따라 전혀 다르게 상상된다는 사실을 잘 드러냈다. 이어 상대적으로 서해와 남해에 비해 동해에 관한 선행 연구가 부족했다는 점과 그 이유도 함께 논의되었다.
구기연의 발표 「시아 초승달 벨트의 상상과 현실: 이란의 종파적 패권 전략과 그 균열」은 아시아가 단지 문화적 연대나 문명적 범주로만 상상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첨예한 권력 전략과 지정학적 계산의 언어로도 작동한다는 점을 환기했다. 특히 특정 국가가 자신을 더 넓은 지역 질서의 중심으로 위치시키는 과정에서 ‘아시아’, 혹은 그 하위 지역 범주는 전략적으로 동원되며, 그 과정에서 균열과 반발 또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아시아라는 범주가 언제나 힘의 비대칭 속에서 사용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본 세미나의 발표들은 하나의 동일한 아시아상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성과 공간성 속에서 구성되는 복수의 아시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흥미를 자아냈다. 그 이질성은 오히려 ‘아시아’가 처음부터 하나의 동일한 실체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과 정치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상상되고 경쟁적으로 호명되며, 때로는 충돌 속에서만 비로소 자신의 윤곽을 드러내는 범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각 발표는 저마다 설득력 있는 사례와 문제의식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다루는 지역과 시간대, 분석의 차원이 상이했다. 따라서 각 발표자는 아시아를 하나의 자명한 실체로 정의하기보다는, 오히려 왜 각 사회와 국가, 민족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를 상상하는지, 그리고 그 상상이 어떤 역사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등장하는지를 비교 가능한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해 나가기로 하였다.
결국 이번 세미나는 아시아를 하나의 통일된 실체로 제시하기보다, 그것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경합적인 범주인지를 드러내었다. 또한 총서가 단순한 사례 모음집을 넘어 하나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작업이 되기 위해, ‘아시아’라는 말이 각 장에서 어떤 수준과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정밀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곧 이번 세미나는 바로 그 출발점을 함께 확인하고, 앞으로의 집필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