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아시아, 서구 자본주의 뛰어넘어라”
아시아, 서구 자본주의 뛰어넘어라
[중앙일보]입력 2013.05.24 00:54 / 수정 2013.05.24 01:32
[이제는 아시아 시대]
중앙일보-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기획 ① 문명 전환기인가
올해 초 ‘새로운 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되자’는 화두를 던졌던 중앙일보가 ‘이제는 아시아 시대’라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중앙일보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임현진 소장)와 공동으로 21세기 지구촌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큰 흐름에 주목, 아시아 시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도전 과제를 집중 진단한다. 문명의 전환, 아시아의 보편 가치, 분쟁과 화해, 에너지 대안 모색, 대중 문화를 통한 연대, 이주 문제, 인재 양성, 경제 통합, 한국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가 조명된다. 10회에 걸쳐 연재될 시리즈에는 임현진(사회학) 소장을 비롯해 안청시·전재성·임혜란(정치외교학), 김광억·오명석(인류학), 이준구·표학길(경제학), 박수진(지리학), 강명구(언론정보학) 교수 등 10명의 서울대 교수와 박사급 연구진이 참여한다. 중앙일보 기자들도 현장 취재에 동행한다. 장세정 기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가 세 척의 캐러벨 범선을 이끌고 스페인 팔로스항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세상의 끝을 향한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69일간 항해 끝에 1492년 10월 12일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날, 세계 문명의 중심은 당시 번성했던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 뒤 5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시아는 다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는 유럽을 제치고 미국을 넘보고 있다. 한국·중국·일본·아세안(ASEAN) 10개국, 그리고 인도를 합친 경제 규모는 거대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16년 아시아의 재부를 합치면 40조 달러로, 유럽(39조 달러)을 뛰어넘고 미국(4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이미 미국과 함께 G2(주요 2개국) 대열에 가세했다. 전 세계의 헤게모니가 네덜란드-영국-미국-중국으로 옮겨지면서, 유럽과 미국을 잇는 대서양에서 미국과 중국을 잇는 태평양으로 글로벌 중심이 이동 중이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과 인도의 라지브 간디(Rajiv Gandhi)가 선언했던 ‘아시아의 세기(Asian Century)’가 현실로 도래한 것이다.
콜럼버스 이전 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훨씬 발전돼 있었다. 인류 역사상 두 번째 천년의 첫 다섯 세기(1000~1500년)는 아시아가 앞섰으나, 두 번째 천년의 나머지 다섯 세기(1500~2000년)는 유럽이 아시아를 앞섰다.
서기 1000년 무렵 중국은 상당히 도시화돼 있었고 중동의 바그다드(현재의 이라크 수도)는 100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다. 9~13세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은 그리스·페르시아·인도 문명의 정수를 담은 서적을 집대성해 놓기도 했다.
유럽은 뒤늦게 아시아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르네상스(문예부흥)의 자각, 과학기술 혁명을 통한 ‘지리상의 발견’에 의해 바다를 제패해 아시아를 앞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시아가 다시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유럽·북미 대륙과 더불어 아시아는 근대 산업 세계의 3대 중심축 중 하나가 됐다. 아시아에서 첫 근대화의 성공 사례인 일본을 따라 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의 ‘네 마리 용’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필리핀의 ‘다섯 마리 호랑이’는 신흥국으로 다가섰다. ‘친디아(CHINDIA)’로 불리는 중국과 인도는 세계의 정치 및 경제 대국을 향해 진군 중이다.
아시아가 보여주고 있는 발전의 역동성은 괄목할 만하다. 아시아의 인구·면적·투자·생산량·교역 규모는 북미·남미·유럽·아프리카보다 크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구미보다 늦었지만 컴퓨터·인터넷·휴대전화·태블릿PC 등 정보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21세기형 지식기반 사회로 바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가 규모뿐 아니라 진정한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부문에서 풀어야 할 도전이 산재해 있다. 서구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적 경제 체제와 정치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가치와 콘텐트가 절실하다.
아시아의 부상을 ‘문명의 전환’으로 예단하긴 이르다. 모든 역사는 나름대로 시대적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유럽·미국이 한 역사의 종말이라기보다 다른 역사의 시작이듯 아시아 시대도 그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장)
원문 링크: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5/24/11209788.html?cloc=olink|article|defa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