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자: 유성환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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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서아시아센터는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유성환 선생님을 초청하여 <고대 이집트 문명의 재발견>을 주제로 이집트학의 역사를 개괄하는 콜로키움을 진행했다.
강연자는 기원전 3000년~30년의 고대 이집트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것에서 이집트학의 단초를 찾았다. 이 시대에는 서기관들과 왕실 구성원 출신이 지적 흐름을 주도했으며,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유물을 다수 발굴하고 복원하는 성과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명령을 받은 마네토의 이집트사 정리(Aegyptiaca)와 성서, 고전 작가들의 자료와 같이 외부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이집트도 물론 존재했다. 그러나 해당 자료들은 외부의 편견과 시선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활용에 한계를 지닌다고 강연자는 역설했다.
이후 중세 아랍 제국의 시대에서 아랍인들이 이집트에 대해 남긴 기록은 아직까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향후 연구 과제로 남아있다. 한 가지 특징으로, 아랍인들은 연금술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연금술 지식을 얻기 위해 고대 이집트 문명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아랍인 학자들이 아랍-이슬람 세력의 이집트 정복 이후 피라미드 탐사, 유물 실측, 성각문자 해독 시도 등의 노력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동안 이집트는 유럽인에게 방문하기 위험한 곳이었으나, 오스만 제국과 유럽의 국력이 역전되며 성직자, 탐험가, 도굴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침공이 근대 서구 시각의 이집트학의 서막을 알렸다. 나폴레옹은 학자들을 데려와 학술조사를 실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간행한 <이집트지 description de l’egypt>가 유럽 전역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집트 총독을 맡고 있던 메흐메드 알리의 고대 이집트 유물을 대가로 한 근대 문물의 수입과 유럽 영사들의 이집트 유물 수집은 고대 이집트 유물의 침탈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후 강연자는 이집트 성각문자 해독의 역사와 과정에 대해 개괄하였으며, 1799년 로제타 석비의 발 견과 1822년 샹폴리옹의 성각문자 해독을 주요 사건으로 꼽았다. 이후 20세기 전반 이집트를 주 배경으로 한 과학적 고고학의 탄생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 후 Q&A 시간에는 이집트학이 현대 사회에 주는 의미에 대한 질의 등 열띤 질문과 함께 답변이 이어졌고 콜로키움이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