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남북관계 돌파구는 있는가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올해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한지 30년, 남북미정상회담이 열린지 3년이 되는 해다.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됨으로써 남북간의 합의가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게 된 이래 한국과 북한은 모두 다섯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네차례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중 2018년의 남북합의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종전선언으로부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의 교류와 협력 등 남북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중요한 합의라 할 만하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남북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합의는 북미관계 개선과 더불어 일본 중국, 나아가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대(大)평화’의 출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미국을 포위하려는 중국과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패권경쟁이 정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신냉전의 극한 접점에 놓여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한 종전과 평화는 남북 사이의 합의가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과 ‘북한인권’이 거론되면서 중국과 북한은 변하지 않는 미국을 책망하겠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이 지게 됐다. 한미가 가까이 간 대신 북중은 더 가까이 갈 것이다. 최근 북중무역이 재개되고 중국이 대규모 대북 경제원조에 나서고 있다.
수사만 남은 남북합의
돌이켜보면 2019년 하노이 북미협상 실패는 남북관계를 위기에 빠뜨린 배경이 되었다. 오늘의 남북관계의 교착은 하노이 회담의 실패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북미회담의 순조로운 성사 및 합의→유엔 대북제재 (일부)해제→남북 교류협력 증진→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등을 희망했던 우리로서는 이 모든 과정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에는 2018년 평양에서 합의했던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도 포함된다.
작금 남북관계는 교착을 넘어 후퇴하는 중이다. 2018년 판문점합의에 따라 그해 9월 문을 열었던 개성의 공동연락사무소가 2020년 6월 한순간에 폭파돼 사라졌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관리하기로 했으나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핵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통한 압박을 그치지 않는다. 남북사이의 상설통신망은 수시로 끊기는 실정이다.
대북제재의 우회를 통한 개별관광으로 접근하려는 우리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재개는 실현되지 못한 채 이제는 시설물마저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급기야 지난 1월에 열렸던 북한의 제8차 노동당대회는 남북관계가 ‘판문점선언 이전의 시기로 돌아갔음’을 선언하고 ‘더 이상의 선의를 베풀지 않을 것’임을 공언했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위기로 치닫게 된 근본원인은 한편으로 북미관계 파행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관계가 지나치게 북미관계에 종속됐기 때문이다. 남북 사이의 합의가 결국 북미관계와 연계되면서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교류와 협력은 허공을 맴돌고 있다. ‘운전자’를 자처한 우리 정부 역시 아무런 자율성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북미관계가 정체되면서 합의의 실질적인 이행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북한 역시 남북관계에 별다른 융통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교착을 가져온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남북한이 평화와 공존에 대해 큰 간극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북이 통일 이후의 체제형태에 대한 심각한 이견과, 그에 도달하기 위한 방식과 절차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 아래 변질된 사회주의 수령체제를 고집하는 북한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아래 자본주의체제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필자는 일찍부터 북유럽의 민주사회주의 체제를 매개로 해 남북한이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소견을 제시한 바 있지만 이것조차 남은 몰라도 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북한은 남한의 자본도입과 기술이전에만 관심이 있다. 남한이 사회문화적 교류에 신경을 쓰는 반면 북한이 이에 대해 냉담한 이유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채널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가운데 대화와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남북관계는 잠시 현안에서 밀려나고 북한 역시 국경을 봉쇄하는 초강도의 방역조치를 실시하면서 외부와의 교류와 협력은 자연스레 그치게 됐다.
우리도 선택의 폭 좁아
북한은 의료지원 물품원조 방역협조 등 인도적 지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남한과의 사회문화적 교류가 북한에 자본주의 생활과 문화를 퍼뜨릴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실제 평창올림픽 이후 기대했던 남북 사이의 민간교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자력갱생 목표 아래 사회주의 인간개조를 강조한다. 북한은 세습체제 아래에서 정책의 유연성을 갖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