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으로 칭해지는 양칠성은 누구인가


2019년 8월 22일 오마이뉴스 보도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으로 칭해지는 양칠성은 누구인가

인니 독립 위해 싸운 영웅으로 평가 받지만, 일각에선 ‘친일’ 논란도

 인도네시아 가룻(Garut)시 관립영웅묘지에 있는 양칠성씨의 묘비
▲  인도네시아 가룻(Garut)시 관립영웅묘지에 있는 양칠성씨의 묘비
ⓒ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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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3일 오전 9시 54분]

인도네시아에는 한인 독립 영웅이 있다. 양칠성이 그 주인공이다. 인도네시아 가룻(Garut)시 관립영웅묘지에는 ‘외국인독립영웅’ 양칠성의 묘가 있다.

지난 8월 16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8월 17일)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에서 UI와 인도네시아역사연구협회(히스토리카)는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서 한국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서는 1940년대 후반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과 관련된 한국인(조선인)들을 재조명했다. 그 중 가장 많이 연구되고 알려진 인물이 양칠성이다. 이 세미나에는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저자인 배동선씨가 연사로 참석했다. 지난 20일~21일 전화와 서면 인터뷰 등을 통해 그에게 양칠성에 대해 물었다.

 16일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서 한국인의 역할' 세미나에 참석한 배동선 작가(제일 오른쪽)
▲  16일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서 한국인의 역할” 세미나에 참석한 배동선 작가(제일 오른쪽)
ⓒ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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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출신인 양칠성은 1942년 2월, 일본군으로부터 강제징용당해 포로 감시원으로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이던 인도네시아로 왔다. 네덜란드군이 주축이 된 연합군과 일본군은 인도네시아에서 맞붙었고, 당시 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던 일본군은 8만 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감시하고 사역시키는 일을 감시할 군무원이 필요했다.

그의 인도네시아 근무기간 중 일본은 패망하여 인도네시아에서 군을 철수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들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양칠성도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 남은 조선인 중 한 명이었다. 양칠성은 그의 일본인 상사로부터 부대 이탈을 권유받은 후 일본군을 이탈한 조선인,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뛰어든다.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뛰어든 '빵에란 빠빡(Pasukan Pangeran Papak)' 부대원 '빵에란 빠빡(Pasukan Pangeran Papak)' 부대원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칠성이다.
▲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뛰어든 “빵에란 빠빡(Pasukan Pangeran Papak)” 부대원 “빵에란 빠빡(Pasukan Pangeran Papak)” 부대원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칠성이다.
ⓒ 한인니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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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정이 그의 의사였는지 아니면 강제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독립군에서 무기 다루는 기술을 배워 폭파전문가가 되었다고 알려진 그는 인도네시아 독립군 부대에서 1948년 11월까지 약 3년간 네덜란드군과 맞서 싸우다 잡힌다.

그리고 1년 후, 1949년 8월 10일 양칠성은 네덜란드군에 의해 처형당한다. 배동선 작가는 이를 두고 “자바의 휴전 발효 바로 하루 전 양칠성을 처형한 것으로 보아 네덜란드군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전한 외국인들을 절대 살려 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군 부대 이탈 이후 3년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서 활약한 그의 이력은 현재 많은 한국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혹은 자랑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의 일생 중엔 친일 행각으로 보이는 행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인 양칠성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다.

처형장에서 양칠성은 그의 일본인 상사의 선창으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고 총성이 울리기 직전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점은 아직도 식민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에게 분명 거부감이 생기는 지점이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서는 독립, 혹은 자유를 의미하는 인도네시아어 단어인 ‘Merdeka’를 외쳤다는 기록도 있다.

오랜 시간 양칠성을 재조명하기위해 노력해 온 한인니문화연구원의 사공경 원장은 이와 관련하여 양칠성에 관한 새로운 기록에 대해 소개했다. 양칠성이 네덜란드 군에게 체포된 이후 반둥(Bandung) 지역의 미결수 형무소 반쩌이(Banceuy), 사형선고 이후 수카미스킨(Sukamiskin) 형무소, 자카르타(Jakarta) 찌삐낭(Cipinang) 형무소 등으로 전전했는데 처형 직전 수감됐던 찌삐낭 형무소에서 그와 함께 지낸 동료는 ‘머리와 수염이 산발된 양칠성의 모습은 마치 귀신과 같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기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사공경 원장은 양칠성이 처형 직전 기미가요를 부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 게릴라전을 펼칠 때 양칠성에게는 사랑하는 여인(Lience Wenas)이 있었는데 둘은 사실혼 관계였고 둘 사이에는 자식도 있었다고 한다. 양칠성은 이 아내와 자식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게릴라전을 펼치며 긴박한 와중에도 이들을 데리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처형된 이후 인도네시아의 국기인 ‘메라뿌띠(Merah Putih)’로 그의 관을 덮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하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을 사랑한 사랑한 독립 영웅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 사공경 원장의 의견이다.

또 배동선 작가는 이를 두고 “9개월간 가혹한 포로 생활 끝에 용기와 기백을 잃고 피폐한 상태에서 처형 직전 어떤 말을 외쳤는지를 두고 그의 일생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오히려 그가 아무 말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 싸우다가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양칠성이 비판받는 친일행각 중 대부분은 생존을 위해, 혹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므로 ‘친일’이라는 표현보다는 ‘일본이 묻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배동선씨에 따르면, 1995년 그의 묘비가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바뀔 때만 해도 한국 대사관과 한인 사회는 반기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현재 한국 대사관은 그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동선 작가는 “그를 항일투사나 한국 입장에서 독립 영웅으로 평가할 순 없다”면서도 “그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적 환경을 고려하면 그는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를 받으며 소외받고 있다”라고 짚었다. 배 작가는 그에게 ‘뭍은’ 일본의 흔적보다는 3년간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싸운 역사를 집중하여 평가하면 한국과 인도네시아, 혹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협력적인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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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첫 예비여왕 “행복은 소득순 아니다”


2019년 5월 7일 한국일보 보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첫 예비여왕 “행복은 소득순 아니다”

족자, 전기 안 들어오는 마을도 있지만 印尼 행복지수 1위 
2021년 족자~인천 직항노선… 한국 신재생에너지에 관심 

예복을 차려 입은 망쿠부미 공주. 공주는 족자카르타 왕국의 첫 여성 왕위 계승자다. 족자카르타 왕궁 제공

인도네시아는 왕이 없는 민주공화국이지만, 술탄(왕)이 실질 지배하는 땅도 있다. 자바섬 중남부의 족자카르타(족자) 특별 주(州)다. 천년 고도(古都) 족자는 자바의 정신이자 정수리다. 왕은 행정직제상 주지사지만, 헌법에 의해 주지사직 세습 및 공무원 임면권 등의 자치권을 보장 받는다. 주민들 역시 그를 왕으로 떠받든다. 상징적이지만 오직 충정으로 거의 무보수로 궁정을 지키는 군대도 있다. 인도네시아 34개 주 중 유일하게 ‘공화정 속 왕국’인 셈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통치 구조다.

현재 술탄은 하멩쿠부워노(Hamengkubhuwonoㆍ73) 10세. 슬하 공주만 다섯이다. 개국 260년, 재위 26년째인 2015년 5월 5일 왕은 망쿠부미(Mangkubumi) 칭호를 하사하며 맏딸을 후계로 책봉했다. 망쿠부미는 ‘땅을 지키는 자’라는 뜻으로 건국시조의 이름이자, 현 왕이 세자 때 받은 명칭이다. 차기를 노리던 왕의 형제 14명이 일부 보수 무슬림을 모아 ‘술타나(여왕) 옹립은 예법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왕은 “남녀는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라고 설득하며, 헌법재판소에 청원까지 했다. 2017년 11월 헌재는 왕의 손을 들어줬다.

