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펜데믹 시대 한·아세안 교역 투자는?


이재호(대외경제정책연구원)

우리의 핵심 협력 파트너,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은?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 계기 자카르타에서 아세안과의 외교관계를 미·중·일·러 4강 외교수준으로 격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신남방정책’을 천명했다. 이후 2018년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인 ‘신남방정책특별위윈회’ 설치, 2019년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개최 등을 통해 아세안과의 협력 관계가 급진전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수년간 아세안과의 협력관계가 기존의 경제부문 뿐만 아니라 정치·안보 부문에서도 크게 진전되었다.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 협력에서도 아세안은 기존의 ARF를 통한 대화창구 제공 노력 이외에 최근 1~2차 북미정상회의를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개최하며 유례없는 협력을 제공한 바 있다. 아세안은 신남방정책 발표 이전에도 이미 교역량 2위, 투자 2위의 핵심 협력 파트너였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포스트 차이나 시대의 대표적인 대안으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한층 더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대표적인 주력 첨단 수출제품인 스마트폰은 이미 베트남에서 글로벌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미래형 자동차인 전기자동차 생산을 위한 차량 및 배터리 생산 기지 건설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발생은 우리의 핵심 파트너인 아세안과의 협력 관계에도 큰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코로나19 펜데믹 발생 이후 우리와 아세안의 경제 관계 변화 분석을 통해 향후 양측의 협력방안을 논하는 기회를 찾고자 한다.

제21차 한-아세안 정상회의 (2020년 11월 12일)
출처: https://asean.org/chairmans-statement-21st-asean-republic-korea-summit/

 

코로나19 팬데믹 발생으로 對세계 교역 8.8% 감소 對아세안 교역은 7.7% 감소로 선방

우리와 아세안의 교역은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일시적인 반등이 있었으나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해왔다. 2010년부터는 미국, EU, 일본 등 우리의 전통적인 핵심 교역 대상국을 제치고 제2위 교역 대상지로 부상했으며 2019년 교역량 약 1,500억 달러를 기록했다. 2020년 1~9월 기준 우리의 對세계 교역은 전년동기간대비 8.8% 감소했다. 국별로는 전년동기간 대비 3.0% 감소, 미국과 EU의 교역 감소폭은 2.3% 수준에 불과하나 對아세안 교역은 7.7% 감소해 상대적으로 감소폭이 양호한 편이며 교역 대상지 2위의 입지를 고수했다.

(좌) 그림 1. 한국의 주요 국별 교역 추이(1991년~2020년 9월), (우) 표 1. 한국의 주요 국별 2020년 1~9월 교역액
자료: 한국무역협회(www.kita.net).

 

코로나19 팬데믹, 對베트남 교역 충격은 양호, 싱가포르는 수출 급감, 수입 급증

우리의 2020년 1~9월 누적액 기준 對아세안 국별 수출입은 국별로 증감이 상이한 구조를 보인다. 우선 수출의 경우 한국의 對아세안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베트남에 대한 수출이 전년동기간 대비 약 17억 달러 가량 감소했으며, 2위 수출대상국인 싱가포르에 대한 수출이 약 22억 달러 감소한 것이 주목을 끈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수출 상위권 국가들 또한 10억 달러 이상 수출이 감소했으나 말레이시아에 대한 수출액은 약 2억 달러 증가했다. 수입의 경우 인도네시아로부터의 수입 감소와 싱가포르로 부터의 수입 증가가 대조적인 구조를 보인다. 對인도네시아 수입은 약 11억 달러 감소해 전체 수입 감소액의 약 83%를 차지하며, 對싱가포르 수입은 對아세안 수입 감소 규모와 유사한 규모인 약 13억 달러 증가했다. 우리의 對아세안 교역에서 약 절반의 비중을 차지하는 베트남 교역은 2019년 1~9월 약 519억 달러에서 2020년 1~9월 약 499억 달러로 전년동기간 대비 약 4% 감소해 對아세안 교역 감소폭을 다소 줄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위 교역 상대국인 싱가포르의 경우 수입이 크게 증가해 수입 감소폭의 절반 이상을 상쇄한 것이 특징이다. 3위 교역 상대국인 말레이시아의 경우 전년동기간 대비 교역량이 약 4천 8백만 달러 증가했다.

(단위: 백만 달러, %)
국가명 수출 수입
금액 비중 증가율 증감액 비중 금액 비중 증가율 증감액 비중
베트남 34,269 53.1 -4.9 -1,768 23.8 15,640 38.2 -2.0 -313 22.8
싱가포르 7,627 11.8 -23.1 -2,287 30.8 6,273 15.3 27.9 1,369 -99.8
말레이시아 6,982 10.8 3.2 217 -2.9 6,540 16.0 -2.5 -169 12.3
필리핀 5,427 8.4 -15.8 -1,022 13.8 2,157 5.3 -23.2 -652 47.5
태국 4,859 7.5 -17.6 -1,038 14.0 3,832 9.4 -5.6 -226 16.5
인도네시아 4,353 6.7 -24.8 -1,438 19.4 5,689 13.9 -16.7 -1,144 83.4
미얀마 455 0.7 8.6 36 -0.5 362 0.9 -17.0 -74 5.4
캄보디아 415 0.6 -20.0 -104 1.4 246 0.6 -5.0 -13 0.9
브루나이 67 0.1 13.6 8 -0.1 172 0.4 -47.4 -155 11.3
라오스 37 0.1 -38.3 -23 0.3 34 0.1 13.3 4 -0.3
총계 64,490 100.0 -10.3 -7,419 100.0 40,946 100.0 -3.2 -1,372 100.0
표 2. 한국의 對아세안 국별 교역 현황(2020년 1~9월 누적액 기준)
자료: 한국무역협회(www.kita.net).

 

산업재 중심 교역 감소 불구 핵심 산업 교역은 선방

2020년 1~9월 한국의 對아세안 품목별 수출은 상위 품목인 기계류, 광물성연료, 플라스틱, 철강 등 여타 산업재들의 수출이 크게 감소했으나, 수출 총액의 약 42%를 차지하는 전기기기와 부품품(HS-Code 85)의 對아세안 수출이 전년동기간 대비 소폭 증가했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산업재 중심으로 구성된 한·아세안 생산네트워크에 대한 타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나 핵심 교류 분야인 전기기기 부문의 생산네트워크에 대한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수입의 경우 1~2위인 전기기기 및 기계류의 수입은 증가했으며, 광물성연료, 의류, 목재, 철강 등의 수입이 크게 감소한 것이 주목을 끈다. 또한 수출입 모두 소재 및 에너지 부문에 대한 교역이 크게 감소한 것은 핵심 산업 교역이 선방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산업 생산 활동이 위축은 불가피한 상황임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단위: 억 달러, %)
순위 수출 수입
코드 품목명 금액 비중 증감률 코드 품목명 금액 비중 증감률
1 85 전기기기와 부분품 271.0 42.0 1.8 85 전기기기와 부분품 130.2 31.8 5.4
2 84 기계류 및 부분품 50.8 7.9 -11.9 84 기계류 및 부분품 47.8 11.7 12.6
3 27 광물성 연료 48.1 7.5 -42.2 27 광물성 연료 44.7 10.9 -20.1
4 39 플라스틱 및 제품 36.0 5.6 -10.0 62 의류(편물제외) 20.1 4.9 -18.8
5 72 철강 30.2 4.7 -17.2 90 광학 정밀기기 15.0 3.7 8.7
6 89 선박과 수상구조물 28.9 4.5 -0.4 61 의류 편물 13.0 3.2 -6.6
7 90 광학 정밀기기 25.7 4.0 -15.9 64 신발류 11.0 2.7 1.4
8 87 차량 13.9 2.2 -40.8 44 목재 및 목탄 10.5 2.6 -7.5
9 60 의류 편물 9.5 1.5 -20.2 38 화학공업 생산품 8.3 2.0 5.8
10 40 고무 및 부분품 9.4 1.4 -8.3 72 철강 7.3 1.8 -32.1
총계 644.9 100.0 -10.3 총계 409.5 100.0 -3.2
표 3. 한국의 對아세안 품목별(HS-Code 2단위) 수출입 현황(2020년 1~9월)
자료: 한국무역협회(www.kita.net).

 

산업 생산네트워크 중심으로 구성된 한아세안 교역, 소비재 교역은 수입 중심

한·아세안 가공단계별 교역 구성을 보면 양측의 경제 협력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데, 한국의 對아세안 수출의 경우 중간재의 비중이 약 80%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가지고 있어 한국의 對아세안 수출의 80% 이상은 아세안 현지 산업활동에 투입되는 부품으로 구성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간재에 이어서 약 13.6%의 비중을 차지하는 자본재는 산업 활동에 활용되는 설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본재와 중간재를 합산해 보면 한국의 對아세안 수출은 약 94%가 아세안 현지 산업활동에 투입되는 부품과 설비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수출 후 아세안 현지 시장에서 소비되는 소비재의 비중은 5%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 최근 아세안 지역에서 한류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산 소비재에 대한 소비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에 비해서는 미약한 수준으로 보인다. 한국의 對아세안 수입의 경우도 중간재가 전체 수입에서 약 5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자본재의 비중도 16.5%로 중간재와 자본재를 합하면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한국의 對아세안 수입에서 1차산품(농수산물)과 소비재의 수입의 비중이 약 27%를 차지하는데 이는 한국의 對아세안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수준인 점과 대조적이다. 즉 한아세안 교역은 자본재와 중간재로 대표되는 산업재 교역이 주를 이루며 아세안의 한국산 소비재에 대한 수요는 아직 미약한 상황이나 한국의 아세안산 소비재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단위: 억 달러, %)
가공단계별 수출 수입
금액 비중 증감률 금액 비중 증감률
1차산품 3.5 0.5 -4.9 29.8 7.3 -23.0
소비재 33.1 5.1 -13.2 81.5 19.9 -4.4
자본재 87.6 13.6 -16.7 67.7 16.5 23.8
중간재 518.3 80.4 -9.2 226.0 55.2 -5.8
기타 2.4 0.4 89.9 4.4 1.1 -6.6
총계 644.9 100.0 -10.3 409.5 100.0 -3.2
표 4. 한국의 對아세안 가공단계별 수출입 현황(2020년 1~9월)
자료: 한국무역협회(www.kita.net)

 

2020년 한·아세안 교역은 모든 부문에서 전반적으로 감소했으나 특히 자본재, 소비재의 감소가 크게 나타났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아세안측의 소비와 생산활동이 위축되면서 일상 생활에 소비되는 소비재의 감소는 물론 산업 시설에 투입되는 설비가 주를 이루는 자본재에 대한 수요 또한 감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재와 중간재의 수입 감소는 글로벌 교역 위축도 일부분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한아세안 생산네트워크는 한국이 설비와 부품을 제공하고 아세안이 토지와 노동력을 투입해 미주,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형태로 구축되어 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미주 및 유럽의 수요 감소가 간접적으로 한국의 對아세안 자본재·중간재 수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수입에서는 1차산품과 소비재의 수입이 크게 감소한 것이 보이는데 이는 한국의 아세안산 농수산물과 소비재에 대한 수입이 탄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세안산 농수산물과 소비재는 한국 시장에서 수요의 탄력성이 낮은 필수 소비재라기 보다는 소비 여력의 감소에 따라 소비를 줄일 수 있는 非필수 소비재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아세안으로부터의 자본재 수입은 전년 동기간 대비 약 23% 증가했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발생에도 불구하고 전기전자 부문과 같은 핵심 산업의 생산네트워크 운용을 위한 활동이 유지되고 있는 점과 유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세안, 코로나19 팬데믹 중 한국의 투자 대상지 2위 입지 탈환

아세안은 한국의 핵심 교역 지대이자 투자지대로 제3의 투자대상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2020년 6월까지의 투적 투자액 기준으로 한국의 국별 투자 대상지 순위는 미국, EU, 아세안, 중국, 케이만군도 순이다. 최대 투자처로서의 미국의 지위는 변하지 않으나 최근 수년간 EU에 대한 금융투자가 증가해 EU가 제2위 투자국으로 부상한 바 있으나 2020년에는 對EU 투자가 크게 감소하면서 아세안이 2위 투자국 자리를 탈환했다. 반면 한때 우리의 최대 투자대상국이었던 중국은 미국, 아세안, EU, 케이먼군도에게 상위 순위를 내어주며서 5위 투자국으로 밀려났다. 반면 우리의 對아세안 투자는 큰 등락 없이 지속 증가하는 추세를 유지해왔으며, 2017년 11월 신남방정책 발표 후 2018~2019년에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한 것이 주목을 끈다. 이는 최근 수년간 미중 무역 분쟁과 중국의 내수 우선 정책으로 인해 저비용 생산기지로서의 중국의 매력이 반감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의 대안으로서 아세안의 매력이 주목을 받은 것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공세가 확대되면서 대미 수출에 주력해온 다수 제조 기업들의 탈 중국 현상이 가속된 바 있으며, 이러한 경제환경 변화를 주목한 아세안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탈중국 기업 유치에 주력해온 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위: 백만 달러, %)
그림 2. 한국의 주요 국별 직접투자 현황(2020년 6월 기준)
자료: 한국수출입은행(www.koreaexim.go.kr)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투자 감소 불구 對아세안 투자는 7.5% 증가

코로나19 팬데믹 발생으로 2020년 1~6월 기준 한국의 대세계 직접투자액이 전년동기간대비 16.6% 감소한 점에 비해, 동기간 한국의 對아세안 직접투자액은 약 7.6% 증가했다. 최대 투자 대상국인 미국의 경우 2020년 1~6월 누적 투자액이 약 73억 달러로 전년동기간대비 0.6% 감소해 큰 차이가 없는 반면, EU는 2020년 1~6월 누적 투자액 약 36억 달러로 전년동기간대비 30.9% 감소했다. 케이만군도의 경우 2020년 1~6월 누적투자액이 약 35억 달러로 전년동기간대비 8.3% 감소했으며, 중국의 경우 2020년 1~6월 누적투자액 약 12.6억 달러로 전년대비 약 66% 감소했다.

(단위: 백만 달러)
그림 4. 한국의 분기별 對아세안 직접투자 비중 추이(2017년 1/4분기 ~ 2020년 2/4분기)
자료: 한국수출입은행(www.koreaexim.go.kr)

 

베트남向 제조업, 금융 투자 감소, 싱가포르向 도소매, 부동산 투자 증가

한국의 對아세안 직접투자 누적액을 살펴보면 베트남이 전통적으로 제1위의 입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3위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까지 합하면 전체 투자액의 약 73%의 높은 비중을 차지해 특정 국가에 대한 쏠림이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6월 한국의 對아세안 국별 직접투자를 살펴보면 제2위 투자대상국인 싱가포르에 대한 투자가 크게 증가해 2020년 통계만 본다면 싱가포르가 한국의 최대 투자국인 상황이다. 반면 전통적인 1위 투자국인 베트남에 대한 투자는 전년동기간 대비 15.3% 감소했다. 3위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2020년 1~6월간 약 4억 달러의 투자가 시행되면서 전년동기간대비 18.1% 증가했다. 투자 비중 10% 미만 국가 중에서는 미얀마와 태국에 대한 투자가 크게 증가한 반면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대한 투자가 크게 감소했다. 가장 투자 증가폭이 큰 싱가포르의 경우 도소매업, 부동산업 등 서비스 부문에 대한 투자가 크게 증가해 전반적인 투자 증가세를 주도했다. 2020년 1~6월에 아세안 최대 투자대상국 자리를 내어준 베트남은 최대 투자업종인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전년동기간대비 약 20% 감소해 전반적인 투자 감소를 주도했다.

(단위: 백만달러, %)
(좌) 그림. 5 한국의 對아세안 누적 투자 국별 비중(2020년 6월 기준), (우) 표 5. 한국의 국별 對아세안투자 현황(2020년 1~6월)
자료: 한국수출입은행(www.koreaexim.go.kr)

 

전통적 최대 투자업종(제조업, 금융)은 투자 부진, 부동산·도소매 등이 투자를 주도

한국의 업종별 對아세안 직접투자를 업종별로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제조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 전체 투자액의 1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은 금융보험(13.2%), 광업(12.7%) 정도에 그쳐 최상위권에 투자가 집중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6월에도 유사하게 유지되나 업종별로 증감이 보인다. 우선 전통적인 최대 투자업종인 제조업 및 금융보험 부문에 대한 투자가 각각 17.7%, 28.7% 감소한 것이 주목을 끈다. 하지만 제조업과 부동산업 부문의 투자 부진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투자 업종인 부동산업, 도소매업, 전문과학기술, 광업 등에 대한 투자가 큰 폭의 증가율을 보이며 2020년 1~6월 한국의 對아세안 직접투자의 증가세를 주도했다.

(단위: 백만달러, %)
업종 대분류 2020년 6월 누적 업종 대분류 2020년 1~6월
금액 비중 금액 비중 증가율
제조업 33,157.4 43.3 제조업 1,477.8 31.9 -17.7
금융·보험 10,089.2 13.2 금융·보험 827.5 17.9 -28.7
광업 9,756.3 12.7 부동산업 818.4 17.7 98.3
도소매업 6,782.2 8.9 도소매업 693.6 15.0 209.7
부동산업 4,884.6 6.4 전문·과학·기술 188.9 4.1 26.6
건설업 2,591.8 3.4 광업 184.1 4.0 54.9
정보통신업 1,738.8 2.3 건설업 127.9 2.8 -5.5
운수·창고업 1,657.1 2.2 정보통신업 85.4 1.8 -12.0
전기·가스·증기 1,425.6 1.9 숙박·음식점업 72.3 1.6 111.1
숙박·음식점업 1,260.7 1.6 운수·창고업 42.3 0.9 -49.0
전문·과학·기술 1,009.2 1.3 전기·가스·증기 29.3 0.6 -17.7
농림어업 972.8 1.3 교육 서비스업 27.6 0.6 314.4
사업시설·임대 579.8 0.8 농림어업 19.2 0.4 -20.8
예술·스포츠·여가 405.0 0.5 예술·스포츠·여가 17.8 0.4 760.8
교육 서비스업 129.8 0.2 사업시설 임대 16.0 0.3 4.6
수도·하수·폐기물 56.2 0.1 협회·단체·기타 서비스 1.1 0.0 177.9
협회·단체·기타 서비스 43.4 0.1 보건·사회복지 1.0 0.0 -89.0
보건·사회복지 32.1 0.0 수도·하수·폐기물 0.4 0.0 -18.0
행정·국방·사회보장 1.0 0.0 행정·국방·사회보장 0.0 0.0 -38.1
합계 76,572.9 100.0 총합계 4,630.3 100.0 7.6
표 6. 한국의 업종별 對아세안 직접투자 내역
자료: 한국수출입은행(www.koreaexim.go.kr)

 

코로나19 팬데믹 불구 한·아세안 경제교류는 양호, 조속한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이 관건

코로나19 발생으로 전세계 경제가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이나 다행히 2020년 3/4분기까지는 여타 주요 교역 및 투자 대상국과의 교류에 비해서 한국의 對아세안 교역과 투자에 대한 충격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한국의 글로벌 교역 감소에 비해서 對아세안 교역 감소의 폭이 작은 편이고, 한아세안 생산네트워크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전기·전자 부문의 교역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생산네트워크 중심의 한아세안 교역은 가공단계별 수출입 구조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한국의 對아세안 수출의 94%가 아세안 현지의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자본재와 중간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교역 구조 탓에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의 글로벌 수요가 위축될 경우 우리의 對아세안 교역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향후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회복세에 진입하더라도 對아세안 교역의 회복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2020년 한국의 對아세안 투자 또한 여타 주요 투자대상국에 비해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영향을 덜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2020년 상반기 한국의 대세계 투자는 전년동기대비 16.6% 감소한 반면 對아세안 투자는 5.6% 증가한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2017년 11월부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신남방정책으로 인한 對아세안 투자 진출 지원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지난 3여년간 한국의 투자 대상국 2위 자리를 지켜온 EU에 대한 투자는 감소한 반면 對아세안 투자가 증가해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이 2위 투자대상국의 자리를 탈환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글로벌 수요 감소로 인한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전통적인 주요 투자대상국인 베트남에 대한 제조업과 금융 부문에 대한 투자는 감소한 반면, 싱가포르 시장에 대한 유통, 부동산 부문에 대한 투자가 증가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는 한국의 글로벌 교역 투자에 비해서 對아세안 교역 투자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황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도 한·아세안 생산네트워크로 생산되는 제품들의 핵심 수요처인 미주, 유럽 등지의 경제 침체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우리와 아세안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가 미주나 유럽 등지에 비해서 양호한 상황이지만,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임상 실험 중인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과 보급이 조기에 이루어질 경우 2021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도 다시 성장세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저자소개

이재호 전문연구원(jhlee@kiep.go.kr)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 지역경제 연구 담당자로 재직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동남아 경제 지역연구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2006년부터 현직에 있다. 동남아 경제 및 지역연구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대아세안 경제정책 수립을 위한 정책 제언을 수행해왔다.

 


참고문헌

  • 한국무역협회 www.kita.net
  • 한국수출입은행 www.koreaexim.go.kr

코로나19 이후 아세안 경제


박번순(고려대학교)

다양한 과제를 안겨준 코로나19

아세안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를 피하지는 못했다. 통계 전문 웹사이트인 Worldometer에 따르면 2020년 11월 17일 기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확진자는 40만명 이상이고 인도네시아는 사망자도 15,000명 이상이다. 소득수준이 높은 싱가포르 조차도 이주 노동자의 기숙사를 중심으로 감염이 증가하여 5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다.[1] 코로나19의 전염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고 평가되었던 미얀마도 2020년 9월 이후 감염자가 급격히 증가하여 7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다.

코로나19의 감염 정도와 관계없이 아세안 경제는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아세안을 외부와 단절시켰다. 먼저 아세안의 주요 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만연으로 수출이 감소했다. 국경을 봉쇄하면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싱가포르 등의 관광수입이 끊어졌다. 또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등 이주 노동자의 송금이 주요한 외화획득원이었던 국가들도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국내에서도 이동제한 등으로 민간소비나 투자가 위축되었다.

이와 같은 경제활동에 대한 부정적 영향 외에도 코로나19는 아세안에 여러가지 과제를 던져 주었다. 가장 먼저 코로나19는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가 결단력을 갖고 이른 시기에 봉쇄조치를 단행했던 베트남, 태국은 확진자가 적었던 반면 국토가 산재한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경제구조가 전근대적이며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좋지 못했던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 코로나19는 더 많이 확산되었다. 의료제도가 더 잘 갖추어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은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낮았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재정이 건전한 국가일수록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재정 지출 역시 많았다. 정부의 역량이 높을수록 경기침체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는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촉발시킬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는 코로나19는 글로벌화에 대한 아세안 각국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한다. 아세안은 교역, 투자, 인력 이동으로 세계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의 침체는 아세안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화의 위축은 그동안 아세안을 둘러싸고 진행되어 온 흔히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GVC) 혹은 지역 밸류체인(Regional Value Chain: RVC) 이라고 일컬어지는 국제분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현재 수많은 부품이 국가간 교환되는 체제는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업들은 서플라이 체인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인적 교류가 거의 중단되면서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던 국가들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내수규모가 작은 아세안 국가들이 경제의 역동성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대외 의존도을 축소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아세안 경제통합을 향한 노력
출처: https://asean.org/8th-issue-asean-economic-integration-brief-covers-aec-2020-achievements-covid-19-recovery/

셋째는 아세안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한 번 되살려 놓았다. 확진자의 경우 봉쇄여부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 같으나 사망자의 경우는 그 나라의 소득수준뿐만 아니라 의료제도, 소득분배 등 사회발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가 적었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은 빈곤문제가 거의 없었으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은 아직 빈곤문제를 모두 해결하지 못한 국가들이었다. 특히 아세안 국가의 대부분의 고용구조에서 비공식고용(informal employment) 비율이 높은데 이들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되면서 소득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소득격차뿐만 아니라 자산격차가 심한 아세안 국가들에서 코로나19로 자산격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에 비해 경제사회적 격차 해소, 포용적 성장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면서 아세안 각국 정부는 불균형 해소에 대한 압력을 더 받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아세안 경제가 지속가능 성장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가 아세안 경제에 미칠 영향뿐만 아니라 아세안 경제의 구조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가 아세안 경제의 구조변화의 추세를 일시적으로 이탈시킬 요인인지 아니면 추세 자체를 변경시킬 성격을 갖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는 단기적 충격이며 이러한 충격이 장기의 추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따라서 먼저 아세안 경제 구조의 장기추세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아세안 수출경쟁력 하락

아세안의 경제발전 단계나 경제규모는 다르다.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는 소득이 높고 인구가 작은 도시국가이며,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이들은 오랫동안 글로벌화를 통해 성장해 아세안 선발국가로 불린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은 CLMV로 총칭되며 1990년대 중후반에 아세안에 가입한 후발국가들이다. 이 중에서 베트남이 강력한 수출산업을 육성하면서 수출규모에서 다른 아세안 선발국가를 제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을 아세안-5로 부른다. 실제로 이 아세안-5는 2018년 현재 아세안 인구의 88%, GDP의 83%, 그리고 수출입은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아세안 경제의 성격이 매우 이질적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아세안 국가들이 모두 대외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했거나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한 외국인직접투자를 이용하여 수출산업을 육성했고, 베트남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한 외국인투자를 이용하여 수출부문을 육성했다. 캄보디아와 미얀마 역시 의류, 신발 등 경공업 분야의 수출이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 라오스도 내륙국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태국과 베트남을 연계하여 공업단지를 개발하는 등 외부와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위:%)
1985 1995 2000 2005 2010 2015 2018 2019
상품수출/GDP(%) 인도네시아 21.8 22.5 39.6 30.4 20.9 17.5 17.3 15.0
말레이시아 49.1 83.3 104.7 98.7 77.9 66.4 69.0 65.3
필리핀 15.0 23.6 45.5 38.4 24.7 19.2 20.0 18.7
태국 18.3 33.3 54.6 58.6 56.7 53.4 49.9 45.3
베트남 5.0 26.3 46.5 56.3 62.3 83.9 99.4 100.9
공산품수출/상품수출(%) 인도네시아 13.0 50.6 57.1 47.2 37.5 44.7 44.7
말레이시아 27.2 74.7 80.4 74.7 67.2 66.9 69.5
필리핀 26.8 41.5 91.7 89.2 56.8 84.8 83.8
태국 38.1 73.1 75.4 76.8 75.3 77.8 77.5
베트남 42.7 50.2 64.7 84.4
표1. 아세안-5의 상품 수출 및 공산품 수출 비율
자료: 세계은행

 

수출이 경제성장을 이끌면서 아세안 각국의 고도성장기에는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비율, 즉 수출의존도가 증가했다. <표 1>은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의존도와 상품 수출에서 차지하는 공산품 비율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외개방도가 높아지면 수출의존도는 상승하고, 공업화가 진행되면 공산품 수출비율도 증가한다. 수출의존도는 2019년 기준으로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이 상대적으로 높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낮다. 공산품 수출 비율은 2018년 기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4국 모두 상당히 높다. 이 점에서 필리핀은 상대적으로 자원이 빈약한 국가임을 알 수 있고, 인도네시아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비율의 변화에서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모두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후반까지 빠르게 공업화를 달성했고, 해외시장을 이용해서 성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를 지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출의존도가 모두 감소했고 공산품 수출비율도 태국을 제외하면 모두 감소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세안 주요국의 경제에서 수출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공산품 수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비해 공업화를 늦게 시작한 베트남은 2019년까지 두개의 비율이 모두 증가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가 왜 아세안 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이 두개 비율의 변화가 잘 보여준다.

수출의존도 감소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세안의 수출경쟁력 하락이다. 아세안의 2019년 현재 HS 4단위 기준 최대 수출품목은 1,600억 달러를 수출한 전자 IC칩이고, 2위 품목은 784억 달러를 수출한 무선전화기이다. 3위는 석유 및 역청유(원유제외)로 700억 달러를 수출했고, 4위는 컴퓨터 관련제품으로 349억 달러를 수출했다. 수입에서는 전자 IC칩이 수출과 같이 최대 품목으로 1,497억 달러 수입했고, 2위 수출상품인 무선전화기도 부품을 중심으로 478억 달러를 수입했다. 부품을 수입하여 가공한 후 이를 완제품으로 조립한 후 수출한다. 전자산업이 중심 교역품이지만 수출상품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중간재를 수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외화가득 효과는 낮다. 이에 비해 실제 외화가득을 기준으로 보면 의류, 무선전화기, 신발, 팜오일 등이 더 중요한 부문이었다 (박번순 2019, p. 129). 이처럼 아세안은 국제분업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부문과 노동집약적 생산과정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가격결정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미성숙 탈공업화 현상 발생

아세안이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도 수출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중국은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빠른 속도로 생산능력을 확충했고 기술수준을 제고했다. 중국 제품은 아세안 상품보다 더 높은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갖고 아세안 상품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아세안의 수출경쟁력 하락은 아세안 상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상품의 경쟁력이 더 빠르게 제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서만이 아니라 아세안 시장에서도 중국 상품은 아세안 상품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부품에서 최종 조립제품까지 산업 전분야에 걸쳐 생산을 하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생산과정에 상대적으로 특화하고 있는 아세안 상품보다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등 전자산업의 소재와 중간재 부문의 기술을 개선하고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아세안은 오랫동안 중국에 전자 IC칩을 공급했는데 2011년에도 220억 달러를 수출했고,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70억 달러였으나 2019년에는 수출은 280억 달러로 약간 증가한데 비해 중국에서의 수입은 154억 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이처럼 중국과의 교역에서도 아세안의 경쟁우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대중국 수입은 2019년 아세안 전체 수입의 21.9%로서 아세안 역내 21.5%를 상회하고 있다. 대중국 수입비중이 2008년 11.8%이었고 아세안 역내수입비중이 23.9%이었다는 점에서 10여년 사이에 전개된 수입구조가 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아세안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미 30여년 가까이 아세안자유무역지대를 꾸려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세안 경제가 아세안 공동체가 아닌 아세안-중국 공동체로 전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그림 1> 참조).

그림1. 아세안의 중국, 한국, 아세안 역내 수입 구조 추이
자료: 2018년까지는 ASEAN Statistics Yearbook 각년도, 2019년 통계는 ASEAN Statistics DB에서 추출 필자 작성(2020.11.10)

경제발전과정에서 한 국민경제에서 성장을 이끄는 부문은 농업 중심의 1차산업에서, 제조업 중심의 2차 산업,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서비스 산업인 3차 산업으로 이동해 간다. 공급측면에서 보면 생산요소인 노동과 자본이 생산성이 더 높은 부문으로 이전하면서 경제전체의 효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수요측면에서는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증가하면서 소비의 중심이 농산품에서 소득탄력성이 높은 공산품으로, 그리고 다시 서비스로 수요로 고도화된다. 생산과 고용에서 제조업의 비중 감소를 탈공업화(deindustrialization)라고 하며 이는 경제성장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제조업의 높은 생산성 상승률 때문에 먼저 고용의 제조업 비중이 하락하게 되고, 경제가 성숙된다면 서비스에 대한 소득탄력성이 공산품의 소득탄력성보다 더 크기 때문에 제조업의 생산 비중도 감소하게 된다. 즉 고용에서 제조업 비중이 먼저 감소하고 생산에서의 비중 감소가 뒤 따르게 되는 것이다.

아세안 주요국에서도 고도성장기에는 제조업 비중이 증가했지만 2000년 이후에는 비중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제조업 고용비중은 감소했지만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에서는 증가했다. 이에 비해 생산비중은 베트남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최근 분명한 감소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고용비중이 증가한 인도네시아의 경우 생산비중이 대폭 하락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상승률이 다른 산업에 비해 오히려 더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국의 경우도 2010년 이후 생산비중이 현저하게 감소한 대신 고용비중은 증가하고 있는데 역시 인도네시아 같이 노동생산성 상승률이 다른 산업에 비해 더 낮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구조에 더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에 비해 고용감소폭이 크지 않지만 감소하고 있고 제조업 생산비중은 별로 감소하고 않았다. 이 점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건강한 제조업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표 2>참조).

