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개발부] 아시아연구소 연구연수생 20기 전체답사 후기

[인재개발부] 아시아연구소 연구연수생 20기 전체답사 후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는 미래의 아시아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연구연수생 아시아지역전문가과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2024년 11월 16일(토)-17일(일) 양일 간 진행된 연구연수생 20기 13인의 전체답사 후기를 전달해드립니다.

 

구성원 20기 연구연수생 13명

(김세환, 김재희, 남규연, 박예진, 박준영, 양준용, 유시훈, 유하영, 윤형준, 이지우, 정민화, 채승훈, 홍채영)

주제 광주 민주화운동과 아시아연구
장소 광주광역시 일대
일시 2024년 11월 16일(토)-11월 17일(일)

아시아연구소 연구연수생 20기 13명이 11/16(토)-17(일) 양일 간 광주광역시로 전체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지역이자 동남아시아 민주화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연구소의 연구연수생으로서 아시아 전체의 민주주의 관점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 사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답사를 계획하며 던졌던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높이 평가되는 맥락은 무엇인가? 아시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결과적으로 연수생들은 답사를 통해 연수생들은 광주와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답사에서 얻은 정보와 영감을 각자 수행하는 아시아연구에 접목시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며, 서로 더 친해지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이었다. 광주 시민에게 듣는 그 날의 참상은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더 끔찍했다. 광주 사람들은 공권력이 시민을 해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내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직접선거권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민주화 운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유산은 무엇인지 깊게 사유하게 되었다.

전일빌딩245에서는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폭격의 흔적이 남아있던 공간을 해설을 들으며 관람했다. 영상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히 볼 수 있었고, 마지막에 등장한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곳을 실제로 와보니 민주화운동의 열기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 전일빌딩 카페로 이동해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 이를 자신의 소논문 주제에 어떻게 접목시킬지를 토론해보았다. 권리 위에 잠 자는 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그리고 연구자로서는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할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답사 초반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장소만 다녔으므로, 후반부터는 아시아와 관련된 전시를 보는 일정 할당했다. 아시아문화전당에 방문해 말라카 해협에서 발견된 유물, 천일야화에 대한 기록, 아랍 문자와 캘리그라피, 현대 아시아 국가들의 핵심 의제를 짚는 문화예술작품, 그리고 광주 비엔날레 파빌리온 전시 등을 관람했다. 같은 아시아여도 관심 있는 국가가 서로 달랐는데, 유물과 함께 각자 잘 아는 지역에 대해 설명하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면서 몰랐던 국가/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답사 마지막 방문장소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 마을에 들렀다. 가장 핵심이 되는 고려인 문화관 ‘결’에서 관장님도 뵈었는데, 알고보니 아시아연구소와 행사도 함께하시고 아시아브리프에 글도 쓰신 분이었다. 관장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셔서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센터에 배정된 연수생들이 주축이 되어 홍범도 공원 등 다른 장소들까지 방문했다. 방문을 통해 고려인 이주 역사와 다른 이주민들과 다른 고려인만의 특징을 섬세하게 짚어볼 수 있었다. 마지막 식사로 월곡동에서 가장 유명한 <고려인 마을 가족카페>에 들러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음식들을 여러 개 시켜 나눠먹었다. 답사를 시작하며 행사기획팀에서 준비한 마니또 미션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자신의 마니또가 누구인지를 공개했다. 마지막까지 즐겁고 보람찬 답사였다.

글 | 유하영(20기 연구연수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