족자카르타 왕국의 술탄 하멩쿠부워노 10세 부부(앞줄 가운데)와 망쿠부미(뒷줄 오른쪽 두 번째) 공주 등 다섯 자매와 및 사위들. 망쿠부미 공주 제공

구스티 칸증 라투 망쿠부미(Gusti Kanjeng Ratu Mangkubumi)라는 긴 이름을 가진, 족자의 첫 예비 여왕 망쿠부미(47) 공주를 지난 1일 자카르타에서 550㎞ 떨어진 족자 왕궁 식당에서 알현했다. “한국 언론으로는 한국일보가 첫 인터뷰”라고 했다. 첫인상에 그만 ‘이 분, 공주 맞아?’ 경망스런 독백을 뱉을 뻔했다. 공주는 뿔테안경에 머리를 질끈 묶고,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평범하다 못해 무구했다.

망쿠부미 공주는 지난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특히 한국의 신(新)재생에너지 사업, 한복과 비단, 동물복지 양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신(新)공항 건설, 노면전차(트램) 개통 등 투자 유치를 위한 노력도 소개했다. “족자와 인천국제공항을 잇는 직항노선도 곧 생긴다”고 강조했다. ‘돈보다 행복’ ‘건강한 식품’이 그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 길의 동반자로서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자신의 땅에 투자해 주길 바랐다.

공주는 “대체로, 대개는(Mostly)”이라는 단어를 말의 첫머리마다 내세워 대화 상대와 상황을 긍정했고, 길지만 단호하게 “예~스!”라고 끝맺으며 동의를 구하거나 상대방을 인정했다. 재치 있는 농담과 스스럼없는 친절도 자태에 녹아 있었다. 왕위를 위협하는 삼촌들의 집단 반발에 와신상담하며 정치적 입지를 차곡차곡 다진 세월도 영향을 미쳤을 게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왕가의 첫 여성 왕위 계승자인 망쿠부미 공주가 1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웃고 있다. 족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공주와 인터뷰하면서 위엄과 권위는 겉모습이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공주는 동갑인 기자보다 며칠 먼저 태어난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차기 술탄이 아닌 새로 사귄 벗과의 유쾌한 점심식사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2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나.

“작년 4월 처음 갔다. 4박5일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서 푹 쉬다 왔다. 한국 음식과 의상에 매료됐다. 연구해 보고 싶다. 비단은 내 전공이기도 하다.” 그는 2003년 세계비단협회 부회장, 2006년 인도네시아비단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족자 수공예제작수출협회(KADIN)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대통령을 만났나.

“쇼핑이 좋다(웃음). 이번엔 가족들과 휴식 차 조용히 다녀왔다. 다음엔 더 많은 곳을 가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인도네시아 정부 직제상 주지사인 국왕은 장관급, 공주는 차관급이다. ‘공화국 속 왕국’이다 보니 다른 국가를 상대하는 외교권은 없다.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가.

“족자에는 한국 기업이 많다. 다만 대기업은 없고 중소기업들만 있다. 곧 개항할 신공항에 2021년부터 족자-인천 직항노선이 생긴다. 신공항부터 족자 시내까지 트램도 깔았다. 2시간 걸리던 길을 20~30분이면 올 수 있다. 투자하면 부지도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등 투자 환경도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보다 낫다.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오기를 바란다.”

-어떤 분야의 투자를 원하나.

“한국에는 좋은 회사가 많다. 특히 족자는 농업과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소 배설물, 낙엽과 쓰레기를 이용한 폐기물에너지(Waste To Energy) 사업을 해보고 싶다. 풍력 발전, 태양광 발전도 관심 분야다. 아직 전기가 안 들어오는 마을이 있어 소규모로 여러 곳에 짓고 싶다. 주민들이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지만 어디든 있으면 좋겠다.”

그는 동석한 백남희 한국중부발전(KOMIPO) 인도네시아 법인장에게 “소 40마리가 있으면 몇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지”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비용과 효율은 각각 어느 정도 되는지” 등을 묻고 답을 듣더니, 담당 변호사를 불러 상의하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지시하기도 했다.

족자카르타 왕국의 왕궁 뒤편에 있는 왕실 소유 식당 ‘발레 라오스’. 음식을 먹는 장소, 맛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족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족자는 인도네시아 34개 주 중 가난한 지역에 속하는데.

“한 달 평균 식비가 40만루피아(3만2,000원) 이하면 가난한 지역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더라. 우리는 한참 밑인 10만루피아(8,000원)다. 그런데 우리는 먹을 것을 직접 키우기 때문에 그만큼 식비가 덜 든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외식비라 해봐야 3,000루피아(240원)짜리 국수(mie)를 사먹는 게 전부다. 물가도 다른 지역보다 싸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행복지수가 인도네시아 내에서 1위다. 평균 수명도 높아 장수 지역에 속한다. 가난한 9%를 위한 복지도 마련돼 있다. 소득(income)이 높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남들 보기엔 가난해도 우리는 행복하다.”

-왕위 계승 수업은 받고 있나, 현재 맡고 있는 일은.

“특별한 건 없다. 딸로서 의무를 다하고 아버지를 보고 배울 뿐이다. 2002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여성, 복지, 동물 보호에도 관심이 많다. 보호구역에 있는 오랑우탄 10마리도 보살피고 있다.”

그는 현재 족자 상공회의소 의장이자 족자 동물보호협회 의장이다. CSR포럼 위원장이기도 하다. 왕족 관리, 왕실 의식 등 왕궁 살림도 도맡는다. 동생들과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자바 전통 무용을 무대에서 직접 선보일 정도의 춤 실력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6세 때부터 춤을 췄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은.

“동물복지(유기농) 양계 사업을 하고 싶다. 케이지(아파트공장 형태의 철망 우리)에서 키운 닭들은 항생제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서 건강에도 좋지 않다. 교육을 받아서 건강한 식품을 만들고 싶다. 가격보다 품질을 중시하는 시대 아닌가, 생산 가공 판매망을 모두 갖춘 기술을 전수받고 싶다. 비료도 만들고 싶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왕가의 첫 여성 왕위 계승자인 망쿠부미 공주가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왕궁 식당을 소개하고 있다. 족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터뷰 뒤 “의복이 평범하니 예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망쿠부미 공주는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 사진과 활동 사진을 설명까지 곁들여 보여주며 골라 가져가라고 했다. 몇 개를 고르자 즉석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공주의 소탈하고 격의 없는 품행이 실제 모습이라고 했다. 가신(家臣)이자 수행비서인 아식(30)씨를 동생처럼 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공주의 동생들은 “언니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힘들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고 할 정도다. 싱가포르 미국 호주에서 유학한 망쿠부미 공주는 2002년 평민과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궁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는 그의 사저는 “소박하지만 기품이 있다”고 알려졌다.

CSR 활동을 하며 공주와 친분을 쌓은 이창현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 부관장은 “한 번은 행사에 늦길래 전화했더니 ‘직접 운전하고 왔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 찾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리분별이 밝아 업무 처리는 꼼꼼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라며 “외유내강 리더”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인 사업가는 “사석에선 위아래 없이 너그럽지만 공개석상에선 똑 부러지게 위엄을 보인다”고 했다.

