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랍의 봄 그 후 10년의 흐름’을 출간한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교수가 13일 책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010년 한 청년의 죽음은 중동 지역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26살 행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이야기다. 그는 과일이 담긴 수레를 압수하는 경찰에 저항하다 따귀를 맞고 분노하며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이는 아랍권 민주화 열기에 고삐를 당겼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중동 지역의 민주화 물결인 ‘아랍의 봄’은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최근 10명의 중동 전문가와 함께 ‘아랍의 봄 그 후 10년의 흐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을 집필한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46)는 13일 기자와의 만나 “아랍의봄 이후 유일하게 민주화에 근접한 나라로 꼽혔던 튀니지마저 최근 총선 투표율이 10%에 그쳤다”며 “아랍권 국가들은 여전히 시린 봄을 맞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정부 시위 물결에 힘입어 2013년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집트다. 이집트에서는 또다시 군부의 철권통치가 강화됐다. 중동 민주화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한 튀니지는 최근 불거진 권력 투쟁과 테러 세력의 준동으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구 교수는 “숲과 나무 모두를 본 뒤 ‘아랍의 봄’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배경, 종교·정치적 상황 등이 너무 다른 각 나라별 상황을 자세히 살펴야만 중동의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책을 쓰기 위해 각 국가 별 전문가를 섭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 중 한 명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책에서 “튀니지나 이집트에서 일어난 시위는 시민혁명에 가까웠지만, 리비아는 부족전쟁, 예멘은 종파 분쟁의 성격이 강했다”고 평가한다.
책에는 ‘아랍의 봄’ 현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구 교수는 “집필진 대부분이 해당 시기에 현장에 체류하며 그 거리의 공기를 맡아본 학자들”이라며 “현장의 울분, 민중의 힘을 가까이서 느끼고 쓴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박사과정 시절인 2009년 테헤란에서 이란의 반정부 시위인 ‘녹색운동’을 목격했다. 지난해 ‘반(反)히잡시위’ 때는 현지 지인들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다. 구 교수는 “무력·유혈 진압에도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나서는 건 ‘희생 없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며 “밖에서 볼 땐 더디지만 중동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단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했다.
한편 구 교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지진의 영향이 양국 정권에 각각 위기와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튀르키예는 곧 5월에 조기 대선이 예정돼 있어 이번 지진의 영향을 받겠지만, 대규모 학살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입장에선 재난 지원을 통해 고립 국면을 전환하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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