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8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통일평화연구원이 공동 기획한 제1회 아시아평화세미나가 아시아연구소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동아시아 관련 영역에서 석학을 초청할 때 두 기관의 취지와 관심사가 공통될 경우에 공동 개최하기로 한 아시아평화세미나의 첫 강연자는 중국사회과학원의 쑨꺼(孫歌) 교수였다. 국내에서도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아시아라는 사유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쑨꺼 교수는 이번에는 ‘동아시아에서 평화는 사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에서 쑨꺼 교수는 기존의 평화 관념의 양극단, 즉 절대이념으로서의 평화와 상대적 현실 판단으로서의 평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구체적으로 그녀는 간디의 비폭력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반전평화운동과 세계정부수립운동을 사례로 들면서 절대평화이념의 자기충족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전쟁으로 충만한 현실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현실 속에서 전쟁과 폭력을 최대한 저지하고 줄이고자 하는 현실의 평화를 인도 네루의 사례를 들면서 한편으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는 현실에 반문한다. 그러면서 간디가 말하는 평화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서의 평화 간에는 긴장이 있다고 말했다.
쑨꺼 교수는 이 긴장관계를 직시하고 온갖 형태의 전쟁과 폭력(가능성)으로 만연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관찰하고, 가시적이거나 은폐된 비평화의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상 과제로서의 평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 가능성을 확인했던 오키나와의 사례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녀는 1982년 신오키나와문학에 발표되었던 가와미찌의 ‘류유큐우공화사회헌법초안’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헌법초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시였던 이 텍스트는 당시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받으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다시 주목되고 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가 재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오키나와의 반기지 운동, 특히 최근의 후텐마기지를 이전하기 위해 건설되고 있던 헤노코비행장에 대한 반대 운동이라는 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시가 국가 아닌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는 일종의 연대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 모델을 상상하고 있는데, 반기지운동이라는 현실에서 추동된 연대성이 마찬가지로 그러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이라는 위치를 적극 취할 것을 권유했다. 냉전의 최전선인 오키나와, 댜오위다오/센카쿠는 물론 오늘 강연에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타이완의 진먼(金門), 한국의 NLL과 서해5도 등의 위치에 서보는 것이 사상 과제로서의 평화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롭고 많은 영감을 주는 강연이었다.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질의와 논평, 토론이 이어졌다. 훌륭한 강연에는 반드시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지는 법이다. 사회를 맡았던 박명규 교수는 물 흐르듯 매끄러우면서도 적절한 포인트 강조를 통해 토론의 이해를 도왔고, 질의와 토론에 참여했던 여러 교수와 연구원, 대학원생들도 각자의 시각과 경험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매끄러운 통역으로 강연과 토론 내내 수고했던 백지운 교수의 역할이 돋보이는 자리였다. 모두가 첫 아시아평화세미나 자리를 빛내주신 주인공들이었다.
(정리: 강성현/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동북아센터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