예복을 차려 입은 망쿠부미 공주. 공주는 족자카르타 왕국의 첫 여성 왕위 계승자다. 족자카르타 왕궁 제공

대화가 예상보다 길어져서 정작 왕궁(정식 명칭 Kraton Ngayogyakarta Hadiningrat)은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특혜(?)를 은근히 바랐으나 망쿠부미 공주는 “일반 관람이 끝나는 오후 2시 이후엔 나도 못 들어간다”고 했다. 족자 왕궁의 유물 대신 왕국의 정신을 보았으니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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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무슬림 관광객 유치, 어렵게 생각 말라!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다!


방한 무슬림 관광객 유치, 어렵게 생각 말라!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다!

이 글의 핵심 주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슬림 관광객을 잘 유치할 것인가’ 입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면 한국 사회가 아무래도 관광측면에서 다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한국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에 대응하는 중국정부의 여러 조치로 인해 앞으로 얼마간 중국인 관광객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때문입니다. 사실, 그 동안 방한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 중국 관광객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았고, 이 때문에 관광객 다변화 필요성에 대한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정말로 중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하자 관광객 다변화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집중을 받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중국인 관광객을 대체할 수 있는 규모의 단일 국가, 문화권의 관광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방한 외국인 관광객 다변화를 위해 대체를 찾는다면 저는 무슬림 관광객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이들 국가는 대개 한국과 정치적으로 충돌할 여지가 매우 적고, 특히 동남아 무슬림 국가에는 한류의 인기가 높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무슬림 관광객 중에서도 특히 동남아출신 무슬림 관광객에 대한 글입니다. 세부적으로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출신의 무슬림 관광객에 대해 쓰고 있는데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출신의 무슬림 관광객이 전체 방한 무슬림 관광객 중 절반에 달하기 때문입니다.[1]

지금까지 연구된 방한 무슬림 관광객 유치방안은 어떤 것이며, 한계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방한 무슬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여러 선행연구의 결론은 하나같이 할랄식당, 기도시설로 대표되는 무슬림 편의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슬림 편의시설 확충이 전체적인 무슬림 관광객 유치에는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근본적으로 무슬림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는 주된 원인이 자연경관 감상, 한류(드라마, 영화) 등 명백히 이슬람 종교관련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이슬람 종교 관련 시설 확충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2] 게다가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한국 사회에 이미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종교집단(기독교 등)과의 반발로 모스크(이슬람 기도시설) 확충이 쉽지 않습니다. 덧붙여, 국내에 거주 정착한 무슬림 인구(한국인, 외국인 포함)가 약 10만명 정도이고 대부분 경기도의 공업지구에 몰려있는 상황에서[3] 할랄식당을 늘리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선행연구자들도 한국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자신들이 제시한 방안이 빠른 시일 내에 실현하기가 쉽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방안을 제시한 이유는, 방한 무슬림 관광객이 누군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존 방한 무슬림 관광객에 대한 연구자료는 공통적으로 무슬림 관광객을 방한 중국인 관광객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인식에 기반해서는 정확한 상황 파악이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슬람권으로 분류되는 국가별로 사용언어가 다르며 경제수준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또 이슬람은 여러 종파로 나뉘며 엄격한 원리주의 종파부터 세속적인 종파까지 종류가 다양합니다. 종파에 따라 행동양식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고요. 따라서 무슬림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고민은 중국이나 일본같이 어느 단일한 한 국가의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글이 기존의 연구와 차별되는 점은? 동남아 지역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방안 제시

이 점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방한 무슬림 유치 방안을 제시하려고 한 이 글이 가치가 있습니다.[4] 말레이시아의 인구가 약 3천만명쯤 되고 1인당 평균 소득이 1만불을 상회합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인구가 전체인구는 약 2억 4천만명쯤 되고 1인당 평균 소득이 3천 5백 달러정도 이지만[5],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 주변 인구가 1천만명에 달하고 1인당 평균 소득이 1만불에 달합니다.[6]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GDP가 연 6%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므로 미래가 특히 기대되는 국가입니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한류바람이 아직도 크게 불고 있고, 주류 이슬람 종파도 동일합니다.

이 글은 한국관광공사가 작성한 무슬림 관광객에 대한 보고서 및 무슬림 관광을 주제로 한 연구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덧붙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각각 인턴, 교환학생 등으로 총 약 1년 반 정도 현지에서 머물면서 느낀 제 경험과 한국 내 여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인과 교류하면서 체득한 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무슬림 관광객 유치 방안; 단기, 장기 방안으로 구분

단기방안

1)음식점

할랄인증 부여 보다는, 메뉴판에 영어 또는 말레이어로 성분 표시 확실히 하고 안내문 등으로 요리과정에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기

2)기도시설

깔끔한 빈 방 정도면 충분 (음식점 내에 마련하는 편을 추천)

제가 제시하는 위 두 가지 방안의 기저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무슬림이 한국으로 관광을 오는데 할랄인증 받은 음식점, 제대로 된 기도실 같은 무슬림 편의시설 확충이 방한 동남아 무슬림 관광객 유치에 절대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바탕이 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무슬림의 신앙심이 낮다는 뜻이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바랍니다. 다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은 한국이 비무슬림국가인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이를 감안하여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단기방안의 근거

1) 설문조사결과: 방한결정에 무슬림 편의시설은 별로 결정적이지 않다!

‘인도네시아 무슬림이 한국으로 관광을 오는데 무슬림 편의시설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물음에 답이 될 수 있는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자카르타지사가 2015년에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 400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대면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전 질문에 무숄라(기도실)과 할랄식당이 없다면 한국으로 여행하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약40%를 점하고 있었지만, 그 다음 질문에 한국으로의 여행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고르라는 질문에 할랄식당 유무(응답자의 3.5%)와 무숄라 유무(응답자의 3%)가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할랄식당, 무숄라 유무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여행경비/예산(33%), 자연경관 감상(23%), 쇼핑(11%), 문화유적지(8%), 교통편리성(6.5%), 안전성(5.5%), 언어소통(4.5%) 순이었습니다.[7]

2) 심층인터뷰: 할랄마크는 절대적이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 사귀었던 친구가 한국에 놀러 와서 같이 하루 동안 같이 다닌 적이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가 되었지만, 주변에 무슬림이 먹을 만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찾아 다닌 끝에 고등어구이, 고등어 조림 등 생선요리만 해서 파는 식당이 있어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이 친구는 굉장히 독실한 무슬림인데요. 핵심은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를 사용하는 식당은 피하고 생선, 산채비빔밥 같이 육류를 취급하지 않는 식당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무슬림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닐 경우에는 대게 이슬람 방식으로 도살하지 않은 고기를 취급하기 마련이고 그 식당에서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를 시키더라도 칼, 냄비 등 조리도구를 이미 할랄이 아닌 고기를 요리하는데 썼을 테니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견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역으로 생각하니 굉장히 단순한 조건이 되더군요. 횟집, 생선구이집, 산채비빔밥집 등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이면 할랄인증에 상관없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친구를 생선요리만 하는 집으로 데려갔고 그 곳에서 같이 즐겁게 식사를 했습니다.

엄격한 무슬림인 인도네시아 친구 Yuli와 함께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3) 기도시설: 외국 여행 중일 때는 나중에 숙소에 가서 기도하면 된다!

