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ers
Prof. Jayati Ghosh
Jawaharlal Nehru UniversityIndustrialization of China and India: focusing on the impacts in Asia
Prof. Jayati Ghosh/ Jawaharlal Nehru University
일시 : 2015년 10월 29일(목), 오후 2시 ~ 4시
장소 : 아시아연구소 303호
문의 : 김고운 조교 (880-2693/ gounkim@snu.ac.kr)
행사 개요
-발전경제학의 전문가로서,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의 발전은 사이먼 쿠즈네츠 같은 정통 발전론자들이 내놓았던 교과서적인 모델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다. 특히 수출 주도 전략과 수입 대체 전략이 상반되는 게 아님을 보여줬다는 게 특기할 만하다. 사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 특히 정부가 단순한 경제성장뿐 아니라 보건·교육 등 사람들의 기본적 필요를 뒷전으로 밀어두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 결과 한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했지만, 1997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에는 잠재력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왜 그럴까?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저하는 경제 성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숙하고 일인당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경제의 성장 속도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현상을 다소 일찍, 즉 일인당 소득이 충분히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겪고 있다. 따라서 최근 성장률 저하는 다른 요인들을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는데?
“중진국 함정이란, 경제성장에 따라 자국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임금이 더 낮은 경쟁국이 부상함으로써 더는 ‘저임금 프리미엄’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는 반면, 이를 상쇄할 정도로 생산성이 오르지 않을 때 나타나는 문제를 일컫는다. 적어도 통상 부문만 놓고 보면 한국이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이것이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주진 못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성장을 둔화시키는 핵심 원인은 무엇인가?
“글로벌 자본시장에 깊숙이 통합되고 한국 경제 내부에서 금융규제가 완화된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본다. 가장 중요한 계기는 1990년대 말 위기였다. 이때 한국은 국내 금융시장의 규제를 (부분적으로는 외부의 강압에 의해) 완화했고, 그 결과 외국 금융기관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국내 자금이 금융으로, 즉 생산성이 떨어지는 투자로 몰렸고, 경제성장을 부채 주도의 소비와 부동산 붐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붐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거품이 일단 꺼진 뒤에는 소비와 투자를 크게 위축시킨다. 역설적이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투자율이 떨어지는 동안 저축률은 (주로 기업 저축에 의해) 유지됐다. 이러한 ‘과잉저축’(savings glut)은 국내 저축이 해외로 유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성장률은 더 낮아지고 경제 내의 불평등은 더 커졌다.”
-많은 논문과 강연에서 현재 세계경제의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부채 주도 성장’(debt-driven growth)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한국 경제에 대한 설명도 이에 근거한 것으로 들린다. 부채 주도 성장이란 무엇인가?
“경제성장을 위한 소비와 투자가 임금 등 소득의 실질적인 증가가 아니라 신용에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성장 방식은 보통 자산거품과 실질소득에 비한 과잉투자를 동반한다. 이런 현상은 이미 2008년 이후 미국이나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등에서 목격한 바다. 신흥국에서도 부채 주도의 민간소비 거품이 언제든 터질 수 있다. 특히 이미 금융위기를 겪은 적이 있는 아시아 나라들에는, 주택과 자동차, 기타 내구재 소비를 위해 민간 신용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이 제1의 경계 대상이 되는 게 순리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1990년대 말 이후 금융 자유화를 통해 진행된 소비자 신용의 거품 확대를 오히려 경제회복의 수단으로서 사실상 장려하고 있다. 임금과 같은 실질적인 의미의 소득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아시아의 신흥국에서도 부채 주도 성장의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현재 목격되고 있는 소비 둔화는 놀랄 일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기업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나아가 기업의 부채상환 능력을 압박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이후 급속히 성장한 아시아의 회사채 시장은 이미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이 모든 사정들이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를 그 어느 때보다 외부 충격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부채 수준에서는 다음번 파국을 일으킬 수도 있을 충격은 내부에서 나오기가 더 쉽다. 최근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처럼 말이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중국은 세계경제의 ‘구원자’로 부상하고 있지만, 최근 수출 둔화와 주식시장 급락 등으로 불확실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재 세계경제의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현재 세계 자본주의가 의존하고 있는 발전 모형은 수출을 경제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삼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일단 유럽에서는 한동안 새로운 수요가 나오지 않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미국은 미미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국외에 분산됐던 제조업·서비스업을 자국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어서 신흥국 경제의 새로운 수요 창출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일본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컨대 지구상의 ‘북반구’ 나라들은 국내 수요 감소, 정부의 긴축정책, 보호주의 등의 이유로 신흥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일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신흥국들은 자국 경제성장의 희망을 온통 중국에 쏟아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이야말로 북반구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 중국 수출 둔화는 선진국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며, 이는 세계 전역에서 중국의 교역국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 닥친 최근 사태는, 실물 부문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단기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일단 허용되기만 하면, 강력한 국가 통제가 작동하는 체제에서도 금융 취약성이 불거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결국 세계경제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전 전략, 내지는 발전 모형을 필요로 한다고 보는 듯하다. 