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ers
김용균 교수
베트남센터장 / 정치외교학부 교수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맞은 2025년은 베트남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해입니다. 베트남 통일을 오늘날 관점에서 다시 재구성하고 이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학술적, 현실적 관점 모두에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베트남 통일에 대한 이해는 베트남 자체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분단과 통일에 관한 비교 연구, 한-베트남 관계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동남아시아 정치·경제사를 심도 있게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통일, 정치 사회 통합, 한-베 관계, 동남아시아 정치 등 정치외교학의 주요 주제이기도 합니다. 4월 4일 예정된 베트남 통일 5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Nguyễn Văn Kim 교수의 강연은 베트남 통일의 역사적 맥락과 현대적 함의에 대한 정치외교학적 통찰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통일을 직접 경험한 현지 학자로서의 소회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Martin Grossheim 교수의 강연 및 4개의 학술 발표와 토론 역시 학자들의 학문적인 업적과 연구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학생과 연구자 등 서울대학교 구성원이 베트남 통일뿐 아니라 베트남 역사 및 동남아시아 지역 연구 일반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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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4일, 아시아연구소 베트남센터는 베트남 통일 5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베트남은 지난 1975년 4월 30일에 통일을 이룩하였습니다. 통일 이후 베트남은 약 1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 국가는 남부 경제를 사회주의적 집산경제로 개조하려 시도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975년에 끝난다던 전쟁은 캄푸치아민주공화국(캄보디아)와 북부월중국경지대로 무대를 옮겨가며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거기에 외교적 고립까지 겹치자, 마침내 당 국가는 노선 대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이른바 도이머이, 개혁 · 개방의 노선입니다.
이후 40년간 베트남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궁극적 목표로 삼되 시장경제를 이용하여 생산력을 증강하는 ‘사회주의 과도기 시장화’를 진행했습니다. 노선 전환은 성공적이었고, 베트남은 인류사를 통틀어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압축고속성장국가 대열로 합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트남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심대한 변화를 노정했습니다.
이 학술대회는 통일 이후 50년간 베트남이 무엇을 하였는지를 살펴 향후 50년간 베트남이 무엇을 할지 내다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베트남 역사학의 권위자인 베트남국립대학 하노이인문사회과학대학 응우옌 반 낌(Nguyễn Văn Kim) 국무교수, 그리고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마틴 그로스하임(Martin Grossheim) 교수를 초대하여 주제 강연강연을 들었습니다. 이후 중견학자 2명과 신진학자 2명을 초청하여 각자의 전문연구분야에서 지난 50년을 돌아보는 발표를 들었습니다.
응우옌 반 낌 교수는 베트남 역사를 외세 침략에 대한 저항의 역사로 정의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정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높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베트남은 외세의 잦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은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뿐 아니라, 마지막 전쟁 이후로는 민족의 강한 생명력과 도이머이 정책을 통해 경제 번영과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마틴 그로스하임 교수는 ‘전장의 전쟁이 끝나면 기억의 전쟁이 시작된다’는 격언에서 출발하여 전쟁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를 조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당 국가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을 승자의 입장에서 재구성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상대측이었던 남베트남 군인 사상자의 기억을 소거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억의 정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는데,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분쟁이 격화하던 지난 2010년대 중반, 교과서에조차 언급이 없었던 1986년 북부월중국경지대 전투(이른바 ‘중월전쟁’)에 대한 공식 기념식이 처음 열렸습니다. 이는 베트남에서 ‘기억의 전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아시아연구소 윤대영 박사는 자신이 1970년생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바의 역사적 격동이 베트남에서의 역사적 격동과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에 관해 흥미로운 서사를 재구성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베트남과 한국의 긴밀한 관계는, 경제 교류가 시작되기도 전인 1970년대에, 양국이 거대한 역사적 조류의 흐름에 함께 휘말리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사카 대학의 조호연 박사는 베트남 족보(가보)에 대한 연구사 흐름을 짚으면서 최근 현지조사에서 발굴한 족보 사료의 해제를 소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통일 이전부터 반동지주계급의 증표까지 여겨져 파괴의 대상이었던 족보가, 최근에는 민속학과 역사학의 관점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떠올랐으며, 거기에는 아직까지 소개되지 못한 흥미로운 서사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향후 족보 연구가 개진되면 근세 베트남의 또렷한 사회상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고려대학교의 송지예 박사는 구성주의 국제정치 이론의 관점에서 1976년 ~ 1990년 사이 베트남 외교정책 대전환을 내재적 변화로 조명한 연구를 발표하였습니다. 기간 중 발표된 당 대회 정치보고서 문건과 베트남 당 이론지 공산잡지에 관한 내용분석으로, 1970년대 후반의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와 반동주의’ 구도가 1980년대 중반에는 ‘경제적 국제주의’로 전환되었으며, 그 동력이 당 국가 내부의 외교정책 관념 변화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아시아연구소 베트남센터장 김용균 교수는 지난 4년간 아시아연구소과 정치외교학부의 지원으로 구축한 베트남 엘리트 데이터셋을 소개하고, 데이터의 일부를 활용하여 1975년 통일 이후 중앙위원을 중심으로 베트남 엘리트 계층의 변화를 짚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첫째, 각 지방 시성의 대표성 변화는 대략 4개의 유형으로 나뉘고, 둘째, 중앙위원 출신지역과 정치국원 출신지역 분포의 괴리도가 시기에 따라 달라지며, 셋째, 또한 중앙위원회 내부이 출신지역 이질성도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김용균 교수는 이러한 추세의 변화가 당내 파벌의 이합집산과 더불어 당 국가 체제의 통치성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향후 그러한 방향으로 연구를 개진할 것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김용균 교수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학술대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학술대회에는 학 내외의 베트남 지역학 연구자는 물론, 서울대학교 베트남 유학생회 소속 학생, 그리고 서울지역 베트남 유학생회 대표단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습니다. 향후 베트남센터는 이번 학술대회의 성과를 기초로 연구활동과 학술교류활동을 더욱 심화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