제가 여러 말레이시아 무슬림 친구들을 데리고 경복궁 근방을 가이드해준 적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과 한나절을 같이 보냈는데요. 제가 투어 도중에 ‘너네 기도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자국에 있을 때는 꼭꼭 시간에 맞게 기도를 하겠지만, 비무슬림 국가에 있거나 기도할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일 경우 숙소에 돌아간 후에 밀린 기도를 하는 식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꼭 정해진 시간에 어디서든지 기도를 해야겠다는 사람도 일부 있겠지만, 대개 한국에 큰 마음먹고 관광하러 왔고 대개 길어봤자 최대 1주일 정도 머물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은 자국에 있을 때보다 이슬람 종교 원칙을 다소 유연하게 적용합니다.

장기 방안

1)한국적인 것을 흠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 마련

2)무슬림 편의시설 마련; 기도실, 할랄음식점

장기방안의 근거

1) 심층인터뷰

이 친구는 한국에서 4년 째 유학생으로 거주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친구입니다. 저와 같이 등산도 종종 같이 가곤 하는데요. 이 친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무슬림이 한국을 관광하는 것은 K-pop같은 한류나 겨울에 내리는 눈 등 말레이시아에는 없는 한국만의 특성에 끌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 갖추어져 있는 한국의 무슬림 편의시설이 말레이시아 무슬림 관광객이 이용하기에 어떠하냐는 제 질문에, 현재 한국에 있는 할랄 식당이 대부분 가격이 비싸 이용하기가 어렵다는 평을 내놓았습니다. 기도실의 경우 비무슬림 국가에 체류하는 경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친구인 Gerald와 같이 관악산을 등반하고 식사를 하며 한국 무슬림 관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국, 무슬림 관광객을 장기적으로 유치할 수 있으려면 전반적인 관광산업 개선이 필요합니다. 무슬림이라는 특수성을 떠나 인간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채로운 체험활동이 필요하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는 관광객들도 접근할 수 있는 식당도 필요합니다. 식당의 경우 단기 방안에서 제가 제시한 것처럼 이미 한국에 있는 많은 식당 중 해산물 식당같이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은 그 자체로 이미 할랄 식당이므로 홍보, 안내문 등의 방식으로 무슬림 관광객이 먹어도 안전하다는 확신만 줄 수 있으면 됩니다. 전반적인 관광에 대한 개선은 저보다도 훨씬 뛰어난 전문가들이 지금도 연구하고 있는 분야라서 이 글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말레이시아 친구들이 자유여행으로 한국에 여행 와서 제가 한 나절 동안 가이드를 해 준 적이 있는데요. 경복궁, 북촌한옥마을같이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것에 크게 감탄했다는 점만 첨언하겠습니다.

 

 

한국으로 관광을 온 말레이시아 친구들입니다. 제가 한나절 동안 경복궁, 북촌한옥마을 관광가이드를 했었습니다.

2) 무슬림 편의시설: 무슬림 관광객이 특히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라면 필요함.

남이섬은 방한 무슬림 관광객이 꼭 들리는 여행 장소 상위 10개에 꼭 들어가는 장소이며 방문 후 만족도도 굉장히 높은 곳입니다.[8] 무슬림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 놓았다고 해서 한 번 가봤습니다.

 

왼쪽은 남이섬내 할랄식당의 메뉴판입니다. 한국무슬림협회(KMA)가 인증한 할랄식당이었습니다. 오른쪽은 기도실 입구 사진임.

 

왼쪽은 남성 기도실 내부의 우두(기도 전 손, 발, 입 등을 씻는 의식)시설. 오른쪽은 내부 모습입니다.

제가 마침 남이섬을 방문했을 때 줄지어져 남이섬에 입장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관광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체 버스 십여 대에서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이 줄지어 남이섬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날은 남이섬 선착장 입구에 태극기와 인도네시아 깃발을 나란히 걸어놓았더군요. 이만큼 인도네시아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왼쪽은 남이섬 입구에 태극기, 인도네시아 국기를 나란히 걸어놓은 모습. 오른쪽은 인도네시아 단체관광객 모습입니다.

제가 남이섬을 찾은 인도네시아인, 말레이시아인 몇 명한테 왜 남이섬을 방문했는지를 물어봤는데요. 이들에게 있어서 남이섬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종의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치 프랑스 파리에 갔는데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매우 아쉬운 것처럼 말입니다. 남이섬에 잘 갖추어져 있는 무슬림 편의시설에는 감사했지만, 이것이 남이섬을 방문한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맺음말

관광객 다변화 정책은 일단 방향성은 훌륭하다고 판단됩니다. 저는 다변화를 위해 무슬림 관광객을 유치를 제시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방한 무슬림 관광객의 반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위시한 동남아 무슬림 관광객이라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단기적인 유치책, 장기적인 유치책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글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마무리 한다면, 방한 무슬림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의 주원인이 한국에 무슬림 편의시설이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작성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센터 연구연수생 박재현

사진출처: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참고문헌

[1] 방한 무슬림 관광객 실태에 대해 참고할만한 선행연구는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16년 방한무슬림관광실태조사 보고서이다. 이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방한 무슬림 전체 관광객은 평균적으로 매년 약 68만 명이며 이중 말레이시아 무슬림 관광객이 매년 12만 명, 인도네시아 무슬림 관광객이 매년 16만 명에 달한다. 이를 고려했을 때, 이 글의 대상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무슬림 관광객인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2] 한국관광공사, 2016 방한 무슬림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게재일 2017.1.23. p.57.

http://kto.visitkorea.or.kr/kor/notice/data/report/org/board/view.kto?id=427623&isNotice=false&instanceId=127&rnum=15

[3] 장건 ( Geon Jang ) , 조성기 ( Surng Gie Cho ). 2014. 국내 할랄닭고기 수급실태와 균형수급량 추계.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24(1) p.124.

[4] 동남아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외 브루나이라는 이슬람국가도 있지만, 제가 잘 알지 못하고 인구가 50만명 이하의 작은 국가여서 이 글에는 포함하지 않았음.

[5] 한-아세안센터, 2015 한-아세안 통계집, 서울:한-아세안센터, 2015. p.26.

[6] 데일리인도네시아,“자카르타, 1인당 GDP 1만1천 달러” 게재일. 2014. 5. 14일

http://dailyindonesia.co.kr/news/view.php?no=8825

[7] 오현재, 인도네시아 무슬림 방한관광상품의 가능성 조사, 한국관광정책,(63), p.120.

[8] 한국관광공사.2016. 2016 방한 무슬림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게재일 2017.1.23. pp.64-65.

http://kto.visitkorea.or.kr/kor/notice/data/report/org/board/view.kto?id=427623&isNotice=false&instanceId=127&rnum=15

베트남 껀터 시 까이랑 수상시장


엄은희(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껀터, 어머니 강 메콩이 만든 풍요의 땅

까이랑 수상시장(Cáing Floating Market)이 자리한 껀터(Cần Thơ)는 메콩 강의 끝자락에 위치한 메콩델타(Mekong Delta)의 중심지이자 베트남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구 150만 명)이다. 메콩 강은 중국 윈난 성 티벳 고원에서 발원하여 대륙부 동남아 5개 국가(상류로부터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국경과 내륙 산지, 평야를 두루 거쳐 남중국해에 이르는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하천이다.

