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내큘러와 대중적인 것의 교차: 1910년대 경성 극장의 ‘연예(演藝)’를 중심으로

일시: 2025년 10월 21일(화) 12:00-13:00 장소: 아시아연구소 304호

Start

2025년 10월 21일 - 12:00 pm

End

2025년 10월 21일 - 1:00 pm

Address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304호

사회자: 오윤정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발표자: 서지영(SNUAC)

본 발표는 1900년대 초부터 경성에 출현하기 시작한 근대식 극장을 배경으로 새롭게 구축된 대중문화의 장을 문화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시도를 의제화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전근대(조선시대)에 형성되었던 버내큘러 문화(vernacular culture:토착/자국/민간)가 20세기 초에 유입된 서구적인 형식의 대중문화 (popularculture)가 교차하면서 ‘연예(演藝)’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들어내는역사적 지점을 검토하는 작업이다.

방법론적 틀로서 ‘버내큘러’라는 개념을 전유하여, 조선시대 풍류/음악 문화의 맥락에서 발현되었던 다양한 층위의 음악적 실천/실제(practice)들을 살펴보고, 전근대적 사회 시스템 속에서 구현된 ‘버내큘러’ 음악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관행들이 근대 초기에 어떻게 ‘연예’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 재형태화되고 변형을 겪으면서 ‘공중(the public)’이 향유하는 ‘대중문화’로 전환되는지를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여러 질문들, 가령 1910년대 전후 개념화되는 ‘연예’의 연원과 함의, 당시 근대식 극장이 기획했던 ‘연예’의 역사적 성격, ‘연예’의 연행자이자 공급자로서의 직업적 예인들의 등장, ‘연예’의 향유자이자 소비 주체로서의 ‘극장 공중(theaterpublics)’의 부상 등에 대해 다룬다.

또한 본 발표는 1910년대 ‘연예’를 둘러싼 몇가지 문화사적 쟁점들을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당시 극장과 언론(신문) 매체를 매개로 해서 형성된 공적 친밀성(publicintimacy)을 기반으로 셀러브리티가 출현하는 메카니즘과 대중 미학이 구축되는 징후들을 살피고, 나아가 1910년대 경성의 사회 정치적 지형 이래 극장과 신문 매체(<매일신보>)의 공생적 관계 속에서 상상되고 재현되었던 식민지의 공공영역 (publicsphere)의 이질적/비균질적 국면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Photos

Review

10월 21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브라운백 세미나 “버내큘러와 대중적인 것의 교차: 1910년대 경성 극장의 ‘연예(演藝)’를 중심으로”에서는 1900-10년대 식민지 조선의 음악‧공연 문화의 발전 과정을 ‘버내큘러(Vernacular)’ 개념을 통해 조망했다. 발표는 버내큘러를 토착‧민간‧대중 문화이자 외래문화가 흡수되어 지역적 맥락 속에서 토착화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기의 음악‧공연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조선시대 음악은 궁중음악, 풍류방 음악, 민속악으로 층위를 이루고 있었고, 계급마다 향유하는 음악이 달랐으나, 근대 전환기에 이러한 ‘버내큘러 음악’이 계층을 넘어 향유되기 시작했다. 발표는 특히 1902년에 설립된 협률사에 주목했는데, 이는 근대식 극장의 시초이자 민속 연회와 외래 공연 양식이 결합된 새로운 대중문화 공간이었다. 1907년, ‘연예(演藝)’ 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극장 공연과 활동사진, 마술, 곡예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복합적 공연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 시기 예인의 선발과 극장 운영 방식이 서구의 근대적 공연 산업 구조와 유사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연예는 1920년대에 들어 서구와 일본의 영화·연극·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근대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고, 1930년대에는 전시 체제의 강화와 함께 선전과 동원의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발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공중(public)’과 대중문화의 형성을 연예 문화의 맥락에서 탐구한 부분이었다. 발표자는 근대 이전 국가 권력과 결부되어 있던 ‘공중’이 17세기 이후 문화 상품의 소비자이자 결정권자로 등장하며 새로운 대중문화를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배우와 관객이 감정과 내면성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공적 친밀성(public intimacy)’과 대중 미학이 확립되었고, 이는 명성과 셀러브리티 개념의 변화를 동반했다. 또한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며, 식민지 신문 매체인 매일신보를 공공영역의 한 형태로 해석한 점도 흥미로웠다. 매일신보는 총독부의 기관지이자 식민통치 이념을 선전하는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인 독자들이 제한된 방식으로나마 담론을 형성하고 저항을 표현할 수 있었던 양가적 공간이었다. 이러한 논의는 연예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식민지 사회의 공공성과 대중 감수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적 장(場)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세미나는 1910년대 경성의 연예를 단순한 오락의 역사로 보지 않고, 버내큘러 개념을 통해 식민지기의 사회적 관계망과 공공영역의 형성을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통과 근대, 민속과 제도, 대중과 권력이 교차하는 지점을 세밀하게 탐색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의 문화 변동을 새롭게 조명한 연구였다.

MORE DETAIL

Phone

02-880-2693

Email

heejinchoi@snu.ac.kr

아시아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스북에서 연구소의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각종 신청 및 자료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관련 신청서 및 자료실

아시아연구소 오시는 길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를 찾아오는 방법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