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er : 김은영 /Stanford University P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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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화), 브라운백 세미나는 <시티팝과 아시아적 도시감성의 탄생: 일본, 홍콩, 타1이완, 한국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진행되었다. 발표자로 나선 김은영 스탠포드 대학 박사는 2021년 9월부터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펠로우십으로 재직중에 있다. 최근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과 K-Pop 팬덤 문화를 집중적으로 연구를 진행중에 있다. 이와 더불어 대중음악을 통해 20세기 아시아의 청각적 풍경(sonic landscape)을 재구성하고, 대중문화를 통한 아시아성(Asianness)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K-Pop 등 아시아 대중문화의 세계화 현상을 고찰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이번 발표에서는 일본, 홍콩, 타이완, 한국을 중심으로 1980년대 시티팝의 범아시아적 유행을 아시아 지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그리고 이로 인한 신흥 도시 중산층의 형성이라는 거시적 변화와 연관 지어 살펴보았다. 또한 타케우치 마리야(竹内まりや)의 〈Plastic Love〉를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시티팝 곡들을 사운드 및 가사 측면에서 분석함으로써 아시아적 도시 감성의 일면도 함께 들여다보았다. 1980년대 시티팝 현상은 일견 일본에서만 유행되었던 것으로 인식되기 쉬웠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자는 시티팝이 일본에서의 유행 이후 불과 몇 년 사이에 홍콩과 타이완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대도시는 물론, 싱가포르와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등 동남아시아의 도시 지역으로까지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80년대에 이미 아시아의 초국가적 문화 현상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시티팝의 유행에는 다층적인 특징이 있는데, 지리적으로 살펴보면 개발도상국의 수도 또는 관광도시 등 코즈모폴리탄적 도시에서 주로 유행하였으며, 계층적으로는 2,30대 신흥중산층이 시티팝을 주로 향유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문화적으로는 서구 문화 및 소비 유흥 문화 경향에 발맞춰 시티팝의 범아시아적 유행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아시아 도시 신흥 증산층의 니치 트렌드이자 배타적 아비투스로서 시티팝이 활용된 것이다.
당시 시티팝 유행은 1970년대 말에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시티팝이란 용어 자체가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진 않았으나 ‘뉴 뮤직’ 가운데 도회적이고 세련던 분위기를 의미하였다. 이후의 2차 유행은 200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7,80년대 유행한 특정 스타일의 음악에 대한 향수로 촉발된 것이었다. 이 시기 시티팝의 개념이 공고히 정립되었다. 시티팝에 대한 향수가 젊은 층 사이에서 강하게 일었던 이유는 시티팝이 유행했던 시기가 거품경제라 불렸던 일본 역사상 최대의 호황기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후 장기불황으로 잃어버린 30년에 접어든 탓에 시티팝 전성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도 일본의 호황기를 그리워하며 시티팝 노스텔지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시티팝은 퓨전재즈에 영향을 받아 미디엄 템포와 16비트 리듬으로 보통 이루어진다. 당김음의 빈번한 사용으로 특유의 그루브를 형성하며 클래식부터 신디사이저 등의 전자음악까지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즉, 태생적으로 ‘일본’ 음악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기보다는 코즈모폴리탄적 크로스오버 사운드의 성질을 띈 것이다.
본 세미나에서는 오오누키 타에코(大貫妙子)의 〈都会〉와 타케우치 마리야(竹内まりや)의 〈Plastic Love〉 의 사운드와 가사를 분석하여 아시아적 도시감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들 가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도시적 특색은 픽션성을 꿈궈왔다는 점이다. 지역성과 국적이 소거된 코스모폴리스로서의 꿈의 도시와 서구의 세계도시와 동일시할 만한 미적 향유 혹은 페티시즘의 대상으로서 도시 모습을 꿈꾼 것이다. 거품경제 시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도시 밤 문화가 활성화되었으며, 2,30대의 신흥도시 중산층은 여가 및 유흥을 위한 소비에 집중하여 소비를 통한 도시적 취향과 감성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시티팝의 유행은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타이완, 홍콩, 한국에도 퍼져나갔음을 발표자는 지적하였다. 80년대 홍콩의 경제발전에 발맞춰 다국적 음반회사들이 홍콩으로 진출하였으며, 이 시기 일본어 번안을 통해 일본 시티팝이 홍콩에도 상륙할 수 있었다. 토착 시티팝 창작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대륙 도시 신흥 중산층의 부를 겨냥한 시티팝이 유행하였다. 타이완의 경우에도 ICRT 라디오를 계기로 미국의 문화적 라이프 스타일이 청년 대중문화를 확산시키며 타이완 대중문화의 세계주의에 기여하였는데 타이완 시티팝의 특징은 취향과 감성이 계ㅊ층 재생산을 위한 제도로서의 연애와 사랑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다는 점이다. 한국의 시티팝은 일본 및 중국어권 시티팝과 직접적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창출되었다.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으며 당시 한국의 시대적 정치적 분위기를 완전히 소거시키는 대신 배타적 사회, 경제 문화 특구를 형성한 강남의 공간적 특성에 정착하였다.
이렇듯 시티팝은 80년대에 이미 아시아의 초국가적 문화 현상이었으며 특정 나라의 전유물이 아니라 무국적 음악에 가까웠다. 서구권 역시 시티팝을 아시아적인 음악으로 인식했다는 점이 이 사실을 반증한다. 시티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아시아성은 결국 아시아라는 개념이 서구 근대의 팽창으로 인한 개념적 산물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서구 그 자체가 성좌적 사유 및 체험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아의 도시화는 세계화라는 허울을 쓴 서구화에 가까운 과정이었으며 아시아의 도시는 상상 속 세계와 만나는 최전선으로서의 꿈의 도시였다. 즉, 세계로의 진입은 아시아적 시좌에서만 포착이 가능하며 세계로의 진입은 실제로는 세계의 확장과 서구의 지역화인 셈이다. 발표자는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시티팝이 세계적으로 재유행하게 되었다고 진단하였다. 이후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과 함께 세미나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글 | 김승교(학술기자단, 연구연수생 15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