 (단위;%)
생산 고용
2000 2005 2010 2015 2019 2000 2005 2010 2015 2019
인도네시아 27.7 27.4 22.6 21.7 20.5 13.0 12.7 12.8 13.5 15.0
말레이시아 29.9 27.9 23.7 22.6 21.7 23.5 19.8 17.7 16.5 17.8
필리핀 24.5 24.1 21.4 19.9 18.5 10.0 9.5 8.4 8.3 8.5
태국 28.4 29.6 30.9 27.6 27.1 14.9 15.8 14.1 16.8 16.3
베트남 NA NA 14.8 15.2 18.3 NA 11.7 13.5 15.3 20.7
싱가포르 27.7 28.3 22.0 19.2 20.9 19.5 16.7 14.8 11.1 9.6
한국 29.3 28.4 30.2 29.0 27.8 20.3 18.1 17.0 17.6 16.3
표2. 아세안 주요국과 한국의 제조업 비중 추이
자료: ADB(2020), ADB Key Indicators 2020. 각국편 통계에서 필자 계산(2020.11.10)

 

로드릭(2016)은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탈공업화는 기술진보의 결과이지만,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가 성숙하기 전에 제조업의 비중이 감소하는 미성숙탈공업화(Premature deindustrialization)는 무역과 글로벌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즉 경쟁력이 낮은 국가가 개방을 할 때 선진국에서 수입되는 공산품과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성숙탈공업화가 나타나고 이는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2]. 이렇게 본다면 아세안 주요국에서 미성숙탈공업화는 중국으로부터의 급격한 수입 증가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미성숙 탈공업화는 중진국 함정이라는 또 다른 경제적 결과를 낳는다.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세안의 주요국가 중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말레이시아의 1인당 GNI는 2019년 11,200달러로 고소득국 기준인 1인당 GNI 12,536달러에 미치지 못해 중상위 소득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1인당 GNI는 2001년 3,550달러에서 2010년 8,260달러로 약 2.3배 증가했으나 2019년에는 11,200달러로 1.4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중진국 함정은 일반적으로 미국소득대비 20~40%의 소득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거나 고소득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장기간 유지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말레이시아의 경우 1996년에도 미국 소득의 15%이었으나 2019년에는 17%로 증가하는데 그쳤다. 말레이시아를 뒤 따르고 있는 태국, 인도네시아 등도 장기간 중진국 수준에서 머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로 단기적 영향이 더 커

코로나19로 인한 교역과 투자의 둔화가 기업 및 금융 부문의 부실화로 연결되지 않도록 아세안 각국은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태국은 가장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늘렸는데 소득지원, 대출 및 보증 등 GDP의 12%를 지원했고, 말레이시아도 6% 이상을 사용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도 GDP의 4% 가까운 재정지원을 했다. 재정 지원의 상당부분은 개인에 대한 지원이었다. 또한 각국 정부는 정책금리를 인하했으며, 지불준비율을 낮추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완화적 통화정책의  일환이었다(World Bank 2020, 12-13).

(단위:%)
실현 성장률 세계은행(10월전망) ADB(9월전망)
2018 2019 2020 2021 2020 2021
인도네시아 5.2 5.0 -1.6 4.4 -1.0 5.3
말레이시아 4.7 4.3 -4.9 6.3 -5.0 6.5
필리핀 6.3 6.0 -6.9 5.3 -7.3 6.5
태국 4.1 2.4 -8.3 4.9 -8.0 4.5
싱가포르 3.4 0.7 -6.2 4.5
베트남 7.1 7.0 2.8 6.8 1.8 6.3
캄보디아 7.5 7.1 -2.0 4.3 -4.0 5.9
라오스 6.3 4.7 -0.6 -2.4 -2.5 4.5
미얀마 6.4 6.8 0.5 5.9 1.8 6.0
표3. 아세안 경제전망
자료: World Bank(2020). ADB(2020)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생산 활동은 축소되고 실업은 증가하면서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전망에 의하면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의 2020년 GDP가 2019년 대비 축소될 전망이다. 부(負)의 성장률을 벗어날 국가로는 미얀마와 베트남 정도이다. 태국과 필리핀이 성장률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고, 말레이시아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태국과 필리핀은 관광수입의 감소, 이주노동자의 송금감소, 국내 소비감소 등으로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을 전망이다. 이에 비해 수출의존도가 낮고 관광수입도 적은 인도네시아는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에도 불구하고 성장률 감소폭은 크지 않을 것이다. 아세안 모든 국가가 2021년에는 정(正)의 성장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2020년에 타격이 컸던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기저효과로 인해 성장률이 높아질 전망이지만 태국, 필리핀 등의 경제규모는 2021년에도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코로나19는 경제사회적 격차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의 경우 제조업의 고용창출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아 비공식부문(informal sector)의 고용이 많다. 코로나19는 이러한 비공식 부문 종사자를 한계화시키면서 양극화를 낳게 되고, 양극화는 정치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미 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개혁 요구와 같이 경제사회적 격차에 대한 해소 요구가 점증하게 되고 이는 다시 경제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중장기적으로 아세안 경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 대답은 코로나19가 아세안 경제구조의 근본적 성격을 얼마나 변화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또 이는 코로나19가 얼마나 맹위를 떨칠 것인가와도 관계가 있다. 코로나19가 적어도 2021년 상반기 정도에 종식된다면 아세안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고 단기적 충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즉 코로나19로 빈부격차의 확대, 교육의 질적 저하, 정부의 재정 건전성 약화 등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하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킬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아세안 경제의 중장기적 전망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아세안 경제의 장기적 구조변화에 아세안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아세안은 1980년대 이래 3번의 중요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1980년대 초중반의 글로벌 경기침체와 자원가격 하락,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외환위기, 그리고 2008~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것들이다. 이 3번의 경제위기에서 아세안 주요국들은 부(負)의 성장률을 경험했다. 1980년대 위기는 제 2차 석유위기 이후 세계경기 침체에 영향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서방 선진국의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와 함께 외국인직접투자가 아세안으로 급격히 유입되면서 해결되었다. 아세안 주요국도 기존의 수입대체형 공업화에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으로 성장전략을 전환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다국적기업 기반으로 세계의 주요한 제조업 수출기지로 전환되었다. 아세안 경제는 플라자합의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정도로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 후반의 위기는 10여년간의 고도성장 결과 내부에서 쌓인 문제가 터진 것이었다. 위기의 충격이나 정도는 심했다. 아세안의 통화가치가 폭락했고, 인플레이션과 금리는 대폭 상승했다. 기업의 도산은 급증했고 금융기관도 무너졌다. 경제성장률도 1999년 인도네시아의 경우 -13%,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7% 정도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IMF의 지원을 받았고, 기업과 금융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다행하게도 위기가 아시아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고, 세계경제는 호조를 보이고 있었다. 위기를 겪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외환 및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면서 수출을 확대할 수 있었고,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대중국 수출 역시 급증하여 회복에 도움을 받았다. 물론 아시아 외환위기는 위기에 전염된 아세안의 성장잠재력 약화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적 차원의 위기였고, 이 때문에 아세안 주요 수출국들은 수출이 감소하면서 위기를 겪었다. 국제적인 수입 수요의 침체로 2009년 아세안 전체의 수출은 17% 이상 감소했는데, 대외의존도가 높았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수출은 20% 이상 감소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2019년 부(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도 2010년 29% 이상 수출이 증가하면서 완화되었다. 특히 대중국 수출이 거의 40% 가까이 증가하면서 수출증가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제조업의 회복이 중장기 성장의 관건

이처럼 아세안 경제의 궤적을 돌아보면 충격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와는 관계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원인은 수출의 확대였다. 따라서 아세안의 위기 탈출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수출산업을 창출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아세안 위기는 침체의 규모에서는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지만 성격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의 수출시장의 문제와 유사하다. 즉 외환위기와 유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지만 당시와 같이 기업과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세안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것인가는 수출 상황에 달려 있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아세안의 수출증가율은 지난 20여 년 동안 둔화되었고, 수출의존도는 하락했다는 점이다. 아세안 개별 국가의 시장 규모가 내수 주도의 성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수출의존도 하락은 성장률 둔화의 원인이 된다. 결국 아세안이 코로나19 이후 경제를 재건하고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출의 증가, 즉 제조업의 재건이 필요하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성숙 탈공업화의 진행을 막고 아세안 경제를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세안은 미래의 성장동력 부문을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4차 산업혁명에 편승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산업이 아세안 경제를 선도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디지털산업은 디지털 인프라의 구축이라는 필요조건이 있다. CLMV 국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의 IT 인프라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사회적 혁신성, 개방성 등이 필요하다. 정치사회적으로 이러한 조건을 갖춘 국가는 많지 않다. 관광, 금융, 의료 등 서비스 산업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육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부르나이,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제외하면 아세안은 인구가 3천만명 이상이고 인도네시아외에도 필리핀 베트남의 인구도 1억명에 이른다. 이들이 서비스 산업으로 의존한 성장을 지속할 수는 없다. 결국 아세안 경제 회복을 위한 중장기적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수출형 제조업을 재건하여 미성숙탈공업화를 방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출형 제조업을 회복시킬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중국의 제조업과 경쟁에서 비교우위 분야를 발굴해야 한다. 거대한 내수시장 규모를 가진 중국은 제조업 전분야에 진출하고 있으며,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중국의 공산품은 세계시장은 물론 아세안 역내 시장에서도 아세안 상품을 몰아내고 있다. 아세안의 제조업은 중국의 제조업에 비해 다국적기업 주도, 소재부품 산업의 취약, 기술 엔지니어링 인력의 부족, 내수시장의 협소라는 여러 문제를 갖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투자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입지를 이동한다. 중국의 생산비용 상승,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한 통상마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다국적기업들이 아세안으로 생산설비를 이동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일본, 한국, 대만 기업들은 생산이나 부품의 조달 등에서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고 중국으로부터의 기업의 이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이란 거대한 시장,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중국의 부품 소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입지 이전이 얼마나 대규모로 이루어 질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이전 기업의 주요 목적지는 아세안이 될 수 있다. 아세안이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2021년 아세안 투자기회
출처: https://asean.org/asean-launches-investment-opportunities-asean-2021-e-brochure/

장기적으로 혁신적인 아세안 자체의 기업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전자산업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고, 최근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 수출산업으로 등장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 역시 다국적기업이 생산자이다. 이 때문에 아세안이 이들 산업에서 문제를 발견한다고 해도 정부의 의지대로 산업구조를 변경하기가 어렵다. 다국적기업의 의사결정에 따라 이들의 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우에도 상황은 유사하다. 캄보디아는 봉제품의 수출이 2019년 107억 달러로 총수출 148억 달러의 70% 이상인데, 대부분 중국이나 동아시아 기업들이 저임 노동력만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 아세안이 전자, 자동차 등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산업에서 세계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세안 기업 중에서 특히 농가공(agribusiness) 산업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적어도 세계 산업 중에서 선진국 기업이 과점화 하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아세안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섬유, 식품 분야 등에서 자국인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아세안은 또한 현지에 진출한 다국적 조립기업의 생산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는 지원산업(supporting industry)으로서 부품 및 중간재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일본의 스가총리가 부임 후 최초로 방문한 지역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였다. 일본에게 아세안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스가총리가 아세안에서 한 약속 중에서는 일본기업들이 아세안에서 서플라이 체인을 다각화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3] 아세안이 가장 필요한 부문을 이해한 것이다.

아세안의 제조업 분야 기술수준 제고가 필요하다. 다국적기업이 주요 조립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아세안 당국 주도로 기술수준 제고가 쉽지 않다. 소재부품의 경우도 다국적기업은 모국에서 협력업체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아세안의 중소기업 역량도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중소기업이 다국적기업의 생산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을 개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기술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아세안의 교육수준, 특히 이공계 기술 교육을 강화하여야 한다. 이 점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교육기회의 축소나 격차에 대해 아세안 정부는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경제통합의 강화도 아세안의 제조업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세안의 전체 시장 규모는 상당하다. 그러나 아세안의 지속적인 웅변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하나의 시장으로서 작동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세안 역내의 수입보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아세안의 제조업체들이 아세안에서 비교우위 원리에 입각하여 보다 전문화를 강화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고 그 자체로 경쟁력이 증가할 수 있다.  아세안의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세안 내의 발전격차를 해소하면서 통합과정에 아세안 후발국의 자발적인 참여를 장려하고 물적, 제도적 연계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소개

박번순 교수(pbs21@korea.ac.kr)는
고려대학교 경제통계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쳐 현직에 있다. 동남아경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통합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있다. 동남아 및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대해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였다.

 


[1]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2020.11.18 검색)

[2] 로드릭(Ridrik)은 그의 연구에서 아시아지역은 미성숙탈공업화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그가 연구에 포함한 아시아는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국가외에 한국, 대만, 홍콩, 일본 등을 포함하고 있고 관찰기간도 길어야 2012년까지이다.

[3] 일본의 스가총리는 2020년 10월 하순 베트남을 방문하여 일본-베트남 대학교에서 연설에서  다양한 협력의 약속을 하는 가운데 일본기업들이 아세안으로 서플라이 체인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바 일본은 서플라이 체인의 복원을 증대시키기 위해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 박번순. 2019. 『아세안의 시간』, 지식의 날개.
  • ADB. 2020. Key Indicators for Asia and the Pacific 2020.
  • ADB. 2020. Asian Development Outlook 2020 Update Wellness in Worrying Times.
  • ASEAN Statistics Yearbook. 다수호
  • Prime Minister of Japan. 2020. “Building together the future of Indo-Pacific: Speech by the Prime Minister at the Vietnam-Japan University October 19, 2020”
  • Rodrik, D. 2016. “Premature Deindustrialization”. Journal of Economic Growth, 21(1), 1–33.
  • World Bank. 2020. East Asia and Pacific Economic Update October 2020: From Containment to Recovery.

유사한 역사를 경험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왜 다양한 정치체제를 갖게 된 것일까?


동남아시아 국가는 태국을 제외하고 모두 서구 열강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에서 유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는 민주주의, 준민주주의, 권위주의 등 다양한 정치체제로 발전하였다. 동남아시아 국가가 과거 대부분 군주제나 왕정을 토대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개는 매우 흥미롭다. 이 글에서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정치체제가 이렇게 다양하게 발전한 이유를 살펴보며, 정치체제별 국가의 특징과 민주주의 전환의 조건을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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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혁 (고려대학교)

동남아시아에는 필리핀,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11개 나라가 있다. 이 나라들은 태국을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2차 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등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독립 후에는 민주주의부터 권위주의까지 다양한 정치체제를 수립하였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티모르는 야당이 참여하는 경쟁적인 선거로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베트남과 라오스, 브루나이는 야당이 허용되지 않는 권위주의 국가이다. 한편 싱가포르와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에서는 야당도 허용되고 선거도 실시되지만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매우 낮은데, 이들은 완전히 민주주의도 아니고 권위주의라 하기도 어려워서 준민주주의(semi-democracy)라 불린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과거에는 거의 모두 군주제나 왕정을 기본으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였지만 캄보디아와 미얀마 등은 준민주주의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은 민주주의로 전환하였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역사를 경험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이처럼 다양한 정치체제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떤 나라는 여전히 권위주의로 남아있는데, 어떤 나라는 준민주주의로, 어떤 나라는 민주주의로 전환하였을까? 또한 태국은 군부가 통치하는 권위주의(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민주주의에서 다시 군사독재로 전환을 여러 차례 반복해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경제정치 둘러보기

앞서 제기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나라들의 역사, 경제, 정치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식민지배를 받았고,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에서 한국과도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할 때까지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였으며,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미얀마는 영국 식민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가장 최근에 독립한 동티모르는 포르투갈 식민지였는데, 1975년 독립을 선언하고 포르투갈이 떠난 후 인도네시아 영토로 강제 편입되었다가 2002년 완전히 독립하였다.

동남아시아 식민지배의 역사

이러한 식민지배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나라들에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독립 이후 정치체제 수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경우 미국이 식민통치를 하는 동안 의회와 선거 등 미국의 정치제도들이 이식되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미국식 상하원 선거가 1916년에 실시되었고, 1935년부터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처럼 일찍 미국식 민주주의를 경험한 필리핀에서는 독립 이후에도 대통령제와 상하원 양원제에 기초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영국이 지배한 미얀마의 경우에도 영국의 정치제도들이 이식되어 1922년부터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고, 독립 후에도 의원내각제에 기초한 영국식 민주주의 모델에 입각해 헌법을 만들었다. 네덜란드 식민통치 기간 중 네덜란드 정치제도를 경험한 인도네시아 역시 독립 이후 비례대표제와 의원내각제 등 네덜란드식 모델에 기초해 정치체제를 설계하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역사, 경제, 정치체제
* 구매력 평가, 2011년 국제달러 고정가격
(자료출처: The World Bank Data)

한편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지배한 프랑스는 식민지에 자신들의 정치제도를 이식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국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독립을 이루었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수립한 나라는 아직 없다.1)

그렇다면 과연 식민지 시기 민주주의 정치제도들이 이식되었던 국가들에서는 독립 후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그러한 경험이 없었던 국가들에서는 민주주의 가능성이 낮은 것일까? 먼저 오늘날 민주주의로 분류되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가운데 식민지 시기 서구식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던 나라는 없었다. 이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 시기 서구식 의회와 선거를 경험했던 것이다. 반면 오늘날 권위주의로 분류되는 베트남, 라오스, 브루나이는 모두 식민지 시기 서구식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다. 베트남 남부 사이공(오늘날 호치민시)을 중심으로 하는 코친차이나(Cochinchine) 지역에 한하여 의회 선거가 제한적으로 실시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식민지 기간 중 서구식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들은 모두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수립하였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권위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동남아시아 정치체제에서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 상당히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가 가능한 완전한 민주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야당이 허용되지 않는 권위주의도 아닌 준민주주의 국가들을 보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은 모두 오늘날 현재 야당이 허용되지만 선거를 통해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매우 낮은 준민주주의 국가들이다. 이들은 모두 독립 이전에 서구식 의회 선거를 경험하였다. 태국은 식민 지배를 받지는 않았지만 1932년 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여 1933년부터 의회 선거를 실시해왔다. 이처럼 오랜 서구식 민주주의 경험을 가진 나라들이지만 아직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 시기부터 오랜 민주주의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는 민주주의를 이룩했는데 싱가포르나 태국과 같은 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 역사적 경험의 차이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원인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로 전환과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인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에 따르면 경제적 이유가 중요하다.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민주주의로 전환 가능성도 높아지고 수립된 민주주의의 안정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Przeworski et al., 2000).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가 성장할수록 물질적 혜택보다 자유나 정의, 인권 등 비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부유한 나라에서 민주주의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근대화 이론은 설명력이 높지 않다. 권위주의 국가들에 비해 민주주의 국가들이 더 부유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1개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1인당 국민총생산(GDP) 중위 국가는 필리핀($7,943)이다. 필리핀보다 1인당 GDP가 큰 나라는 부유한 편이고 그보다 작은 나라는 가난한 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민주주의 국가들 중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부유한 편이나 동티모르는 가난한 편이다. 준민주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싱가포르와 태국은 부유한 편이나 캄보디아와 미얀마는 가난한 편이다. 권위주의 국가들 중 브루나이는 부유한 편이고 베트남과 라오스는 가난한 편이다. 따라서 부유한 나라일수록 민주주의 가능성이 높다는 근대화 이론으로는 동남아시아 사례들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으로 체제 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비슷한 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들 사이의 공통점을 살펴본 후 체제 간 차이를 비교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들부터 살펴보겠다.

 

민주주의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동티모르

동남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민주주의로 전환한 나라는 필리핀이다. 식민지의 유산으로 대통령제와 상하원 양원제에 기초한 미국식 민주주의를 물려받은 필리핀은 독립 이후 민주주의를 유지했으나 1972년 마르코스(Ferdinand Marcos)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필리핀 국민들은 1986년 ‘인민의 힘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이라 불리는 마르코스 독재에 반대하는 거대한 민주화 운동을 일으켜 마르코스를 퇴진시키고 민주주의를 복원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선거를 통해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마르코스 이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은 대통령 단임제가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마르코스 이전에는 미국과 같이 대통령 임기 4년에 한번 연임이 가능하여 최대 8년까지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선에 성공한 마르코스가 3선 개헌을 시도하다가 좌절되자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던 경험 때문에 1986년 마르코스 퇴진 후 민주 헌법을 만들 때 대통령 임기 6년 단임제를 채택하였다. 그로부터 1년 뒤 민주화된 한국에서도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가 채택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의회와 설치되어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고, 독립 후에는 1955년에 네덜란드식 비례대표제에 기초한 총선이 실시되었다. 정당별 득표가 의석으로 비례적으로 전환되는 비례대표제의 특성 상 적은 득표를 한 작은 정당들도 국회 의석을 얻을 수 있어서 무려 28개가 넘는 정당들이 의석을 차지했고, 독립운동 지도자 수카르노(Sukarno) 대통령의 정당(여당)인 인도네시아국민당(Partai Nasional Indonesia)은 불과 22.2%의 의석을 차지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원하는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힘들자 수카르노는 1960년 국회를 해산하고 의원 절반을 자신이 임명하는 새로운 국회를 설치했다. 1965년에는 수하르토(Suharto)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고 수카르노는 가택연금 하에서 1970년 사망하였다. 수하르토는 1998년 민주화 운동으로 퇴진할 때까지 무려 33년 간 권력을 유지했다. 1999년에 실시된 민주적인 총선에서 다시 21개에 이르는 많은 정당들이 의석을 차지하였다. 수하르토 이전과 달라진 것은 국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의원내각제 방식에서 벗어나서 2004년부터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제가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영국 식민지 시기인 1955년부터 총선이 실시되었고, 의원내각제에 기초한 영국식 정치체제가 도입되었다. 그런데 독립 이후 선거에서 통일말레이국민조직(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 약칭 UMNO)이 이끄는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약칭 BN)이 늘 승리하여 집권하고, 탄압으로 인해 야당이 집권할 현실적인 가능성이 거의 없는 준민주주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그런데 2018년 총선에서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초로 야당(야권 연합)이 승리를 거두어 정권이 교체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야권 연합의 지도자이자 새로 총리가 된 마하티르(Mahathir bin Mohamad)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총리를 했던 과거 UMNO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이다. 2003년 퇴임 이후 정계를 은퇴했던 마하티르는 2015년 나집(Najib Razak) 총리가 거대한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자 나집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편에 섰고, 2018년 총선에서 야권 연합의 대표가 되었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에서는 1973년에 최초로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고,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1975년 직후 인도네시아에 강제 합병되면서 선거는 중단되었다.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위한 투쟁 끝에 2002년 독립을 하게 되었고, 2001년 제헌의회 선거부터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이룩한 이 나라들의 명백한 공통점은 독립 이전부터 의회가 설치되고 선거가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립 이후에도 국민이 선거에서 선택한 대표(국회의원)가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규범(norm)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는 민주주의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독재자 마르코스와 수하르토 역시 집권 기간 비록 경쟁적인 민주 선거는 아니지만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해 왔다. 말레이시아 역시 UMNO 집권 기간 동안 야당에게 불리한 비민주적인 선거였지만 지속적으로 총선을 실시해 왔고, 2018년 총선에서 드디어 불리함을 딛고 야권이 승리하여 정권을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서구식 민주주의가 이식되었던 역사적 경험이 민주주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는데(Hariri, 2012),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도 그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준민주주의싱가포르캄보디아태국미얀마

싱가포르는 독립 이전부터 영국식 민주주의 정치제도들이 이식되어 의회가 설치되고 총선이 실시되었다. 싱가포르의 국부라 불리는 리콴유(Lee Kuan Yew)도 독립 전인 1959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었다. 그 후에도 중단 없이 총선은 실시되었으나 리콴유의 정당인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 약칭 PAP)이 오늘날까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여 집권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UMNO는 2018년 총선에서 패하여 결국 권력을 내주었지만, PAP는 아직 그러한 경험이 없는 것이다. PAP는 가장 최근인 2020년 7월 총선에서도 61.2%의 득표로 89.2%의 국회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언론을 통제하여 여당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당블록투표제(party block vote)라는 여당에게 유리한 극단적인 승자독식형 선거제도를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집단대표선거구(group representation constituency, 약칭 GRC)라 불리는 정당블록투표제에서는 각 정당이 2명 이상을 선출하는 선거구(중대선거구)마다 후보 명부를 제출하고 유권자는 정당에게 투표하는데, 1표라도 많이 득표한 정당이 해당 선거구에서 선출될 국회의원 전원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3인을 선출하는 선거구에서 PAP가 야당보다 1표 더 많이 획득했다면 PAP 후보 3인 모두 당선된다. 따라서 60% 정도의 득표로 국회 의석을 90% 가까이 획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Lee Hsien Loong)이 이끌고 있는 PAP를 위협할만한 야당이 없는 상황에서 PAP의 집권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에서는 선거가 실시되지 않았고, 총선은 프랑스의 영향력이 약화된 1946년부터 실시되었다. 베트남전쟁이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을 때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 루즈라 불리는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인구의 1/4 정도를 학살하였다. 1979년 베트남이 개입하여 크메르 루즈가 실권한 이후에는 친베트남 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정부와 반정부 세력 간의 내전이 시작되어 선거는 중단되었고, UN이 개입하여 내전이 종식된 이후 1993년부터 선거가 재개되었다. 이 선거에서 훈센(Hun Sen)이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n People’s Party, 약칭 CPP)은 2위를 차지하여 훈센은 제2총리로 내각에 참여하는데, 1998년 총선에서는 CPP가 단독으로 과반의 의석을 획득하여 훈센은 총리가 되었다. 이후 오늘날까지 CPP는 총선에서 계속 승리하여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18년 총선을 앞두고는 위협이 되던 제1야당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 National Rescue Party, 약칭 CNRP)을 해산시켰고, CNRP 없이 치러진 총선에서 CPP는 국회 125석 모두를 차지하였다.

태국은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1932년 혁명 이듬해부터 총선을 실시해왔다. 그런데 2차 대전 이후 군사독재가 지속되었고, 1973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민주화 운동으로 1975년 최초의 민주 선거가 실시되어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1976년 쿠데타로 인하여 다시 군사독재로 돌아갔다. 1979년 다시 민주주의가 복원되었지만 1991년 쿠데타로 민주주의는 중단되었고, 이듬해 복원된 민주주의는 2006년 쿠데타로 중단되었다. 2007년 민주주의는 다시 복원됐지만 2014년 쿠데타로 다시 군부가 집권하였다. 태국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민주주의의 안정성이 상당히 낮은 것이다. 2019년에는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군부가 만든 2017년 헌법에 따라 상원 250석을 장악한 군부가 하원 500석 중 116석을 획득하여 손쉽게 상하원 다수 연합을 형성함으로써 권력 유지에 성공하였다. 250명 상원의원을 군부가 임명하도록 한 2017년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반군부 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헌법 개정을 위해선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개정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영국 식민지 시기부터 선거가 실시되었던 미얀마에서도 1962년 쿠데타가 발생하여 민주주의가 중단되었다. 그해 군사독재가 들어선 이후 2015년까지 민주 선거는 실시되지 않았다. 1988년 민주화 운동 이후 실시된 1990년 총선에서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야당이 압승하였으나 군부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그런데 2015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였지만, 군부가 만든 2008년 헌법 때문에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지는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더 중요한 것은 2008년 헌법에 따라 군부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개입하여 민주주의를 중단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미얀마 역시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야당이 허용되고 선거가 실시되지만 야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준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의회와 선거의 역사는 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라에 따라 다르다. 싱가포르와 캄보디아에서는 집권 여당의 역사적 정통성이 크기 때문에 권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영향력이 막강한 군부 때문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싱가포르의 PAP나 캄보디아의 CPP는 모두 나라를 세운 주역들이다. 국부 리콴유가 만든 PAP는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싱가포르를 이끌어 온 정당이고, CPP는 베트남전쟁과 크메르 루즈의 학살, 베트남 개입 이후 일어난 내전으로 인한 오랜 혼란을 종식시키고 나라를 다시 세우는 정당이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상당히 높은 편이고, 역사적 정통성에 의한 이러한 높은 지지가 이들 체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신재혁, 2019).

한편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오랜 기간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태국에서는 1932년 혁명부터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왔고, 미얀마에서는 영국에 대항한 독립전쟁 시기부터 군부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역시 독립전쟁을 이끌던 장군이었다. 태국에서는 1975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때마다 군부가 다시 개입하여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2001년 총리가 된 탁신(Thaksin Shinawatra) 지지파(레드 셔츠)와 반대파(옐로 셔츠) 간의 극심한 갈등이 정치적으로 해결되기 어렵게 되자, 군부는 2006년과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혼란을 물리적으로 종결시켰다. 미얀마에서도 1962년 정치적 혼란을 군부가 개입하여 해결하면서 군사독재가 시작됐다. 1988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직면하여 민주 선거를 약속했지만, 1990년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고 인권 침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야당을 탄압하였다. 이후 2008년 헌법을 만들어 군부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언제든 개입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 2015년 총선을 실시했다. 막강한 군부는 민선 정부가 군부를 통제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별 주요 정치인 
자료: Wikipedia

 

권위주의베트남라오스브루나이

베트남과 라오스는 매우 유사한 정치체제를 갖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선거는 실시하지만 야당을 허용하지 않는 일당독재가 이루어지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공산당(Communist Party of Vietnam, 약칭 CPV)이, 라오스에서는 라오인민혁명당(Lao People’s Revolutionary Party, 약칭 LPRP)이 집권 여당이자 유일하게 인정되는 정당이다. 두 나라 간에 차이가 있다면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Ho Chi Minh)이 만든 CPV는 독립 이후 나라를 이끌어 온 정당이나, LPRP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1975년부터 집권하여 나라를 통치해 왔다. 그 전까지는 라오스에서도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총선이 실시되었다. 라오스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 야당이 허용되지 않는 일당체제가 수립된 것이다.

브루나이는 이슬람 왕 술탄이 다스리는 왕국이다. 브루나이 술탄의 계보는 1368년부터 시작되었고, 1967년 즉위한 현재 술탄 하사날 볼키아(Hassanal Bolkiah)는 29대 술탄이다. 브루나이에서 오늘날까지도 국왕이 다스리는 군주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자원의 저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원의 저주론에 따르면 정치 지도자가 소유한 자원이 많고 부유한 경우 국민들이나 다른 사회 엘리트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들과 권력을 공유할 이유가 없고 민주화 요구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신재혁, 2019: 172-173). 브루나이는 산유국으로 2018년 1인당 GDP가 7만 달러가 넘는 부유한 나라이다. 브루나이 술탄은 유전이라는 막대한 자원을 소유한 매우 부유한 지도자이다. 따라서 다른 사회 엘리트의 도움이 필요 없기 때문에 그들과 권력을 나눌 이유가 없어서 의회도 설치하지 않고 선거도 실시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더라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지금까지 동남아시아의 민주주의, 준민주주의, 권위주의 국가들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모두 식민지 시기에 서구식 정치제도들이 이식되어 오랜 민주주의 경험이 있었다는 특징이 있다(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준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오랜 민주주의 경험을 갖고 있지만, 나라를 세운 주역이라는 강한 역사적 정통성 때문에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거나(싱가포르, 캄보디아), 비대해진 군부의 강한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완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태국, 미얀마). 권위주의 국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 경험이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여 일당체제를 수립하였거나(베트남, 라오스), 풍부한 자원을 소유한 국왕이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브루나이).

결국 권위주의나 준민주주의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오랜 민주주의 경험을 토대로 군부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야당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당이 강력해서 야당이 성장하기 어렵거나,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강력한 군부를 통제하기 어렵거나, 정치 지도자가 부유하여 다른 사람들과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것이다.

 

저자 소개

신재혁(shinj@korea.ac.kr)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이다. 2011년 UCL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아세아연구󰡕 편집위원장과 고려대학교 아세안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전공분야는 비교정치이고,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선거, 정당, 국회, 정치·경제발전에 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The Choice of Candidate-Centered Electoral Systems in New Democracies.”(Party Politics 2017)와 “싱가포르는 왜 민주화되지 않는가? 비교연구 방법을 활용한 지역연구”(󰡔동남아시아연구󰡕 2019) 등이 있다.

 


1) 규칙의 집합이 제도이고, 제도의 집합이 체제이다. 예를 들어, 선거를 규율하는 규칙들이 모여 선거제도를 구성하고, 선거제도와 의회제도 등이 모여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한다.

