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임현진 칼럼 – 21대 국회, 미래를 준비하라
[창립소장 임현진 교수(시민사회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 사회과학계에 ‘민중정치’(populocracy)라는 매우 흥미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우리가 아는 정치체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거의 모두 나와 있지만 이것은 없다. 그는 다수가 법에 의해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체제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우정치(demagogia)로 전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정치인들이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중에 가까이 가고 이들을 동원하는 포퓰리즘이 성행하면서 민중정치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민중정치는 중우정치의 후예다.
우리 정치는 민중정치는 아니지만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당정치의 부전(不全)에 따라 국회가 민의대변에 취약하고 포퓰리스트적 수사가 난무한다. 시비를 가르기보다 상대방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한다. 여야 정당의 협애한 파당적 이해 때문에 국회는 소모적인 정쟁장소에 다름 아니다. 정책을 통한 경쟁은 없고 가식적 이념을 빌린 진영논리에 따라 밀어붙이기와 발목잡기에 빠져 있다.
의회정치가 진영대결을 풀기보다 오히려 부추겨 시민사회의 적대적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28년간 국민청원 2000건 중 70%가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의 폐기율은 80%를 넘겼다. 국민은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에 비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오래 전부터 회자되던 국회무용론이 유해론을 거쳐 국회해체론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20대 국회 성적은 초라했다. 지난 4년 동안 국회의원 한 사람의 회의참석 시간은 한달 기준 약 9시간이었다. 일주일에 2시간 정도 일한 셈이다. 놀고먹는 국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마다 의원들의 입법안이 늘고 있으나 공천과 관련한 실적 부풀리기로 대부분 완성도가 매우 낮다. 이러한 보여주기식 발의로 인해 국회사무처의 인력과 자원의 낭비가 적지 않다. 법안 발의가 선거운동 수단으로 남발되어 정작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은 처리되지 못한다.
슈퍼 여당, 포용을 통해 협치로
21대 국회도 기형적이다. 사이비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가 비례하지 못했다.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49.9%, 미래통합당이 41.5% 득표했는데 의석수는 163대 84로 거의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두 정당은 영호남을 다시 지역주의로 갈라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이 177석, 미래통합당이 103석 모두 합쳐 94%를 차지했지만 거대 양당구조로 보기에는 많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슈퍼 여당의 출현이다. 집권여당은 개헌선 2/3에 불과 20석 모자란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중재역할을 할 수 있는 제3당의 입지는 정의당 5석, 국민의당 3석밖에 없다. 집권여당은 마음만 먹으면 거의 모든 법안처리를 포함해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슈퍼 여당의 출현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과반수를 넘은 경우는 두세번 있었지만 21대 국회와 같이 2/3 가까운 의석은 아니었다. 민주공화당이 원내에서 무려 73.7%를 차지한 1967년 제7대 총선은 최악의 공개투표 대리투표 투표매수 개표조작이 이루어진 부정선거였다. 민주공화당은 3선개헌을 통해 대통령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체제의 길을 터주었고 민주주의의 붕괴를 초래했다.
의회권력의 독점은 슈퍼 여당을 자만과 망상에 빠지게 한다. 여소야대의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의 오만과 독선은 결국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슈퍼 여당은 겸손과 인내를 통해 야당을 포용해 의회정치를 협치로 이끌어내는 도량을 가져야 한다.
범여권의석이 전체의 3/5을 넘기에 선진화법상 패스트트랙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고 필리버스터도 막을 수 있다. 독주와 교만을 버려야 한다. 단독 개원, 상임위원장의 독식, 설득력 없는 징계, 당내 함구령 등은 권위주의 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라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다. 국가주의의 부활이 탈세계화를 이끌면서 성장과 분배가 나빠지고 자국 중심주의 아래 신냉전이 도래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 생존을 위해 국회가 사회통합을 위한 대변혁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여야는 포퓰리스트적 껍데기 이념의 깃발을 내리고 가치지향을 통해 21대 국회를 코로나 이후 뉴노멀 시대를 대비하는 사회협약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 시대 대비해야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이 국가이익에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새롭게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은 정당 소속이지만 국익과 민생을 위해 대의와 소신을 갖고 초당파적으로 일해주었으면 한다. 당대표보다 원내대표가 권한을 갖고 여야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마련하여 의회정치를 활성화시켜주길 바란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제아무리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도 제왕적이길 멈추지 않았다. 청와대가 이른바 ‘그림자 정부’(deep state)로서 집권여당 위에 군림해 정당정치를 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회가 삼권분립의 중심에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한국의 미래를 선취적으로 견인하는 정당정치를 이끄는 21대 국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