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새해를 열며, 진영의 시대를 넘자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소원은 안전과 생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힘들었던 한해를 보내면서 신축년 ‘하얀 소’가 의미하는 끈기와 성실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코로나19는 100년에 한번 발생하는 팬데믹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보다 고약한 팬데믹이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류가 지구를 혹사한 결과 나타난 자연의 응징이다. 인간과 생물이 공존하는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성장과 환경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의 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록 성장과 환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인류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면서 자연의 생태적 질서를 유지하는 지혜와 실천이 필요하다. 자원을 아끼면서 만족할 수 있는 절제의 철학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솔선하면서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를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뉴노멀에 대비할 기회를 잃기 쉽다. 자본주의도 교정하고 민주주의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구적 가치사슬의 재조정, 취약계층을 위한 기본소득의 복지화, 탄소중립을 향한 재생에너지 확대, 비대면 관계에서 공동체의 복원, 인간중심의 인공지능 유도, 민관협치를 통한 시민참여의 활성화, 자치와 분권을 위한 풀뿌리 강화 등 코로나 이후를 준비할 사안이 적지 않다.
최악의 분열과 반목 부른 진영정치
새로운 사회체제를 향해 갈길이 멀다. 그런데 촛불혁명 이후 민주주의를 부활시킨 광장이 정파적 이해충돌로 심각하게 갈라져 있다. 해방 이후 최악의 분열과 반목이라 할 수 있다. ‘조국사태’ 이후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친여 ‘문빠’들과 반문 ‘박빠’ 등이 적대적으로 부딪쳐왔다. 이들은 가짜뉴스 허위정보 편파방송을 통해 동조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선전 선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4월 예정된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가 걱정이다. 내년 대선 전초전으로 여야가 총력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음해 모략 비방이 성행하는 진흙탕 선거가 될 수 있다.
지난해를 시사하는 사자성어로 교수들은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뽑았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틀리다는 말이다. 흔히 얘기하는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정사(正邪)와 선악(善惡)의 판별이 없다. 자기편이면 틀려도 무조건 맞고, 상대편이면 맞아도 무작정 틀린 것이다. 모든 잘못이 내탓이라는 반구제기(反求諸己)의 자세가 그리워진다.
작금 우리 국민을 두쪽의 극단으로 갈라놓고 있는 것이 아시타비의 진영논리다. 이념으로 포장돼 있지만 보수와 진보는 깃발일 뿐 정치적 성향에 따른 현실적 이해득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목표달성을 위해 대중의 감정을 등에 업고 진실을 호도하면서 사실은 가려지고 허구가 만들어진다. 대중은 특정 정치인을 단순히 지지하는 것을 넘어 그들과 능동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생산하면서 ‘빠’로 세력화된다. 정치의 팬덤화다.
문재인정부가 집권 5년차를 맞이해 애초 국민과 약속한 사회통합을 향해 마지막 최선을 다해줄 것을 바란다. 공정 정의 평등을 외쳤지만 반칙 특권 위선이 있었음을 반성해야 한다. 역사의 하중은 무거울 뿐이다. 적폐청산이란 이름 아래 국민을 편가르기함으로써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의 추동력이 떨어졌다. ‘수줍은 리더십’을 버리고 국민과 더불어 책임윤리를 다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한다.
코로나 비상상황 아래 국민은 정부를 믿고 집권당을 밀어주었다. 슈퍼 여당은 개헌을 빼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매사를 서두른다. 열린우리당 시절의 교훈을 잊고, 당내 이견이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국민에 대한 대표성을 배신하고 책임성을 오도하고 있다.
가장 화급한 검찰개혁도 꼬였다. 검찰총장의 징계정지를 ‘사법 쿠데타’라고 규정하는 금도넘는 발언에서 보듯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원칙에 도전하고 있다. 국회를 통법부로 만들고 과잉입법으로 나아가고 있다. 입법만능주의는 포퓰리즘의 위험을 지닌다. 권력기관을 장악한 정부가 먼저 입법부를 접수하고 다음 사법부를 찬탈하고 종국에는 국가주의적 다수독재로 향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소통과 신뢰 높여 통합의 시대로 가자
유럽의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등은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잘 조화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다. 이들의 성취는 공공의 제도와 신뢰의 문화 아래 포용적 사회경제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특히 소통과 대화의 문화에 바탕한 사회적 자본의 확충이 고용 성장 분배 복지의 선순환을 가져왔다.
한국은 분단국가임에도 경제력의 하드파워와 문화력의 소프트파워를 합쳐 세계 20권 안에 들어간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지만 강중국(advanced middle power)으로 올라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끼리끼리 뭉쳐 상대를 공격하는 진영의 장벽은 신뢰의 반경을 좁혀 공동체 발전을 가로막는다. 신뢰와 타협의 문화 아래 사회적 자본을 넓혀 서로 다르더라도 화목하고 상생하는 시대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