 


참고문헌

  • 신재혁. 2019. “싱가포르는 왜 민주화되지 않는가? 비교연구 방법을 활용한 지역연구.” 『동남아시아연구』 29권 2호, 161-91.
  • Hariri, Jacob Gerner. 2012. “The Autocratic Legacy of Early Statehood.”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06(3): 471-94.
  • Przeworski, Adam, Michael E. Alvarez, José Antonio Cheibub, and Fernando Limongi. 2000. Democracy and Development: Political Institutions and Well-Being in the World, 1950-1990. Cambridg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4. 유사한-역사를-경험한-동남아시아-나라들이-왜-다양한-정치체제를-갖게-된-것일까

금수저와 창업자: 금권 시대 인도네시아의 청년정치


가문정치, 세습정치가 인도네시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늘어난 ‘금수저 청년정치’ 현상은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 2020년 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같이 주목받게 되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에서 개방형 비례대표제로의 전환과 정당보조금 삭감이라는 제도적 변화가 정당정치를 약화시키고 정치의 개인사업화를 촉진하면서 차세대 정치인의 풀을 대폭 좁힌 현실을 조명한다. 20대 중반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대통령의 밀레니얼 특별보좌관으로 채용된 청년은 모두 부모의 배경이 있거나 창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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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란 라카부밍 라카(현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

서지원(창원대학교)

2020년 정치 유망주, 기브란

2020년 상반기에 코로나바이러스 다음으로 인도네시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름이 있다면 아마도 기브란의 이름일 것이다. 중부자바의 도시 솔로 시장을 역임하며 돋보이는 행정능력을 바탕으로 자카르타 주지사에 이어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작년에 재선된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Gibran Rakabuming Raka)는 싱가포르와 호주에서 유학한 1987년생의 사업가로서 솔로에서 케이터링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계 입문에 뜻이 없다던 기브란은 그의 솔로 시장 출마를 가정한 2019년 7월의 설문조사에서 인기도 90%를 기록한 이후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8월에 정계진출 의사를 밝히고, 9월에 아버지의 소속 정당이자 인도네시아 의회의 원내 제1당인 투쟁민주당(PDI-P)의 당원으로 등록했다. 10월에는 자카르타의 멘텡에 있는 투쟁민주당 총재 메가와티 수카르토푸트리의 자택을 방문했다. 멘텡을 찾아간 기브란의 셔츠에는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그려져 있었다. 기브란은 수라바야의 리스마 시장, 중부자바의 간자르 푸르노오 주지사 등 정치 신인으로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거물들을 찾아가 만나며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7월, 투쟁민주당은 기브란을 솔로 시장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기브란의 투쟁민주당 시장 후보 지명은 정당정치에 대한 세습정치의 도전이었다. 투쟁민주당에는 정당의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하려면 적어도 3년 동안 당원으로서 활동해야 한다는 중앙위원회의 내규가 있었다. 투쟁민주당의 솔로 지부는 기브란의 출마에 대해 내내 부정적이었다. 조코위 대통령의 솔로 시장 재임 당시 부시장을 지냈던 투쟁민주당의 루디(FX Hadi Rudyatmo) 솔로 지부장은 기브란이 투쟁민주당에 입당한 바로 그날, 지부 차원에서 솔로 시장-부시장 후보를 지명했다. 투쟁민주당 솔로 지부가 지명한 시장 후보는 솔로 부시장을 지낸 1948년생 아흐마드 푸르노모(Achmad Purnomo)였다. 투쟁민주당은 솔로 의회 45석 중 30석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누가 투쟁민주당의 시장 후보로 출마해도 당선될 수 있었고, 지역에서 아흐마드 부시장의 인기도 높은 편이었다. 기브란이 일찍이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한 골카르를 비롯한 다른 정당의 지지를 업고 솔로 시장에 출마하기보다는 기어이 투쟁민주당의 후보 지명을 받으려고 했던 것은 솔로에서 절대적인 투쟁민주당의 지지세를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료: Hasto Kristiyanto 공식 트위터, Wikipedia

메가와티 총재가 기브란의 예방을 받았을 때 동석했던 하스토 크리스티얀토(Hasto Kristiyanto) 투쟁민주당 사무총장은 당시 메가와티가 기브란에게 “우리는 평등을 중시하니 먼저 지부에 후보 등록을 해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메가와티는 2020년 단체장선거 출마자들 앞에서 “2024년 총선에서는 정치인들이 아이들에게 출마를 강제해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으로 연설했다. “당이 차세대 주자를 양성할 필요는 있지만 차세대 주자가 현역 정치인들의 배우자나 자녀일 필요는 없다, 현역 정치인의 자녀와 배우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당의 청년 정치인들을 내 자식처럼 키워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의 딸 푸안(Puan Maharani)이 국회의장을 연임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나의 도움과는 상관이 없으며 오로지 푸안 자신의 능력 덕분이다”라는 것이 이날 연설의 요지였다. 첨언하자면, 메가와티는 투쟁민주당을 창당하기 이전에 민주당에서 비교적 단시간 내에 지도자로 부상하기는 했지만 지도부에 오르기 전 수년 동안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푸안도 당의 내규를 어기면서까지 당직이나 공직에 출마한 적은 없기에, 당의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메가와티를 직접 찾아가 후보 지명을 받아낸 기브란과는 경우가 다르기는 했다.

2020년 4월이 되면 투쟁민주당의 솔로 지부가 지명했던 아흐마드 시장 후보도 ‘대통령에게 이 문제와 관련되어 직접 부름을 받았다’라는 뒷이야기를 남기고 사퇴해 버리고, 오로지 루디 지부장만이 조코위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까지 단절하며 중앙당의 공식 후보 지명 직전까지 아흐마드의 출마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의 기풍을 세우기 위해 세습정치를 거부했던 루디의 싸움은 외로웠다. 기브란 이외에도 수많은 2세들이 2020년 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다. 조코위 대통령의 사위인 보비 나수티온(Bobby Nasution)은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인 메단의 시장으로, 투쟁민주당 사무총장 출신으로 내각사무장관(Sekretaris Kabinet)을 맡고 있는 프라모노 아눙의 아들은 동부자바 크디리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마루프 아민 부통령의 딸인 시티 누르 아지자(Siti Nur Azizah)는 반튼주 남탕거랑시 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그린드라 대표이자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는 프라보오의 조카 사라스와티 조요하디쿠수모(Saraswati Djojohadikusumo)와 맞붙게 된다.1)

자료: exbulletin.com, Wikipedia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의 변화와 세습정치

세습정치와 족벌주의(nepotism)는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998년 경제위기 가운데에서 높아 가던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불을 당긴 요인 중 하나는 수하르토가 자신의 큰딸을 사회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부패 반대, 족벌주의 반대는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린 시위대의 구호였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 세습정치는 일부 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당정치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세습정치의 일상화에 대해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가 겪은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의회민주주의 시대에 인도네시아의 정당정치는 매우 활발한 편이었다. 민족주의 계열의 국민당, 이슬람 계열의 마슈미, 그리고 공산당 등 주요 정당들은 마을 단위까지 뻗어 있는 당 지부와 농민회, 노동조합, 청년회, 여성회, 학생회, 예술가 협회 등의 다양한 가맹단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당은 자선단체와 금융조합을, 때로는 사립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계층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당과 가맹단체에 가입하여 정치적인 주체로 거듭났으며,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속한 알리란(aliran)과 함께 하는 활동에 할애했다. 인도네시아공산당 관계자들은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가 1억 명이던 1965년에 300만 명의 당원과 2,000만 명의 가맹단체 회원이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과장이 섞인 숫자라고 생각하더라도 정당 활동이 대단히 활발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1998년까지 이어진 수하르토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마을 단위의 정당 활동은 금지되었으며, 여러 야당들은 이슬람 계열의 통합개발당(PPP)과 비이슬람 계열의 민주당(PDI) 두 개의 정당으로 통합되었다. 여당인 직능집단 골카르(Golkar)는 정권의 후견-수혜 관계가 작동하는 경로로 활용되었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1999년 총선에는 47개 정당이 후보를 냈고, 이 중 20개 정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원내진출 정당의 숫자는 선거 때마다 지부설립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원내진출에 필요한 최소득표율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2020년 현재 신생정당을 설립하거나 정당에서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려면 전국 모든 주와 기초단위의 75%, 그 아래 읍면 단위의 50%에 지부를 설립해야 한다. 원내진출에 필요한 최소득표율은 4%로 높아졌다(Fionna and Tomsa 2020).

이처럼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기존 정당에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데도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정치가 필리핀처럼 완전히 개인화된 파벌 중심의 정치로 갈 것인지, 그래도 예전의 정당정치 전통과 이슬람 대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균열, 그리고 기존 정당을 우대하는 정치제도가 있으니 그 정도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인지 하는 논쟁이 있을 뿐(Fionna and Tomsa 2020), 정당의 역할이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관찰자들이 동의한다.

정당의 약화를 낳은 제도적 변화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으며, 이 두 가지 모두 선거 및 정당정치에서 돈이 갖는 위상의 강화와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변화는 개방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1999년 총선은 권역별 폐쇄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치러졌으나, 그 이후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취지 하에 개방형 비례대표제(선호투표제)의 요소가 도입되었다. 2004년에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후보가 정당명부에 후순위로 등재되어 있더라도 선출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으나, 이 규정의 적용을 받아 원내진출에 성공한 후보는 전국적으로 2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2009년 선거를 앞두고 헌법재판소 판결로 갑자기 완전한 개방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었다.

2009년에는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지 못했던 정치인들도 2014년 선거부터는 개방형 비례대표제 하의 규칙에 충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보들은 이제 다른 당의 후보와 경쟁하는 것에 더해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같은 당의 후보와 경쟁해야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에서의 선거운동은 정당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후보가 개인적으로 꾸린 선거운동 팀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른 후보와 차별화하기 위한 주요 전략은 잘 짜인 후견-수혜 네트워크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고, 나아가 돈을 주고 유권자들의 표를 사는 등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써야 하는, 이때까지 인도네시아 선거에서 관행화되어 있지 않았던 방식들이었다(Aspinall and Sukmajati 2016; Ridwan 2016).

후보자들은 자신의 선거운동 팀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어야 하고, 매표 전략을 택하는 경우 유권자들에게 뿌릴 돈도 마련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 티셔츠, 포스터, 간판 등을 마련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도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일부 정당에서는 선거 당일 투표소에 파견할 투·개표 참관인에게 지급할 수고비 등 다양한 ‘운영비’ 명목으로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돈을 걷는다. 이런 식으로 드는 비용을 모두 합치면 1명의 후보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부담해야 할 비용은 한국 돈으로 1억 원에서 6억 원 사이라고 후보들은 밝혔다고 한다. 이것은 출마하기 한참 전부터 공동체에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지역에서 지출해 온 인프라 건설비와 종교시설 건립비용 등은 제외한 것이다(Ella 2020; Ridwan 2016).2)

두 번째 변화는 정당보조금 삭감이다. 유도요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5년에 이루어진 정당보조금 ‘개혁’ 이래 정당들은 이미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4년에 보조금으로 35억 원 이상을 받은 투쟁민주당은 2006년에는 2억 원 정도밖에 받지 못했다(Mietzner 2007, 244).3) 선거비용뿐만 아니라 법에 따라 전국 각지에 두어야 하는 정당 사무실 운영비와 각종 행사비를 생각하면 애초에 받던 보조금도 충분한 돈은 아니었지만, 이 개혁의 결과 정당의 재정은 심각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2009년에 투쟁민주당이 공식 지출한 선거비용 중 국가보조금은 0.4%밖에 되지 않았다(Mietzner 2013).4)

정당보조금 개혁과 개방형 비례대표제로의 전환 이후 돈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은 막히게 되었다. 이제 청년이든 중년이든 선거에 출마하려면 자신의 선거비용을 댈 수 있는 금전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자나 시민사회 활동가, 학생운동가 출신이 정치권의 새 얼굴로 등장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고, 사업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정당은 각급 의회 선거와 단체장,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를 결정하는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 출전하는 것은 정당 조직이 아니라 개인사업과 다름없는 선거운동 팀이다. 후보들은 선거운동 팀을 꾸릴 때 가족 구성원을 기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고 충성심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Ridwan 2016, 387).

금권 정치의 시대를 맞아 정당조직이 수행해 온 자체적인 충원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1999년 총선 직후에는 각 정당에서 청년회 활동이 비교적 활발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투쟁민주당의 청년회(sayap pemuda)에 대해 검색을 해 보면 ‘타루나 메라푸티’(Taruna Merah Putih)라는 단체가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단체의 트위터 계정 팔로어 숫자는 고작 3,973명이며, 2018년 7월에 마지막 트윗을 올린 것으로 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보았는데, 마지막 인스타 사진은 2018년 6월에 게시되었다.) 학생단체나 청년단체, 종교단체 활동을 거쳐 정당의 청년회나 여성회에서 정당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야심찬 중산층 청년들의 출세길은 이제 거의 막혔다. 정당들이 충원하는 청년 정치인은 자신의 선거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사업가 집안의 자녀, 정치가 집안의 자녀 또는 사업을 하는 정치가 집안의 자녀로 국한된다. 이렇게 세습정치의 시대가 열리고, 정치는 가족 사업이 되었다. 메가와티가 자신의 딸을 국회의장으로 만들고, 유도요노가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자신의 아들을 자카르타 시장 후보에서 나아가 당 총재로까지 만드는 마당에 우리 집안이 그렇게 못 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금수저’ 청년 정치인의 약진

세계적으로 ‘밀레니얼 세대’와 청년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을 타고 2019년 인도네시아 선거에서도 청년정치의 바람이 불었다. ‘밀레니얼 정당’을 표방하며 청년 후보를 다수 출마시킨 신생 정당 연대당(Partai Solidaritas Indonesia)의 포스터가 자카르타 중심부를 뒤덮었고, 다른 정당에서도 청년 후보들이 여럿 출마했다. 연대당은 자카르타 의회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국회 선거에서는 4%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의회에 진출한 것은 다른 여러 정당에서 출마시킨 20대 후보들이었다. <표1>에는 2019년 10월에 임기를 시작할 당시 23세에서 26세 사이였던 초선 국회의원 10인의 프로필이 정리되어 있다.5)

자료: Wikipedia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는 청년 후보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청년 후보에 대한 인도네시아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대 정치인이라는 현상 자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재 동부자바 주지사인 코피파 인다르 파라완사(Khofifah Indar Parawansa)는 1965년생으로서 대학 졸업 직후인 1992년에 통합개발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동시에 통합개발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그린드라의 파들리 존(Fadli Zon) 역시 1971년생으로서 1997년에 국민협의회에 선출되고, 곧이어 이슬람 계열 월성당의 공동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당시에도 정치인 집안 출신으로 정치에 진출하는 청년들이 있었지만, 코피파나 파들리처럼 특별한 집안 배경 없이 출세하는 청년 정치인들도 적지 않았다.

2019년에 당선된 10명의 초선 의원의 프로필을 보면 공통적으로 내세울 만한 집안 배경이 있어 부모의 도움을 받아 정치에 진출한 소위 ‘금수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직 국회의장 아데 코마루딘의 딸 푸트리 코마루딘이나 아버지가 현직 주지사로 있는 지역구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아르카나타 아크람은 부모의 영향력을 등에 업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경우이다. 이외에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기초단체장(군수)이거나 은행장, 경찰간부인 경우 등이 있다. 내세울 만한 부모가 없는 경우는 전무하다.

2019년에 임기를 시작할 때 26세 이하였던 인도네시아 국회의원 10인의 프로필

금수저 청년 정치는 특정 집단만의 전유물일까? 예전에는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과 달리 주로 세습을 통해 정치에 진출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10명의 초선 의원 중 남성이 6명, 여성이 4명인 것을 보면 금수저 청년 정치가 특정 성별과는 무관한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외곽도서라고 불리는 술라웨시와 칼리만탄에서 당선된 인원이 4명으로 인구에 비하면 많은 편이지만, 금수저 청년들은 서부자바와 반튼, 중부자바와 동부자바에서도 당선되었다. 즉 금수저 청년 정치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정당을 보면 주로 수하르토 시대의 여당이었던 골카르와 정치적 야심을 가진 개인들이 골카르에서 탈당하면서 만든 그린드라, 나스뎀, 민주당에 금수저 청년 정치 현상이 집중되어 있기는 하나, 이들의 소속 정당이 9개의 원내 진출 정당 중 5개임을 생각하면 어느 특정 정당에 국한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리즈키 나타쿠수마(반튼주 판덱랑군수, 아버지와는 다른 당 후보로 출마하여 같은 선거구에서 당선)
자료: Rizki Natakusumah 공식 트위터

아버지가 통합개발당에서 번영정의당으로 이적한 정치인인 반면 아들은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리즈키 나타쿠수마(Rizki Natakusumah), 그리고 삼촌은 초대형 부패 사건으로 유명한 민주당 정치인이고 아버지는 2019년까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본인은 그린드라로 출마하여 당선된 무함마드 라훌처럼 부모와 자녀의 소속이 다른 경우도 더러 있다. 이것은 금수저 청년 정치가 정당에 구애받지 않는 가족 중심의 사업임을 드러낸다.

이들이 출마하면서 신고한 재산의 중앙값은 4억 2천만원이며, 30억원 이상의 부동산과 주식을 신고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재산이 2천만원 이하인 것으로 신고한 후보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재산 신고액이 크게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본인 소유 재산이 3392만원이라고 신고한 파크리 의원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면 지역 군수의 딸과 결혼하면서 신부대금으로 니켈 광산을 내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금수저 청년 의원들의 출신학교이다. 10명 중 프로필에 출신대학을 기재하지 않은 2명을 제외하면 모두 8명이 4년제 대학 졸업자이고, 개중에는 대학원을 졸업한 경우도 있다. 이들 중 영국, 호주 등 외국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의원이 5명이며, 인도네시아에서 학사학위과정을 밟은 의원은 3명으로서 소수이다. 20대 중반이라는 이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성인으로서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해 본 적도 없는데 국회의원이 되어 입법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학생 출신 의원 중에는 이미 10대부터 국내외의 국제학교에서 공부한 경우가 많았다. 동부자바에서 26세의 나이로 당선된 디아 로로 에스티 의원은 아예 초등학교부터 국제학교를 나왔고, 석사학위까지 있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인도네시아어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여기에서 금수저 청년 의원으로 소개한 10명은 부모의 직위와 지역구를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고, 일부는 부모가 정치인이 아니기에 아주 엄격한 잣대로 따지자면 ‘세습정치인’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은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손녀’라는, 가족의 명성에 따른 ‘후광’을 입었다기보다는 (추정컨대) 부모의 재산과 인맥이라는 쏠쏠한 자원을 물려받아 정계에 진출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리고 이들을 제외한 같은 연배 청년 의원의 부재는,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가 겪은 금권 정치 발달과 정당정치 약화의 산물이며, 인도네시아 정치가 정당의 브랜드를 빌린 개인과 가족의 사업처럼 되어 버린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기브란을 비롯한 현직 정치인 가족의 정계 진출과 다르지 않은 현상이다.

 

금권정치 시대의 청년정치

조코위 대통령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전문성이 없는 정당정치인 대신 각계의 전문가를 내각에 기용하겠다는 약속으로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2019년 대선 이후 꾸려진 내각을 보면 조코위 대통령이 생각하는 ‘전문가’란 ‘성공한 사업가’임을 알 수 있다. 택시 호출 앱으로 출발하여 각종 배달, 출장 서비스로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을 바꿔 놓은 신생기업 고젝(Go-Jek)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를 지낸 35세 나딤 마카림이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한때 프로축구단 인터밀란의 최대주주였던 재벌 2세 사업가 에릭 토히르는 조코위 대통령의 선거운동본부장을 거쳐 공기업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에릭은 2024년 대선주자로 꾸준히 거론된다. 이제 사업가들은 구태여 정당에 많은 돈을 내고 선거에 뛰어들거나 당권에 도전할 필요 없이 전문가라는 명목으로 내각에 바로 기용된 후, 장관으로서의 입지를 바탕으로 대권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조코위 대통령은 2019년 11월, 14명의 특별보좌관(Staf Khusus) 중 7명을 ‘밀레니얼 세대’로 임명했으며, 이들을 대통령궁에서 직접 소개하는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표2>는 밀레니얼 특별보좌관 7명의 프로필을 조코위 대통령에게 소개받은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2019년 조코위 대통령이 임명한 ‘밀레니얼 특별보좌관’

이들 중 언론재벌의 딸로 싱가포르에서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닌 23세 푸트리 탄중은 앞에서 소개한 금수저 청년 정치인들과 프로필이 유사하다. 나머지는 같은 밀레니얼이지만 나이가 30대이고, 인도네시아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후 외국 유명 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는 전통적인 코스를 거친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조코위는 이들의 인도네시아 학력은 생략하고, 대학원 학력만을 언급했다). 밀레니얼 특별보좌관에는 청각장애인과 파푸아인 등 소수자가 포함되어 있어 다양성을 고려한 흔적도 보인다.

외국의 명문대 학위가 있다는 것 외에 밀레니얼 특별보좌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창업을 한 사업가라는 것이다. 7명 중 5명이 CEO 직함을 쓰고 있고, 이 중 기업을 창업한 청년이 4명이다. 인도네시아에서 20대나 30대 청년이 창업해서 성공하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조코위 대통령이 밀레니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채용한 특별보좌관의 대다수가 사업가라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인도네시아 국내 대학을 나와 변호사, 학자 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중산층 출신의 엘리트는 이제 선거에 출마하는 형태로 정계에 진출하기 어렵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기 자본이 필요하지 않은 대통령의 자문역 자리에서마저 밀려났다. 아무것도 창업하지 않은 사람은 이슬람학생운동이라는 학생단체 의장 출신의 아미누딘밖에 없는데, 아마도 종교계를 홀대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포함한 것 같다.

밀레니얼 특별보좌관들 중 2명은 근무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업적 혜택을 받으려 한 ‘이해충돌’ 사건의 발생으로 직에서 사퇴했다. CEO라는 명칭을 굳이 사용했지만 6명 중 3명은 사회적기업과 비영리재단 운영자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일반 기업을 운영하는 남성 100%, 또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재벌 가문 자녀가 아닌 사업가 100%가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이해충돌’ 사건, 그리고 이들이 전일제로 근무하지도 않으면서 월급을 400만원씩이나 받는다는 기사 외에 달리 밀레니얼 특별보좌관의 역할이 부각된 적은 없다.

 

차세대 족벌주의의 정치 독점?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정치 가문’의 존재는 새롭지 않은 현상이다. 현재 원내 정당에 진출한 9개 정당의 대표들(<표3> 참조) 중에서도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아들 아구스 유도요노는 ‘빼박’ 세습 정치인이며,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딸 메가와티 전 대통령과 명문가 조요하디쿠수모 집안 출신으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프라보오 수비안토 역시 넓게 보아 세습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업가 출신이 정치를 하는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골카르에서 갈라져 나와 나스뎀을 창당한 수르야 팔로는 언론사 사주이다.

하지만 이슬람 학생운동가 출신인 국민각성당의 무하이민, 학자 출신인 번영정의당의 소히불 이만 등 이슬람 계열 정당의 대표들은 금수저도, 창업자도 아니다. 대선주자군으로 거론되는 자카르타와 서부자바·중부자바·동부자바 현직 주지사도 금수저나 사업가가 아니고 학자, 건축가 등 전문직이거나 청년시절부터 정계에 몸담아온 전업 정치인이다.

태국, 필리핀 등 1990년대에 민주화된 역내 다른 나라에 비해 정당정치가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에서 정당정치가 쇠퇴하고 가족주의 정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시사주간지 『템포』에 인용된 어느 신진 학자에 의하면 지난 5년간 당선된 단체장 중 117명이 정치 가문 출신이며, 2019년에 임기를 시작한 국회의원 575명 중 104명이 정치엘리트 가문과 연계가 있다고 한다(tempo.co 2020). 향후 인도네시아 정치는 예전처럼 비교적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엘리트를 충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아니면 금수저 세습정치인과 수퍼리치들이 독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어느 쪽이든 지금의 제도 하에서 소요되는 막대한 정치자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도네시아 정치는 금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2019-2024 인도네시아 원내진출 정당과 정당 대표 프로필
– 자료: tirto.id, Wikipedia, Wikimedia Commons

 

저자소개

서지원(suhjiwon@changwon.ac.kr)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부교수이다.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도네시아 정치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정치와 인권, 과거청산, 민족주의에 대해 주로 연구하며 이와 관련된 저역서와 다수의 국·영문 논문을 출판하였다.

 


1) 이 소절의 내용은 Margareth and Ganug(2020), tempo.co(2020), Wayan(2020) 등 신문과 잡지 기사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했다.

2) Ridwan(2016)에 의하면 ‘1억 원에서 6억 원 사이’라는 것은 후보의 주장이고, 그의 같은 정당 동료는 아마 국회의원 당선인이 선거에 25억 원(300억 루피아)은 썼을 것이라고 귀띔했다는 것이다. 자야푸라 지역에서 거론된 이러한 비용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Ridwan(2016)의 글을 보면 파푸아에서는 선거사무원을 매수한 부정선거도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이 보편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환율은 최근 환율(루피아*0.085=원)로 계산했으며, 원문에는 ‘15억에서 70억 루피아 사이’라고 되어 있다.

3) 보조금은 2007년 8월 환율(루피아*0.1=원)로 계산했다.

4) 최근에는 정당보조금 지급액 규모가 2005년의 ‘개혁’ 이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5) 인도네시아 국회 공식 사이트 dpr.go.id에 공개된 프로필과 각종 신문기사 등을 참조했다.

 


참고문헌

  • Aspinall, Edward, and Mada Sukmajati. 2016. “Patronage and Clientelism in Indonesian Electoral Politics.” In Electoral Dynamics in Indonesia: Money Politics, Patronage and Clientelism at the Grassroots, edited by Edward Aspinall and Mada Sukmajati, 1-37. Singapore: NUS Press.
  • “Beware of Nepotism in Politics.” 2020. tempo.co. 6월 17일. https://en.tempo.co/read/1354647/beware-of-nepotism-in-politics
  • Budi Sutrisno. 2020. “Megawati Tells Politicians Not to ‘Force’ Children to Run in 2024.” The Jakarta Post, 2월 21일자 4면.
  • Ella S. Prihatini. 2020. “Islam, Parties, and Women’s Political Nomination in Indonesia.” Politics & Gender 16(3), 637-659.
  • Fionna, Ulla, and Dirk Tomsa. 2020. “Changing Patterns of Factionalism in Indonesia: From Principle to Patronage.” Journal of Current Southeast Asian Affairs 39(1): 39–58.
  • Margareth S. Aritonang and Ganug Nugroho Adi. 2020. “Gibran, exception to PDI-P’s own rules.” The Jakarta Post, 7월 21일자 1면.
  • Mietzner, Marcus. 2007. “Party Financing in Post-Soeharto Indonesia: Between State Subsidies and Political Corruption.” Contemporary Southeast Asia 29(2): 238–263.
  • Mietzner, Marcus. 2013. Money, Power, and Ideology: Political Parties in Post-authoritarian Indonesia. Singapore: NUS Press.
  • Ridwan. 2016. “North Jayapura, Papua: Buying the Voters and Buying the Administrators”. In Electoral Dynamics in Indonesia: Money Politics, Patronage and Clientelism at the Grassroots, edited by Edward Aspinall and Mada Sukmajati. Singapore: NUS Press.
  • Wayan Agus Purnomo. “Jokowi’s Son Maneuvers Towards Candidacy.” Tempo English, 2020년 6월 16일자.

23. 금수저와-창업자

코로나19와 아세안 초기 대응의 성과와 함의: 의장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사례와 아세안의 길


1월부터 추이를 지켜보았을 때, 현재 아세안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제외하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아세안지역의 국가들이 코로나19 대처를 상대적으로 잘 한 것에는 기후라는 자연적인 요인도 고려해 볼 만하지만 무엇보다 아세안지역협력체의 초기 대응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은 베트남이다. 아세안은 지역 안에서 가장 고도의 정보력을 갖춘 기구이고, 글로벌 거버넌스와의 신속한 협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특히 1월 27일에 있었던 란창-메콩 협력회의(LMC)는 의장국 베트남이 중국과 만나면서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인식하였던 계기가 되었다. 결국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대응은 그 전파력과 위험성을 초기부터 잘 인식하고, 글로벌-지역-국가적-로컬적 차원의 협력 메커니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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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희(서울대학교)

코로나19 세계적 현황 속의 동남아 상황1)그 결과에서 제기되는 질문들

6월 1일 기준으로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 이하 JHU)가 발표하는2) 전 세계 현황에서 총 확진자수는 6,171,182명이고, 가장 많은 확진자수를 가진 나라를 순서별로 보면, 미국(약 179만), 브라질(약 51만), 러시아(약 40만), 영국(약 27만), 스페인(약 24만), 이태리(약 23만), 인도(약 19만), 프랑스(약 19만), 독일(약 18만), 페루(약 16만), 터키(약 16만), 이란(약 15만), 칠레(약 10만), 캐나다(약 9만), 멕시코(약 9만), 사우디아라비아(약 8만 5천), 중국(약 8만 4천), 파키스탄(약 7만), 벨기에(약 5만 8천), 카타르(약 5만 6천), 방글라데시(약 4만 7천), 네덜란드(약 4만 6천), 벨라루스(4만 2천), 에콰도르(약3만 9천), 스웨덴(3만 7천) 다음으로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는 약 3만 4천여 명, 인도네시아 약 2만 6천, 필리핀이 1만 8천명 순으로, 전 세계 누적 확진자 순위로 아세안 회원국 중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확진자 수를 기준으로 한 국가 순위를 살펴보면 다음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이 일정정도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키는 국가 순위에 있다는 것과 미국과 그 뒤를 쫓는 브라질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약 179만과 약 51만의 차이는 매우 커서 당분간 미국이 압도적으로 확진자수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에 속할 것이고 보인다. 관련하여 “미국은 왜 이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방역에 실패한 국가가 되었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일 수 있다. 둘째는 앞으로 더 정교한 연구가 있어야겠지만, 확진자를 가장 많이 발생시킨 국가들의 순서를 1위에서 30위까지 보면, 일반적인 패턴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난한 국가에서 더 많이 창궐했다고 볼 수도 없고, 반대로 어느 정도 잘살거나 보편적 보건시스템이 있는 국가에서 더 많은 전염을 목도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지역에서 싱가포르의 사례만을 보아도 그렇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지역 중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이고, 국가시스템과 거버넌스(governance) 능력도 확보된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코로나19 특성요인과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각 국가의 현 정부의 태도와 인식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이 제공하는 코로나19의 세계적 현황

이러한 코로나19의 세계적 상황에서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의 상황을 보면 우선 두 가지 정리와 질문이 가능하다. 첫째, JHU에서 발표하는 6월 1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전 세계 확진자는 6,171,181명이고,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의 확진자수는 싱가포르 34,884명, 인도네시아 26,473명, 필리핀 18,086명, 말레이시아 7,819명, 태국 3,082명, 베트남 328명, 미얀마 228명, 브루나이 141명, 캄보디아 126명, 라오스 19명 순으로 총 91,186명이다.3) 6월 1일 기준 아세안 회원국 총 확진자 91,186명은 당일 세계 확진자 6,171,181명의 1.47%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유럽 그리고 북미대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확진자 발생수가 적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확진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은 아니지만 아세안 국가의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해보면 대응 결과가 나쁜 편은 아니다. 아세안의 대응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판이 생산적인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막연한 ‘기대’보다는 아세안의 ‘현실’이라는 측면을 고려해서 발전적 전망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세안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선진국’ 범주에 속하는 지역이 아니라 ‘신흥시장, 개발도상국’에 속하는 국가가 훨씬 더 많고, 코로나19 대응의 결과가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관련하여 두 가지 차원에서 질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아세안은 어떤 대응을 했는가? 2020년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하고 있는 베트남의 효과는 국가적 차원과 지역적 차원에서 어떻게 발휘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코로나19 이후 지역 또는 세계질서의 형성과 운영과 관련된 질문이다. 둘째는 아세안 역내 두 국가인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대응이 갖는 두 국가의 함의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아세안 10개국 중에서 흥미로운 사례인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주목하고자 한다. 초기에 싱가포르는 성공한 사례라고 회자되었는데, 왜 방역에 실패한 사례가 되었는가를 주목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쟁점을 갖고 있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주목하고자 한다.