총연장 4,180km로 세계에서 12번째로 길고 유량이 10번째로 풍부한 메콩 강은 대륙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역사, 사회정치 체제, 나아가 문화 형성에 다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 강의 이름은 나라마다 다르다. 최상류인 중국에서는 ‘검푸르게 물결치는 강’이란 뜻의 란창강(, Lanchang Jiang)으로 부르며, 캄보디아에서는 ‘위대한 강’이란 뜻의 톤레툼(Tonle Thum)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강을 대표하는 이름이자 가장 잘 알려진 메콩은 태국과 라오스에서 동일하게 호명하는 매남콩(Mae NamKong)에서 유래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머니의 강’을 뜻한다. 메콩 강의 최하류에 해당하는 베트남의 남서단 메콩델타에서는 ‘아홉 용의 강’이란 뜻을 가진 송쿠롱(Song Cùu Long)으로 불린다.

여기서 남중국해까지의 연장거리는 200km에 불과하다. 4,000km 가까이 달려온 이 강은 베트남의 메콩델타를 만나 십여 개의 지류와 수백 개의 하도로 갈라지며 복잡한 운하망을 갖춘 드넓은 평야를 만들어냈다.

메콩델타는 어머니의 강이 선사한 풍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베트남의 행정구역상 중앙직할시인 껀터 시를 비롯해 안장 성, 벤째 성, 빈롱 성 등 13개 지역이 포함된다. 이 지역에서 베트남 쌀의 50% 이상, 해산물의 65%, 양식업과 과일의 60~70%가 생산된다.

메콩델타는 오랜 기간 반복되어온 계절성 범람이 제공하는 영양물질 덕분에 베트남 최대의 풍요로운 식량창고로 기능해왔다. 이처럼 풍부한 농어업 생산량이야말로 까이랑을 비롯한 베트남 수상시장이 생길 수 있었던 최대의 배경이다.

*원문보기: 네이버캐스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치앙마이


신동혁(동남아센터 연구조교)

2014년, 처음으로 치앙마이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많은 시간을 인근의 빠이(Pai)에서 보내는 바람에 정작 치앙마이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도중 이번 여름방학에 현지조사를 나가며 잠시나마 치앙마이에 체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치앙마이는 방콕 다음가는 태국의 제2의 도시이자 북부의 문화중심지이다. 방콕에서 비행기로 50분 거리에 위치하며 태국의 다른 지역보다 다소 선선한 기후를 보여 여행객들, 특히 노후를 보내고자 찾는 사람들이 많다.

⚫치앙마이 첫째 날,

폭염으로 후덥지근한 한국과는 달리, 치앙마이는 비교적 선선했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님만해민(Nimmanhaemin) 근처였는데 이곳은 최근 치앙마이에서 가장 뜨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나와서 조금 걷다보니 곧 님만해민 거리에 도달했다. 사거리에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마야 몰(Maya mall)과 그 맞은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탐앤 탐스가 자리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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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트럭은 ‘썽태우(สองแถว)’라 불리는 치앙마이의 택시다. 썽태우는 엄밀히 말하면 버스와 택시의 중간 형태라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노선이 정해져있는 썽태우가 있고, 추가 비용을 내면 본인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택시는 태국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치앙마이의 썽태우는 빨간색을 띄고 있어 ‘빨간 차’를 의미하는 롯댕(รถแดง)이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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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치앙마이대학교에서 열린 “Next Step for Asian Public Administration: A Comparative Perspective”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세미나는 치앙마이대학교 정치·행정학과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가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한국행정학회와 치앙마이대학교 소속 교수님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윤순진 교수님도 “Korean Environmental Policy”를 주제로 발표를 하셨다. 세미나 후에는 치앙마이대학교 투어가 있었다. 아직 방학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내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이었다. 최근 중국에서 개봉한 드라마에 치앙마이대학교가 나와서 중국 사람들이 이를 보기위해 몰려들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학기 중에도 관광객들이 몰려 학생들의 수업에 방해가 우려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치앙마이 둘째 날,IMG_4119

짧은 일정동안 최대한 효율적으로 치앙마이를 둘러보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쿠터를 빌렸다. 오전에는 치앙마이대학교 교내에 있는 ‘에너지 연구 및 개발 연구원(Energy Research and Development Institute, ERDI)’을 방문하기로 했다. ERDI는 재생에너지, 그 중에서도 폐기물, 음식물쓰레기로부터 추출하는 바이오가스의 상용화를 연구하는 기관이다. 관계자를 만나 태국의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역사 및 현황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오후부터는 스쿠터를 타고 치앙마이의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먼저 간 곳은 ‘치앙마이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따라 만든 인공 절벽이다. 원래 채석장이던 이곳에 비가 온 후 자연스럽게 물이 고였고, 몇 해 전부터 개발해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특히 내국인보다도 외국인들이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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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선지를 향해 가는 길에 스콜(squall)이 내리기 시작했다. 태국은 여름, 우기, 겨울 3계절이 있는데, 7월은 우기라서 매일 한차례 강한 비가 쏟아져 내린다. 비가 그치고 나면 다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스쿠터를 타고 가는 길에 차도 옆으로 설치된 ‘자전거 길’을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사실 태국과 같이 더운 지역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겨우 몇몇의 외국 사람들만이 이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앙마이의 자전거 길은 꽤나 달리고 싶게끔 깔끔하고 잘 만들어져 있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는 사람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위주로 교통정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이 치앙마이의 자전거 길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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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의 마지막 행선지는 왓프라탓 도이수텝(วัดพระธาตุ ดอยสุเทพ)으로 정했다. 가는 길에 후어이 깨우 폭포(น้ำตกห้วยแก้ว)를 발견하고 잠시 들렀다. 마침 두 학생이 물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 방향을 틀어 올라가는데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의 별명을 목걸이에 달고 줄지어 산을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국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길고 어렵게 지어야 복이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다보니 일상생활에서 이름을 부르기 어려워 대신에 어렸을 때부터 별명을 지어 사용한다. 한 학생과 눈이 마주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새 학기의 시작을 맞이해서 산 위의 절에 다녀오는 길이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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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진 길을 30여분 더 올라가 마침내 왓프라탓 도이수텝(วัดพระธาตุ ดอยสุเท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왓프라탓 도이수텝은 높이 1,677m에 위치하고 있으며 1383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300개의 계단을 오르면 황금 대형 불탑을 만날 수 있는데, 란나 왕조 시절에 부처의 사리를 운반하던 흰 코끼리가 스스로 이곳까지 올라 이 자리에서 울고 탑을 3바퀴 돌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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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아서 치앙마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오후 6시 정도가 되자 나이가 어린 동자승부터 노승까지 일렬로 나와 경건한 자세로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승려는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도 승려에게는 무릎을 꿇고 절하며 존경을 표시한다. 경비원은 모든 관광객들에게 일어서지 말고 앉아서 조용히 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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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279⚫치앙마이 셋째 날,

세 번째 날의 첫 번째 일정은 치앙마이에 있는 ‘에너지 자립 마을’ 방문이었다. 이곳을 총괄하는 엔지니어 Jan-Justus Schmidt은 친절하게 자신의 집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이 마을은 독일에서 온 가족이 처음 만들기 시작했고, 낮에는 태양광을 이용하고 밤에는 수소탱크를 이용하여 100% 재생에너지로 집을 가동하고 있었다. 이미 시험가동 중인 집이 몇 채 있는 상태였고 앞으로 사업을 점차 확장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오후에는 ‘몽족’이 사는 도이뿌이(ดอยปุย)로 향했다. 도이뿌이는 도이수텝에서 30여분을 더 높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치앙마이를 비롯한 태국 북동부의 고산지역에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고 그 중의 하나가 몽족이다. 몽족 마을의 작은 시장에서는 여러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특히 그 앞에서 몽족의 전통 의상을 입고 앉아있는 세 명의 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마을을 둘러보다가 두 명의 어린 꼬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바나나 잎으로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수줍은지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마을 가장 위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인 듯 북적거렸다. 하지만 직접 그 광경을 볼 순 없었다.IMG_4315 IMG_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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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는 현대 문명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몇몇 신식 도요타 차량을 볼 수 있었고, 집집마다 tv위성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주변의 환경과 다소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또한 시장에서 파는 기념품들을 보니 그들 생활의 많은 부분을 관광수입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연 이러한 문명의 개입이 그들의 삶을 예전보다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며 치앙마이 현지조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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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도로 위에서


전은정(동남아센터 연구조교)

캄보디아를 처음 만난 지는 2년이 다 되어 가고 어느새 4번째 방문이 되었다. 그동안 아주 잠깐 방문했었던 도시들을 제외하면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캄보디아 제 2의 도시라고 하는 바탐방에 각각 몇 주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수도인 프놈펜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현지조사 겸 개인적인 일정으로 프놈펜에 꽤 오랜 기간 체류하게 되었다.

