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ers
구기연 교수
아시아연구소 HK교수 / HK⁺아시아비교지역연구클러스터, 서아시아센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는 튀르키예 이슬람 역사, 예술 및 문화 연구소(IRCICA)와 공동으로 한국-이슬람 세계 관계를 역사, 문화, 경제, 국제관계 등 다면적으로 접근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행사후기
2025년 5월 12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는 ‘Multidimensional Approaches to Korea-Muslim World Relations를 주제로 학술 대회를 개최했다. 세션 1과 세션 2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총 9명의 연사가 역사, 문화, 경제, 국제 관계 측면에서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본문]
1. Jin Han Jeong 교수 – “The Transformation of Korea’s Notions in Expansion of Medieval Islamic Geography in East Asia”
정진한 교수는 중세 이슬람 문헌과 지도 속의 한국(특히 신라)에 대해 분석하였다. 발표 내용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주장은 “인접국인 일본과 중국, 심지어 한국도 한 적이 없는 위도와 경도 설정을 중세 무슬림들은 한국의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Mas’udi’s genealogy를 포함해 9세기 중반부터 10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초기 이슬람 문헌을 소개하며, 중세 무슬림의 천문학 및 지리학 등의 학문의 발전 정도를 역설했다.
특히 무슬림들은 당시 신라를 세계의 끝(Cinda at the edge of the world)으로 간주했는데, 2세기부터 제작된 지도가 이에 신빙성을 더했다. 2세기 제작된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는 동아시아를 동쪽 끝에 있는 지역으로 인식했으며, 12세기 Al-Idrisi의 지도에서는 동남아시아 인근 지역에 신라의 위치를 기록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제작되었던 한 지도에서는 현재 모로코 인근에 있는 카나리아 제도를 경도 0도로, 극동에 위치한 신라를 경도 180도로 두었는데, 이는 지구의 하나의 연결된 체계로 인식한 당시 무슬림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지점이었다.
또한, 동시대에 라틴 지역에서 제작된 지도를 제시하며 12세기 아랍 무슬림의 지구에 대한 이해는 가장 선진적이었음을 강조했다. 이슬람 문명의 천문학 및 지리적 탐구의 우수성을 언급하며 강의가 마무리되었다.
2. Young Gil Hamid Choi 교수 – Korean Translation of the Holy Qur’an
조용길 교수는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유학 생활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밝히며,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동기와 과정’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당시 중동 건설 붐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내 한국인은 많았지만, 발표자는 한국인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대학 학부 과정에 입학했다. 한국에서 아랍어과를 졸업했음에도, 당시 강의에서 아랍어로 묻는 교수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려웠을 만큼 현지에서 학습하는 아랍어는 더 깊이 있는 학습을 요구했다.
당시 학칙에 따라 꾸란을 암기해야 했었는데, 이는 아랍어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의 시작점이 되었다. Ali 학우의 도움을 받아 꾸란의 의미 한 절씩 학습할 수 있었고, 총 3년 동안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기록했다. 꾸란을 이해하고자 했던 시도는 한국인들을 위한 이슬람 문화원에서 강의하며 빛을 발휘할 수 있었다.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발표자는 아랍어와 이슬람을 가르쳤고, 꾸란을 통해 이슬람을 이해한 경험을 살려 본격적인 꾸란 번역을 시작했다.
(재)한국이슬람교(KMF) 번역 위원회에 소속되어, 꾸란의 의미를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발표자는 홀로 꾸란 번역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번역서가 출판되기까지 오해를 받는 등 고충이 있었지만, 결국 1987년 발표자가 집필한 꾸란 번역서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본 발표를 통해 발표자의 꾸란 번역에 대한 의지와 꾸란 번역을 통한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유도하고자 했던 그 의의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3. Siavash Saffari 교수 – “Reflections on Teaching ‘Middle Eastern Studies’ in Korea”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는 한국에서 이란 정치 및 중동에 대해 강의하는 개인의 경험을 활용하여 향후 한국 내 중동 연구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먼저, 현재 흔히 사용되는 ‘이슬람 세계(Muslim World)’ 용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이는 한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더불어, 현대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인식은 서구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내용도 있기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무슬림 다수 사회(Muslim Major Society) 용어의 사용을 제안하며, 다양한 맥락에서 무슬림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의 중동 연구는 정치 및 경제의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주장하며, 개인적인 경험을 사례로 제시했다. 2016년 교수가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직전, 이란 핵 합의가 타결되면서 한국 내 이란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급증했다. 하지만,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GCC 국가들과의 협력이 증가함에 따라 관심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중동 연구가 경제적·외교적 변화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뿐만이 아닌, 미국과 유럽의 중동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관측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보다 깊이 있는(Intellectual Innovation) 중동 연구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연구(Intellectual independence)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끝으로, 한국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 덕분에 미래는 밝다”고 긍정적인 전망으로 밝히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4. Alaaddin Tekin 박사 – “Ottoman Perspectives on Korea: The Travel Narrative of Abdurreşid Ibrahim”
알라아딘 테킨 박사는 1909년 조선을 방문한 오스만 이슬람 학자인 Abdurreşid Ibrahim의 여행기를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 시기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조명했다. 이브라힘은 기자이면서 이슬람학자였고, 여행자로서 유럽, 북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했으며, 동아시아 역시 그의 방문지가 되었다. 그는 19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범이슬람주의(Pan-Islamism)를 실현하기 위해 극동 지역 방문을 결심했다.
