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인정투쟁: 패전국 일본, 분단국 중국, 식민지 한국의 국교정상화
그동안 인정(recognition)의 철학적.사상사적 논의는 주로 서구사회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아시아 사례들이야말로 인정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 이 책에서는 주로 서구 사례들을 설명해 온 인정 개념을 재구성해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를 분석한다.
‘인정투쟁’의 관점에서 한중일을 새롭게 바라보다
그동안 인정(recognition)의 철학적.사상사적 논의는 주로 서구사회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아시아 사례들이야말로 인정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 이 책에서는 주로 서구 사례들을 설명해 온 인정 개념을 재구성해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를 분석한다. ‘인정투쟁’의 개념으로 동아시아를 살펴보면, 전후 한중일에 중요했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각 국가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면서 무엇이 다루어지지 않게 되었는지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오늘날 한중일 관계에 나타나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개선과 화해의 논의를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오승희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동아시아학을 공부했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학과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방문연구를 수행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외교정책, 중일관계, 동아시아 국제관계다.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 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했고, 가톨릭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일본정치, 지역연구, 국제관계 등을 강의했다.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 『전후 중일관계 70년』(공저), 「과거사를 둘러싼 인정투쟁」, 「한일국교정상화와 중일국교정상화의 외교전략」, 「한국 젊은층의 일본관 변화와 문화적 요인 분석」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제1부 ‘패전국’ 일본의 ‘하나의 중국’ 인정 문제
제1장 인정투쟁의 중일관계
- 인정이란 무엇인가
- 인정투쟁의 작동 메커니즘
- 중국과 일본의 인정 문제
- 일본의 인정투쟁과 전후 동아시아
제2장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초청 문제
-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어느 정부를 초청할 것인가?
- 일본의 중국 인식
- 일본의 중국 인정: 중화민국의 권리 승인
- 외교 전략: 미뤄두기, 다중해석
- 소결: 샌프란시스코, 1951-1952
제3장 1964 도쿄 올림픽 참가 문제
- 도쿄 올림픽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참가할 수 있을까?
- 일본의 중국 인식
- 일본의 중국 인정: 중화인민공화국의 권리 확인
- 외교 전략: 쌓아가기, 경계짓기
- 소결: 도쿄, 1964
제4장 중국의 유엔 대표권 문제
-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 결의안에 찬성할 것인가?
- 일본의 중국 인식
- 일본의 중국 인정: 중화인민공화국의 권리 수용, 중화민국 권리 존중
- 외교 전략: 미뤄두기, 경계짓기, 다중해석
- 소결: 뉴욕, 1971
제5장 중일 국교정상화와 ‘하나의 중국’
- 일화평화조약과 중일공동성명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일본의 중국 인식
- 일본의 중국 인정: 중화민국 권리 확인
- 외교 전략: 다중해석, 미뤄두기
- 소결: 베이징, 1972
제2부 일본의 전후 처리와 인정 문제
제6장 국교정상화에서 인정 문제
- 왜 한중일은 아직도 화해하지 못하는가?
- 유일 합법정부 인정 문제와 외교 전략
- 냉전기 분단국가와의 국교정상화
- 국교정상화 교섭의 외교 전략
- 소결: 일본의 전후 처리와 동아시아
제7장 과거사를 둘러싼 인정투쟁
- 과거사에 대한 한일 간 인식 차이
- 일본 총리 담화의 텍스트 분석
- 총리 담화의 과거사 인정과 부정
- 소결: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관계
제8장 불완전국가들의 인정투쟁
- 제한적 주권국가들의 인정투쟁
- 국제규범형 자기정당화
- 외교적 위선의 외교 전략
- 일본의 인정투쟁과 가치지향 외교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 중에서
전후 아시아 국가들은 주권국가로서 이상적 자아를 상정하는 동시에, 주권국가로서 요건이 결핍된 자신을 발견한다. 이상적 주권국가가 아닌 자신을 확인함으로써, 주권국가에 대한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시에 현실 자아에 대한 결핍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국가이익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주권국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 즉 완전한 주권국가로 인정투쟁과 밀접하게 연관될수록 국가이익이 우선순위를 형성하고, 국가가 당면한 외교정책 입장이 결정된다.(19쪽)
종전 70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관심 속에서 아베 담화가 발표되었다. 일본 정부 역시 담화의 중요성을 인식해 전문가 간담회인 ‘21세기구상간담회’의 논의를 거쳐 준비했고, 역대 담화들 중 가장 긴 분량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본 국내외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상당히 감정적인 단어가 대거 등장했다. 한국이 특히 주목한 식민 지배와 이에 대한 사과 및 반성의 ‘단어’들은 분명히 포함되었고,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서 사용된 표현들이 담겨 있어 재검증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때문에 아베 담화는 반박하기 어렵지만, 한국으로선 충분히 사과받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긍정도 부정도 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담화가 되었다.(221쪽)
일본의 경우, 패전국으로서의 현실적 자아와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주권국가로서의 이상적 자아 간 괴리가 강력한 인정투쟁 동기가 되었다. 패전 이후,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존재 존중의 부정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기까지 일본은 권리 수용 부정 상태에 놓였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독립국 일본이라는 권리 수용 인정을 향한 투쟁이었다. 1960년대 경제선진국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확인한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통해 가치 확인 인정을 추구했다. 이후 1970년대 들어서면서 평화국가 일본으로의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며 가치 수용과 가치 존중을 향한 인정투쟁을 진행하고 있다.(236쪽)
일본의 가치외교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로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의 지배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한 배제와 견제로 인해 국제사회의 블록화를 형성하며 동지국과 적을 구분하고 있다. 개방된 네트워크를 추구하지만 자국에 위협이 되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대응 논리로, 자국의 안보강화를 정당화한다. 일본이 원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나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들과 화해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타자화와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의 관계 악화, 반민주화 흐름의 묵인 등으로 인해 이는 수단적 측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타나고 있다.(2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