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의 사자들] ①시위대 음식 준비하는 40대 주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의해 구금돼 20대 여성이 사망한 뒤 이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한달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21일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분노한 시위대가 거리를 막고 불을 지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9월16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붙잡힌 22살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했다. 아미니의 진료기록을 본 의사들이 구타를 당해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란 여성들은 분노했다. 다음날부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이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는 한 달째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사망자는 2백명을 넘어섰고, 중고등학생부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경험한 세대까지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왜 용맹한 사자처럼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가. 이란 청년 세대를 연구해온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가 시위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리에 나선 ‘테헤란 사자들’이 답한다. 편집자
“오늘(10월 8일 토요일) 11시 바자르(전통시장) 상인 협회, 전국 소상공인 협의회를 비롯해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래서 혹시나 있을 상황에 대비해서, 시위대에 나눠줄 음식과 약품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얼마나 또 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지…. 부디 이란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테헤란에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해서 급하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수도 테헤란에 사는 40대 후반 주부인 마리얌(가명)의 다급한 메시지가 와있었다. 24시간이면 사라지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시위와 관련된 포스팅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이란 현지시각으로 새벽에 vpn(가상사설망)을 연결하면 이란 정부의 인터넷 통제를 잠시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인들은 검열과 추적에 대비해 게시물이 아닌 스토리에 짧은 영상과 사진, 그리고 자기 생각들을 적었다. 마리얌은 최근에도 14살 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담은 사진을 올리며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전통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과 안정된 삶을 누리는 마리암은 공부 잘하는 아들과 딸을 자랑스러워하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시위로 그녀는 비장한 시위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한 달 전 이란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마리얌 부부는 시위가 주로 열리는 엥겔럽(혁명) 광장 근처에 있는 자신의 건물 1층 출입문을 열어 두고 시위대의 피신 장소로 활용했다. 이들은 시위대를 위해 밤마다 간단한 음식과 물, 구급약을 준비했다. 부상을 해도 잡힐까 봐 병원에 갈 수 없는 부상자들을 위해 응급처치하는 방법도 익혔다. 자신의 건물 CCTV에 찍힌, 시위대가 피신하고 보안군이 긴 곤봉으로 건물 유리창을 깨는 영상을 해외 통신사에 제보하기도 했다.
9월21일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이란 시민들이 히잡을 거부하는 시위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9일 현지시각 새벽 2시 반, 한국시각 오전 8시에 마리얌은 왓츠앱 메시지로 전화를 걸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왓츠앱으로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젖어 있었다.
“남편이 잘못하면 총을 맞을 뻔했어요. 오늘 전국 바자르마다 유혈 사태가 터졌어요. 보안군이 쏜 총알이 2층 사무실 벽에 박혀 버렸어요. 정말 죽을 뻔했다고요.” 그녀는 쏟아내듯, 왜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란의 시민들이 맨몸으로 거리를 나설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했다. “우리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이 정권 안에서는 극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걸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이런 세상에서 더는 살게 할 수 없어요. 우리 아이들이 왜 자유 없이 정권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나요? 지금 이곳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하고 있어요. 빵조차 살 돈이 없다고요. 이렇게 사나, 이렇게 싸우다 죽으나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어요.”
그의 말대로 지금 이란에서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은 이 시위의 끝이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지금 정권이 쉽게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유와 평화, 무엇보다 인권을 갈망하는 이란 시민들의 염원과 분노는 공포와 두려움을 이길 것이라 다짐한다. 이들은 다시 한 번 서로에게 구호를 외친다.
“Irani Mimirad, Zelat Nemipazirad!!(우리는 죽는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 저자
기사원문 바로가기 “아이들이 왜 자유 없이 살아야 하죠?”…마리얌은 울면서도 외친다 (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