그는 부산 항구를 통해 조선에 도착했고, 무슬림과 당시 조선 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하렘(harem)처럼 전통 가옥 내 여성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점, 히잡처럼 여성들이 외출 시에 두루마기를 착용한다는 점이 이슬람 문화와 닮았다고 보았다. 이후 서울도 방문하면서, 오랫동안 당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인상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가장 큰 충격은 ‘기독교 선교사의 압도적 영향력’이었다. 그는 조선을 “선교사가 가장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나라”라 묘사했으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당시 Abdurreşid Ibrahim이 조선인과의 소통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일본인 통역사 없이 소통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그런데도 조선을 독립 국가로서 옹호하고자 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부강해질 수 있다고 당시 사람들에게 역설했을 만큼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을 여행한 Abdurreşid Ibrahim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마치며]
이번 학술 대회는 한국과 이슬람은 과거 오랜 기간동안 역사/경제/사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촉하고 상호 작용해왔음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발표 내용은 달랐지만, 공통으로 언급한 핵심은 같았다. 한국과 이슬람의 꾸준한 교류와 이해였다. 본 학술 대회가 앞으로의 한국 내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 연구, 교류에 단단한 기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Session 2.
[들어가며]
2025년 5월 12일 아시아연구소에서 개최된 중동 학술 대회는 한국과 무슬림, 더 나아가 중동 국가 간 협력의 다층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리였다. 역사적인 관점에 초점이 맞춰진 세션 1과 달리, 세션 2에서는 경제, 정치적 관점에서 양측 관계를 되돌아보며 미래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특히 본 발표는 한국과 튀르키예 현대 외교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1. Sadık Ünay 교수 – “Middle Powers in Global Governance: Comparative Analysis of Türkiye and Korea”
Sadık Ünay 교수는 IRCICA에서 학술 자문위원(Academic consultant)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본 발표를 통해 냉전 이후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국과 튀르키예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중견국(Middle power)를 국제 정치에서 Super-power를 가진 국가에 비해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냉전 이후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확장된 영향력을 펼치는 국가로 정의했다. 그리고 중견국 의 핵심 특징을 5가지로 정의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소프트파워 기반 구축 ▲글로벌 연합 형성 능력 ▲구조적 한계에 기반한 거버넌스 역량 ▲균형잡힌 외교 전략 설계 ▲틈새 영역 발굴
발표자는 한국이 중견국(Middle Power)를 가진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인을 경제 개발에서 찾았다. 개발 자원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개발과 기술 혁신으로 큰 성과를 이끌었으며, 사회 구조 개혁을 통해 다원적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튀르키예가 중견국 지위를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여러 국가와 FTA와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써 정부와 민간 경제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주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지리적 위치만큼, 경제/문화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점을 갖지만, 급격한 경제 성장과 민주 통합 부문에서 특징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견국으로서 모두 국제 정치에서 국익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틈새 지역을 공략한다는 점으로부터 두 국가의 외교 정책이 유사함을 역설하며 발표를 마무리 지었다.
2. 김강석 교수 – Modern History of Political Relations between Korea and the Middle East
김강석 교수는 발표를 통해 냉전 전후로 한반도 분단이 중동 외교에 미친 영향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1950년 한국과 냉전 시기 pro-US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대표적으로 수교를 맺은 중동 국가는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군 15,000명의 참전은 대중동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1970년대의 외교 정책의 가장 큰 차이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사이에서 실리 추구의 노선을 보였다는 점이라 밝혔다. 중동 전쟁으로 악화한 아랍과 이스라엘 관계에서 한국은 아랍 국가로의 안정적인 원유 수입을 위해 1978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을 철수하는 등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였다고 전했다. 더불어, 캠프 데이비드 협정 당시에도 PLO를 합법적 조직이라 인정하며 국익(National Interest)을 위해 아랍 국가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냉전 종식 이후 한국은 요르단과 이집트와 수교를 맺으며 중동 내 수교 국가 수를 확장했고, 현대에 이르러 경제, 안보, 외교 분야를 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맺고 있다. 본 발표를 통해서 과거 한국의 對 중동 외교 정책의 기조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확장할 수 있는 양측의 협력에 대한 비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Ali Akkemik 교수- Does Industrial Policy Drive Economic Development? The Case of HC Drive in Korea
Ali Akkemik 교수는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 공업정책(이하 HCI) 이 경제 성장에 끼친 장기적 영향을 분석했다. 1973년 시작된 6대 중화학 산업 육성 정책은 경제 성장을 꾀하는 국가의 전략과 더불어, 주한 미군 철수 등 불안정한 국제 정치로부터 해법을 찾기 위한 시도로서 추진되었다고 밝혔다.