 

아세안 의장국 베트남의 효과

2019년 12월 8일 신종 전염병인 코로나19 확진자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하고, 2020년 5월 현재까지 본 감염병에 대한 대처 결과의 성패는 ‘초기 대응’에 달려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초기’에 이 바이러스가 매우 위험한 것임을 인지하여 곧바로 적극적인 방역을 했는가에 결과가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에 의한 세계대유행 혹은 팬데믹(pandemic) 선언이 있기 전 2019년 12월과 2020년 1월에 중국에서 좀 더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했다면,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한 바이러스’ 명칭을 고집하고,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면서 WHO와 중국의 밀월관계를 전제로 WHO를 비판하는 미국의 입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WHO가 모든 대응에 있어서 완벽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WHO가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적 사실을 인식해 가는 과정에서 초기에 그에 따른 대응지침을 만들고 국제적 컨트롤 타워로서 역할을 하는데 가이드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필자는 잠정적으로 ‘초기’에 개별 지역이나 국가에서 WHO의 코로나19 대응지침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면서 따랐는가, 즉 WHO와의 공조는 성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4)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WHO 코로나19 대응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5월 20일 세계보건총회의 사무총장은 한국정부가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사태 이후 구축한 매뉴얼 즉, 환자를 찾아내고(find), 격리시키고(isolate), 검진하고(test), 치료하고(care) 그리고 모든 접촉자를 추적하는 것(trace every contact)은 첫 번째 파고를 잠재울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하였다.5)
한국의 방역모델(K-방역)이 글로벌 모델이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매뉴얼이 매우 성공적임을 의미한다. K-방역의 근간은 진단용 테스트를 생산해 낼 수 있었던 기술력이었고, 이러한 준비는 메르스 사태의 학습효과이다. 현재 K-방역모델은 3T-진단(Testing), 추적(Tracing), 치료(Treatment)-로 정리된다. 그러나 실제로 “환자를 찾아내고(find), 격리시키고(isolate), 검진하고(test), 치료하고(care) 그리고 모든 접촉자를 추적하는 것(trace)”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의학적 능력, 보건시스템, 정부의 의지, 과학기술적 지원, 시민적 역할 등 매우 복합적 차원이 결합될 때 가능한 것이다. 한 국가에서 성공적인 ‘방역시스템’을 갖춘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사실 국경 봉쇄와 같은 것은 이러한 전체 시스템 중에서 바이러스로부터 또는 전염 매개자로부터 격리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만약 과학기술에 기반 한 의학·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면, 국경봉쇄 또는 공항폐쇄와 같은 것은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적 협력체로서 아세안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아세안 내부에서는 2019년 12월 30일에 중국 우한으로부터 의학적 이상현상이 발생하여 경계상태를 가져야 한다고 처음으로 인지하였고, 2020년 1월 3일에 아세안 사무국 보건담당부서는 중국에서 “정확히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급성폐렴 환자 클러스터”가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첫 입수하였다. 그로부터 2020년 2월 14일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아세안 의장국 성명서(Chairman’s Statement on ASEAN Collective Response to Outbreak of Coronavirus Disease 2019)”가 처음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본 성명서에는 1월 30일에 WHO가 “국제적으로 공중 보건의 심각한 위기적 상황”이라고 인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코로나19에 대한 아세안 차원의 지역적 대응을 체계화할 것을 밝히고 있다. 아세안은 WHO의 역할을 매우 중시한다고 강조하였고, 역내 지역적 차원과 역내 국가 간 가능한 모든 지역협력을 가동할 것을 밝혔고, 특히 아세안 보건담당부서는 아세안+3(한·중·일) 보건 고위급회담을 2월 3일에 가동하면서 한·중·일의 선진 경험을 수용할 준비를 한 것이다.
2월 14일 의장성명서에는 이러한 다층적 협력을 통해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예방(prevention), 발견(detection) 그리고 처방(treatment)6)할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7)이것은 코로나 19에 대한 K방역모델인 “환자를 찾아내고(find), 격리시키고(isolate), 검진하고(test), 치료하고(care) 그리고 모든 접촉자를 추적하는 것(trace)”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문구를 활용한 것은 아니지만, 아세안도 2월 초부터 우리나라와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인식을 전반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세안이 초기에 이러한 인식을 빠르게 한 것에 비해, 3월 11일 팬데믹 선언 이후 오히려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Li-Lian 2020), 필자는 아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오히려 WHO가 중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으로 3월 한 달을 소모한 그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본다.

4월 14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아세안특별정상회의
출처: https://asean.org/declaration-special-asean-summit-coronavirus-disease-2019-covid-19/(검색일: 2020년 6월 2일)

2020년 아세안 의장국은 베트남이고, 베트남 총리인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이 아세안의 의장이다. 아세안 의장인 베트남 총리는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을 처음부터 WHO와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제적 차원에서 코로나19를 이해하는 지식과 정보의 폭과 넓이가 지역적 차원에서 대응하는 과정으로 전개될 수 있었고, 이러한 흐름은 베트남 개별국가에서도 충분히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은 아세안 회원국 중에서도 유난히 초기부터 국가적 차원에서도 2월 1일 중국 국경폐쇄, 2월 3일부터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임시휴교령, 3월 18일부터 모든 비자발급 중지, 4월 1일부터 외출 제한령을 전국에 발표하고, 공공장소에서 3명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한 사례이다. 그래서 4월 24일 이후 환자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필자는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베트남이 이 사태에 대해서 접근하는 지식과 정보 그리고 의장국이 지어야 할 책임성 등은 지역적 차원뿐만 아니라 베트남 개별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이러한 사태가 있기 이전부터 아세안은 ‘규범적으로 옳은’ 글로벌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 대체로 잘 숙지해왔으며, 그것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가치와 규범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능력의 한계-과학기술능력의 한계, 제도의 불충분, 인력자원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베트남은 이번 코로나19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WHO와의 인식을 처음부터 공유하면서 아세안 의장국으로,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인식과 대응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
출처: ASEAN Biodiaspora Virtual Center. 2020. Risk Assessment for International Dissemination of Covid-19 to thd ASEAN Region. p.8

아세안은 2월 19일부터 보건위기에 대한 매우 다차원적인 공조체제를 발동하였다. 관련하여 아세안이 만든 기구나 조직도 광범위하다.8) 그리고 4월 14일에는 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와 아세안+3 특별 정상회를 가상으로 진행하였다. 이러한 특별 정상회의를 통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기금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아세안이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위기에 대응하면서 가장 심각한 우려를 하는 것은 보건위기가 경제위기로, 경제위기가 사회정치적 위기로 확산되지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에 아세안의 균형전략은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아세안에 있어 중국과 미국의 갈등과 경쟁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하는 것은 아세안에게 있어 생존전략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은 우한에서 확진자가 잦아든 3월 중순부터 일명 중국의 마스크외교, 보건실크로드(Health Silk Road)의 일환으로 아세안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3월 31일 아세안-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7개 합의사항을 도출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 국무부도 3월 31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자금을 지원하거나 4월 1일 미-아세안 고위급 코로나19 대응 화상회의를 개최하여 공중보건 학업을 하는 미국 내 아세안 학생의 장학금 지원 등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소위 ‘코로나 냉전(Cold War in Covid-19)’으로 일컬어지는 현재의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아세안에게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느 한쪽도 배제하지 않으며, 어느 한쪽도 우위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며 아세안 이익에 부합하도록 중국과 미국을 상대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전략은 코로나19로 인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기 위한 앞으로의 행보에서도 더욱더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은 4월 24일 아세안 차원에서 확진자수가 매우 감소한 것을 인지하고, 곧이어 역내 관광부장관회의를 통해 경제적 대응회의를 시작한 것도 이러한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이 베트남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외정책을 매우 잘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은 아세안 차원에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요소라고 본다.

 

아세안 각 국의 현황, 1인당 GDP와 거버넌스 지수와의 관계성

중국 우한에서 2019년 12월 8일에 확진 클러스터가 보고되고, 태국은 2020년 1월 13일, 베트남, 싱가포르, 캄보디아는 1월 23일, 말레이시아는 1월 26일, 필리핀은 1월 30일, 인도네시아는 3월 2일, 브루나이 3월 9일, 동티모르 3월 21일, 라오스와 미얀마는 3월 24일 첫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아래 표에서 5월 24일 기준으로9) Worldometer에서 제공하는 아세안 각국의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인구 총확진자(명) 사망자(명) 총검진수(명) 검사건수/백만명당 1인당GDP GEWGI
브루나이 437,024 141 1 18,411 42,128 27,872 85
캄보디아 16,693,317 124 0 16,007 959 1,620 35
인도네시아 273,208,135 21,745 1,351 239,740 877 4,163 58
라오스 7,263,819 19 0 5,194 715 2,670 24
말레이시아 32,320,265 7,185 115 500,469 15,485 11,136 80
미얀마 54,370,772 201 6 17,875 329 1,244 13
필리핀 109,419,831 13,777 863 287,294 2,626 3,294 57
싱가포르 5,845,390 31,068 23 294,414 50,367 63,987 100
태국 69,781,627 3,040 56 328,073 4,701 7,791 65
베트남 97,243,794 324 0 275,000 2,828 2,739 57
총계 666,583,974 77,624 2,415 1,982,477
코로나19의 아세안 각 국의 현황
출처: * 아세안 각 국의 현황은 Worldometers 5월 24일자 오전 8시 기준-인구, 총확진자, 사망자, 총검진수, 백만명당 검사건수-에서 작성된 것임.
** 1인당 GDP는 IMF가 제시하는 2019년 기준으로 1인당 GDP임(달러기준)
*** GEWGI는 World Bank에서 측정하는 거버넌스지수(World Governance Index)중에서 2018년 기준정부 효과성(Government Effectiveness) 점수를 표시한 것임.

아세안 회원국 10개국 중에서 확진자 단순 총계로만 보았을 때, 가장 많은 확진자수가 발생한 곳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순이다. Worldometer가 제공하는 자료로 인구 100만 명 당 전체 확진자 수는 싱가포르가 5315명, 인도네시아가 80명, 필리핀 126명, 말레이시아 222명으로 단연 싱가포르가 인구 비율적으로 가장 높고, 말레이시아, 필리핀 그리고 인도네시아 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가장 큰 실패사례로 회자되는 것은 바로 사망자 단순 총계가 아세안 회원국 중에서 제일 높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1,351명, 필리핀 865명, 말레이시아 115명, 태국 56명, 싱가포르 23명이고, 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이 있다. Worldometer가 제공하는 자료로 인구 100만 명 당 전체 사망자는 인도네시아 5, 필리핀 8, 태국 0.8, 싱가포르 4이다. 즉, 인구 100만 명 당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필리핀이다.

그리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검진했는가를 보면, 총검사건수로만 보았을 때는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순이고, 인구 백 만 명 당 검사건수 비율을 보면 싱가포르 50,367, 브루나이 42,128, 말레이시아 15,485, 태국 4,701, 베트남 2,828 순이다. 전체 확진자가 발생한 비율은 1인당 GDP와 WGI에서 정부효과성지수(Government Effectiveness Index)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싱가포르는 아세안 회원국 중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고, 정부효과성 지수도 100점 만점에 거의 100점에 가까운 싱가포르가 가장 많은 확진자를 양산했다. 1인당 GDP도 낮고, 정부효과성 지수도 낮은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낮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1인당 GDP와 정부효과성지수가 높을수록 높은 검사건수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Worldometer에서 제공한 국가별 총검사건수를 5월 6일과 5월 24일 두 시점을 비교해 보았을 때, 브루나이 14,610에서 18,411로 3,801 증가, 캄보디아 12,611에서 16,007로 3,396 증가, 인도네시아 121,547에서 239,740로 118,193 증가, 라오스 2,418에서 5,194로 2,776 증가, 말레이시아 213,220에서 500,469로 287,249 증가, 미얀마 9,037에서 17,875로 8,838 증가, 필리핀 130,889에서 287,294로 156,405 증가, 싱가포르 143,919에서 294,414로 150,495 증가, 태국 227,860에서 328,073로 100,213 증가, 베트남 261,004에서 275,000로 13,996 증가되었다. 전반적으로 모든 국가들이 검진을 계속적으로 확대해서 진행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에서 그 검진수를 더욱 더 확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세안 바이오디아스포라 가상센터(ASEAN Biodiaspora Virtual Center, ABVC)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지역적 차원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계속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그 내용 중에서 아세안 회원국의 전염성취약성지수(Infectious Disease Vulnerability Index, IDVI)가 있는데, 전염병에 대한 준비성과 반응성 정도를 국가적 차원에서 측정한 것이고 점수가 높을수록 취약한 것이다. 코로나19의 경우 브루나이는 0.763, 캄보디아 0.355, 인도네시아 0.563, 라오스 0.355, 말레이시아 0.761, 미얀마 0.448, 필리핀 0.545, 싱가포르 0.878, 태국 0.711, 베트남 0.626이다. 그래서 가장 취약한 국가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순이다.

6월 9일자 기준 아세안 각 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추이
출처: ASEAN Biodiaspora Virtual Center. 2020. Risk Assessment for International Dissemination of Covid-19 to thd ASEAN Region. p.9.

 

4기 파동 속의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1월 23일 우한에서 온 중국인 관광객이 확진판정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4번의 사이클을 경험하고 있다. 첫 번째 파동(Wave 1)은 1월 한 달, 두 번째 파동(Wave 2)는 3월 지역감염이 전개되는 시기이다. 세 번째 파동(Wave 3)는 해외에 있는 싱가포르 시민과 유학생을 본국으로 적극적으로 귀국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시기이다.10) 그리고 네 번째 파동(Wave 4)가 4월 초부터 현재까지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발생하여 4월 12일부터 1일 확진자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시기이다. 아래 표를 보았을 때, 5월 13일을 기준으로 1일 확진자 발생추이가 꺽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싱가포르정부는 현 4번째 단계를 매우 심각한 상태로 인지하고, 4월 7일에 6월 1일까지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상태 즉, 완벽히 사회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6월 2일로부터 서킷브레이커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상태를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11)

싱가포르 1일 확진자 추이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OVID-19_pandemic_in_Singapore(검색일:2020년 6월 12일)

싱가포르 코로나19 상황이 보여주는 함의는 방역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중국과의 연계성이다. 1월 말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확진자는 ‘우한에서 온 중국인’ 때문이었다. 그래서 1월 23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곧, 우한발 비행노선중지와 후베이성 여행 자제령과 중요한 일 외에 중국 본토 여행 자제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조취를 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지역감염확산이 막지 못하였다. 이것이 코로나19가 전염성이 매우 높다는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 감염병 사태를 경험한 이후 위험정도에 따른 대응체계를 체계화하여 ‘질병발생대응시스템(Disease Outbreak Response System)’을 만들었고,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응시스템 매뉴얼에 맞춰 진행하였고, 3월 말에 오렌지단계였는데, 현재까지도 ‘오렌지단계’이다.12) 그러나 상황이나 다양한 조치를 보았을 때는 ‘레드단계’가 맞는 것 같은데, 5월말 현재도 오렌지단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억지스러워 보인다.
둘째, 싱가포르 정부는 3월 11일 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서 해외에 나가 있는 싱가포르 영주권자와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귀국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특히 미국, 영국에 있는 유학생들을 귀국시켰으며,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항공서비스가 중단되어 싱가포르 외교부와 싱가포르 종교위원회(Islamic Religious Council of Singapore)와 협력하여 이집트에 있는 211명의 싱가포르 유학생, 요르단에 있었던 178명 학생 등을 귀국시켰다(Saat 2020).
셋째, 싱가포르 정부가 가장 비판을 받고 있는 지점은 소위 S11 기숙사(S11 Dormitory and Westlite Toh Guan)라고 부르는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기대만큼 빠르게 수습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싱가포르 보건부 장관 간김용(Gan Kim Yong)은 5월 12일 정부 브리핑에서 하루에 3만 건 이상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환자를 찾아내 격리시키고, 치료를 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5월 12 일 1일 확진자 발생건수는 2천명이 넘는 상황이었고, 그 이후로 확진자 발생 추이가 줄어드는 경향이지만 여전히 1일 확진자 발생수가 천 명이 넘는데도, S11 지역의 이주노동자를 전면적으로 이주 또는 분리 격리시키거나 폐쇄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 상황에 대처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코로나19 4번째 파동을 통해 싱가포르의 구조적인 문제인 거주민과 이주민에 대한 국가정책의 본질적인 차이가 더 확실히 드러내는 계기를 되었다.

 

아직 확진자 양적팽창의 정점을 찍지 않은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1월에서 2월까지 코로나19 환자가 공식적으로 발생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3월 2일에서야 첫 환자발생을 공식화하였다(Hasyim 2020). 그러나 이때부터 “과연 이러한 발표가 신뢰할만한가”를 계속적으로 의문시하였다. 인도네시아 미디어는 1월 마지막 주부터 바이러스 발생현상을 리포트하였다. 인도네시아 보건부는 2월 4일 본 바이러스가 팬데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지하였고, 3월 13일 대통령 산하 ‘코로나19 신속대응팀(Task Force for Rapid Response to Covid-19)’을 가동하였다. 그리고 4월 3일 No21/2020 ‘대규모사회제약(Pembatasan Social Berskala Besar, PSBB)’ 보건부장관령13)을 발효했다(Lane 2020).
인도네시아는 1월 2월뿐만 아니라 3월 12일 팬데믹 선언이 된 이후 4월 초에서야 중앙정부대책이 나온 것이다. 그러니 3개월 동안의 중앙정부의 대응정책 공백은 지금까지도 많은 확진자와 높은 사망률을 만들어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5월 26일 기준 Worldometer가 제공하는 인도네시아 확진자수는 22,750명이다. 5월 24일 기준 Worldometer가 제공하는 인도네시아 확진자수는 21,745명이었다. 이틀 사이에 1,005명이 증가한 것으로 1일 확진자 증가율이 높은 사례에 속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경우, 아직 최고의 확진자 발생의 정점을 찍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바로 5월 24일부터 한 달 금식기간인 라마단을 끝내고, 축제기간인 르바란 기간 동안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경우 6월이 정점이 되고, 7월에 정상화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몇 가지 쟁점이 존재한다.14) 첫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불협화음설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대통령 조코위(Joko Widodo)와 자카르타 주지사 바스웨단(Anies Baswedan ) 사이의 갈등이다. 바스웨단은 중앙정부의 대처가 매우 미흡하다고 강력하다고 비판하였다. 4월초까지 32명의 의사와 12명의 간호사가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즉, PSBB 정책이 실현되기 전까지 중앙정부는 늑장 대응, 미숙한 대응 등을 이유로 자카르타 주지사는 조코위 대통령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자카르타 주지사 바스웨단은 자카르타 안에서 더 강력한 사회적 격리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이러한 적극적인 봉쇄정책을 경제적인 이유로 미뤄왔다.

6월 12일자 인도네시아 주요 주별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추이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OVID-19_pandemic_in_Indonesia(2020년 6월 12일)

위의 표를 보면, 초기에는 자카르타(DKI Jakarta)15)를 중심으로 확진자 발생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카르타로부터 가까운 서부자바(West Java), 중부자바(Central Java)로 확산되었고 5월 20일 이후에는 자카르타에서 가장 먼 동부자바(East Java)에서 확진자수가 최고조에 달하였다. 위의 표에서 보라색 꺾은선이다. 그리고 6월 10일 즈음에는 그 밖의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위의 표에서 초록색 꺽은선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불협화음이 발생한 곳은 자카르타뿐만은 아니었다. 다른 지방정부 또는 시에서도 중앙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진단장비의 제공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반면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하지 못하는 한계들을 선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들이 만들어지곤 하였다(Lane 2020). 따라서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을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부정할 수 없는 지점은 인도네시아 조코위 정부가 초기에 코로나19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함으로써 초기대응이 취약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4번째로 규모가 큰 국가이고, 2001년부터 지방자치제가 도입되어 지역정부의 권한이 높은 정치체제이고, 민주화에 따른 정당정치가 활성화된 국가라는 측면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인 조코위는 인도네시아투쟁민주당(Partai Democrat Indonesia-Perjuangan, PDIP)소속이고, 자카르타 주지사인 바스웨단은 현재 특정 소속 정치인은 아니지만 경향적으로 복지정의당(Partai Keadilan Sejahtera, PKS)과 친화적이다. 무엇보다 재선된 조코위와 다음 대선을 출마할 바스웨단의 정치적 이익은 매우 다른 것이며, 민주화된 이후 인도네시아 정치엘리트 충원구조상 지방정부의 주지사, 시장, 군수 등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자원이다. 따라서 코로나19시기 대통령뿐만 아니라 지방정부관련 정치엘리트들은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즉, 전국적 이슈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향후 정치적 영향을 행사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처럼 엄청난 규모의 국가에서 지방의 목소리가 활성화된다고 하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두 번째 쟁점으로는 이슬람적 요소에 관한 것이다. 코로나19처럼 집단감염의 확산이 빠른 경우, 이슬람 종교문화가 매우 ‘집단적’ 또는 ‘공동체적’ 이라고 했을 때 감염의 위험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의 경우도 이슬람부흥집회 행사이후에 감염이 확산되었고, 인도네시아의 경우 PSBB가 발표되었지만, 다수가 모이는 기도모임 등이 여전히 진행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도 함께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 이슬람 시민사회조직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Hasyim 2020). 이슬람 종교조직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사회적 단절로부터 오는 고립감 등 코로나19사태에서 발생하는 소위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정신적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종교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코란에는 tha’un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팬데믹으로 번역되는 용어이고, 무함마드 생애에도 몇 번의 팬데믹이 있었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었는데, 그 해결방법으로 ‘격리’가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과거의 이슬람학자 중에는 Badhl al-ma’un fi fa이 at-tha‘un(Making the Effort to Surpass Plagues)와 같은 책을 쓰기도 하였다. 즉, 코란을 매일매일 읽는 무슬림에게 과거의 기록을 통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사태가 우한에서 발생하자 인도네시아 무슬림사회에서는 이 이슈에 대해서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코로나19에 대한 반응도 이슬람조직마다 달리 제기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반대하고 계속적으로 활동하라는 입장을 제출한 그룹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이러한 입장을 철회하였다.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조직인 나흐다뚤 울라마(Nahdlatul Ulama)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적극적으로 따를 것을 주장했다. ‘NU Peduli COVID-19(NU care for COVID-19)’를 만들어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지침 등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규모의 조직인 무함마디야(Muhammadiyah)는 근대주의 이슬람조직답게 코로나19에 대한 WHO의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일을 한다거나 코로나19로 인해서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들을 돌보는 일들을 진행하였다. 또한 NU와 무함마디야는 라마단 금식기간에 종교적 회합과 르바란 기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지하기로 하였다(Hasyim 2020).16) 인도네시아 종교부는 2월 초 올해에는 메카로 떠나는 성지순례 하지(Hajj)를 가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렇듯 종교가 일상적 삶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이슬람 최대조직인 NU와 무함마디야와 최고의 결정기관인 MUI의 역할을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와 이슬람과의 관계도 여러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 아세안

20세기에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발생한 이래, 1957년 ‘아시아 독감(H2N2)’과 1968년 ‘홍콩독감(H3N2)’ 총 3번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2000년 이후 현재 2020년 단 20년 동안 벌써 5번 있었다고 한다.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2009년 조류독감(NIHI), 2012년 중동호흡기증훈군(MERS), 2013-2014년 에볼라(EVD)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이다. 필자에게 있어 21세기 5번의 팬데믹 중에서 코로나19만큼 큰 충격과 인상으로 남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아직 코로나19도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필자가 잠정적으로 삼고 있는 결론은 “코로나19 대응의 성공은 바로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초기 인식과 초기 대응에 달려있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대응이 ‘팬데믹’ 즉 ‘세계대유행’이라는 차원에서 글로벌(Global)-지역(Regional)-국가(National)-지방(Local) 차원에서 거버넌스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동남아지역에는 아세안이라는 지역협력체가 있어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지역적 대응을 하였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나, 아세안이라는 지역협력체가 회원국 모두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는가를 보았을 때,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베트남은 아세안 의장국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위험성을 처음부터 인식하여 국가적 차원에서도 초기부터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비하면,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아세안 회원국 모두가 이렇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역적 지도력을 충분히 발휘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아세안 회원국마다 지금까지의 코로나19의 결과는 매우 다르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와 확진자가 많았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 중에서도 사망자가 많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상황은 매우 다르다. 아직 인도네시아 경우 확진자가 정점을 찍을 달이 6월로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후 경제적 피폐함은 모든 국가에게 상당하다. 개별 국가에서도 취약한 계층일수록 코로나19에 대한 경제적 피해는 더 크기 때문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도 가난한 국가들의 경우 그 경제적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코로나19로 인한 보건위기가 경제위기로, 이 경제위기가 정치 및 사회위기로 전화되지 않도록 비장한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본다. 특히 아세안은 글로벌 차원과 아세안 회원국의 국가적 차원의 경제적 대응 노력 또한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소개

최경희(kalli@snu.ac.kr)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를 2004년에 취득하고, 한국동남아연구소와 주아세안대한민국대표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비교정치로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네시아지역연구, 아세안연구 그리고 한국기업의 동남아시장진출을 위한 현지화전략·소비시장·소비문화 연구를 진행했고, 현재는 인도네시아 이슬람금융의 정치적 맥락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는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 재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다양성Asia』 2019년 6월호), 『신남방정책과 이민협력』(2019, 이민정책연구원 공동연구), “제6장 아세안: 아세안 중심성과 대화와 협력의 지역협력” 『2019 동아시아 전략평가』(2019, 공동연구),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2기 정부 정책 전망』(2019, 외교부연구과제 연구책임) 등이 있다.

 


1) 본 원고는 ‘코로나19와 아세안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내용을 작성하고 있는데, 코로나19의 상태가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 글을 작성하는 시기인 6월초 상황과 이 글을 웹상에 게시하는 6월말의 상황이 매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독자는 해석해주시기 바란다. 사실과 그 사실을 해석하는 내용이 연동되는 것이기 때문에, 5월말과 6월초 사이에 드러나는 사실이, 6월말에 확연히 달라진다면 해석은 매우 변화할 수 있다. 경향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 시기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해석이 6월말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

2) JHU.https://gisanddata.maps.arcgis.com/apps/opsdashboard/index.html#/bda7594740fd40299423467b48e9ecf6(검색일: 2020년 523)

3) JHU에서 2020년 5월 23일 오후 6시 기준으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동티모르는 24명의 확진자이다. 동티모르는 아직 아세안 회원국이 아니기에 본 원고에서는 논의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4) 5월 22일 미국 ABC 방송과 우리 정부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앵커는 미국과 한국은 1월 20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병되었는데, 현재 두 나라의 결과는 발생률과 사망률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왜 그러한지를 첫 번째 질문으로 강경화 장관에게 하였다.

5) 세계보건기구.
https://www.who.int/dg/speeches/detail/who-director-general-s-opening-remarks-at-the-media-briefing-on-covid-19—20-may-2020(검색일 2020년 5월 24)

6) 현재 아세안 홈페이지에는 ASEAN Health Sector Efforts in the Prevention, Detection and Response to Coronavirus Disease 2019로 되어 있다.

7) 아세안. https://asean.org/storage/2020/02/ASEAN-Chairmans-Statement-on-COVID-19-FINAL.pdf(검색일 2020년 5월 24)

8) 아세안 역내 코로나19를 대응하기 위한 기구들은 ASEAN Center of Military Medicine, Network of ASEAN Chemical, Biological and Radiological Defense Experts, ASEAN Defense Ministers, ASEAN Emergency Operations Centre Network for Public Health Emergencies, ASEAN Risk Assessment and Risk Communication Centre, ASEAN Coordinating Council Working Group on Public Health Emergencies, ASEAN Center for Humanitarian Assistance on Disaster Management 등이다.

9) 본 절에서는 아세안 각 국의 코로나19 현황을 Worldmeters에서 제시하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물론 글의 도입부에서는 JHU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제공했다. 두 기관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다. 하지만 이 사실 자체가 글로벌 차원의 정보수집과 해석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오는 현실이기 때문에 두 기관에서 제공하는 정보자체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사실의 경향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갖고자 한다.

10) 위키페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COVID-19_pandemic_in_Singapore(검색일 2020년 5월 24)

11) 첫 번째 단계는 재개방기(Re-opening), 두 번째 단계는 안전한 이행기(Safe transition), 세 번째 단계는 안전한 국가(Safe Nation)이다. 자세한 조치들은 싱가포르 보건부 사이트를 참조할 것. https://www.gov.sg/article/ending-circuit-breaker-phased-approach-to-resuming-activities-safely(검색일 2020년 5월 24)

12) 싱가포르보건부. https://www.moh.gov.sg/covid-19(검색일 2020년 5월 24)

13) PSBB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주민들의 사회적 활동을 제약하는 것을 말한다. 외출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택에서 근무하고, 종교활동제한, 공공장소 및 공공시설 활동 제한, 사회문화 활동 제한 등이다. 이 장관령의 지정절차는 주지사·군수·시장 또는 코로나19신속대응팀장 제청→ PSBB 지정 관련 팀 검토, 지정 여부 추천(최대 1일내)→보건부장관 결정(최대 2일내)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지침과 내용은 주별로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공지사항에 매우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14) 인도네시아 코로나19에 관한 여러 가지 쟁점 중에 경제적 타격에 대한 대응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국가에 해당되는 문제이고, 그 내용 또한 방대하여 이번에는 지면관계상 제외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당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경상수지 적자는 39억 달러(한화 약 4조 8,000억 원)이었으며, 이는 이전 분기인 2019년 4분기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Emerics 2020/5/22). 즉, 코로나19로 인한 수입 감소 및 국내생산감소로 경제적 어려움이 날로 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와 경제이슈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15) 자카르타의 공식명칭은 Daerah Khusus Ibukota Jakarta이다. 직역하면 ‘특별한 어머니와 같은 도시 자카르타’이고, 자카르타는 특별주로서 인도네시아 수도이자, 34개 주(provisi) 중의 하나이다.

16) 사실 무슬림에게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 것, 금요예배에 참석하는 것 등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종교적 의무가 많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관련된 지역과 사람 등에게는 NU, 무함마디야, MUI에서는 이것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을 제시하여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지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 김희숙 외 5. 2020. “코로나19에 맞선 동남아의 대응: 초기 대처과정의 잠정적 함의,” 『전동연 이슈페이퍼 1』. 전북대학교 동남아연구소.
  • Li-Lian. Sharon Seah. 2020. “ASEAN’s Covid-19 Pandemic Response: Practical Next Steps,” ISEAS Perspective No.47.
  • Lane, Max. 2020. “The Politics of National and Local Responses to the COVID-19 Pandemic in Indonesia,” ISEAS Perspective No.46.
  • Hasyim, Syafiq. 2020. “Covid-19, Islamic Civil Society and State Capacity in Indonesia,” ISEAS Perspective No.39.
  • Saat, Norshahril. 2020. “Covid-19: Challenges for Singapore Islamic Studies Graduates,” ISEAS Perspective No.37.
  • Chairman’s Statement on ASEAN Collective Response to Outbreak of Coronavirus Disease 2019.
  • Declaration of the Special ASEAN Summit on Coronavirus Disease 2019(Covid-19).

22. 코로나19와-아세안-초기-대응의-성과와-함의

이주민의 싱가포르 대 거주민의 싱가포르


2020년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싱가포르는 초기 방역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외국인 이주노동자 사이의 집단감염을 막지 못해 현재 악화일로에 접어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싱가포르 코로나19 사태의 이러한 경향은 다인종 국가 싱가포르에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싱가포르는 제국의 식민지에서 국민국가 시대, 21세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다인종 사회를 형성하여 왔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싱가포르 다인종 사회가 새로운 전환의 시대로 넘어갈 것을 예고하고 있는데, 21세기 싱가포르의 발전과 함께 주변 저개발국가로부터 유입된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과 통합여부가 그 핵심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싱가포르 사회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본 글은 이러한 양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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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서강대학교)

싱가포르는 이주민의 국가인가? 거주민의 국가인가? 간단한 질문 같지만, 생각 외로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다. 국민국가의 국적을 기준으로 보면 싱가포르는 분명히 싱가포르 시민권과 영주권자로 이루어진 ‘싱가포리안(Singaporean)’이라는 거주민의 나라다. 반면, 그 역사를 생각해 보면 1819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이주해 온 다양한 인종의 이주민들의 후예로 이루어진 이주민 DNA가 강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21세기 싱가포르는 새로운 이주민의 비율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국가이기도 한데, 2019년 기준 전체인구 570만 가운데 거주민이 400만, 이주민이 160만 명에 달한다. 이러한 변화는 싱가포르가 제국의 식민지,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형성, 21세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시대를 그대로 거쳐 온 지역이기 때문에 관찰되는 현상이다.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도 싱가포르가 좁게는 동남아시아, 넓게는 아시아, 더 넓게는 글로벌 차원의 무역과 금융, 관광, 이민의 허브로서 특유의 개방성과 이동성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1881년에서 2019년까지의 싱가포르 인구구조 변화
출처: 1871-1931년도 자료는 Brenda S.A. Yeoh, Contesting Space in Colonial Singapore – Power Relations and the Urban Built Environment, Singapore: NUS Press, 2003에서 참조. 1957~2019년의 ‘전체인구 및 비거주민(Non-Residents) 데이터’는 싱가포르 통계청(Department of Statistics, Singapore)에서 참조. 1957-2016 인종별 인구분포 자료는 싱가포르 데이터청(Government of Singapore Data)에서 참조. 2019 인종별 인구분포는 싱가포르 통계청에서 발간하는 Population Trends 2019를 참조하였음.

위의 그래프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인구구조 역시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물론 근본적으로 싱가포르가 꾸준히 다인종 사회를 구성해왔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다만, 같은 다인종 사회라 하더라도 시기별로 그 의미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는데, 영국 식민제도 속에서의 다인종 사회와 ‘싱가포리안’이라는 내셔널리즘을 ‘상상’해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국적 중심의 다인종 사회, 21세기 새로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새롭게 구성된 다인종 사회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시대, 전염병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나 싱가포르는 새로운 형태의 다인종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이 보인다. 본 연재는 이러한 변화양상을 고찰하고, 아시아 이민사 연구에서 이주민과 거주민의 개념이 교차되는 지점을 포착해 보고자 한다.