현지조사를 준비하며 캄보디아 친구들에게 프놈펜에 머무르게 될 예정이라고 하니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치안에 대한 얘기를 하며 안전에 유의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이제는 캄보디아를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해왔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현지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막상 프놈펜에서 지내다 보니 치안보다도 도로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이 훨씬 컸다. 심지어는 캄보디아를 정말 좋아하지만 다른 지역은 몰라도 프놈펜에는 별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의 경우에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내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생활 반경이 삶에 대한 만족도를 상당히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이동 방식은 원하는 대로 다닐 수 있는 걷기와 자전거타기이다. 당연히 프놈펜에서도 둘 다 시도해보았다. 직접 걸으니 인도가 군데군데 끊겨 있고 또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보행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도로 시스템을 느끼며 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것은 곧 바뀔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덥다. 기온 자체도 높지만 그것과 별개로 강렬한 태양 아래 두 발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그리고 자전거는, 더운 것도 더운 거지만 그냥 위험하다. 사실 이전의 캄보디아에서는 걷는 것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도 그저 즐거운 일이었고 위와 같은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는데 내 입장이 변한 것이다. 한참을 체류하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고생스럽게 여행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한 평생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찌 감히 걷기를, 자전거를 권할 수 있으랴.

<힘든 도보 여행을 함께 해 준 길거리 노점표 과일>

과일

출처: 직접 촬영

그렇지만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그 어느 곳보다도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운전을 하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우선 차량 폭이 완전히 다른 자전거, 오토바이, 툭툭, 자가용, 버스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어서 혼잡하다. 특히 수도인 프놈펜은 인구도 많고, 경제적 수준이 높고, 외국인 비율도 높아서 자가용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그로 인해 교통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교통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신호가 없는 사거리에는 차량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단속이 강하지 않아 불법 유턴이나 역주행을 하는 차량도 쉽게 볼 수 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낮에는 심한 정체로 인해 차량 속도 자체가 느려서 사고가 많지 않지만 밤엔 과속,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사고가 많다고, 그러니까 밤에는 오토바이는 절대 타지 말고 툭툭도 가능하면 타지 말라고 한다.

<자동차와 매연을 뚫고 나가는 툭툭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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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호텔 앞에 있던 예쁜 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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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오토바이는 저렴하지만 덥고 위험하다. 툭툭은 덥고 흥정을 해야한다. 일반 택시는 안전하고 시원하지만 마찬가지로 흥정을 해야하고 비싸다. 흥정이 필요 없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터 택시가 도입되었지만 러시아워에 타게 되면 요금 폭탄을 각오해야 한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검색하다가 2014년 10월 JICA의 지원을 받아 프놈펜에 첫 공공 버스 서비스가 도입된 것을 알게 되었다. 훈센 총리가 ‘차량 30만대, 오토바이 1백만대가 프놈펜시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버스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2020년까지 프놈펜에 버스 노선이 18개까지 확장될 것을 기대하며 정부에 버스 사업 관리 당국이 빠르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니 총리가 버스 서비스 도입에 꽤 적극적인 것 같다.

<프놈펜 공공버스 외관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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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좌) Wikipedia ‘Transport in Phnom Penh’, (우)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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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정류장>            출처: 직접촬영

방콕 여행시 방콕의 공공 버스를 매일같이 즐겁게, 또 저렴하게 이용하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리며 프놈펜의 공공 버스에도 도전을 해보았다. 첫 번째 난관은 버스 정류장을 찾는 것이었다. 때로는 우리나라 버스 정류장 같이 의자와 지붕이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작은 표지판이 전부였다. 한 번은 표지판을 찾지 못해서 두 정류장이나 걸어간 적도 있었다. 배차 간격은 그리 길지 않고 꽤 잘 지켜지고 있는 듯 하다. 일단 버스를 타고 나면 아직은 이용객도 많지 않고 추울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와 프놈펜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한숨 돌리기에는 합격이다. 요금도 이동 거리에 관계없이 편도 1500리엘(1달러=약 4000리엘)로 아주 저렴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버스 내부에 영어는 물론 현지어로 된 노선도도 없다.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버스이기 때문에 익숙한 한국 노선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내리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버스 기사, 표를 나눠주는 승무원, 혹은 주변의 다른 승객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거의 문제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캄보디아인의 친절함을 경험하는 것이 덤으로 따라온다. 여차하면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다가 적당히 내리면 그만이다.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었고 계획대로 운영이 잘 된다면 프놈펜의 혼잡한 도로를 개선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안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은 버스 노선이 3개에 불과하고 대로로만 운행이 되기 때문에 서민들이 이용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대로변에는 가게나 사무실 건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려면 정류장까지 땡볕 아래를 걸어오고 또 내려서도 목적지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도로의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노선 확장 뿐 아니라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 오토바이를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토바이의 편리성을 어떻게 대체하여 이들이 버스를 타게끔 할 것 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다. 또 다른 면에서는 버스의 대체제인 오토바이, 툭툭, 택시 기사들에 대한 고려, 그들과의 소통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오토바이와 툭툭 기사들이 모여 있던 한 버스 정류장에서 기사들이 버스를 타려는 내게 왜 버스를 타느냐며 자기 것을 타라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서 그들 가운데 있는 위기 의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터 툭툭, 아주 저렴하고 와이파이도 쓸 수 있지만 크메르어를 전혀 모른다면 이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림2

출처: 직접 촬영

아무튼 해외에서 바가지를 쓸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외국인으로서 캄보디아에 미터 택시, 미터 툭툭, 공공 버스 등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저렴한 교통 수단이 도입되고 있다는 소식은 참 반갑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평생을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프놈펜 시민, 캄보디아 국민들이 가장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혜로운 방식의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인도네시아 음식체계 그리고 대표적인 맛: 마니스(Manis), 쁘다스(Pedas), 구리(Gurih) 그리고 아삼(Asam)