본 발표를 통해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Korea Miracle’라 비유하며, HCI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HCI 정책은 1973년에서 1979년 사이 성공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음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중화학 산업의 부가가치 성장률은 30% 이상을 기록했고, 수출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편, 약 6년 동안 진행된 HCI는 산업 경쟁력에 대한 인식을 고양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높은 금융 비용 및 공급 과잉 등은 한계점으로 제기되었다.
발표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정책 종료 후에도 영향력이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HCI를 통한 산업 구조의 변화는 2000년대 반도체와 같은 High-Tech 수출국으로 거듭나는 데 성장 발판이 되었으며, 1970년대에 산업 기반이 마련되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음을 밝혔다.
1960년부터 2018년간 73개 국가의 주요 경제 지표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의 동질 집단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호주, 과테말라, 이스라엘 등이 한국의 동질 집단으로 정의되었다. 정량적인 연구 결과, 한국은 동질 집단의 HCI 성과보다 더 급격하고 더 가파르게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례 연구로서 양질의 연구 대상으로 작용함을 언급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HCI를 분석함으로써, 경제 성장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인 지표로 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4. Kwon Hyung Lee 연구원 –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Korea and the GCC: Achievements and Future Prospects”
본 발표는 50년 이상의 한-GCC 협력 관계를 고찰하며,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GCC 협력 관계는 196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시작으로 건설 협력을 통해 본격적으로 긴밀해졌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한국이 수주한 GCC 국가 내 프로젝트는 약 36만 건에 달하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약 49%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발주했다고 밝혔다.
건설뿐만 아니라 GCC는 한국의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이룩하는 데 도움을 준 산업 협력국(Industrial Parterners)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1973년 한국의 경제 성장 계획의 핵심인 중화학 육성 정책은 6대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에 필요한 원유와 가스의 상당량을 GCC로부터 조달받았다. GCC와의 교역은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2018년부터 GCC 회원국과 체결된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통해 협력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표의 후반부에는 GCC 국가와의 협력 전략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GCC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불고 있는 디지털 전환, 넷제로 흐름을 소개하며 이를 활용하여 에너지-디지털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이는 친환경 에너지로부터 얻은 전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Upstream부터 Downstream까지 사업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제시했다. 더불어, 해양 경제 협력(Blue Cooperation), 경제 회랑(Asia-Europe Connectivity), Korea-GCC 협력 펀드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GCC와 다양한 산업에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5. Suleyman Elik – “Türkiye’s Social and Cultural Diplomacy”
본 발표는 튀르키예의 현 외교 정책을 분석하며, 핵심 내용인 새로운 아시아 질서에 대해 소개했다. 튀르키예의 외교 시스템(International system)에서는 실질적인 층계(Hierarchy)가 존재하지 않지만, 구분을 위한 용어가 있음을 밝히며, Super Power/Great Power/Middle Power에 대한 개념을 소개했다. 각 개념에 속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다음과 같은데, Super Power인 미국, Great Power 국가로 여겨지는 러시아/중국/인도 그리고 Middle Power에 속하는 튀르키예와 한국이 있다.
따라서, 튀르키예는 국가를 각 층계에 맞게 구분함으로써 다차원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한다. 이는 반수정주의, 적극적 중립 외교, 전략적 심연 이론(Strategic Depth Doctrine)에 기반한 것으로써 튀르키예의 특징적인 외교 전략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국가마다 특징적인 외교 전략을 수립하는 데 영향을 끼쳤으며, 정치학적 접근뿐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접근도 동시에 이뤄진다는 특징을 보인다.
한편, 튀르키예는 1970년대 키프로스(Cyprus)를 둘러싼 미국과의 관계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외교 정책 도입의 필요성을 체감하였고, 신자율주의(New Autonomism)의 맥락에서 도출된 개념이 Asia Anew Initiatives라 밝혔다. 핵심적인 내용은 튀르키예의 전 세계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비롯해, 문화, 역사, 사회적인 요인으로부터 형성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맺음에 있어, 이란 내 3500만명에 이르는 튀르크계인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전략을 수립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튀르키예의 소프트파워, 즉 문화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밝히며, 전 세계 튀르키예인 디아스포라를 위한 종교적인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시아에서는 대표적으로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태국이 있으며, 1998년에 일본 정부와의 논의를 통해 모스크를 건립한 사례가 대표적인 종교 외교 정책의 예시이다. 앞으로 각국의 튀르키예 문화원을 활성화함으로써, 무슬림 교육 기관뿐만이 아닌 비무슬림을 위한 교육 및 프로그램도 진행할 것이라는 비전을 밝히며 발표는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