 

식민시기 싱가포르의 다인종 사회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을 식민화하고 도시를 건설할 때의 특징은 건설된 식민도시가 일정하게 구획되고, 구획된 구역마다 도시 거주민들이 인종적 고려에 따라 분산, 배치된다는 점이다(Metcalf 2013). 영국의 페낭(Penang)과 네덜란드의 바타비아(Batavia, 현 자카르타)가 대표적이다. One Hundred years History of Chinese in Singapore(싱가포르 화인백년사)를 서술한 쏭옹시앙(Song Ong Siang)에 따르면, 싱가포르 역시 같은 케이스에 속한다. 싱가포르의 존재를 동인도 회사에 소개하고 점령을 실행한 스탬포드 래플스(Stamford Raffles)의 초기 도시 구획과 구상은 이후 영국령 싱가포르 도시구조의 기초가 되었는데, 그는 중국인, 인도인, 유럽인, 말레이인, 아랍인, 부기스(Bugis)인 등 다양한 인종들의 생활 구역을 따로 설정하였고, 각 그룹별 대표자(Chief, Kapitan)를 뽑아 내부 통제와 질서유지를 맡겼다.

싱가포르 건설을 위한 잭슨 계획(Jackson Plan), 1828
출처: Mok Ly-ying. 2015. “Chapter 3 Mapping Singapore: 1819-2014.” Visualizing Space: Maps of Singapore and the Region. Singapore: National Library Board의 지도를 토대로 저자 제작.

위의 지도는 래플스의 이러한 비전에 따라 잭슨 장군이 수립한 도시계획이다. 싱가포르 강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중국인과 인도인 커뮤니티를 두었다. 지도의 끌링(Kling)은 말레이인들이 인도에서 건너 온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출리아(Chulia) 역시 인도인들을 가리키는데, 주로 유럽인들이 무슬림 인도인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들은 주로 강변에 그룹을 형성하여 싱가포르의 무역과 도심지를 형성하였다. 반면, “원주민 구역(Native Containment)”은 말레이 인종의 농촌인구를 가리킨다. 래플스는 초기 믈라카(Melaka)로부터 각종 가축의 사육과 농업이 가능한 말레이 현지인들이 싱가포르에 이주하도록 배치하였다. 그 외에 아랍인과 대표적 오랑라웃(Orang Laut 해상민족)인 부기스인들의 공동체 역시 따로 구획하였다. “깜퐁(campong)”은 말레이어 “Kampong”으로 마을(town, village)을 의미한다.

이러한 도시의 구획과 인종별 분산배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싱가포르의 규모가 커지고, 인구가 증가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원칙이었다. 즉, 1819년에서 20세기 초중반까지 싱가포르 속 다인종 공동체는 사회 구조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았고, 영국 식민정부 역시 각 인종 공동체 사이의 통합과 적극적 교류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식민지 행정통치의 편의를 위해 분명하게 분리된 공동체 구획을 선호했다. 위의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종을 기반으로 구획된 공동체들이 싱가포르 강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여기에는 인종간 갈등으로 인해 식민지 내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영국 식민정부의 의도도 있다. 그나마 교류가 일어나는 지역은 활동분야와 영역이 겹치는 중국인과 인도인들 사이의 상업거래 정도였다.

당시 싱가포르에는 전체 인종을 포괄하는 정체성이 있었다기보다 ‘제국(empire)’이라는 우산 아래 각자의 정체성을 개별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주요 기제는 중국인 공동체의 경우 씨족 협회(clan association), 사원, 상업 조직(Kongsi) 등이고, 인도인들의 경우 힌두 및 무슬림 관련 협회, 사원, 지역별 상인조직 등이었다. 말레이인들은 여전히 싱가포르 식민정부의 감시아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술탄을 중심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즉, 이 시기 싱가포르의 다인종 그룹들은 식민지 행정통치 아래 공통된 정체성을 ‘상상’할만한 계기와 동기가 없었다. 게다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인, 인도인과 같은 이주민들의 경우 대부분 여전히 본국과의 연계를 중요시하여 긴밀히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 싱가포르는 ‘이주민’의 싱가포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공화국의 성립과 다인종 싱가포리안의 탄생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60년대가 되면 동티모르를 제외한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이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독립과 건국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직면한 도전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경제적 저개발 극복, 인종적으로 다양하게 분산된 공동체의 통합, 내부 정치적 혼란 정리,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된 냉전기 미국, 중국, 소련의 동남아 개입에 대한 대응 등등 어느 하나 쉬운 문제가 없었다. 유독 동남아시아 지역에 독립전쟁, 내전, 혁명, 반란, 독재 등등의 소요들이 빈번했던 이유일 것이다.

싱가포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1965년 8월 말레이 연방으로부터 축출, 혹은 독립하게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리적 이점과 인구 외에는 아무런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과 ‘제국’이라는 제도 아래 다인종 사회를 구성해왔던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 아래 통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산주의로 인해 격화되던 내부 정치적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독립한 직후인 1966년 인구통계를 보면, 전체 193만 명 가운데, 중국계 147만(76%), 말레이계 28만(14%), 인도계 14만(7%) 명이었다. ‘제국’이라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식민지의 이주민으로서 각자의 정체성만을 유지하면 되었다. 그러나 본국인 중국과 인도, 말레이시아에 각자의 내셔널리즘에 기반 한 국민국가가 성립되고 있었고,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배타적 경계 설정을 특징으로 하는 국가공동체를 설립하면서, 싱가포르 다인종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더 이상 ‘이주민’이 아닌 ‘거주민’으로서 통합의 논리를 마련해야만 했다.

실제 리콴유(Lee Kwan Yew)를 비롯한 PAP(People’s Action Party 인민행동당)의 1세대 지도자들은 싱가포르가 국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Chong 2020). 첫째, 국가공동체로서 싱가포르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다양한 공동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독립한 싱가포르 정부는 과거의 ‘제국’이 그러했듯, 각 개별 공동체들의 권리들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라는 개념이 모든 인종 공동체의 개별적 이해관계를 넘어 가장 우선되는 가치라는 점이다. 때로는 국가의 이익, 이해관계를 위해 개별 공동체의 종교적, 종족적, 계급적, 문화적, 정치적 요구가 부차적인 가치로 배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모순되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이 탈식민시기 독립한 싱가포르 공화국에 주어진 도전이었다. 독립 이후 55주년을 맞은 2020년 현재까지 싱가포르가 추구한 이질적 인종간 사회적 통합의 노력은 바로 이 두 가지 가치 가운데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

흔히 다양한 이민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극단적으로 분류할 경우 그 동화(assimilation)와 분리(segregation)의 정도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드러낸다. 간단하게 샐러드 볼(salad bowl)과 같은 사회인가, 멜팅 팟(melting pot)과 같은 사회인가라는 식으로도 많이 비유되는데, 같은 그릇에 있지만 각각의 채소가 본연의 맛과 식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샐러드와 모든 채소가 그대로 가열되어 하나의 맛을 내는 냄비 속 스튜의 차이를 이민사회에 비유한 것이다. 싱가포르 사회가 상술한 도전에 직면하여 채택한 사회의 구조가 바로 샐러드 볼과 같은 사회였다(Chong 2020).

이러한 싱가포르의 노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1999년 8월 30일 2대 총리(Prime Minister)인 고촉통(Goh Chok Tong)의 연설이다.1) 말레이 무슬림 중심의 NGO 단체인 “MAJLIS PUSAT”에서 행해진 해당 연설에서 그는 국가로서의 싱가포르를 건설하기 위해 각 인종 공동체들이 해야 할 역할을 강조하면서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하였다. ① 인종간 구별 완화(Lowering the Racial Divide) ② 다른 인종간의 연계 강화(Strengthening Ties between Different Races) ③ 의무교육(Compulsory Education) 강화 등이다. 특히 의무교육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초등교육 4학년까지 인종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이 공평하게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빈부차에 따른 교육의 균등한 기회 제공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종간에 다른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격차를 해소하고, 공통의 내셔널리즘을 교육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고촉통 총리는 인종별 특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데, 무슬림들의 교육기관인 마드라사(Madrasah)와 근대적 공교육의 커리큘럼을 조화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실제 싱가포르 의회는 다음 해인 2000년 의무교육법(Compulsory Education Act)을 통과하였고, 그 이후 싱가포르의 모든 어린이는 15세가 되기 전에 6년간의 공립 초등교육을 마쳐야만 했고, 어길 경우 해당 어린이의 부모에게 5,000 싱가포르 달러(한화 434만원)의 벌금이나 1년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었다.2)

이런 그가 강조하는 싱가포르 국가건설과정에서의 인종간 관계는 “겹쳐진 네 개의 원(Four overlapping circles)” 모델이다.3) 고촉통의 국회연설을 통해 개념화된 해당 모델은 아래 그림에서처럼 하나의 원이 하나의 인종을 상징하고, 네 개의 원이 겹치는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싱가포르라는 국민국가가 나아갈 길임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는 1999년 국회연설에서 네 개의 원이 겹치는 부분은 “모든 ‘싱가포리안(Singaporean)’들이 인종과 관계없이 함께 일하고 노는 공간”이라고 하며, “개방되고, 동등한 공간이자 영어를 공용어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공간”이라고 하였다. 물론 겹치지 않는 공간에서는 각자의 영역으로 내부적 관습과 언어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도 언급함으로써 다인종 국민국가인 싱가포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싱가포르 국가건설 과정에서의 인종간 관계 모델4)
출처: 싱가포르 통계청, Singapore in Figures(2019)

지난 2007년 싱가포르의 1대 총리 리콴유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시작했을 때, 우리에게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 요소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동질의 인구, 공용어, 공통의 문화, 공통의 정체성 등 어느 것도 없었다. 우리는 중국 남부, 인도 남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실론, 주변 섬들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 그래서 문제는 과연 우리가 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라고 건국 초기의 고민과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5) 상술한 고촉통의 비전은 초기 싱가포르 국가건설과정에서 건국의 아버지로서 국민국가 싱가포르의 시작을 연 리콴유의 고민을 구체적이면서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답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965년에서 1980년대까지에 해당하는 리콴유의 시대가 싱가포르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음과 동시에 ‘제국’의 행정적 유산을 최대한 국민국가적 시스템에 맞게 조정하고, 내부 다인종 사회를 통합할 만한 각종 기본 조치(다양한 방언을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영어로 정리, 각 인종의 사람들이 골고루 섞이도록 주택정책에 인종적 할당을 책정 등)를 마련한 시기였다면, 고촉통 총리 시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는 무역과 금융의 허브로서 싱가포르의 경제적 성장이 가속화되고,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국민국가적 내셔널리즘의 형성, 즉, ‘싱가포리안’의 탄생을 교육이나 새로운 사회구조의 개념 형성 등을 통해 보다 구체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종간 통합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는 시기로 서서히 인종과 관계없이 싱가포리안들 사이에 계급적 분화가 진행되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HDB로 불리는 공공주택에 거주하는 평균적 싱가포리안을 가리키는 “Heartlander”와 고급 콘도에 거주하며 차를 몰고 다니는 상위계층을 의미하는 “Cosmopolita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한다(Tan 2006). 또한 경제의 성장과 함께 싱가포르 거주민들에게는 인종과 관계없이 “The 5C (현금 cash, 고급콘도 condominium, 자가용 car, 신용카드 credit card, 컨트리 클럽 country club)”가 성공의 지표로 인식되기도 하였다(Chong 2020). 인종을 가리지 않는 물질적 성공에의 열망이 아이러니하게 서로 겹쳐지는 영역(overlapping area)을 넓히는 역할을 한 것이다.

싱가포르 상위계층의 주거공간으로 상징되는 2002년에 완공된 이슌(Yishun)지역 고급콘도
출처: Wiki commons

이러한 과정을 거쳐 21세기 현재 싱가포르 사회에서 ‘싱가포리안’은 매우 당연한 정체성이 되었고, 싱가포르의 거주민들에게 인종과 국적을 분리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제국’의 시대 싱가포르는 이주민의 땅이었지만, 국민국가시대 싱가포르는 거주민의 국가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제국의 우산은 내셔널리즘으로 대체되었고, ‘이주민’은 ‘거주민’으로 변모하였다.

 

21세기 새로운 이주민과 싱가포리안의 혼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열풍이 아시아를 휩쓸게 되는데, 싱가포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싱가포르의 경우 급속히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질서 아래 외부와의 개방성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2004년 2세 정치인으로 총리가 된 리셴룽(Lee Hsien Loong)이 좁은 영토와 한정된 인구로 인한 내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무역과 산업 중심에서 금융과 관광 허브로의 변환을 시도하였다. 대표적으로 2005년부터 실시한 거대 리조트의 설립과 리콴유가 극렬히 반대한 카지노의 설립이 있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아래 싱가포르의 인구구성에도 변화가 발생하는데, 첫째는 위의 그래프에서와 같이 ‘거주민’으로 분류되는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계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인구의 증가에 정체가 발생한 것이다. 즉, 싱가포로의 경제가 성장하고 내부 거주민들의 삶이 풍족해지면서 출생률의 하락이 뚜렷해지고 있다. 두 번째, 역시나 위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체된 거주민의 숫자를 새로운 이주민(Non-residents)으로 채움으로써 전체인구는 오히려 급증하는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확실히 2000년대 이후 싱가포르로 건너 온 새로운 이주민 인구의 변화에는 극적인 데가 있다. 1996년 60만 명이던 ‘비거주민(Non-residents)’의 숫자는 2001년 81만, 2006년 87만, 2011년 139만, 2016년 167만, 2019년 167만 명으로 급증한다.6) 새로운 이주민의 핵심은 증대되는 경제규모를 지탱할 저임금의 노동자들과 숙련 전문가 고임금 노동자들이다. 다만 2006년에서 2011년 사이 급증한 이주민 숫자가 그 이후부터 주춤한 이유는 늘어나는 이주민 때문에 불편해지고,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한 싱가포르 거주민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2007년 굴기(屈起)이후 팽창하기 시작한 중국경제의 영향으로 중국 대륙으로부터 들이닥친 ‘신이민’과 중국계 싱가포리안들 사이의 갈등이 두드러지는데, 각종 SNS상에서 벌어지는 설전들은 중국계 거주민의 ‘신이민’자인 중국 대륙인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싱가포르 정부는 2011년 이전까지 느슨하게 운영하던 취업비자 및 영주권 정책에 고삐를 쥐었고, 그 영향으로 이주민의 증가세가 하락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이주민에 대한 취업비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싱가포르 이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취업이민에 대해 싱가포르 노동부(MOM Ministry of Manpower)가 발급해 주는 비자의 종류와 조건은 아래와 같다.7)

싱가포르 비자 종류와 조건
출처: 싱가포르 노동부

싱가포르 취업비자 정책의 핵심은 노동이민을 온 새로운 이주민들을 국적, 직업, 숙련도, 연봉, 지위에 따라 분류하고, 대우에도 차등을 두는 특유의 위계적 질서에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상위에 위치한 전문가(professional)급 고임금 노동자들과 가장 하위에 위치한 워크퍼밋(work permit)급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와 대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거주민’을 중심으로 한 국민국가를 형성한 싱가포르 사회가 대부분 가사도우미와 하위직 노동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워크퍼밋 보유 이주민들을 어떠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거주민과의 결혼문제다.

싱가포르 노동부가 워크퍼밋 보유자들에게 지급하는 안내책자에 따르면 워크퍼밋 소유자는 싱가포르 안이든 밖이든 싱가포르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와 결혼 할 수 없다.8) 오직 워크퍼밋 운영기관(MOM)의 허가를 받아야만 결혼이 가능하다. 이는 워크퍼밋의 기간이 끝나거나, 취소된 뒤에도 유효하다. 또한 워크퍼밋 운영기관인 노동부의 허가 아래 싱가포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와 결혼하지 않은 이상, 워크퍼밋 소유자는 싱가포르 내에서 임신도 출산도 허가되지 않는다. 이 역시 워크퍼밋의 기간이 끝나거나 취소된 뒤에도 유효하다. 이를 어길 시에는 향후 절대로 싱가포르로 재입국할 수 없다.

이러한 조치는 싱가포르 취업비자 정책이 이주민인 취업비자 보유자들 사이에 계급을 형성해 놓고 이들을 대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임금 노동자의 경우 거주민과 동등한 지위에 두고 있지만, 저개발국 출신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명백히 거주민의 하위에 놓고 있다. 이는 이들 취업비자 보유자들에 대한 주거정책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주거종류 PBD(Purpose-Built Dormitories)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정식 기숙사 건물.
FCD(Factory-Converted Dormitories) 공장이나 창고 건물의 일부(몇 개의 층)를 기숙사로 개조한 경우.
CTQ(Construction Temporary Quarters ) 공사 현장의 한켠이나 건물이 현저히 지어진 경우 지어진 건물의 일부에 임시로 주거를 조성하여 수용하는 경우.
HDB Flats Work Permit 이상의 취업비자 관련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주거 제공. HDB 한채를 그대로 제공. 다만 워크퍼밋 보유자 가운데 말레이인이거나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고 있을 경우에만 렌트가 가능함. 비말레이인 가운데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 방 하나를 렌트하는 것은 가능.
Private Residential premises 고급 콘도, 랜드 하우스, 테라스 하우스, 샵하우스의 거주공간 등. 2019년 5월 15일부터 한 채당 6명까지만 수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
싱가포르 외국인 취업비자 보유자 대상 주거정책
출처: 싱가포르 노동부(Ministry of Manpower, Singapore)

위의 표에서 워크퍼밋 보유자만을 수용하는 세 가지 종류의 주거(PBD, FCD, CTQ)는 외국인 건설직 노동자들을 위한 도미토리(dormitory) 형태의 숙소다. 그 외의 취업비자 보유자들의 경우 공공주택인 HDB와 콘도, 주택 등 다양하게 거주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에서 이주해 온 입주 가사도우미와 건설직 노동자들이 가장 하위의 노동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세기 이주민으로 건너 와 국가를 형성하고 싱가포르의 거주민이 된 ‘싱가포리안’들은 취업의 기회를 찾아 건너 온 새로운 이주민들을 맞아 과거의 그들을 통치한 ‘제국’이 그러했듯 이들을 계급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의 ‘이주민’은 현재 ‘거주민’이 되었고, 다시 저개발국가의 ‘이주민’들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싱가포르 역사
출처: J. E. Abshire. 2011. The History of Singapore. pp.xiii-xvi 연표의 재구성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 준 변화의 가능성

2020년 싱가포르에 거대한 충격을 준 코로나19사태는 새로운 전환의 가능성을 싱가포르 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싱가포르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이 보여주는 특징은 1월 23일 최초발생 이후 초기 ‘해외유입’과 ‘거주민 감염’의 웨이브를 현재(5월 20일) 10명 이내로 잘 관리하고 있는 반면, 도미토리에 거주하는 외국인 건설직 노동자들의 감염확산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5월 20일 현재, 누적 전체 감염자 수 29,364명 가운데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 감염자 수 27,106명(91%)이라는 숫자는 하위계층 이주민에 대한 싱가포르의 무관심과 대응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9) 아래 표에서 보듯, 30만에 달하는 건설직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는 지금의 확산이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예측마저 가능하게 한다. 지금도 여전히 싱가포르에는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 감염자 수가 하루 평균 400-500명 이상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 외국인 노동자 숫자 통계 (단위: 명)
출처: 싱가포르 통계청(Government of Singapore Data)
https://data.gov.sg/dataset/foreign-workforce-numbers-annual?resource_id=e049cd9c-9c81-4e43-857c-e5b462b986d3 (검색일자: 2020.05.08)

이러한 위험성을 인지한 싱가포르 정부의 대응 역시 신속한 측면이 있다. 주로 보건부(MOH Ministry of Health), 노동부(MOM), 이민국(ICA Immigrantion and Checkpoint Authority)를 중심으로 진행된 대응의 특징은 각 도미토리들을 고립화(isolation)시킴과 동시에 내부 노동자들의 이동을 완전히 제한(restriction)하는 것과 수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맞춤형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수십만 명분의 음식을 케이터링을 통해 매일 공급하고, 안전키트를 제공하며, 힌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적 수요에 맞추어 대응할 뿐만 아니라 무노동 상태임에도 그들의 임금을 100% 보장해 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 역시 가능하도록 해 주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드러난 임금체불 역시 해결해 주었다. 싱가포르 거주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과 이들을 위한 지역 NGO 단체의 활동 역시 돋보인다. 무엇보다 기존의 열악한 환경이 아닌 위생과 안전에 만전을 기울인 도미토리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각종 조치 역시 취하고 있다. 확실히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4월 21일 리셴룽 총리의 선언처럼 이들을 “싱가포리안과 같이 대우해 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10)

대부분이 남아시아(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온 힌두교, 무슬림 신자인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싱가포르의 정부의 ‘문화적’ 대응 역시 흥미롭다. 각 종교에 맞게 채식 케이터링을 준비하고, 4월 14일 벵갈(Bengal) 및 타밀(Tamil) 새해에는 싱가포르내 24개 힌두사원의 지원을 받아 힌두식 음식과 예식을 제공해 주었다. 최근에는 4월 24일에서 5월 23일에 해당하는 라마단 기간을 맞아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후르(Sahur)와 부카 푸아사(Buka puasa)를 배급해 주고 있다.11)

물론 싱가포르의 이러한 노력은 싱가포르 사회가 이들 하위계층의 이주민들을 정말로 거주민인 싱가포리안들과 같이 대우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노력은 도미토리에서의 집단감염이 거주민 중심의 지역(community)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비난일색인 서구언론의 집중적 관심에 기인한 바가 크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의의는 싱가포르 정부가 싱가포르의 사회구조 속 저개발국가 출신 이주민들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계기를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는 그 ‘제국’의 시기부터 21세기인 현재까지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인적, 물적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개방성에 기대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과실을 듬뿍 먹고 자란 도시국가다. 그 개방성에 기대어 유입된 새로운 이주민들은 지역 내 도시개발과 인프라 유지에 있어서 노동구조의 최하위를 차지하였고, 싱가포르 경제에서의 비중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싱가포르 사회는 그동안 저개발국가 출신이라는 ‘국적’과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라는 ‘계급’에 기대어 이들을 평가하고 위계질서의 최하위에 두었지만, 2020년 ‘팬더믹(pandemic)’시대를 맞아 이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상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기존 싱가포르는 영구히, 혹은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이들만을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했던 반면에 팬더믹이 싱가포르 사회에 가져다 준 변화는 일시적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저개발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 역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통합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히려 반대의 극단으로 향하는 인식 역시 존재한다. 원래 싱가포르 정부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활동을 최소화하는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 대응을 5월 초까지 실시할 예정이었는데, 수백 명의 일별 감염자 수를 기록하는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그 기간이 6월 초로 연장되었다. 이는 2010년 전후 중국인 ‘신이민’에 대한 혐오가 이들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재현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전자의 경우 싱가포리안들의 경제적 지위를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발생한 반면, 후자의 경우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미얀마 등 저개발국가에서 건너 온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방역 관련 혐오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싱가포르에 불어닥친 ‘전염병’의 유행이 2020년 이후 싱가포르의 다인종 사회 형성에 새로운 전환과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주민’은 ‘거주민’이 되었고, 이들은 다시 받아들인 새로운 ‘이주민’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길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과연 싱가포르 정부와 사회의 선택은 무엇일까?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싱가포르 출신 학자들이 모여 만든 모임인 “Academia.SG”에서는 지난 5월 2일 모임의 주요 싱가포리안 학자 5명(Cherian George, Linda Lim, Donald Low, Kenneth Paul Tan, Teo You Yenn)이 모여 웨비나(Webinar,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세미나)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한 바 있다. 이 세미나에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항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라는 팬더믹이 마치 그 전에는 없던 싱가포르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것 같지만, 사실 이러한 싱가포르 사회의 민낯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이 생존의 목표가 되면서 권위주의적 정치 시스템 아래 꾸준히 축적되어 왔고, 소수의 학자들이 계속해서 지적해 온 점이기는 하다. 다만 그동안에는 이러한 모순이 한 번에 드러날 만한 계기도 없었고, 드러나는 속도 역시 현저히 느렸기 때문에 그리 중요한 이슈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심지어 싱가포르 사회가 그 모순을 전 세계적 시선 앞에 정면으로 마주보게 강제하였다. 관련 학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은 현재 싱가포르는 유례없는 팬더믹 시대를 맞아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고, 포스트 팬더믹 시대 싱가포르 사회의 내부구조는 새로운 전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13)

‘제국’의 피식민 지배계층으로 시작한 싱가포르의 이주민 중심 다인종 사회는 독립과 함께 시작된 국민국가시대를 맞아 내셔널리즘을 기반으로 한 거주민 중심의 다인종 사회로 전환하였고, 이후 21세기에는 저임금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주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예상치 못한 팬더믹 시대를 맞이한 싱가포르 사회는 다시 한 번 ‘거주민’과 ‘이주민’이 교차하는 기로와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저자소개

김종호(kimjongho@sogang.ac.kr)
서강대학교 조교수다. 싱가포르 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근현대 시기 화교화인 네트워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해당 분야 관련 몇몇 논문을 출판하였다.

 


1) Speech by Prime Minister Goh Chok Tong, “Role of Community Organisations in Building The Singapore Nation”, Singapore Government Press Release, 30 October 1999

2) “MOE accepts panel’s recommendations on compulsory education for special needs children”, Straits Times, 17 November 2017 (검색일자: 2020.05.15.)

3) Goh Chok Tong, Speech on Singapore 21 Debate in Parliament, Parliament Debates, 5 May 1999, col.1482

4) CMIO 가운데 “Others”는 주요 3인종을 제외한 기타인종들을 의미하며, 대표적으로 “유라시안(Eurasian)”이 있다. 이들은 식민시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인들 가운데 현지 정착한 이들의 후예들을 가리키는데, 대부분 현지에서 결혼하여 혼혈집단적인 성격이 강하다.

5) “Excerpts from an interview with Lee Kuan Yew”, The New York Times, 29 August 2007 (검색일자: 2020.05.16.)

6) Department of Statistics, Singapore

7) Ministry of Manpower, Singapore

8) “A Guide for Foreign Workers”, (English version), Ministry of Manpower, Singapore

9) Situation Report, Ministry of Health, 20 May 2020

10) 2020년 4월 21일 리셴룽 총리의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브리핑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ihgkIQ8S1w)

11) 사후르는 라마단 금식기간 동안 해뜨기 전에 먹는 식사를, 부카 푸아사는 해가 진 후에 먹는 첫 식사를 가리킨다.

12) 개인적으로 이러한 비난일색의 서구언론의 태도 역시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바탕으로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쓰여진 의도가 보여서도 그렇고, 그 이면에 있는 다양한 현상들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다. “Singapore’s cramped migrant worker dorms hide Covid-19 surge risk”, Guardian, 17 April 2020 (검새일자: 2020.05.01.); “How Singapore Flipped From Virus Hero to Cautionary Tale”, Bloomberg, 21 April 2020 (검색일자: 2020.05.05.); “Singapore’s migrant workers are suffering the brunt of the country’s coronavirus outbreak”, CNN World, 25 April 2020(검색일자: 2020.05.05); “’We’re in a prison’: Singapore’s migrant workers suffer as Covid-19 surges back”, Guardian, 23 April 2020(검색일자: 2020.05.05.); “Singapore Is Trying to Forget Migrant Workers Are People”, Foreign Policy, 6 May 2020(검색일자: 2020.05.11.); “Coronavirus: Singapore’s migrant workers ‘living in fear’”, BBC News, 22 April 2020(검색일자: 2020.05.12.)

13) 최근 싱가포르 내부 학계와 정부 차원에서 이미 비슷한 논의를 시작했다. 즉, 싱가포르가 과연 이 낮은 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핵심은 경제적 개혁을 통해 이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낮추고 그 공백을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각종 기술적 혁명이나 낮은 임금의 거주민으로 메우자는 의견과 그럼에도 이들은 필요하고 코로나 사태 이후의 유지비용 역시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 사이의 대립이다. 이제 시작단계라 단정할 수 없지만, 확실히 싱가포르 사회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lvin Ong, “Rethinking costs and the social impact”, Academia.SG, 22 May 2020 (검색일자: 2020.05.22); Pang Eng Fong and Linda Lim, “Labour in Singapore’s post-COVID-19 economy”, Academia.SG, 2 June 2020 (검색일자: 2020.06.02)

 


참고문헌

  • Chong, Terence eds., 2000. Navigating Differences: Integration in Singapore, Singapore: ISEAS-Yusof Ishak Institue
  • Metcalf, Thomas R. 2013. “Colonial Cities.” The Oxford Handbook of Cities in World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 Song Ong Siang. 1923 One Hundred Years History of Chinese in Singapore. London: John Murray
  • Tan, Serene and Brenda S. A. Yeoh. 2006. “Negotiating cosmopolitanism in Singapore’s fictional landscape”. Cosmopolitan Urbanism, Jon Binnie eds., Psychology Press

21. 이주민의-싱가포르-대-거주민의-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청년세대, 현실의 문제와 새로운 희망 사이에서


국제화된 도시인 쿠알라룸푸르의 화려하고 분주한 모습과 2018년의 정권교체가 보여준 정치적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의 청년 세대는 높은 실업률과 빠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은 말레이시아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이한 세대와 계급 간의 언어, 문화, 가치관 차이를 부각시킨다. 국제화와 고학력의 시대의 청년이 직면하고 있는 제약을 간과한 채 이들을 계몽의 대상이자 정치적 자원으로 보는 노년과 중년 기득권층의 입장은 청년들이 사회의 새로운 주체로 자리 잡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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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연(서울대학교)

정권교체와 청년 세대의 새로운 규정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조밀하게 서있는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의 화려한 경관, 그리고 오래된 골목에 남아있는 광동식 상점주택의 빛바랜 모습은 서로 대비를 이루면서 이 도시가 거쳐 온 역사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한 때 중국에서 온 주석광산 노동자와 상인들이 주류를 이루던 쿠알라룸푸르는 점차 영국 식민통치의 행정중심지로 변모하였고, 1957년 독립 이후에는 국가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수많은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매일 아침 도심으로 출근하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여주듯이, 말레이시아는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말레이-무슬림을 비롯하여, 중국계, 인도계, 소수 토착종족 등으로 이루어진 다언어, 다종족, 다종교 사회이다. 또한 동남아시아에서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산유국인 브루나이에 이어 세 번째로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이며, 석유, 고무, 야자, 목재와 같은 천연자원의 수출국인 동시에 세계 전자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지만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도시 지역에서는 영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국제학교의 숫자와 종류도 많아서 한국인들에게 영어교육을 겨냥한 조기유학과 어학연수지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 도심이 보여주는 다양성과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독립 이후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의 정치는 매우 정체되어 있었다. 집권을 위해 결집한 종족정당의 연합체인 국민전선(Barisan Nasional:BN)은 1957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연립여당의 지위를 유지하며 말레이 정당인 암노(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UMNO) 출신의 총리를 배출했다. 그러나 2018년 5월의 제14대 총선에서는 야당연합인 희망연대(Pakatan Harapan:PH)가 승리를 거두며 말레이시아에서는 독립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이는 구세대 정치가 종식되고 새로운 세대의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청년층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선거 후 내각에는 다양한 종족 출신의 젊은 정치인들이 다수 임명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2018년에 새로 취임한 총리는 암노(UMNO) 출신으로 1981년에서 2003년 까지 구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을 이끌며 22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던 올해 94세의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mad)이다.