최경희(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인도네시아도 세계가 주목하는 음식천국의 나라이다. 발리는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관광지이다. 발리라는 관광지의 음식이 형편없었더라면, 발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러한 맛있고 고유한 음식문화를 갖고 있는 섬이 만 개 이상이라고 한다면, 인도네시아 음식의 다양성은 감히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인도네시아 음식은 총 몇 가지일까? 인도네시아는 인구규모로는 4번째로 큰 국가이자, 다종족 사회이다. 종족의 수가 많게는 500개 이상이라고도 한다. 분명 인도네시아에 음식의 수를 추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이러한 추론을 위해서 인도네시아 음식연구의 기념비적인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1967년 수카르노 정부는 농업부를 통하여 Mustika Rasa: Memuat resep masakan Indonesia dari Sabang sampai Merauke(이하 Mustika Rasa) 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 국민에 대한 식량정책을 수립하고자 인도네시아 국민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1960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7년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책은 1,124쪽으로 구성된 매우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인도네시아 음식에 관한 설명을 담은 최초의 종합도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제목과 부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무스띠까(Mustika)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희귀한 광물을 일컫는 말이고, 라사(Rasa)는 맛을 의미한다. 무스띠까 라사(Mustika Rasa)는 다이아몬드와 같이 귀하고, 고유한 인도네시아 음식 맛을 표현하고자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제가 의미하는 바는 인도네시아 동쪽 끝 아쩨(Aceh) 주 사방(Sabang)부터 서쪽 끝인 빠뿌아주(Papua) 머라우께(Meraike)까지 인도네시아 전 지역을 포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Mustika Rasa가 다루고 있는 음식의 범위는 인도네시아 전체이다.

<그림1. Mustika Rasa 책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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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저자 소장 자료

인도네시아인들의 기본 식단은 주식과 반찬, 음료수와 전체요리 또는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Mustika Rasa에서 인도네시아 음식은 크게 8가지로 분류되어있다. 첫째, 주식(makanan utama) 둘째, 국물이 있는 젖은 반찬(lauk pauk basah berkuah) 셋째, 국물이 없는 젖은 반찬(lauk pauk basah tidak berkuah) 넷째, 튀기는 반찬(Lauk pauk goreng) 다섯째, 구워서 만든 반찬(lauk pauk bakar bakaran) 여섯째, 삼발(Sambalan) 일곱째, 과자, 케익 등 후식이나 간식으로 구분되는 자잔안(Jajanan) 여덟째, 음료수(minuman) 등이다. 그리고 Mustika Rasa에는 주식 45가지, 국물이 있는 젖은 반찬 251개, 국물이 없는 젖은 반찬 456개, 튀기는 반찬 125개, 불에 굽는 반찬 69개, 삼발 63개, 전체 또는 후식 요리 649개, 음료수 31개가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도네시아 음식체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당시 위의 8가지 분류 중에서 “국물이 있거나 또는 없지만 젖은 반찬”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면, 2000년대 인도네시아 음식에서는 튀기거나, 굽는 요리가 당시보다 훨씬 많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삼발의 발달도 눈여겨 볼만하다. 1960년대 삼발이 69개 정도로 소개되었지만, 2014년 Sambal & Saus 책에서는 203개의 삼발이 소개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간이 갈수록 발달된 음식분야 중에 하나가 삼발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전체요리, 후식이나 간식 등으로 먹을 수 있는 샐러드, 과자, 케익, 인도네시아식 떡 종류에 해당되는 음식이 1960년대 당시도 649개나 소개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자잔안(Jajanan)은 인도네시아 로컬 여행문화의 핵심적인 코드의 하나이다. 즉, 로컬 여행지에 가면, 지역특산음식(khas makanan daerah)을 먹어보고 그리고 선물로 가져와서 여행담을 나누며 지역음식을 함께하는 문화를 말한다. 자잔안(Jajanan)으로 분류되는 649개는 이러한 문화에 해당되는 지역별로 특화한 과자, 케익, 떡 종류의 것들이다.

인도네시아 음식의 맛은 대표적으로 무엇인가? 다양하고 복잡한 맛을 축약해서 말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기 하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맛은 마니스(Manis), 쁘다스(Pedas), 구리(Gurih) 그리고 아삼(Asam)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인도네시아 음식 맛이 다른 음식 맛과 차이를 갖는 것은 인도네시아 음식의 고유한 식재료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음식에 관한 책은 이러한 각종 양념(Bumbu)을 만드는 식재료에 대한 소개가 매우 발달되어 있고, 거의 모든 요리 및 음식에 관한 책은 이 부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할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식료품 산업 중에서 양념산업(seasoning industry)이 발달되어 있는 것도 인도네시아 음식 맛을 내는 고유한 양념을 현대화된 삶에 맞게 상업화한 것들이다.

<그림2. 인도네시아 음식에 쓰여 지는 각종 양념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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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맛(Pedas)을 내는 식재료는 단연 고추이다. 고추도 다양하다. 짧은 고추 종류로는 cabai rawit, cabai padi가 있고, 긴 고추로는 cabai merah 또는 hijau, cabai keriting(크고 날씬한 고추) 그 외에도 2가지 종류의 고추가 더 있다. 음식에 들어가는 고추의 총량이 음식의 색깔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음식의 매운 맛을 도와주는 마늘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마늘의 종류도 7가지- bawang bombai, bawang putih, bawang merah, daun bawang, batang bawang, bawang batak, bawang laki-가 있다. 다음으로는 인도네시아 음식 맛을 표현하는 고유한 하나의 단어라고 볼 수 있는 구리(Gurih)가 의미하는 맛이다. 이것은 맵다, 달다, 짜다, 시다 등과 같이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되기 보다는 인도네시인들의 고유한 언어체계 안에서 이해되어지는 일종의 기의(記意)라고 생각된다. 다만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맛있는 맛’, ‘감칠 맛’ 정도이다. 하지만 Gurih는 인도네시아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부한 향과 맛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 음식의 풍부한 맛과 향을 구성하는 식재료는 다양하다. 식물뿌리로는 생강(jahe), 강황(kunyit) 그리고 릉꾸와스(lengkuas) 등이다. 이 세 가지는 전체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는 것이고, 생강과인 끈쭈르(kencur)와 영어로 핑거루트 이름을 갖고 있는 뜨무 꾼찌(temu kunci)는 제한된 지역에서만 사용된다. 이러한 식재료는 신선한 상태, 마른 상태 그리고 가루로도 다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강황으로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 꾸닛(kunyit)은 인도네시아 음식에 노란 빛깔을 만들어내는데 각종 음식에서 사용된다.

그 다음으로는 인도네시아 음식에 풍부한 향을 만들어내는 각종 재료는 열매, 나물껍질, 꽃 등이다. 나열하면, 라다(lada, 후추), 끄뚬바르(ketumbar, 고수), 진딴(jintan, 캐러웨이), 빨라(pala, 너트멕), 끄미리(kemiri, 캔들넛), 까뿔라가 자와(kapulaga jawa), 끌라벳(klabet), 아다스 마니스(adas manis), 까유마니스(kayumanis, 계피), 쯩끼(cengkih, 정향), 붕아 라왕(bunga lawang), 끄쫌브랑(kecombrang) 등이다. 그리고 향을 완성시키는 식재료는 각 종 잎-daun jeruk purut, daun pandan, daun kemangi, serai, daun salam, daun kari, daun kunyt, daun ruku-ruku 등-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구리(Gurih)라는 음식맛을 내는 대표적인 인도네시아 식재료는 바로 코코넛 밀크, 인도네시아어로 산딴(Santan)이다. 산딴을 넣고 만든 대표적인 종족음식인 빠당음식의 른당(Rendang)과 굴라이(Gulai)는 구리(Gurih)라는 맛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요리이다. 른당 국물과 굴라이 국물 맛에서 느끼는 구리(Gurhi)라는 맛은 식물뿌리, 열대 열매와 나뭇잎 등 각종 향신료와 산딴이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맛이다.