그 전에, 도대체 ‘발전’(development)이라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흔히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잘산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로의 편입’이나 다름없다. 한동안 이것이 후발국들에 새로운 기술을 전해주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97년 위기 이후엔, 글로벌 금융시장으로의 편입이라는 성격이 부각되었다. 여기서는 신흥국도 다른 선진국들과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 경제는 보통 국가 개입에 따른 시장 창출, 해외시장 개척 등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없으면 정체되기 쉬우며,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그런 자극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최근 수십년 동안 선진국 경제는 금융 거품을 키움으로써 여기 대응해왔고, 그 결과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이제 한국 같은 나라도 이런 상황에 맨몸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태껏 의존해왔던 발전 모형은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경제가 세계 자본시장에의 편입을 통해 ‘부상하는 경제’(emerging economy)로 자리매김한 것은, 장기적인 발전 전망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발전’을 위한 대안적인 경로가 있을까? 개략적인 윤곽을 그려달라.
“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은 그저 있으면 좋은 게 아니라 한국과 같은 나라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발전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과거 국가주의 전략을 재탕하자는 게 아니다. 소득과 고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소생산자들의 생존 가능성과 생산성을 개선하며 모든 시민의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고안해야 한다. 사회정책은 경기순환에 대응하는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불황기에 특히 중요하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상당한 승수효과도 낸다. 따라서 사회정책은 단순히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거시경제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다. 진보적인 사회정책의 핵심적인 특징은 보편성에서 나온다. 선별복지는 (단순한 낙인찍기 문제뿐 아니라) 복지가 필요한 사람을 부당하게 빼거나 불필요한 사람을 넣는 식의 오류에 쉽게 노출된다. 반면, 보편복지는 정치적으로 더욱 큰 정당성을 발휘할 뿐 아니라 양성에 더 공정하다. 보통 여성은 사회와 경제의 유지에 큰 공헌을 하나 이는 좀처럼 인지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 확대, 금융에 대한 정부 규제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논란이 많다.
“사회정책은 재정정책의 중요한 일부다. 재정정책은 최근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 효과가 증명되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대규모 가계부채·기업부채하에서는 직접적인 공공지출이 아니고서는 경제성장 모멘텀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본다. 물론 정부 지출은 승수효과를 가장 크게 발휘할 수 있는 영역, 그리고 혁신과 미래 생산성 향상을 가장 잘 자극할 수 있는 활동에 돌려져야 한다. 그러나 정부라고 해서 대규모 재정적자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정책들은 반드시 더욱 누진적이고 공정한 조세정책과 결합되어야 한다. 금융을 시민의 필요에 복무하도록 일정한 한도 안에 가둬놓는 것도 정부의 일이다. 현재 금융의 지배는 하나의 특정한 정치경제 체제, 곧 조만간 변해야만 하고 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향후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어쨌든 금융 활동에 좀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게 해도 사적 행위자들은 규제망을 피해가기 위해 꾀를 쓰게 마련이므로 금융 시스템의 핵심인 은행 부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정도 금융 부문을 사회화하는 게 필요하다.
* 고시 교수는
자야티 고시(60)는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발전경제학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인도 자와할랄네루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세계화 및 국제금융, 개발도상국의 고용 패턴, 거시경제 정책, 개발에서의 여성 문제 등을 주로 다룬다. 주류·비주류 경제학의 다양한 입장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고시 교수는 주류경제학과 국제적 경제발전정책에 대해 비판적 대안을 모색해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진보적 관점에서 경제 정책과 금융 등을 연구하면서도 국제연합(UN)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와도 활발히 교류 및 협업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의 결과 유엔개발계획(UNDP)과 국제노동기구 등에서 다수의 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국제개발경제연합(IDEAs)의 사무국장과 인도 정부의 고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는 <인도경제 개혁의 그림자>(공저, 2008), <실패한 시장은 버려라: 우리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경제>(<경제민주화를 말하다>(2012)에 수록) 등의 저작이 소개되어 있다. 이외에도 <지금 당장 경제개혁>(2013),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2013)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국의 <가디언> 등 다양한 언론 매체에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