희망연대(PH)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누르고 정치적 장악력을 강화하려던 마하티르의 시도가 2020년 2월 23일 이후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3월 2일에는 무이딘 야신(Muhyiddin Yassin)이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종족으로 구성된 여당연합인 희망연대(PH)는 붕괴하고 대신 말레이 정당연합인 국민연대(Perikatan Nasional:PN)가 집권하게 되었다. 선거나 의회를 통하지 않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의해 구성된 새 정권은 아직 정당성 논란과 정치적 분쟁에 휩싸여 있으며, 이 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가 말레이시아의 세대 구분과 관련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따로 언급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대표적 구세대 정치인과 손잡은 상황에 대한 항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정권교체 직후부터 청년층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가 추진되었다. 기존에 “청년(youth;belia)”을 15세에서 40세 사이로 정의하고 있던 말레이시아의 관련법은 2019년 7월 3일 개정을 통해 청년의 범위를 15세에서 30세까지로 좁혔다. 법개정은 청년을 위한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청년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2019년 7월 16일 하원의회에서는 투표 연령을 기존의 21세에서 18세로 하향조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여야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개정된 두 가지 법률은 2021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2018년 5월 총선에 승리하여 독립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에 성공한 희망연대(PH)의 핵심공약이었다. 또한 법 개정과정에 야당 또한 기꺼이 동참하였다는 것은, 젊은 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정당 및 정치 세력의 영향력 유지와 확장에 핵심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말레이시아의 정치사회적 흐름 속에서 현 청년 세대를 구성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이며 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집권에 드리운 구세대의 영향력은 청년 세대에게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2019년 제14대 총선에서 희망연대(PH)의 승리를 기뻐하는 젊은 지지자들
출처: https://www.todayonline.com/commentary/what-effect-did-social-media-have-malaysian-election-result

 

서로 다른 3세대의 “청년”: 청년의 역사성

최근의 청년 관련법 개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법률에서는 청년을 출생연도와 나이를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를 구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세대 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경험과 가치관의 차이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역사적 계기들을 짚어보아야 한다. 또한, 현재의 청년세대를 평가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청년기를 규정했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 청년 엘리트: 현재의 노년 세대

정치학자인 베네딕트 앤더슨은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던 동남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성장하여 독립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청년(youth)” 세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 청년을 이전 세대와 구분 짓는 데 핵심적 요소는 교육이다. 동남아의 식민지에서 민족주의를 주도하게 된 청년은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동시에 유럽식 교육을 받은 첫 번째 세대로, 부모 세대 그리고 식민지의 대부분 동년배 집단과 언어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구분”된다(Anderson 1991:119).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의 독립은 영국 정부와 식민지 토착 관료들의 평화적 협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독립 이후 정치를 주도하게 된 것은 토착민인 말레이 중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 그리고 이들과 정치적으로 손을 잡은 중국계와 인도계 엘리트였다. 말레이시아 독립을 주도한 당시의 “청년”, 정확히는 청년 엘리트를 그 이전 세대 및 식민지의 대부분 젊은이와 구분한 것은 바로 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영국식 교육과정 그리고 이들이 교육과 일상의 언어로 사용한 영어였다.

말레이시아 3세대 청년 구분
©Diverse+Asia

말레이 민족주의 시대의 청년: 현재의 중장년 세대

1957년 말레이시아 독립 이후 새로운 청년 세대의 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교육 기회 대중화 및 공교육의 팽창과 더불어 이루어진 교육제도의 탈식민지화와 토착화이다. 독립 직후에 식민지 교육체계는 폐지되지 않고 오히려 성장하였다. 오랜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영어로 서구식 지식을 배우는 것이 취직과 출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이 널리 펴져 있던 중에, 사회 불안을 우려하여 영어 학교의 숫자를 제한하던 식민정책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1969년에 일어난 유혈 폭동을 계기로 급격히 변화하였다. 식민지 계급 불평등의 심화와 도시 대중의 종족 갈등이 초래한 폭동을 겪고 난 후, 정치권력을 주도하는 말레이 엘리트들은 말레이 중심으로 교육제도를 대폭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교과과정은 영국과 유럽이 아닌 말레이시아에 관련된 지식으로 교체되었고, 특히 이슬람을 비롯한 말레이의 역사와 문화가 강조되었다. 또한, 영어 학교들은 점차로 교육의 언어를 영어에서 말레이어로 전환해야만 했고, 중국어와 타밀어 학교에서도 말레이어를 의무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50대 후반 이하의 세대는 출신 종족과 관계없이 적어도 기본적인 말레이어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정부는 국민의 다수를 구성하는 말레이의 지지를 얻고자 대학입학과 기업 채용에 말레이 쿼터제를 도입하고, 당시에 말레이 청년의 사회개혁 움직임을 주도하던 이슬람 부흥운동 세력이 교육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였다.

1970년대 이후의 변화를 통해 말레이시아가 말레이-무슬림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기성세대가 된 식민지 청년 엘리트와 새롭게 등장한 청년 세대 사이에 극명한 언어와 문화의 간극이 생겨났다. 당시 청년 세대에게 기성 엘리트들은 식민지배에서 유래한 서구식 문화와 경제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누리는 특권층으로 비추어졌다. 반면 기존의 서구화된 엘리트들은 말레이시아를 휩쓴 사회문화적 변화의 물결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토착화된 교육제도에 대한 불신은 극도로 심각했다. 이들이 보기에 말레이어는 결코 가치 있는 지식의 언어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없는 사람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자격이 없었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자격 없는” 말레이-무슬림들로 가득 차 버린 대학의 캠퍼스와 정부 부처 및 관공서는 이들에게 개탄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 교육기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기존 엘리트들은 자녀들을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로 유학 보내기를 선호하였다. 그러나 기존 엘리트들의 경멸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부터 등장한 새로운 청년 세대는 점차 사회의 주도권을 획득하게 된다.

고학력과 국제화 시대의 현재 청년 세대

1990년대 중반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변화는 1970년대 이후 세대와는 또 다른 성격의 청년 세대를 만들어냈다. 초중등 교육의 틀이 앞의 시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가운데, 세대 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요인은 대학교육의 대중화와 국제화였다. 당시까지 대학교육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소수의 국공립대학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6년에 사립고등교육기관에 관한 법률(Private Higher Educational Institutions Act)이 통과되면서 2000년부터 신설 사립대학을 통한 고등교육의 기회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17세에서 23세 국민의 대학진학률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14%였던 것이 2019년에는 44%로 증가하였으며,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인구는 130만에 달한다(New Straits Times, 2019/05/14).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1970년대 이후 국공립대학에서 시행된 말레이 입학정원 쿼터제로 인해 기존 대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국계와 인도계의 국내 대학진학 기회는 매우 축소되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해외로 유학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쿼터제의 장벽에 대학진학이 가로막힌 비(比)말레이 청년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점차 심화하였다. 또한, 토착화된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을 품고 해외 유학길에 올랐던 상류층과 엘리트 자녀들의 상당수가 1990년대 후반 아시아를 강타한 경제 위기로 인해 폭등한 유학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이들 중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교육제도를 불신한 정부가 해외 유학파 엘리트를 양성을 위해 세금으로 지원하던 정부 장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는 사립대학의 설립을 통해 대학교육을 대중화함으로써 종족에 따른 대학진학 기회의 차등화가 초래한 사회적 갈등의 완화를 시도하였다. 한편 해외 대학 분교 유치로 대표되는 대학교육의 국제화는 엘리트와 부유층의 해외 유학 의존에 따른 “국부유출”을 줄이고, 영어권 국가 유학을 선망하는 아시아의 학생들을 끌어들여 교육산업을 육성하는 수단이 되었다. 대학교육의 대중화와 국제화 시대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바로 현행 법률(2021로 예정된 개정법 적용 이전)에 따라 “청년”으로 정의되는 19세에서 40세의 국민이다.

그렇다면 이제 노년에 이른 식민지 청년층, 그리고 중년이 된 그다음 세대 청년층은 2000년 이후의 청년 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현재의 청년들이 말레이시아 역사상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세대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대부분의 국공립 교육기관에는 여전히 1970년대 이후 세대 말레이-무슬림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가운데, 식민지 엘리트와 그 후속세대 중 비말레이 중산층은 공교육의 탈이슬람화와 영어 재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국제화 담론을 새로운 논리적 근거로 삼아 탈식민지 시기 교육제도 재편의 의의를 부정하는 식민지 엘리트의 목소리가 커지는 동시에, 이에 대한 후속세대의 반감과 저항이 말레이를 중심으로 심화하면서 세대와 종족 사이에 문화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의 정치경제적 맥락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변화의 결과, 즉 대학교육의 대중화와 국제화가 실제로 청년 세대의 삶에 끼치는 영향일 것이다.

숫자로 알아보는 말레이시아 청년
출처:https://www.youthpolicy.org/factsheets/country/malaysia/
2018년 총선과 청년의 정치적 역할

1957년부터 2018년까지 집권한 국민전선(BN)은 말레이시아의 대표 종족인 말레이, 중국계, 인도계를 각각 대변하는 UMNO, MCA(Malaysian Chinese Association), MIC(Malaysian Indian Congress) 중심으로 구성된 정당연합체였다. 국민전선의 연립정권은 다종족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치구조라는 평가와 더불어, 식민지 시대 토착민과 이주민 분리통치(divide-and-rule)의 유산인 다중사회(plural society)의 잔재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 이후 말레이시아에서는 교육제도를 포함한 사회 모든 분야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이를 통해 식민지 청년과는 다른 새로운 청년 세대가 등장하였지만, 세대의 교체가 정권의 교체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국민전선을 주도한 말레이 엘리트 정당 암노(UMNO)는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말레이 민족주의와 이슬람 부흥운동 세력까지 적극적으로 포섭하면서 집권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2018년 희망연대(PH)의 총선 승리와 독립 이후 첫 정권교체는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청년 세대에게 과연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가?

청년층을 겨냥한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희망연대(PH)의 승리는 청년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노년과 장년 세대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 바로 다음 해에 이루어진 청년 관련 법률의 개정은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청년층 인구는 말레이시아 전체인구 및 유권자 집단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17년 말 투표인명부에 등록된 유권자 1,870만 명 중 40% 이상이 21세에서 39세로 60세 이상 유권자의 두 배를 넘었다. 적어도 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지난 선거에서 노년층 유권자의 비중은 크게 줄어든 반면, 장년층과 청년층이 거의 비슷한 비율을 차지했다(BBC, 2018/05/05). 다음 총선 이전에 투표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된다는 점과 15세에서 29세 연령대의 숫자가 가장 많은 현재 인구분포를 동시에 고려하면, 다음 선거에서 청년 유권자의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법안에 여야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은 투표권의 확대라는 원칙적인 명분 이외에도, 젊은 유권자들을 지지층으로 끌어 모으는데 자신들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여야의 각자 다른 셈법도 작용한다.

희망연대(PH)의 경우, 새로운 정치 질서에 대한 청년들의 열망이 다음 선거에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2007년 이후 젊은 도시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키워왔던 버르시(Bersih)와 같은 정치개혁 운동은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되었다. 국민전선(BN)의 60년의 장기집권이 만들어낸 문제들이 상당히 해소될 때까지 희망연대(PH)가 지닌 정치개혁의 동력은 청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기존의 말레이 여당인 암노(UMNO)와 보수적 이슬람 정당인 빠스(Parti Islam Se-Malaysia:PAS)는 다음 선거에 참여할 될 청년 유권자층에서 말레이-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종족별 인구 구성 비율의 변화를 정권 재획득의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 유권자 수의 증가와 청년층에 대한 각 정당의 전략적 접근이 곧 청년층의 적극적 정치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총선 결과가 정치적 세대교체로 해석될 여지는 충분하지만, 선거 이전에는 청년층이 정치적 무력감과 좌절감을 대표하는 세대로 여겨졌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17년 말 전체 유권자 2,250만 명 중 약 16%인 380명이 투표인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이 중 3분의 2 이상이 20대였다(BBC, 2018/10/26). 여기에는 국민전선(BN)의 60년 장기집권을 경험하면서 정치개혁 운동을 통해 정권을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 실제로 지난 선거에서 야당 연합의 승리는 기존 말레이시아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차마 기대할 수 없었던 매우 놀라운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적 무력감 이외에 구체적인 규제들도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어렵게 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대학교 및 대학에 관한 법률(Universities and University Colleges Act:UUCA)”을 근거로 국공립대 대학생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해 왔다. 실제로 2010년 네 명의 국공립대 학생들이 보궐선거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뒤, 헌법재판소는 대학생 정치참여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생들은 합법적 정당 이외의 정치조직에 참여할 수 없으며, 합법적 정당이라도 대학에 지부를 설치할 수 없다. 또한,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전선(BN)은 효과적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였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공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통로는 막혀있었다.

언론의 자유와 청년들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정책을 우회하여 정치적 견해를 소통하는 창구이자 청년의 정치적 연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매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이다. 말레이시아의 3,500만 인구 중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2,200만 명가량이며 이 중 88%에 달하는 25에서 34세 사이의 인구는 매일 인터넷에 접속한다(Star, 2018/07/09). 희망연대가 총선에서 승리하게 된 데는, 기존 정부 여당에 대한 청년들의 절망감에 호소하는 것과 더불어, 정치조직 활동과 언론자유의 제약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여 청년 유권자들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선거운동이 청년층의 지지를 당연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전선(BN)의 소셜미디어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근본적 이유는 홍보전략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들의 정치적 메시지가 청년층으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끌어내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희망연대(PH)가 90세가 넘는 전 총리 마하티르를 대표로 내세웠을 때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투표망치기(#UndiRosak)” 캠페인은 청년을 지향한다는 정치개혁 운동의 선거 승리가 대표적 노년 정치인의 총리 취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의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2020년 현재의 시점에서 돌이켜 볼 때 정권교체와 더불어 청년 세대를 위한 그리고 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정치의 영역은 확대되었는가? 다양한 청년 관련 법률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대학생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법률은 폐지되지 않고 있으며, 총리를 비롯한 노년의 기성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정치판에서 청년층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다. 그나마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정치인들의 대다수는 유력한 기성정치인의 가족이거나 또는 기성정치인을 후견인으로 둔 사람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개혁을 지향하도록 이끈 현실의 문제, 특히 이전 세대보다 높아진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으로 청년들이 자립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시장의 구조적 특성, 그리고 일할 곳이 없는 청년들

영국의 말레이시아 식민지배가 끝난 1957년 이후에도 전형적인 식민지 경제체제, 즉 외국인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수출지향적 플랜테이션 경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독립 국가 국민의 대부분이 플랜테이션 경제의 유지에 동원되거나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가운데, 농촌에서는 토지소유권을 상실한 농민들, 특히 말레이의 빈곤이 심각해졌으며, 도시에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무원이나 전문직 또는 외국인 자본과 연관된 관리직 등 소위 도시의 좋은 직장은 영어로 교육받은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었다.

양극화된 식민지 경제사회구조를 돌파하는 계기가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말레이시아의 본격적 산업화이다. 정부는 경공업 중심의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s:FTZs)를 조성하는 한편, 1971년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NEP)을 도입하여 국가의 산업화와 말레이 고용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였다. 자유무역지대에 공장을 건설한 다국적 전자 기업들은 저임금 생산직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였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농촌 출신의 젊은 말레이 여성들이었다. 당시 해외직접투자(FDI) 기업은 1972년 정부가 도입한 “고용요구사항(employment requirements)” 즉 말레이시아 국민, 그중에서도 부미뿌뜨라(bumiputera)로 불리는 말레이를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레이시아에는 해외직접투자가 집중되는 공업단지와 도시지역이 가난한 농촌 지역의 젊은 말레이 인력을 끌어들이는 고용구조가 형성되었다(Ong, 1987). 1970년대 이후 대학 신입생 선발과 공공부문의 채용에 적용된 말레이 쿼터제에 힘입어 정부기관과 공립학교 그리고 공기업에 근무하는 말레이 중산층이 성장하였지만, 소수로 구성된 고용 위계의 최상층에서는 여전히 영어를 사용하는 서구화된 도시 엘리트가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대에 말레이시아가 세계 전자제품 생산의 중심지로 떠오른 이래 전자 제조 분야의 저임금 일자리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청년층 고용 규모는 1990년대 아시아 경제 위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축소되었다. 정부는 경제 위기 상황을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를 통해 돌파하려 하였고, 이를 위해 다국적기업의 내국인 고용요구조건을 완화시켰다.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의 투자 규모가 더욱 늘어났지만, 새로운 투자는 말레이시아 청년들이 감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낮은 조건의 저숙련 저임금 노동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말레이시아의 고용시장에서 주변 저개발국 출신 노동자들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말레이시아의 외국인노동자 의존도는 약 40%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네팔, 방글라데시, 버마, 인도 등의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이 전자 산업 생산노동자의 대략 40%에서 많게는 60%까지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Verité, 2014). 그렇다면 공장에서 일하던 말레이시아 청년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후속세대의 청년들은 이제 넓어진 대학의 문을 통과하여 더 나은 대우를 보장하는 새로운 산업 분야의 직장을 찾아가고 있는가?

최근에도 말레이시아 정부는 기업 친화적 경제정책과, 높은 수준의 인프라, 양질의 인력 수급 능력을 내세우며 아세안 국가 중에서 가장 활발하고 성공적으로 해외직접투자(FDI)를 유치하고 있다고 선전하였다. 정부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국민총생산(GDP) 등의 국가경제 지표가 개선될 것이며 고용효과도 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2019년 상반기에 유치한 해외직접투자가 118억 달러에 이르며, 이 중 제조업 분야에 투자된 79억 달러가 3만 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하였다(New Straists Times, 2019/08/20). 그러나 전자제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넘어 전자 상거래와 첨단 지식산업 및 4차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고학력자를 위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정부와 기업의 화려한 수사가 말레이시아의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근 말레이시아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청년 실업의 문제이다. 말레이시아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 10여 년간 서서히 증가해 왔으며, 2019년에는 10.9%로 전체실업률 3.3%에 3배를 넘어서게 되었다. 미취업 청년은 전체 미취업자 50만 4천 명의 약 60%에 다다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대졸자 실업 문제로, 2018년 말 기준 전체 실업자의 41.1%가 대졸자이며 그 숫자는 20만 4천 명에 달한다. 이미 취업한 대졸자의 경우도 상당수는 대학 졸업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종에 고용되어 있다. 최근 20년간 말레이시아에서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말레이시아 고용시장은 구조적으로 많은 수의 대졸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정부가 내세우는 해외직접투자의 고용효과는 여전히 저숙련 저임금 인력에 의존하는 노동집약적 제조업, 특히 전자 산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2019년 고용시장에 나온 147만 건의 일자리 중 86.9%가 저숙련 직종에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겨우 4만 7천 개의 일자리가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분석가들은 이를 고용시장과 교육 시장의 “구조적 불일치”와 대졸자의 “과잉공급”으로 요약한다(Malay Mail 2019/09/10). 2000년 이후 갑자기 넓어진 대학의 문을 통과하여 수년간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 청년들은 졸업 후에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저임금 일자리 중심의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살길을 찾아가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집중된 도시를 중심으로 물가와 생활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도시지역의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선다. 주택가격 또한 급상승하는 가운데,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월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자립적인 삶을 꿈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도시 청년은 그냥 부모랑 살고 농촌 청년은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도 한다. 2018년 총선에서 희망연대(PH)는 청년층의 표를 겨냥하여 월급 2500링깃(약 73만원) 이상의 일자리를 100만 개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는 도시지역의 1인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말레이시아의 노동시장 구조를 고려하면 그나마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1991-2019년 동안 말레이시아 15-24세 청년 실업률 추이
출처: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L.UEM.1524.ZS?locations=MY

 

기성세대의 훈계: 청년들이여 각성하라!

지난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청년 세대의 정치참여를 통한 사회개혁은 현재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진단하고 개선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제의 원인이 다름 아닌 청년들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총리에 재취임한 올해 94세의 마하티르를 포함한 노년의 베테랑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경제인들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직업에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려는 태도, 취업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 그리고 전문지식의 획득에 필요한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1970년대 이후 공교육의 토착화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대학교육의 대중화가 전반적인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대규모의 청년 실업의 문제를 고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능력한 오늘날의 청년 개개인이 적극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극복해야 할 것으로 취급한다. 구세대 엘리트의 사회 경험과 문화를 기준으로 청년 세대의 자격과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는, 세대 간에 존재하는 권력과 가치관의 차이를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효과를 지닌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 고용자 연합(Malaysian Employers Federation: MEF) 측은 고용시장에 일자리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저임금 직종을 기피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관리직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고용자로서는 구직 수요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Asean Post, 2019/12/23). 이러한 주장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낮은 임금과 식민지 채무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열악한 노동계약 조건이다.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일자리는 내국인 청년들에게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또한 전 재무부 장관 뚠 다임 자이누딘(Tun Daim Zainuddin)은 2019년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young people)의 영어실력이 지금처럼 형편없다면 말레이시아는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없을 것이라면서 “대부분의 대학졸업생들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이게 문제다. 반면에 지식은 영어다.”라고 주장했다(Today Online, 2019/12/23). 그의 언급은 식민지시기에 태어나 영어 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유학을 거친 엘리트 법조인이자 관료로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언어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즉 가치있는 지식의 습득과 깊이 있는 사고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50년 전에 영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1970년대 이후 공교육은 말레이어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장은 식민지 교육을 받은 노년층 엘리트 세대가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내리는 훈계 정도로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총리인 마하티르를 비롯한 노년층 엘리트 세대의 일부가 아직도 국가의 정책을 수립하는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규정하는 언어와 문화적 특성 및 가치관이 후속세대의 최상위 엘리트층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하티르가 최근 교육부 장관을 물러나게 하고 교육정책 수립의 전면에 나서면서 여당 연합의 핵심 구성원들과의 상의도 없이 서둘러 추진한 것은 바로 2003년이 이미 자신이 도입했다 실패한 정책을 되돌려 놓는 것, 즉 공교육에 영어를 재도입하는 작업이다. 총리의 자리를 되찾은 그에게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직장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고용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려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청년 실업의 핵심에 놓여있는 명백하고도 확고한 진리일 뿐이다.

청년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기성 정치리더들의 말레이시아 개발계획
출처: https://www.malaysiakini.com/news/504927(2019/12/26)

 

기성세대의 권력 구도와 청년의 미래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은 말레이시아의 청년층이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중시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계급에 따른 언어와 가치관의 차이도 작동한다. 정권교체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진 정치구도에도 구세대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청년층은 내부에 존재하는 종족, 계급, 지역, 언어의 차이를 넘어 동세대의 대다수가 처해있는 험난한 객관적 조건을 타개해 나갈 정치적 원동력을 찾아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새로운 정부의 정책추진 동기를 발판삼아 청년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히 “청년”의 법률적 나이를 줄이고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조정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청년들의 입장이 사회에서 더 잘 대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직접 몸으로 겪을 필요가 없는 엘리트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절망과 분노를 선거의 득표수로 전환시킬 전략을 구상하지만, 어떠한 새로운 정치적 노선과 전략도 이에 부합하는 현실의 변화가 없이는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극심한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청년 세대의 다수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순간, 이전 정권을 겨누었던 화살은 새로운 여당인 희망연대(PH)를 향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급작스런 정권교체와 심화하는 미래의 불확실성

이 글의 초고가 완성된 직후, 2018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희망연대(PH)는 급작스럽게 해체되었고 3월 2일에는 마하티르를 대신하여 새로운 총리인 무이딘 야신(Muhyiddin Yassin)이 취임하였다. 독립 후 최초의 정권교체를 성사시켰던 희망연대를 갑자기 무너뜨린 것은 개혁 의도의 진정성과 정책 실행능력에 실망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2년이 채 못 되는 희망연대의 집권 기간은 그러한 목소리가 형성되어 정치적 압력으로 성장할 만큼 길지 않았다. 청년 세대의 지지를 등에 업은 한편으로 노회한 정치 베테랑 마하티르의 돌파력을 앞세웠던 다종족 정치연합을 주저앉힌 것은 결국 말레이 민족주의를 앞세운 기성 정치인들의 조직적 저항이었다. 새로 구성된 집권연합 국민연대(PN)는 희망연대(PH) 속해있던 말레이 정당 PPBM(Parti Pribumi Bersatu Malaysia)과 구 말레이 여당인 암노(UMNO), 그리고 말레이-이슬람 정당인 PAS, 이렇게 세 개의 말레이 정당이 주도하고 있다. 신임 총리 무이딘은 1970년대와 80년대 말레이 우대정책을 기반으로 성장한 말레이 민족주의 성향의 중장년층을 대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를 급작스럽게 휩쓴 정변이 어떠한 방식으로 마무리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심각한 경제 침체에 전염병까지 번지는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정부가 현시점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중장년이 된 말레이 민족주의 성향의 1970-80년대 청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권력투쟁에 담보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말레이시아의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품고 있는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저자소개

최서연(seoyeonc@snu.ac.kr)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사이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말레이시아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지역의 사회와 문화에 관련된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제도와 정책에 작용하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영향력 및 교육을 매개로 한 세대, 계급, 종족 간의 갈등 상황에 관심이 있다. 저술로는 <“영어 중시 교육정책의 계층적 권력효과: 말레이시아 도시 저소득층 학생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동아연구』 제31권 2호>와 <『말레이세계로 간 한국기업들』 (공저)>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황인원. 2018. “말레이시아 선거권위주의 체제 붕괴의 정치적 함의: 2018년 14대 총선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연구』 28권 3호, 213-261.
  • Anderson, Benedict. 1991.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London and New York, Verso.
  • Arrifin, Eijas. 2018 “Who speaks for the youth of Malaysia?” The Asean Post (October 26).
  • Ong, Aihwa. 1987. Spirit of Resistance and Capitalist Discipline: Factory Women in Malaysia. Albany, SUNY Press.
  • Mayuri Mei Lin. 2018. “Malaysia’s youth have power they won’t use” BBC News (May 5)
  • Tam Siew Yean ed. 2013. Internationalizing Higher Education in Malaysia. Singapore, Institute for Southeast Asian Studies.
  • Verité. 2014. Forced Labor in the Production of Electronic Goods in Malaysia

20. 말레이시아의-청년세대-현실의-문제와-새로운-희망-사이에서

내겐 너무 먼 평화: 전환기 미얀마 청년들의 발전과 평화에 대한 다층성


국민의 평균연령이 27세인 ‘젊은 국가’ 미얀마에서는 개혁개방 이후의 새로운 민간 세력들이 조심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미얀마 군부의 저항주체로서 성장하였으나 정치적으로 소비된 8888 청년세대와 달리, 새로운 국가와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얀마 청년들은 경제, 취업, 교육, 훈련 등의 ‘달콤한 발전’의 기회와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민주적인 사회와 제도 만들기를 환영하는 미얀마 청년 세대도 “방안의 코끼리”인 로힝자 이슈에 대해서는 군부세력의 관여와 이들의 의견을 지지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발표된 전국차원의 미얀마 청년대상 설문조사 결과 및 저자가 진행한 현지 심층연구의 결과를 중심으로 중앙 및 지방수준 위원회의 청년참여 보장, 고등교육에서의 인문사회과학 교육과정 개혁, 민주시민교육의 도입을 제안한다. 나아가 미얀마 보이콧을 통한 ‘억압자 만들기 담론’을 넘어 전환기 민주주의의 과정을 걷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평화와 발전 문제를 연대와 협력의 관점으로의 인식론적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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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숙(서울대학교)

국민 평균연령이 27더 나은 삶에 대한 미얀마 청년들의 희망

인구의 고령화가 심각한 한국사회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미얀마는 국민의 평균연령이 27세인 ‘젊은 국가’이다. 미얀마 전체 인구의 60%가 35세 미만이며, 전체 인구 중 약 3분의 1인 청년 세대(33%)인 15세에서 35세에 속한다(Government of Myanmar, 2017). 2014년에 미얀마 전역에서 실시된 역사적인 인구조사에 집계된 포함되지 않은 해외체류자도 약 4백만 명에 달하는데, 이 중 약 70%가 청년이라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이들 미얀마의 청년 세대는 반세기 동안 지속된 군부정권에서 떼인쉐인(Thein Sein) 대통령 집권을 거쳐 아웅산 수찌와 현 집권당인 국민민주주의연합((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이하 NLD)에 정권을 넘기면서 눈에 띄는 국가적 전환기를 경험하였다. 미얀마 정당등록법이 개정되고 야당의 정치 활동이 공식적인 차원에서 보장되기 시작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되고 평화 집회 및 시위 법령 도입 등 핵심적인 정치 자유화 조치가 발표되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비교적 민주적으로 진행된 선거에 참여한 첫 세대이다. 경제적으로 기회도 풍부하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성장은 기대와 달리 빠르지 않지만 2018년 기준으로 미얀마 청년 중 남성 청년의 74.8%, 여성 청년의 55.3%가 고용된 상태로 보고되고 있다.

이들의 경제, 정치, 사회문화 활동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10년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폭발적인 양과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 대비 미얀마의 빈곤은 아직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미얀마 청년 세대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 문화적 성장을 볼 때 조심스럽게 미얀마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미얀마의 청년 세대도 미얀마 사회의 변화를 경험하며 가족과 자신의 삶이 질이 나아질 것이라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 미얀마 청년에 대한 연구나 조사가 많지 않지만 최근 영국문화원 (British Council)과 영국해외봉사단(Voluntary Service Overseas, 이하 VSO)가 발간한 <Next Generation Myanmar>의 조사결과는 개혁개방 이후 청년 세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본 보고서는 2018년 8월부터 10월까지 전국적으로 2,473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가구설문조사 및 면담의 결과를 다루고 있다.

이번 보고에서는 미얀마 청년들의 경제, 사회 변화와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양한 기회에 대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응답자 중 약 67.9퍼센트의 청년들이 향후 5년간 미얀마인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고, 특히 교육훈련의 기회와 생활 속에서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는 부분에서 특히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미얀마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은 청년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청년 중 75.9%는 향후 5년간 자신의 삶의 질이 높아 질 것이며, 단 2.7% 만이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중요한 점은 교육의 수준이 높은 청년 그룹에서 현재보다 미래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응답이 더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교육수준이 높은 그룹 중 85.8%의 청년들의 자신의 삶의 질 – 특히 교육훈련의 기회 확대 및 정치적 참여 기회 확장- 이 나아 질 것으로 기대했다.

숫자로 알아보는 미얀마 청년
출처: Paung Sie Facility. 2017. Youth and Everyday Peace in Myanmar: Fostering the Untapped Potential of Myanmar’s Youth의 내용을 재구성

미얀마 청년들은 권위주의 세대와는 달리 개인의 성취에도 많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은 개인 성취의 수준과 그 내용으로 결정되며, 이는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보다 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응답하였다. 국가의 정체성 차원에서도 종교가 국가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 더 이상 크지 않다고 응답했다. 반면 청년들에게 종교는 종족(민족)과 함께 ‘차별을 경험하게 하는 요인’ 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가 눈에 띈다. 응답자 중 21%가 종교 때문에 차별을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였고 약 19%의 청년 응답자는 본인이 소수 종족(민족)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VSO 조사에서는 종교 및 종족 차별을 다음으로 교육수준, 직업, 경제수준 및 언어가 미얀마 일상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차별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미얀마 청년들의 교육법 개정 시위 모습
출처: https://www.mmtimes.com/in-depth/12359-behind-the-student-protests.html

 

사회기여에 대한 미얀마 엘리트 청년의 인식 

다양한 종교와 종족 배경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미얀마인들이 사회참여와 기부활동을 활발히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VSO의 조사에서도 90%의 청년응답자는 사회 및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표현하였고, 85%의 응답자는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본인의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교활동이나 특정 종족행사 이외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부모의 인식을 청년들은 사회활동의 방해요인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여성 청소년들의 경우, 같은 연령대의 남성 청년 대비 여행금지 및 통금금지 등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적극적인 사회활동의 제약이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최근 발표된 미얀마 양곤대학교와 양곤공과대학교의 중산층 고등교육 엘리트들의 아비투스에 대한 연구에서는 미얀마 신세대 엘리트들이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가 본인의 책임이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Hong & Chun, 2020). 특히, 전국 상위 5% 이상의 학력고사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으며, 2017-18년 기준으로 양곤 제1의과대학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진학해야 하는 양곤공과대학의 대학생들은 개인의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양곤공과대학교 대학생들은 2017년-2018년에 진행된 초점집단토론 및 개인심층면담에서 스스로를 엘리트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국가발전에 기여(‘serve this country’)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재 (‘try my best for country’)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책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엘리트가 되는 일은 어렵지만 (much effort to gain ‘people’s trust, and thus it is a very ‘difficult job’) 물리적 시간과 개인적 희생이 (‘sacrifice time’ and ‘sacrifice oneself’)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양곤대학교 총학생회 활동모습
출처: 저자제공
군부멋지지 않지만 동거는 어쩔 수 없다

미얀마 청년들은 전반적으로 연방 및 중앙 수준의 국가제도보다는 지역 및 마을 기반 조직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공공 제도 자체가 군부의 유산이라고 비판하며 교육제도와 같은 공적 조직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Hong, 2018; 2019). VSO의 조사에서는 청년들은 연반 및 중앙 수준의 제도가 이들의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표현하였다. 72%의 청년들은 지역 수준 정부를 신뢰하고, 58%는 시민사회 기반 마을 행정부를 59%는 군부기반 마을 행정부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청년들은 연방정부의 활동, 특히 연방입법부(the Union Hluttaw)의 활동을 신뢰하는 청년이 전국적으로 54%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급격하게 수가 늘어나고 있는 국제 NGO보다 지역기반 단체(Community-based organizations, CBOs)를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흥미롭다.

미얀마의 개혁개방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의심하는 청년은 많지 않았다. 89% 응답자들이 미얀마에 민주주의 중요하며, 92%의 청년응답자들이 평화협정이 미얀마 국가발전에 중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양곤대학교의] 엘리트들은 수 십 년 동안 군부 독재의 억압을 받았습니다. 20년 이상 정부 자치가 군부였어요. 이런 과거 미얀마의 정부는 아주 이기적이었고 궁극적으로 국가에 나쁜 영양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국가의 리더들을 보면 정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제 우리는 미얀마의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손에 권력이 생긴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정부의 손에 권력이 있었지요.”
(2018, 7월, 양곤대학교 대학생 인터뷰, 2020년 Hong & Chun에서 직접 인용함).

이와 같은 긍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VSO의 조사결과는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과 소수민족 청년 그룹은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지는 않다고 보았고, 청년들의 정치참여 – 특히 공식적인 정치참여-의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은 완벽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상이한 의견을 표현했다. 설문 응답자의 대다수는 표현의 자유가 아직은 완벽히 보장될 필요가 없으며, 68%의 응답자들은 ‘사회질서와 도덕’을 수호하기 위하여 소셜미디어의 검열에 동의하였다. 약 50%의 청년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화협정 노력이 향후 5년 이내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들은 정부와 정당의 평화 노력과 협상 능력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군 소속인 땃마도(Tatmadaw)와 소수민족 무장그룹(ethnic armed groups)에 대한 인식이 특히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얀마 평화 정착과정 중 헌법 등 연방차원의 문제가 있다고 보았지만 이와 같은 거시적인 개혁이 경제개발이나 교육발전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청년들이 많았다. 응답자가 소수민족인 경우에만 연방제차원의 거시적인 개혁이 경제 및 교육발전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지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는데, 한 연구참여자는 “군부? 멋지지 않지만 지금 하는 동거는 어쩔 수 없다”며 복잡한 심경을 표출하였다.

 

민주주의와 평화 논의 확장과 방 안의 코끼리” 로힝자 이슈

미얀마 평화 이슈와 로힝자와 관련된 청년들의 인식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미묘한 차이들이 드러난다. 도시청년과 교육받은 청년들의 상대적 냉담이 그것이다. 로힝자 이슈와 수찌를 바라보는 서양 언론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에 대한 미얀마 청년들의 고민이 있다. 미얀마 청년들은 대부분 미얀마 개방으로 유입되고 있는 국제협력과 외국인의 유입, 국제적인 사업 기회 및 관광의 확대를 환영하고 있지만 수찌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분쟁협상 및 로힝자 난민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에 대해서는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심을 포함하여 다층적인 반응을 보인다.

VSO 조사는 약 46%의 미얀마 청년이 국제사회가 여카잉주에서 발생하고 있는 군부의 활동에 비판적인 입장에는 동의하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와 외국인(외부인)은 미얀마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또한, 79%의 응답자들은 실제 여카잉 주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 우려 되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은 군부 및 국가를 직접적으로 비판을 하지는 않았다. VSO 조사단의 인터뷰와 토론에 참여한 청년들의 약 50%는 ‘군대는 여카잉 주에서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여카잉 주에서 군부의 대응이 ‘불가피했던 다양한 분쟁의 원인’을 피력하고자 하였다.

사실 로힝자 이슈에 대한 미얀마 청년세대의 이중적 태도는 새롭지 않다.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미얀마 청년세대는 급격하게 발전하는 경제사회 개방에 있어 많은 혜택을 받은 세대이다. 이들 새로운 미얀마의 개혁개방 세대들에게 로힝자의 고통은 ‘내겐 너무 먼 분쟁’이며, 미얀마 주요 대도시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제적 기회는 ‘달콤하고 가까운 기회’로 다가온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모두 함께 같은 수준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불편하더라도 국가발전의 혜택이 ‘국민이 아닌 자’들에게까지 공유되어야 하는지 아주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2018년 이후 필자가 면담한 대부분의 청년은 근본적으로 로힝자족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미얀마 정부가 주장하는 입장 – 즉, 로힝자족이 식민시기에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는 불법이주민이고, 로힝자라는 이름도 스스로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장준영, 2018)- 과 반무슬림 정서가 다층적으로 혼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기대와 달리 지금의 미얀마 신세대에게 ‘국민이 아닌’ 로힝자와의 화해와 통합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사회적 기여에 관심이 많은 미얀마 청년들이 로힝자인들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해 유보하는 입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얀마 청년의 인도주의와 평화에 대한 의식 부재를 탓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가까운 미래의 미얀마의 평화, 나아가 동남아시아의 평화와 교류협력을 주도해야 할 세대다. 미얀마가 이웃 사회와 민족들과 평화를 구축하고 수많은 아시아의 이웃 사회와 그룹들이 버마인들의 보호를 위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였던 과거가 이들, 미얀마 청년 세대의 삶 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실존적 차원에서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요한 변화로 미얀마 정치경제문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적 현실적 위치하고 있는 양곤대학교의 경우, 최근 8888 항쟁에 대한 대대적인 행사와 세미나를 개최하며 국가발전과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시작하였다.

양곤대학교 총학생회의 경우 미얀마의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인지하고 총학생회 활동의 비전을 새롭게 구상하고 있다. 2019년 총학생회 대표와의 면담 결과, 미얀마 대학에 민주주의 교육을 소개하고 군부정권을 종식하여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고 학생 간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역할을 하겠다는 방향을 활동의 목표를 선정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주요 대학에서 민주주의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미얀마 사회의 시민사회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장기적으로 비교적 내부결속을 잘 다지고 건재하고 있다고 보이는 군부 엘리트의 정치적 저항 세력으로 미얀마 시민사회 세력의 등장도 기대해 볼 만할 하다.

주요이슈에 관한 미얀마 청년 인식
© DIVERSE+ASIA

그러나 이와 같은 민주사회 만들기 논의가 지역사회 기여 및 불교적 기부를 통한 개인적 공덕 쌓기에 익숙한 미얀마사회에서 ‘사회적 책무 혹은 사회적 책임’과 같은 논의도 변화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로힝자인과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헌법 및 시민권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 미얀마 민주주의 만들기 논의에서도 ‘방 안의 코끼리’ 취급을 당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19년 동안 민주주의, 고등교육 및 청년이라는 주제로 만난 수많은 미얀마 청년도 로힝자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보류 상태의 입정을 가지고 있거나 부분적으로 군부 중심 문제해결을 지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동남아시아 및 미얀마의 평화를 함께 논의할 수 있을까?

과도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거시적인 체계를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변화의 주체로 청년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정치 참여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미얀마 연방의회(Pyidaungsu Hluttaw) 중 청년은 약 8.23%이고, 그 중의 여성은 1.8%(정부군 소속 땃마도 Tatmadaw 대표제외)이다. 연방평화대화위원회(Union Peace Dialogue Joint Committee, UPDJC)와 연방수준 국가공동모니터링위원회(Joint Monitoring Committee, JMC)에는 청년대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는 공교육 및 고등교육의 투자가 절실하다. 화려한 교육개혁의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얀마 청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사회와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울 수 있는 공교육에 대한 국가 투자가 여전히 국가공공재정의 1.9%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놀랍다(Paung Sie Facility, 2018).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13세에서 34세 사이 청년이 70%에 달하는 사회에서 미얀마 공교육 체계 내에서 군부정권의 역사와 미얀마 민주주의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전무하다. 고등교육기관에서도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교육학을 포함하는 인문사회대에서 미얀마 역사와 사회발전을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학술적 공간이 부재하다(Hong & Kim, 2019).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미얀마 정치운동가 및 교육자인 민꼬나잉과의 만남
출처: 저자제공

교육의 전 층위와 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과 시민권을 교육하고 인도주의 배우고 토론할 수 있는 교육 리더들의 훈련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미얀마 청년 평화 운동가들은 최근 정책제안을 발표하며 첫째, 의사결정자들의 시민사회와 청년의 정치참여에 대한 태도와 행동 변화, 둘째, 다양한 사회조직과 교육기관에서 청년 활동을 독려하고 청년 스스로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강화 기회 확대, 셋째, 민주주의 사회전환에 방해되는 구조적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의 동반을 촉구하고 있다(Paung Sie Facility, 2017, 2018)

이제 우리도 아웅산 수찌라는 히어로를 중심에 두고 미얀마 민주주의와 정치사회변화를 바라보는 기존의 억압자론 담론을 넘어서야 할 때가 왔다. 특히 서양의 학자들과 다수의 언론이 이끌어온 버마 디아스포라 민족공동체들의 반군부 운동 및 기존의 NLD 세대가 이끌어왔던 저항론적 관점을 넘어서는 연구와 토론이 시급하다. 동시에 요즈음 국내에서도 확장되고 있는 국제개발 및 국제기부 분야에서의 ‘가난하거나 취약하거나 억압된 그들 만들기(‘the poor, the vulnerable, the oppressed)’라는 기존의 서구담론에 근거하여 미얀마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필요하다(Hong, 2020).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의 흐름을 바꿔온 아시아의 권력과 개인들의 역동을 역사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이해하는 데 좀 더 많은 노력을 쏟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Hong, 2020; Than Myint U, 2019).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미얀마 사회의 중심에 있는 청년의 역할, 그리고 이들의 주체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1인당 국민소득 700달러로 전 세계 187개국 중 UNDP 인간개발지수에서 149위를 차지하며 동남아시아의 최빈국으로 추락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현장에서 만난 미얀마 신세대들은 아무리 가난한 청년 노동자들이라도 서구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빈곤과 억압 프레임으로만 정형화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변화 속에서 중요한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자와 실천가들은 재권위주의화가 확장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군부와 민주주의 세력의 연방정부라는 실험을 하고 있는 미얀마와 어떠한 논의를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무엇을 연구하고 논의할 것인가’를 넘어 ‘어떠한 인식론적 관점’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으로 논의의 물꼬를 틀어야 할까’로 전환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평화의 문제가 ‘저 멀리 국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미얀마 청년세대가 우리의 청년과 같이 가까운 사회와 개인의 웰빙이 ‘저 멀리 있는 국경의 평화 문제’와 함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는 시선이 있음도 잘 이해하고 있다. 이제 평화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이자,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고 동시에 시민과 청년이 참여할 수 있는 과정으로 다층적인 차원에 다뤄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국가발전과 평화의 다층성에 대한 고민 없이 일부가 주장하고 있는 미얀마 보이콧을 통한 ‘미얀마인 억압자 만들기 담론’에만 동조한다면 우리는 많은 아시아 국가들과 먼 길을 함께 가지 못한다. 그 평화의 길을 닦을 이들은 미얀마를 포함한 아시아의 미래 세대이며, 우리는 이제 이 미래 세대와 함께 더 많은 토론, 협력과 국제적인 연대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저자소개

홍문숙 (moonshiely@gmail.com)
서울대학교 대학원 글로벌교육협력 및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경희대학교 국제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7년 서울대학교에서 국제개발과 교육학 융합분야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0년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인류학(발전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관심 주제는 국제개발협력 및 사회변화와 초지역적 교육의 담론과 실천이다. 최근 저서와 논문으로 “Being and Becoming ‘Dropouts’: Contextualizing dropout experiences of youth migrant workers in transitional Myanmar” (2020), “’Forgotten’ Democracy, Students Participation, and Higher Education in Myanmar: Past, Present, and Future” (2019), “여성연구자, 선을 넘다: 지구를 누빈 현장연구 전문가 12인의 열정과 공감의 연구 기록” (2019) (공저), “전환기 미얀마 정치사회변화와 신(新)고등교육 개혁: 정책·지식·권력의 역동을 중심으로” (2018) (공저) 외 다수이다.

 


참고문헌 (한국어 자료)

  • 장준영. (2018). 미얀마 민간정부는 실패하는가? 로힝자족을 둔 군부와 대립 격화 그리고 국제적 고립, 다양성+ Asia, 2호.
  • 홍문숙. (2018). 전환기 미얀마 정치사회변화와 신(新)고등교육 개혁: 정책·지식·권력의 역동을 중심으로비교교육연구, 28(3), pp. 135-159.
  • 홍문숙. (2020). 한 융합연구자의 경계 넘나들기: 전환기 미얀마의 교육과 개발협력, 여성연구자, 선을 넘다: 지구를 누빈 현장연구 전문가 12인의 열정과 공감의 연구 기록 (엄은회, 구기연 외 10인 공저), 도서출판 눌민.
  • Charney, M. W. (2009). A History of Modern Burma,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Cheesman, N., Skidmore, S. & Wilson, T. (2012). Myanmar’s Transition: Openings, Obstacles and Opportunities,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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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vernment of Myanmar (2017) Overview of the Results of the 2014 Population and Housing Census, Myanmar. Nay Pyi Taw: Ministry of Labour, Immigration and Population, Department of Population.
  • Hong, M. S. (2020). Being and Becoming ‘Dropouts’: Contextualising dropout experiences of youth migrant workers in transitional Myanmar, International Journal of Qualitative Studies in Education, 20(1), 202-220.
  • Hong, M. S. & Chun, Y. J. (2020). Symbolic Habitus and New Aspirations of Higher Education Elites in Transitional Myanmar, Journal of Educational Change (Upcoming)
  • Hong, M. S. & Kim, H. (2019). ‘Forgotten’ Democracy, Student Activism, and Higher Education in Myanmar: past, present, and future, Asia Pacific Education Review, 20, 207–222.
  • Koong-Hong, D. C. (2014). Legacy of the Fighting Peacock: Analyzing the Role of Student Activism in Burmese Democratic Movements. The Journal of Politics and Society25, 71–99.
  • Slater, D. (2009). Revolutions, Crackdowns, and Quiescence: Communal Elites and Democratic Mobilization in Southeast Asia, 115(1), 203–254.
  • Than Myint U. (2019). The Hidden History of Burma: race, Capitalism and the Crisis of Democracy in the 21at Century, Atlantic.
  • Voluntary Service Overseas (VSO) & British Council, (2019). Next Generation Myanmar, Yangon: British Council.

19. 내겐-너무-먼-평화

현대판 향신료 전쟁,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도전과 기회


세계에서 가장 큰 군도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대항해 시대 이전부터 이미 글로벌 무역네트워크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향신료 전쟁의 주 무대였던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다국적 기업에게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이다. 한국의 첫 해외직접투자가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오래전부터 한국기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긴 역사만큼 한국기업의 진출 형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자원을 확보하는 형태에서 노동집약적 우회수츨형 투자로, 수출과 내수를 동시 겨냥한 형태, 그리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소비시장을 겨냥한 진출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투자진출의 역사는 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를 포함하고 있다. 본 글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도전과 기회를 향신료 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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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혁(서울대학교)

동남아의 대국 인도네시아한국과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인도네시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국이다. 흔히 대국이라는 단어와 연상되는 경제 대국, 군사 대국은 아니지만 인구, 자원,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는 대국이다. 인도네시아를 묘사할 때 늘 따라오는 클리셰(cliché)를 읊어보면,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및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동서로 약 5,000Km가 넘는 군도로 이루어진 동남아 유일의 G20국가이다. 또한 300개도 넘는 종족과 600개 이상의 방언을 사용하는 문화적으로 다양성이 넘치는 국가이기도 하다. 범위를 동남아 국가들로 한정해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Sukarno) 때부터 동남아 지역의 맹주로 자리매김하였고 아세안(ASEAN)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큰 외교력을 발휘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위상은 한국정부가 지난 2년 동안 보여준 행보에서도 발견된다. 임기 중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첫 국빈 방문지(2017년 11월)로 인도네시아를 택했다. 이 방문을 기점으로 양국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한국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동남아 국가는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지난 10월에는 2012년 첫 협상 이후 7년을 끌어오던 인도네시아와의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실질 타결하였고, 11월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기간에 이루어진 한-인니 정상회담에서 최종 타결하였다. CEPA는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하지만 양국 간 상품·인력이동뿐만 아니라 포괄적 교류·협력까지 포함하는 무역협정이다. 인도네시아는 CEPA 타결로 한국에게 전체 상품 중 93%를 개방할 예정인데, 이는 ‘한-아세안 FTA’를 통한 상품 개방 수준인 80.1% 보다 약 13%포인트 높은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동차용 강판, 자동차부품, 석유화학제품 등의 관세를 철폐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산업통상자원부 2019). 이미 아세안 전체와 FTA 협정을 체결한 한국이 아세안 국가 중 양자 간 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베트남과(FTA 2015년)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현대판 향신료 전쟁

대항해 시대 서구 세력이 아시아와 무역하기 위해 앞 다퉈 만들었던 동인도 회사에서, 과연 ‘동인도’는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당시 ‘India’는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아시아 아대륙인 지금의 인도를 지칭하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경계가 불분명한 문화적 개념이었고, 무엇보다 몇몇 측면을 고려하자면 오늘날의 동남아를 지칭했던 것으로 추측된다(Brwon 2003). 저명한 동남아 역사학자인 앤서니 리드(Anthony Reid)는 두 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저서 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에서 서양과 동양이 직접적으로 조우하기 시작한 ‘대항해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이미 아시아의 바다에서는 ‘상업의 시대(the Age of Commerce)’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서쪽으로는 유럽의 상인들과 연결된 아랍상인부터, 인도, 동남아, 중국을 거쳐 가장 동쪽에는 일본이 거대한 무역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었다. 1450년부터 1680년까지 지속된 상업의 시대 동안 금과 은을 제외하고 가장 귀중하게 거래되었던 상품은 후추, 정향(clove), 육두구(nutmeg), 메이스(mace, 육두구 껍질을 말린 향신료)였다. 무역선에 선적된 다른 상품에 비해 향신료1)가 차지한 부피는 매우 작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향신료는 귀중한 무역 상품이었다. 첫째, 향신료가 큰 이윤을 창출하는 핫 아이템(hot item)이었을 뿐만 아니라, 둘째, 향신료를 찾아 온 상인들은 인도네시아 말루꾸(Maluku) 제도(향신료 제도)에서 유럽의 지중해까지 연결된 무역 네트워크의 주요 결절점에서 다양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새로운 무역 상품을 발견할 기회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금·은과 달리 향신료는 재배가 가능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었다(Reid 1993). 그런데 처음 인도에서 주로 재배되었던 후추가 동남아의 여러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했던 반면 정향과 육두구의 경우 향신료 제도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의 일부 섬에서만 재배되었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도네시아는 향신료 전쟁의 핵심 국가였다.

16세기 향신료를 찾아 인도네시아에 왔던 상인들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인도네시아를 떠나지 않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상인들을 유혹했던 향신료는 더 이상 무역의 주 대상이 아니지만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매력으로 다국적 기업과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하고 있다. 향신료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을 이용하려는 현대판 향신료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거의 향신료 전쟁과 차이가 있다면 인도네시아가 적극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원이용형 성장에 의존하고 수출제조업을 다국적 기업에게 맡기고 기술이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들은 과거의 향신료 전쟁과 비교해서 그렇게 진일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외국자본과 다국적 기업 주도로 이뤄낸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기술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 결과 제조업이 외국 자본과 기술에 너무 의존적이다. 일본을 선두로 신흥공업국(NICs), 그리고 동남아 선발국들이 순차적으로 마치 기러기 떼처럼 경제발전을 이룩할 것으로 예상했던 소위 안행형(flying gees) 모델은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동아시아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모델인가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동남아 선발국들 전반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기술력 있는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성숙 단계에서 탈공업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박번순 2019). 같은 맥락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소기업은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큰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외형적으로는 경제가 성장했지만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서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기에는 자체 기술과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

 

새로운 플레이어(player)의 등장

과거의 향신료 전쟁과 현대판 향신료 전쟁의 차이 중 가장 주목할 점은 16-18세기에 한 번도 글로벌 무역네트워크에 주 플레이어로 등장하지 못했던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이다. 포르투갈-스페인-영국-네덜란드 등으로 이어지던 역사의 주인공들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 인도네시아의 주요 투자국들은 모두 아시아 역내 국가인 싱가포르, 일본, 중국, 홍콩, 한국이다(2017년 기준 해외직접투자 순위). 상업의 시대 때 이미 역외 무역과 함께 동남아 역내 무역이 진행되었고, 중국과 일본은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당시 글로벌 무역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 영국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게 인도네시아 향신료 무역의 주도권을 빼앗긴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암본학살(Ambonia Massacre)2) 사건 때 이미 일본인 사무라이가 반란에 깊게 관여되어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이 오래 전부터 인도네시아에 진출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상업의 시대 혹은 대항해 시대 동안 세계 무역에서 별다른 역할을 부여 받지 못했던 한국은 풍부한 인도네시아의 산림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1968년 한국 ‘해외직접투자 1호 기업’(한국남방개발, KODECO)을 인도네시아에 건설했다. 이는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사의 첫 발자국이다. 긴 역사만큼 한국기업 진출의 형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해 왔다. 한국기업은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이후 엔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거 동남아로 진출한 일본기업의 텃새와 거대 자본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동시에 기업에게는 축복과 같은 한류에 힘입어 ‘한국’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한국기업의 진출 역사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투자 유형을 단순화시켜 시기별로 구분해보면,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와 건설 및 무역 분야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주로 산림자원개발회사, 건설사, 식품회사, 종합상사 등이 진출했다. 1960-70년대 일본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통해 합판 산업이 성장했는데, 이때 원목공급지인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산림자원개발회사들의 진출이 본격화 되었다. KODECO에 이어 인니동화(69년, 코린도 전신)등 다수의 산림자원개발기업이 진출했는데, 코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도산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였다. 이 시기에 진출한 기업 중 현재까지 사업을 지속하는 기업으로는 대림산업(건설, 73년), 미원인도네시아(식품, 73년), 현대건설(건설, 74년) 삼성물산상사(종합상사, 75년) 등이 있다.

초창기에 진출한 기업들을 개척자로 간주한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진출한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분야의 기업을 1세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TGF’라고 불리는 섬유(textile), 의복(garment), 신발(footwear) 제조업에 속한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였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노동쟁의, 1990년대 초반의 해외 주요 바이어들의 이탈, 1992년 한국정부의 신발산업 합리화 조치3) 이후 부산에 있던 신발 제조업체들이 인도네시아로 동반 진출을 시도하면서 상당수의 기업이 자카르타 근교에 위치한 반뜬(Banten)으로 이전하였다(이지혁 2018). 당시 민주화로 인한 노동자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과 한국이 개도국에게 주어지는 일반특혜관세(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4)수혜 대상국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 맞물리면서 많은 기업들이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로 진출하였다(엄은희 2013).

1990년대부터는 생산에 직결되는 원부자재 확보와 조립 공정에 필요한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이 진출하였다. 대표적 기업으로 세계 유명 브랜드를 OEM방식으로 생산하는 한국도자기, 현지에서 백색가전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삼성전자 및 LG전자 등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현지의 내수시장과 수출을 동시에 겨냥한 투자진출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빠르게 증가하는 중산층을 고려한 것이다.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겨냥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인도네시아 국영철강회사인 끄라까따우 스틸(Krakatau Steel)과 포스코가 합작 건설한 끄라까따우 포스코가 있으며, 2019년 현재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본격적으로 내수를 겨냥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2008년에 롯데마트가 네덜란드계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체인 ‘마크로(Makro)’를 인수하면서 소매 산업에 진출했다. 롯데마트는 현지의 특성을 고려하여 도매형 매장과 소매형 매장을 병행 운영하고 있는데, 2019년 말까지 매장을 51개로 확장할 계획이다(연합인포맥스 2019). 더불어 자바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위한 회계, 법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업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인수합병을 통한 금융 분야의 진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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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KOTRA 2019 국별 진출전략 인도네시아와 저자 코멘트로 재구성
ⓒ DIVERSE+ASIA
인도네시아 진출 한국기업의 워드 클라우드
클릭하시면 확대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 공공데이터포럼 2018-2019 해외진출 한국기업 디렉토리
방법: 워드 클라우드 생성기
ⓒ DIVERSE+ASIA

 

변화무상한 투자환경

대항해시대 인도네시아 향신료 무역의 절대강자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한 상품을 살펴보면, 1619-1621년 사이에는 후추가 교역액의 56.4%를, 후추를 제외한 향신료가 17.6%를, 그리고 직물이 16.1%를 차지했다. 하지만 1668년-1670년 사이에는 후추가 30.5%, 직물이 36.5%를 차지했고, 1689-1700년에는 후추와 향신료(후추 제외)는 각각 11.2%, 11.7%로 감소하는 반면 직물은 54.7%로 크게 증가하였다. 17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무역에서 후추가 가장 중요한 상품이었다면 그 이후부터 산업혁명까지는 직물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주경철 2012). 자금 및 조직력에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 훨씬 못 미친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향신료 전쟁 초반부에 경쟁에서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암본학살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입지가 약해진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에 집중하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향신료가 아닌 면화, 즉 인도산 캘리코의 수입을 통해 향신료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때까지 면직물이 없었던 유럽에 면직물이 수입되면서 유럽인들은 면으로 만든 옷에 열광하게 되고, 이는 기존의 모직물, 견직물, 특히 리넨 산업에 종사했던 직공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은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산업혁명을 가져왔다.

향신료 무역의 독점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꿈은 21세기의 관점으로 보면 한없이 덧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광활한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무역을 완벽하게 독점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시간이 흘러도 향신료에 대한 수요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이처럼 현지의 투자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예컨대 70년대 원목을 채취하여 수출했던 기업들이 1985년에 원목 수출을 금지하는 법이 발효되면서 상당수 도산하였는데, 법이 발효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원목을 가공하여 합판을 만들 준비를 했던 코린도(KORINDO) 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2009년 진출하여 기존의 편의점에 카페와 레스토랑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편의점을 선보이면서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세븐일레븐은 2015년 편의점 내에서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 제정으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고전을 하다가 결국 2017년 6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전면 철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SK 플래닛과 현지의 이동통신사인 엑스엘악시아타와 합작했던 일레브니아 같은 경우 한때 매출로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e-commerce)업계 3위까지 올랐지만 생각보다 뜨겁지 않은 시장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업을 현지 기업(Salim)에게 매각하고 철수했다.

최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할랄과 관련된 문제도 기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할랄과 관련하여 2001년 일본의 아지노모토社가 생산한 MSG에서 돼지고기 성분이 검출되었던 사건이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아지노모토는 3000톤에 달하는 조미료를 회수해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한동안 공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시장 점유율 1위였던 아지노모토에게 가해진 타격은 경쟁사였던 인도네시아 미원(대상의 현지법인)에게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일부 한국라면에서 돼지고기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유통되었던 라면이 전량 회수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2017년 6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에서 수입된 라면에서 무슬림들이 금기시하는 돼지 유전자(DNA)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한국라면 네 종류에 대해 수입허가를 취소하고 유통된 제품 전량을 회수하도록 했다. 인도네시아 식품의약청(BPOM)은 유통되는 한국라면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일부에서 돼지의 DNA가 검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품에 돼지고기가 함유됐다는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아 피해를 유발했기 때문에 소비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해당 제품을 즉각 회수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에 유통되는 상당수의 한국제품 수입을 담당하는 M유통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00% 외국자본을 허용할 것인지(개방 업종), 일정 부분만 허용할 것인지(조건부 개방 업종), 아님 국내기업에게만 허용(금지 업종)할 것인지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외국인 투자제한 리스트’(negative investment list) 혹은 줄여서 ‘네거티브 리스트’라고 부른다. 대체적으로 외국자본의 투자 범위를 넓히고 각종 제한을 줄여나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국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아직 빗장을 잠그고 있는 영역도 있다. 예컨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소매유통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시장을 개방하였지만 아직도 400제곱미터 이하의 소규모 매장은 자국기업에게만 허용하고 있다(이지혁 2015).

한편 개도국이라고 해서 전자상거래, 핀테크, IT, 4차 산업 등에 대한 수요가 아직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이 발달된 선진국 혹은 산업화된 국가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사업이 시간차를 두고 개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도네시아 시장은 이러한 시간차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 흐름에 빠르게 보조를 맞추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바 지역과 일부 대도시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 성장속도 만큼은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인도네시아와 같은 개도국에서는 선진국에서 발견되는 단계적 발전이 아니라 단계를 건너뛰는 소위 ‘leapfrogging’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예컨대 유선 전화, 무선 전화, 핸드폰, 그리고 스마트폰이라는 순차적 발전의 단계를 거쳐 왔던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달리 일부 개도국 중에선 유선 전화에 필요한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스마트폰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이지혁 201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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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까따우 포스코 공장 전경
출처:http://biz.newdaily.co.kr/site/data/
html/2018/09/04/20180904001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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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랜드 월드 인도네시아 즈빠라 공장
출처:http://dailyindonesia.co.kr/news/view.php?no=1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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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가려진 것들

동남아에서 성공한 화교 및 화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이들이 돈 버는 데 뛰어난 수완이 있다는 선입견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본국을 떠나와서 힘든 삶을 영위하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쿨리(coolie)들과 사업에 실패한 무수한 사례들이 모두 잊히고 온통 성공 사례에만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 향신료 제도로 탐험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험적인 얘깃거리를 가지고 돌아와 자신들의 모험담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향신료가 가져다준 엄청난 수익에는 선원들이 치른 목숨 값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항해 도중 선원들은 보급품 부족으로 시달려야 했고 많은 수가 괴혈병으로 죽기도 했다. 향신료를 구입하는 과정에 현지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배가 나포되거나 침몰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체 선원의 70%이상 사망한 경우도 흔한 일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602년부터 1795년까지 약 200년 동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선을 이용하여 유럽에서 아시아로 항해한 사람의 수가 총 975,700명인데 이중 다시 유럽으로 건너온 사람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배에서 평균 치사율은 8-9%에 이르고 높은 경우 15%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하네다 마사시 2016).

인구 및 자원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 증가하는 중산층,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화, 동남아 최대의 내수시장,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 발주 등 인도네시아 투자환경을 장밋빛으로 그리고 있는 정보지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한국기업도 진출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걸출한 사업가인 최계월 회장이 세웠던 KODECO는 ‘해외직접투자 1호’라는 족적을 남겼지만 1980년대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 사업에 참여하였다가 실패하면서 그 명예가 많이 희석되었다. 해외사업을 하면 늘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한다. 한국에서 사업할 때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혹은 일어나더라도 쉽게 해결되었던 일들이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에 실패했거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에서 사업할 때 예상치 못했던 많은 비용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각종 인허가와 법률적인 문제에서 중앙정부의 규정과 지방정부의 규정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법률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정부패가 발생하기도 한다. 더불어 국가법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관습법(adat)과 종교법이 공존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일원화된 법체계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인도네시아의 법체계가 매우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의 對인도네시아 투자금액(단위: 백만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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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한국수출입은행 해외직접투자통계(현재통계는 2019년 6월말까지의 투자실적 기준/1980년 실적은 1968년-1980년까지의 누계임)
ⓒ DIVERSE+ASIA

 

도전할 가치가 있는 기회의 땅

위에서 언급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기회를 찾는 한국기업에게 여전히 매력적이다. 성장하려고 꿈틀거리는 대국의 잠재력, 제도적 민주주의의 정착에 따른 정치적 안정성, 한류에 대한 호감, CEPA 타결로 인한 높은 수준의 관세 철폐 등이 한국기업의 진출과 무역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조꼬 위도도(Joko Widodo, 이하 조꼬위) 대통령의 집권 2기가 지난 10월에 출범했다. 조꼬위의 재임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정책의 불확실성과 연속성의 단절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기업에게 안정감을 준다. 조꼬위에게 투표한 많은 유권자들은 지난 5년 동안 그가 이룬 경제적 성과가 그가 2014년 대선 후보 때 약속한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새로운 5년을 두고 지켜볼 정도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한국기업을 포함한 외국계 기업에게도 조꼬위의 재선이 기업 경영에 안정감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조꼬위 대통령이 친기업적인 정서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기업 활동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이지혁 2019b).

향후 5년 동안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주목해야 할 점을 살펴보면, 우선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군도국가라는 지리적인 특성과 식민 지배 때부터 시작된 자바 위주의 경제개발정책으로 외곽 도서 지역의 인프라는 아직도 열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7년 기준 GDP 대비 물류비용이 약 24%에 달한다. 인도네시아의 인프라 수준은 2018년 144개 국가 중 52위로, 지난 5년 동안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주요 경쟁국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인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시절부터 인프라 개선은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었으며, 조꼬위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사업이기도 하다. 조꼬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각종 인프라 건설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그동안 재원 부족, 복잡한 규제, 관료주의 등에 발목이 잡혀 계획처럼 실행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인프라의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다. 인도네시아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수도를 이전하려는 계획이 확정되고 본격적으로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단계가 되면 한국기업에게 대형 프로젝트 수주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개대된다.

둘째, 서비스, IT, 온라인 게임, 스타트업 기업이 진출할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한국을 방문했던 조꼬위 대통령은 한국은 인도네시아 시장을 함께 개척해 나갈 주요 파트너라고 말하면서 “대학, 연구소, 병원 등을 비롯한 한국의 서비스 산업과 IT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의 젊은 엔지니어들과 만나면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교육과 스타트업, 핀테크 산업에 큰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기업에게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시장이 될 것이다(최우석 2018). 무엇보다 CEPA의 최종 타결로 온라인 게임업계에 큰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 서비스의 경우 현재 인도네시아 내 관련 규정이 미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CEPA를 통해 시장개방을 약속한 것은 한국 진출 기업에게 최소한의 국내 규제 안정성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소비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동남아는 한국기업에게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여전히 이러한 매력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새로운 측면에서 동남아 시장이 부각되고 있다.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소비시장으로서 동남아가 부상하고 있다. 동남아 중에서도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한국기업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최근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한국의 건강 및 미용 관련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3년에 보스톤 컨설팅 그룹(BCG)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인도네시아가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보고서의 제목을 ‘Asia’s Next Big Opportunity’이라고 명했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들면 그 기회라는 것이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는 기회(An Opportunity That May Cost)’ 일 수 있다(Rovnick 2013). 무엇보다 인도네시아는 현대판 향신료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모든 다국적 기업의 활동이 자국의 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저자소개

이지혁(tankm@daum.net)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연구 관심분야는 동남아 국제관계, 인도네시아 문화, 이슬람 경제, 인도네시아 한인기업 등이다. 대표논문으로는 “인도네시아 하이브리드 편의점의 태동과 소비문화(공저).” “The Political Economy of Indonesia’s Global Maritime Axis and Infrastructure Development Plan under the Jokowi Administration”, “세 가지 화두로 살펴본 2017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이슬람 경제의 태동과 그에 따른 한국인의 반응에 대한 다층적 분석” 등이 있고, 대표저서로는 『’바틱으로 보다: 자바, 인도네시아 이야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소비문화(공저)』, 『한국기업의 VIP국가 투자진출: 지역전문가의 조언(공저)』 등이 있다.

 


1) 본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향료대신 향신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향신료란 음식물에 가미해서 맛을 조미하는 영어의 ‘spice’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향료는 프랑스어 ‘epice’에 해당되는 단어로 ‘먼 지방에서 온 이국의 산물’을 지칭하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다. 향신료는 향료의 일부분에 속한다(하네다 마사시 2012).

2) 암본학살 사건은 1623년 3월 인도네시아 말루꾸 제도의 상업 거점인 암본섬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자행된 고문과 사행집행 사건으로서, 당시 암본의 상관장이었던 헤르만 판 스트의 명령으로 이 섬에 와 있던 영국 상인 11명, 일본 사무라이 용병 1명, 포르투갈인 1명이 참수되었다. 고문에 의한 자백에 따르면 영국 상인과 일본 사무라이 용병이 공모해서 암본에 있던 요새를 탈취하고 상관장을 암살하려는 반역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영국의 주장은 상반되고 지금까지도 명백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말루꾸 제도에서의 향신료 무역을 포기하고 인도로 발길을 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90년대 초반 위기에 처한 신발 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로 노후시설 대체 및 설비 자동화를 실시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그 대신 6백 개에 이르는 생산 라인 중 30%에 해당하는 1백80개 라인을 줄이고 시설을 자동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신발 수출 규모가 40억 달러에 이르는데다 기술면에서 세계 1위로 인정받고 있는 업종을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실시한 조치이다.

4)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수산품•완제품 및 반제품에 대하여 일반•무차별적•비상호주의적으로 관세를 철폐 또는 세율을 인하해 주는 제도를 일컫는다.

 


참고문헌

  • 박번순. 2019. 『아세안의 시간: 동남아시아 경제의 오늘 그리고 내일』. 서울: 지식의 날개.
  • 산업통상자원부. 2019. “한-인도네시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최종타결”. 보도참고자료.
  • 엄은희. 2013.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의 역사와 현재”. 『동남아시아 이슈페이퍼』 통권 2호.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 이지혁. 2015. “인도네시아 소매산업과 소비문화: 편의점을 중심으로.” 『동남아 이슈페이퍼』. 통권 13호.
  • 이지혁. 2018. “인도네시아 반뜬(Banten)주 로컬정보: 변화하는 기업환경과 한인기업의 대응”. 『로컬이슈페이퍼』 통권 5호.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 이지혁. 2019a. ”생산거점에서 소비시장으로의 확대: 인도네시아 소비시장과 유통“. 『한국기업의 VIP국가 투자진출: 지역전문가의 조언』. 과천: 진인진.
  • 이지혁 2019b. “인도네시아 정치변화와 기업의 대응: 2019년 선거를 중심으로”. 『VIP 국가의 한국기업 진출과 로컬사회의 변화: 정치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비교문화연구소.
  • 주경철. 2002. 『대항해 시대』.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최우석. 2018. “한국은 2억 6000만 명 인도네시아 시장의 메인 파트너.” 『조선일보』 9월 1일.
  • 하네다 마사시. 이수열․구지영 역. 2012.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 서울: 선인.
  • Boston Consulting Group. 2013. “Asia’s Big Opportunity.”
  • Brown, Colin. 2003. A Short History of Indonesia: the Unlikely Nation? Singapore: Allen & Unwin.
  • Reid, Anthony. 1993. Southeast Asai in the Age of Commerce 1450-1680: Volume Two Expansion and Crisis. Bangkok: Yale University.
  • Rovnick, Naomi. 2013. “Why Indonesia Is an Exciting Market for Foreign Investors, and Also One of the Most Perilous.” Quartz. March 6.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18. 현대판-향신료-전쟁-인도네시아에-진출한-한국기업의-도전과-기회

모던 베트남(Modern Vietnam)을 위한 한국의 역할: 기술이전과 인력개발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베트남의 경제성장은 외자주도형 수출공업화 전략에 따른 대외지향적 산업구조를 통해 이뤄낸 성과이며, 한국의 기업이 현재 베트남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파트너로 역할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내부적으로 현대적 산업화 국가(Modern Vietnam)까지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존재한다. 눈부신 성장을 이어나가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베트남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인데, 최근 부각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기술이전노력은 주목해볼만하다. 게다가 베트남과의 무역 수지에서 지나치게 많은 흑자를 보고 있는 한국 의 기술이전은 한국과 베트남의 상생을 위한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이다. 그런데 기술이전에 앞서 선행되어야 준비는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이다. 인력 개발은 국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민·관·학의 협업으로 가능할 수 있으며, 베트남의 중요 파트너로서 한국이 적극 지원해야 할 분야다.

1630

육수현(서울대학교)

모던 베트남1)의 외현, 비약적 경제 성장

베트남 경제는 매년 성장을 하고, 베트남 통계청이 자랑하는 숫자 중 하나인 경제성장률은 2019년 상반기 6.76%를 달성하면서, 무궁무진한 성장가능성을 뽐내고 있다. 여전히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홍콩, 중국 등의 국가에서 신규 투자와 투자증액 그리고 공적개발원조(ODA)가 베트남으로 쏟아진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분야의 성장도 가속화되었고, 농림·수산업도 회복세로 돌아섰다.

무역수지도 더디지만 2016년부터 계속해서 흑자 상태이며, 2017년 약 29억 달러, 2018년엔 상반기에만 약 33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전기·전자, 섬유·의류, 교통, 건설, 철강, IT, 자동차·자동차부품, 유통 등 산업 환경면에서도 다방면으로 외국 기업이 활동할 정도로 베트남은 대외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시장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2019년 8월 무역수지 흑자가 삼성 스마트폰 수출 증가로 인한 수직 상승(연합뉴스 2019/09/13)인 것처럼 외국투자기업의 수출과 수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베트남은 생산기지이자 시장으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집중조명하고 있는 나라다.

베트남은 늦은 출발과 더딘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2007년 WTO가입과 2009년 외환위기를 기회로 삼아 2010년 이후부터 외국인투자기업 유치를 국가적으로 노력하여 현재의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 결과 2019년도 베트남 경제 성장률을 국제금융기관(IMF 6.5%/World bank 6.6%/ ADB 6.8%)은 6%의 중반대로 작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치를 전망하는 등 외부에서의 시각도 우호적이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다른 아세안 국가의 경제 성장 전망에서 비슷한 수준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보다 경제 성장 전망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2010년 개발도상국의 지위가 된 이후 2018년까지 연 평균 6%의 GDP 성장률을 유지했고, 1인당 GDP는 2,600달러에 도달했다. 세계혁신지수에서도 129개국 중 42위로, 아세안 국가들 중 3위를 차지하였다. 외자주도형 수출공업화 전략에 따라 대외지향적 산업구조로 베트남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이 함께한 베트남 경제발전

베트남 경제성장에 한국이 큰 역할을 하였다. 2010년 이후부터 본격화된 한국의 대 베트남 투자는 2015년 이후 현재까지 누적 투자건수(7,905건)와 투자금액(645억5000만 달러)에서 최대 투자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만들었다(코트라 2019/07/17). 한국의 투자는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산업분야 대다수, 즉 전기·전자, 섬유·의류, 건설, 철강, IT,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유통까지 확대되었다. 베트남은 한국의 아세안 내 제1위 교역상대국이고, 2018년 기준으로 약 6,000개 이상의 한국기업이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삼성이 베트남 GDP의 28%를 차지하였다는 사실은 한국기업의 영향이 베트남에서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삼성의 전자공장이 활동하고 있는 북부지역 박닌(Bac Ninh)성의 경우 베트남 내 제1의 GDP성장률을 가지고 있으며, 최고의 소득을 기록하고 있는 곳이다. 삼성의 협력사들과 그 밖의 다른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박닌성의 경우 도시의 경관을 바꾸고, 노동자의 주거공간을 만들어내는 등 박닌성 내 경제생활과 소비산업에 변화를 이끌 정도로 한국기업이 베트남의 로컬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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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닌시 Ly Thai To 거리 전경
출처: 저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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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선 산업단지
출처: 저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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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퐁공단 내 주거·소비 지역1
출처: 저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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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퐁공단
출처: 저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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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변화하게 할 정도로 양국간의 교류와 교역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2017년 베트남으로의 수출은 477억 5000만 달러로 2015년에 비해 72% 증가한 숫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류는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무역수지 면에서도 엄청난 흑자를 낳았다. 2017년 베트남과의 무역 수지는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수지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한국이 얻는 흑자는 상상을 넘어선다. 한국 기업의 투자가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이끌기도 하였지만, 한국이 가져가는 이득도 기이할 정도로 많은 것이 사실이며, 이러한 환경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국가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한다.

한국의 對베트남 투자금액(단위 : 백만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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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한국수출입은행 해외직접투자통계(2019년 통계는 6월말까지를 반영)
ⓒ DIVERSE+ASIA
베트남의 국별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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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EIC(검색일: 2018. 6.12), 권율·김미림(2018) 재인용

 

실질적 모던 베트남의 한계

2019년 9월 1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베트남개혁개발포럼(Vietnam Reform and Development Forum, VRDF)에서 베트남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논의됐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이끌어 왔던 베트남의 성장모델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한 두 가지 우선 전략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기반 성장’과 글로벌 ‘시장경제’에 통합되는 것이다. “국제기준을 준수하는 시장경제 모델의 완전한 수용과 새로운 사업모델인 디지털경제와 환경보호를 위한 법적제도 확립이 국가의 최우선 목표”라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디지털화, 인공지능, 자동화, 신재생에너지, 환경기술 개발에 집중투자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The Phnom Penh Post 2019/9/23).

이처럼 최근 베트남이 국가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준비다. 왜냐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반면 베트남 경제성장의 지속가능성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쉬지 않고 들려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베트남의 경제모델은 빠른 고령화 사회 진입2)(이은미 2017), 낮은 자본 축적 및 투자 수익, 자연자원의 한계, 인적 자본의 생산성 저하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양적인 발전에 치중하게 되면서 산업화와 함께 가족의 형태가 바뀌게 되고, 결혼률과 출산율이 저하되는 환경에 처했다. 베트남의 결혼 적령기는 도시지역 남성이 28.7세, 여성이 24.9세(Nguyen Thanh Binh 2011)로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이다. 고령화 사회 진입과 저출산은 베트남이 가진 커다란 장점인 젊은 양질의 노동력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인적자원문제에서 현재 다수의 노동자가 저임금·저숙련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도 난제이다. 15세 이상의 베트남 노동자 5천만 350만 명 중 숙련된 노동자들의 수는 995만 명(18.6%)정도다. 이는 현재 베트남의 전체 노동력의 81.4%가 비숙련 노동자라는 의미다(Vietnamnet 2019/01/30)3).

베트남은 빠른 GDP 성장률에 비해 노동 생산성은 낮은 편이다. 베트남 통계청(GSO)은 2015년에 베트남의 노동생산성이 싱가포르의 5%, 말레이시아의 20%, 태국의 35%,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50% 수준이라고 했다(Kotra 2018)4). 낮은 노동 생산성에 비해 매해 오르고 있는 최저임금은 외국인직접투자 기업들이 베트남을 이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어 장기적으로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5)

노동집약적 산업(제조업이 70% 이상)으로의 불균형적 집중은 지금까지 베트남을 세계 다국적 기업의 생산공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질적인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저숙련 노동으로만 소득이 창출되고, 고급기술이 아닌 노동집약적 일자리가 넘쳐나는 베트남의 노동환경은 달콤하지만 하루빨리 수정해야할 부분이다.

베트남이 중장기적으로 상위 중소득국가 진입을 목표로 의욕적인 산업발전전략을 추구하고 있지만, 수출규모에 비해 낮은 수익, 2018년 GDP대비 58.4%에 달하는 공공부채, 국영기업 민영화의 더딘 속도, 은행 부문 개혁 부진, 당 내부적 성장과 개혁의 미진함 등 부정적인 요소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이상 베트남 정부가 말하는 현대화된 산업발전 그리고 산업국가 건설 계획은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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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KOTRA 2019 국별 진출전략과 저자 코멘트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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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정부의 기술혁신과 인력개발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베트남의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아세안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부가가치 부품 개발, 기술집약산업 육성노력을 계획만큼 실행하지 못하면서, 외국기업의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만을 앞세우고 있는 모습과 그 결과가 있다. 여전히 심각하게 낙후된 교통, 전력, 용수 등 산업인프라가 부족하고, 연관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산업구조로 인한 부품소재 조달비율이 30%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중간재를 주변국인 중국, 태국에서 수입을 하는 구조는 베트남 내 중소기업의 발달을 가져오지 못하고, 무역규모에 비해 적은 수익을 얻게 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GDP 3,000달러를 앞둔 현재 그동안 계획으로만 있었던 숙련인력 양성, 신에너지, 4차 산업혁명, 친환경기술, ICT기반 스마트산업, IT 산업관련 부품소재, 의약품개발 등 다양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진짜 구체적 방안을 위해 산업의 체질개선에 중점을 두는 다양한 계획과 투자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몇 번의 성공을 이뤄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외국기업을 활용한 산업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고도화와 기술이전의 제도화 실행

글로벌화 추세 속에서 과학기술은 각 국가와 기업들의 성패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요인이다. 과거 제조업 분야에 대한 투자는 분야에 상관없이 적극 유치하였었다. 그 결과 제조업분야에서 남다른 성장세를 보였고, 여전히 베트남 경제성장을 이끄는 주요 산업분야로 자리매김해 있다. 역시나 베트남은 「2035년 전망, 2025년까지의 베트남 산업발전전략」(2014년 6월 9일자 Decision879/QD-TTg)을 통해 제조업을 우선 발전 부문으로 선정하고, 농업기계,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농림수산업, 수출용 섬유·의류 및 가죽·신발 제조업 등을 주력산업으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들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 부품·소재산업의 육성과 외국인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베트남의 부품·소재산업 발전은 현지 제조산업 고도화와 글로벌 기업의 현지 투자 진출 그리고 베트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절차이다. 국외로부터 수입되는 중간재의 자급률을 낮추기 위한 기업 간 자체노력이 행해짐과 동시에 베트남 정부도 부품·소재산업 육성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투자 유치 확대를 위한 각종 지원 정책을 발표하고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기술이전법이 등장한 시기는 2006년이다. 2002년 기술이전연구 및 교육 센터가 하노이에 문을 여는 등 기술이전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6) 2013년엔 공업과 과학법에서, 전문법에서는 2008, 2011, 2014년에 법을 제정하고 있지만, 기술 혁명 및 이전 과정은 최근까지 지지부진했다.

2014년 베트남 산업무역부는 ‘2020 부품소재산업 개발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위한 시행령(Decision 9028/QD-BCT)을 발표하였고, 중소기업들의 부품소재산업을 장려를 목적으로 한 시행령(Decree 111/2015/ND-CP)을 공포하였다. 부품소재산업의 법인세 우대는 초기 4년간 면제하고, 이후 9년까지는 50%를 감면 정책이 있으며, 투자기간 15년간 법인세를 10%만 적용, 기계 수입세 면제, 부가가치세 및 신용대출 우대 등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었다.

베트남은 2012년부터 2011–2020년 단계 과학·기술 발전전략을 통과시켰고, 2020년까지 하이테크 제품과 기술 활용 제품의 가치를 2011년 GDP의 19%에서 45%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하이테크 제품과 기술 활용 제품은 대부분 FDI 기업이 만들어낸 것이어서, 현재 베트남 국내의 부품소재 조달 비율은 30% 수준에 못 미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43%), 태국(53%)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기술 혁신 속도가 빠른 정보·통신 기술, 석유, 재정·은행 등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베트남 국내 기업들은 세계 기준의 평균에 비해 2~3배 정도 낙후된 기술을 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은 낮은 수준의 자본금, 소규모 공장부지, 낙후된 기계와 장비라는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에까지 투자할 자본의 여력이 없는 것이다. 또한 당장의 수익을 위해 사업을 운용하는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베트남인 기업가의 의식도 변화가 미비한편이다.

베트남 내 기술이전 방식

베트남에서 지금까지 활용되었던 기술이전 방법은 3 종류가 있는데, ‘국내기술이전’, ‘외국투자 프로젝트를 통한 기술이전’, ‘장비·기계 수입을 통한 기술이전’이 그것이다. 베트남 과학기술부의의 2006-2016년까지의 베트남 내 기술이전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술이전이 늦고, 경제·사회 발전 기여도 역시 높지 않게 나타났다. 베트남 기업 중 기업 내 R&D센터를 가진 기업은 5%이고, 약 80%이상이 R&D센터가 없거나, 기술이전 전략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기업이며, 연구활동, 기술이전계약의 수가 아직까지 적은 수준이다.

물론 하노이, 호치민을 중심으로 과학 및 기술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부지방, 산악지대, 동남부 혹은 홍강 삼각주 지역엔 많지 않다. 이러한 기관이 기술이전 중개 서비스, 컨설팅, 기술평가 및 가치 책정 등과 같은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지만, 기술이전의 주체도 찾기 어려우며 기술이전 방식도 체계화되어있지 않고, 치밀하지 못한 점 역시 문제다.7)

외국투자 프로젝트를 통한 기술이전은 외국에 본사를 둔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FDI 기업이 베트남 내 지사로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자금과 기술이전이 동시에 유입되면서 이루어지는 형식이다. 하지만 베트남 내부에서 FDI 프로젝트는 다양성이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라, 이러한 프로젝트에서 활용된 기술은 이미 베트남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기술이다. 즉, 국제시장에서도 기술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제한점이 존재하게 된다.

베트남 산업 생태계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베트남 기업가의 인식교육, 외국기업을 향한 체계적인 기술교류(공정, 기술 사양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데이터 정보 교류 및 교육), 첨단산업 유치, 친환경기계 도입 등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을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기술이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무턱대고 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오히려 문제를 낳기도 한다. 응우엔 람 타잉 (Nguyen Lam Thanh – 랑선 지역) 의원은 무분별한 장비·기계 수입은 베트남을 세계시장에 비해 2-3배 이상 낙후된 기계, 기술 제품, 기계 장치 등을 보유하는 나라, 즉 “기술 쓰레기장”8)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하였다. 낙후된 기술과 기계는 베트남을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195개 배기가스 배출국 중 27위를 차지하게 하였다. 전문가들은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원인으로 베트남의 기업들이 사용하는 중국에서 수입된 낙후 기술을 원인으로 평가하고 있다.9)

베트남의 과학기술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기업들 중 90%가 세계 평균에 비해 낙후 기술을 사용하며, 수입된 기계, 기술 라인 등이 50, 60년대 기술이고, 그 중 75%에 해당하는 장비는 감가상각이 다 된 장비였다. 한정된 자본은 베트남 기업이 중국에서 (오래되어 문제가 발생한 또는 환경문제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기술과 제품을 수입하거나 재구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10%만 현대적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그 중 하이테크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은 2%에 불과하였고, 이는 태국 31%, 말레이시아 51%, 싱가포르 73%에 비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10)

2017년 5월 기획투자부는 2017년 1월-4월 동안 중국에서 수입된 기계, 장비들의 수는 2016년에 비해 40% 증가하였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2016년에도 베트남에 기계, 장비, 부품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가 중국이며 총 수입액이 90.25억 달러였다. 2017년 6월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보다 더 발전한 나라에서 사용되지 않는 기술, 기계의 이전을 금지하는 초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렴한 것을 좋아하는 베트남 기업들의 인식 변화와 교육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아무리 낙후된 기술 수입을 금지한다 하더라도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폐기될 수준의 기술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패문제는 베트남으로 적정한 기술을 수입하는데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

베트남 기술이전을 이끌 인력개발의 부족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낙후되지 않는 기술과 기계장치를 들여온다 하더라도 베트남 노동자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고학력 기술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는 있지만, 2016년 노동보훈사회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직업 교육을 받은 노동자가 38.5%에 불과하였고 2015년에는 18.1%뿐이었다.

고급인력 육성은 이미 2011-2020년 사회경제개발계획(SEDP)에서도 주요 목표로 상정되어 있었고, UN의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 향상을 위해 숙련인력을 70%, 직업훈련 55% 등으로 계획했지만,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이테크 기술을 이해하려면 하이테크 실력을 가진 노동자나 고학력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낙후 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은 고학력 노동자가 적은 베트남 노동시장에서 저숙련·저학력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지만, 장기적인 베트남의 성장을 위해서는 노동력의 질적 상승이 필요하다. 기술발전과 인력개발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베트남에서 자동화, 로봇, AI 기술이 발달할 경우 미숙련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베트남 정부가 적당한 시기와 적정한 기술개발 그리고 인력양성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의 워드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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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공공데이터포털 2018-2019 해외진출기업 디렉토리
방법: 워드 클라우드 생성프로그램(tagxe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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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모던 베트남을 위한 한국의 역할

최근 베트남의 성장에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베트남으로 다양한 기업들이 미중무역갈등을 피해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긴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송 터미널(transfer terminal)”로서 역할하면서 수출입이 증가하였고, 그 안에서 활발한 경제활동과 함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재, 부품과 소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 형성이 더디면 더딜수록 베트남 현지에 있는 FDI 기업에게 부품을 사거나, 그 부품을 조립하는 임가공 형태의 산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문제점에 빠지게 된다.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눈부신 베트남의 경제발전은 당분간은 이어질 것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성장을 이끌었고, 국가의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서고 있는 추세이며, 기술이전, 부품소재의 현지화, 4차 산업혁명,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업그레이드 등의 요구에 부흥하도록 국가를 운영한다면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의 기득권 세력이 근본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하고 부패척결이 수반된다면 모던 베트남은 더욱 빠르게 달성될 것이다. 베트남 정부의 자본 투입이 필요하지만 여력이 부족한 부분은 외국기업과 공동·합작 투자, ODA와 민간기업의 재원을 활용하여 인력개발까지 이끌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한국이 모던 베트남을 완성하는데 키맨으로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기업의 직접투자와 함께 베트남 기업과 합작하는 간접투자를 증진시키고, 생산, 조립, 건설 부문 이외에 태양광,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 부품소재개발기술 등 한국의 첨단기술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양국이 모두 인식하고 있는 지점이다. 선행적으로 베트남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주요 산업분야인 4차 산업혁명 분야인 핀테크, 인공지능, 스마트시티 등으로 적극적인 진출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인력개발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개발이다. 베트남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고학력·숙련 노동자를 길러내야 한다. 노동 및 사회 과학원의 “2012~2017년 단계 베트남 노동 및 사회 추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2.74%에서 2017년 2분기에 1.62%로 하락하는 등 5년 동안 베트남의 실업률은 안정되었으며 일자리 부족 비율이 낮은 편이다. 실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베트남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이다.

2017년 2분기 기준으로는 15세 이상 베트남 노동 인력은 53.4백만 명이며 자격증을 보유한 노동자는 11.78백만 명이다.11) 베트남에서 자격증을 보유한 근로자는 23%에 불과하며, 이 중 전문대학교·대학교 이상 근로자가 50%, 직업전문학교 졸업자가 5.4%를 차지한다.12) 베트남 2011-2020 사회경제개발계획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범주 중 하나인 고급인력 육성인만큼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베트남 정부의 노력도 쉽지 않다. 2006–2020년 단계 베트남 대학 교육의 기반과 전반 혁신에 관련한 2005년 11월 2일에 나온 14/2005/NQ-CP호 결의서에서 대학 교육은 국가의 고학력 인력의 수요, 또한 과학 기술의 추세, 산업화, 현대화의 요구 등과 연결시키며 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대학 교육은 여전히 문제가 많으며 기업의 고용 인력조건에 부응하지 못한다. 현재 대학생들의 수준이 부족하다는 기업들의 의견은 공공연하며, 대학교육과 현장 업무의 차이가 크다는 문제점도 이야기 되고 있다.13) 베트남 정부도 산학협력을 통한 고학력·숙련노동자를 육성하려는 정책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대학교와 기업이 맺는 프로젝트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으며, 산학협력을 이끌 베트남 내 기업의 양과 질이 부족한 점 역시 문제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기술이전 및 개발

베트남에서 과학연구 및 기술개발에 대해서 산학협력을 이루어진 기업이 불과 4%였고 교육 기관에서 박람회, 포럼, 교육 프로그램과 같이 참여하는 기업 29%였다. 대부분의 산학협력 관계는 기업의 단기적 욕구만 부응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장기적 전략으로 진행하지 않았다.14) 이처럼 인력개발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베트남 정부, 기업 그리고 교육기관도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베트남 내 중소기업은 여전히 지속가능한 개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연구 및 혁신에 투자하기를 꺼리며, 당장의 이익에 몰입한다. 대학은 거의 변화가 없는 엄격한 교육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을 뿐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2021-2030 성장전략에서 베트남은 기술기반 성장과 시장경제로의 완벽한 통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과학 지식, 기술의 후진성을 피하기 위해 베트남의 인력개발이 시장에 필요하고 시장을 위한 개발로서 자리 잡기 위해 전략과 투자가 필요하다. 민·관·학이 주체가 되어 제대로 된 인력을 배출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현대 베트남을 건설할 수 있는 지식과 감성을 갖춘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의 산학협력 경험 전달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베트남에서도 몇 차례 진행된 적 있는 한국의 LINC+(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과 같은 산학협력시스템을 이벤트성이 아닌 체계적 구조 안에서 베트남 대학과 함께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다방면에서 교류와 실행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 기업의 기술이전 움직임이 베트남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예로 한국의 경우 국가기관, 기업, 지자체 차원에서 기술이전 기업을 모집하고 베트남 기업과 매칭을 하는 등 현대 베트남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기업과 기술들이 함께 베트남으로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공적개발원조(ODA)를 지원해 한국-베트남 과학·기술 기관(VKIST, Vietnam-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을 설립하였고, 글로벌테크 코리아는 글로벌기술사업화센터(GCC)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하노이에 베트남과학기술부 기술이전촉진센터(VTTC)를 설치하여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 역시 베트남 정부와 기업가의 요구에 부응하고 부품의 현지조달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차 협력사를 베트남 내에서 육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등, 하노이에 기술개발과 기술이전 연구소를 설립해 베트남에 필요한 기술 R&D를 고민하는 등 기업차원에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모던 베트남을 만들기 위한 베트남과 한국의 노력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자세이다. 하이테크, 스타트업, 신재생에너지의 보급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는 인적조건 없이는 지속성장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진짜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은 기술이전도 중요하지만 인적개발과 인적교류를 위한 한국의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저자소개

육수현(breeze284@daum.net)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베트남진출 한국 기업과 로컬간의 상호 작용과 상생방안을 고민하며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베트남과 한국의 문화교류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와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제한된 문화자본과 정체성의 혼종화: 한국전공 베트남 청년세대의 현실과 대응”, “반 (半)주변부국가 언어의 경계 넘기: 베트남 내 한국어 구사자의 수용과 활용을 중심으로”, “호찌민시 한-베 다문화 가족의 한국어 학습 수요에 관한 연구: 한글학교 재학중인 2세의 학부모를 대상으로.”가 있고, 저서는『다문화와 다양성(공저)』『한국기업의 VIP(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국가 투자진출: 지역전문가의 조언(공저)』가 있다.

 


1) 베트남은 도이머이 정책의 실천 계획을 10개년 단위로 사회경제개발전략(Socio-Economic Development Strategy, SEDS)을 수립하여 운영하는데, 2001-2010년 사회경제개발전략의 주요 목표는 저성장 극복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었다면, 2020년까지는 현대화된 산업국가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발전 차원에서의 인력개발, 과학기술 제고, 경제·사회 인프라 구축, 환경적 발전 등을 노력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특히 2020년까지의 전략과 계획에선 현대적 산업화 국가(modern Vietnam)로 진전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들이 세워졌고,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첨단과학기술산업을 자생적으로 발전시키거나 능력을 갖추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의 제목에 쓰인 ‘모던 베트남’은 베트남의 경제사회발전 전략에서 내세우고 있는 핵심 키워드인 현대적 산업화 국가를 꿈꾸는 베트남의 목표를 담기 위해 사용했다.

2) 이은미, 2017, 베트남 고령화 추세 진단 및 인구구조, 소비시장 변화 전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TRADE FOCUS 30호, 1p.

3) https://english.vietnamnet.vn/fms/business/217044/foreign-firms-in-vietnam-face-skilled-workforce-shortage-amid-fdi-wave.html

4) 「베트남 투자뉴스」산업통상자원부 Kotra 한국투자기업지원센터, 2018/01/12

5) 채수홍 외, 2019, 한국기업의 VIP(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국가 투자진출: 지역전문가의 조언, 진인진.

6) 기술연구 및 기술이전센터( http://cretech.vast.vn/) 베트남 과학 및 기술 학술원이 주관기관이며, 신기술 발굴, 접수, 연구 및 개발, 기술 컨설팅 및 기술이전을 담당한다.

7) https://bnews.vn/han-quoc-chuyen-giao-cong-nghe-xay-dung-thanh-pho-thong-minh-cho-viet-nam/40278.html

8) https://infonet.vn/dbqh-lo-ngai-viet-nam-thanh-bai-rac-cong-nghe-post228942.info

9)  베트남에서 배기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 분야는 화력발전 혹은 연금 분야이며 매우 낙후된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분야다. 석탄으로 하는 화력발전 기술 개발을 강력하게 촉진하는 베트남의 모습을 보면서 과학, 환경 전문가들은 큰 우려를 나타낸다. 대표적인 사업은 빈투언성에 있는 1~4호 빙딴 화력발전소다. 이 발전소에는 중국의 투자금이 95%를 차지하고 있다.

10) https://www.rfa.org/vietnamese/in_depth/vn-still-buys-backward-technology-08242017130716.html

11) https://giaoducthoidai.vn/trao-doi/can-canh-nguon-nhan-luc-viet-nam-3958025-b.html

12) https://laodong.vn/xa-hoi/bao-dong-chat-luong-nhan-luc-viet-them-9000-tien-si-hay-dao-tao-cong-nhan-lanh-nghe-577199.ldo

13) https://baomoi.com/mo-hinh-gan-ket-giua-truong-dai-hoc-voi-doanh-nghiep-trong-dao-tao-dai-hoc-o-nuoc-ta/c/28103129.epi

14) http://tapchimattran.vn/thuc-tien/thuc-day-lien-ket-truong-dai-hoc-va-doanh-nghiep-o-nuoc-ta-truoc-boi-canh-cach-mang-cong-nghiep-lan-thu-tu-22218.html

 


참고문헌

  • 이은미, 2017. “베트남 고령화 추세 진단 및 인구구조, 소비시장 변화 전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TRADE FOCUS 30호.
  • 연합뉴스, 2019. “베트남 8월 무역흑자, 삼성 스마트폰 덕분에 ‘수직 상승’”, (9월 13일).
  • 채수홍 외, 2019. “한국기업의 VIP(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국가 투자진출: 지역전문가의 조언”, 진인진
  • 코트라, 심수진, 2019. “2019년 상반기 베트남 경제 및 교역동향”, (7월 18일).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17. 모던-베트남Modern-Vietnam을-위한-한국의-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