동남아 음식에서 자주 느낄 수 있는 신맛(Asam)을 포함하여 감각적인 입맛을 자아내는 식재료가 있다. 인도네시아로 시큼한 맛, 신맛을 asam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이 붙은 열매들이 꾀 많다. 그 종류는 buah asam jawa, asam kandis, asam sundai, asam gelugur, asam sunti 등이 있고, 레몬 종류의 열대열매로는 jeruk nipis, jeruk purut, jeruk limo, lemon cui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음식맛을 더하는 식재료로는 belimbing sayur 열매, 잘 익은 조그만 토마토도 그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음식의 단맛(Manis)을 결정짓는 식재료는 바로 gula merah 로 불려지기도 하는 gula jawa이다. 굴라 메라(gula merah)는 팜슈거라고 알려졌다. 그 외에 단맛을 내는 것으로는 gula aren, gula pasir, gula batu 등이다.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 음식의 고유한 맛을 내는 식재료로는 각종 생선으로 만들어내는 양념인 뜨라시(terasi), 쁘띠스(petis)와 멸치, 새우 등이 있고, 콩으로 만든 간장종류, 대두로 만드는 뗌뻬(tempe), 온쫌(oncom) 등이 있다.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식재료 연구는 인도네시아 음식연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Murdijati-Gardjito는 Bumbu, Penyedap and Penyrta Masakan Indonesia(2013)에서 130여 가지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인도네시아 음식에 있어서 양념, 현대적으로 세계인들이 인도네시아 음식하면 떠올리는 삼발(Sambal)을 만드는 원재료에 대한 연구와 그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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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발을 만드는 식재료도 중요하지만, 삼발을 만드는 요리기구도 주목할 만하다. 삼발을 직접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인스턴 삼발을 쓸 것인가는 현대 인도네시아인들의 입맛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삼발을 만들 때는 쪼벡(cobek)과 울르깐(ulekan batu)을 사용한다. 쪼벡이 음식을 담고 있는 아래의 돌그릇을 지칭하고하고, 울르깐이 손으로 잡고 가는 기능을 하는 돌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절구 또는 멧돌과 같은 기능이다. 삼발을 만들 때 사용하는 쪼벡과 울르깐은 한국의 멧돌보다 먼저 사용했을까, 아니면 나중에 사용한 것일까. 이러한 도구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음식 맛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고추, 젓갈은 한국음식과도 깊은 유사성을 주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둘 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이기도하다.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 음식 맛에 더 쉽게 길들어질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누가 인도네시아의 중산층인가?


이지혁(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인도네시아는 세계 인구 4위의 동남아 최대의 인구 대국이다. 거대한 인구로 인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구증가는 경제성장의 중요한 잠재력이다. 매년 싱가포르 인구와 맞먹는 수가 출생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인도네시아는 매년 새로운 싱가포르를 낳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 경제적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를 묘사할 때 꼭 등장하는 단어가 ‘중산층’이다. 인도네시아는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국민의 평균 연령이 29세인 젊은 신흥국이다. 2014년 기준 맥킨지(McKinsey) 보고서는 인도네시아 중산층을 4천 5백만 명, 보스톤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은 7천 4백만 명, 그리고 아시아 개발 은행(Asian Development Bank)은 총 인구의 59%를 차지하는 1억 4천 6백만 명을 중산층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중산층이 누구인지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산층으로 간주되는 인구의 편차도 매우 크다. 선진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산층의 개념과 인도네시아에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경제 상황을 장밋빛으로 묘사하고 있는 조사기관의 중산층의 개념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현지조사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마치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과 소득의 불균등한 분배, 즉 부익부 빈익빈이 매우 심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까르따에는 꼬따 쇼핑몰(kota shopping mall), 즉 쇼핑몰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대규모 쇼핑몰이 있다. 점심시간에는 쇼핑몰 안에 위치한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상류층 사람들과 푸드 코트에서 식사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스펙트럼의 다른 한편에서는 까끼 리마(kaki lima)라고 불리는 손수레와 유사한 간이식당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인도네시아 말로 ‘까끼(kaki)’는 다리라는 뜻이고 ‘리마(lim)’는 다섯이라는 숫자를 의미한다. 바퀴가 세 개인 수레와 수레를 끄는 장사꾼의 두 다리를 합쳐서 다섯 개의 다리라는 의미로 까끼 리마라고 부른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자까르따 시내의 도로에는 엄청난 가격의 고급세단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더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가 혼재되어 있다. 한 오토바이에 일가족 네 명이 타고 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오토바이 탑승자들의 상당수는 앞에서 언급한 조사기관의 중산층에 포함된다.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나’ 개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다. 지금은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가정 소득조사를 실시했고, 설문지에는 부모님의 소득을 상, 중, 하로 구분하는 칸이 있었다. 한참을 고민한 나는 ‘하’에다 표시를 했다. 그리고 약 한달 후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부모의 소득란에 ‘하’라고 표시한 전교에서 유일한 학생이며 그 이유로 상공회의소 장학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통보가 있은 후 대략 일주일가량 지나서 난 상공회의소 회장님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회장님은 내가 인생을 살다 힘들 때 장학증서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면 한 번 더 동일한 금액의 장학금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결코 윤택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굴곡 있는 삶을 산 것도 아닌 나에게 장학증서를 가지고 그 회장님을 다시 찾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누가 중산층인가?’ 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소비문화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중산층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 이전부터 과연 인도네시아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라는 고민을 시작해서 현지조사가 끝나는 시점까지 숙제로 간직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2010년부터 거의 매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나는 두 명의 친한 현지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2003년 뉴질랜드에서 만난 화인(현지에서 태어난 화교)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2010년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친구다. 두 명 모두 인도네시아 평균 연령에 해당하는 30대 초반, 20대 후반이다. 지난 5년 동안 화인 친구는 일본회사의 작은 승용차를 구입했고, 다른 친구는 일본회사의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화인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주로 승용차를 타고 유명 쇼핑몰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거나 프리미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곤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앉아서 적도의 뜨거운 태양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그리고 수없이 많은 오토바이가 뿜어내는 매연에 휩싸여 교통 체증으로 멈춰서 있는 고급 승용차 사이를 헤집고 달린다. 그리고 주로 현지인들이 찾는 식당 혹은 편의점에 앉아 음료수 하나를 두고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승용차에 앉아 있을 때보다 오토바이 뒷자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교통 체증으로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상류층의 고급 자동차를 뒤로 하고 서민들의 오토바이가 신나게 달릴 때 나도 모르게 쾌감을 느낀다.

지난 5년 동안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변신한 두 친구는 모두 넓은 의미의 중산층에 속한다. 중산층은 정의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한국에서 오랜 세월 ‘내가 과연 중산층에 속하는가?’ 라고 고민하고 있는 나이지만 인도네시아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중산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중산층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서 마음에서 오는 여유가 아닐까라는 혼자만의 상념에 잠겨본다. 어찌되었던 인도네시아에 구매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라와디 돌고래와 주민들의 공생은 가능할까? – 캄보디아 현지 조사기


엄은희(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폭염이 한풀 꺾였다지만 여전히 밤잠을 설치게 하는 한국을 떠나 이번 여름의 두 번째 현지조사를 위해 8월 중순 캄보디아를 찾았다. 본 조사는 동남아센터가 수행중인 <메콩유역의 발전과 환경보호를 위한 딜레마와 거버넌스>(한국연구재단 지원과제)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지조사의 주제는 “메콩 강 개발과 캄보디아가 당면한 환경적 과제”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방문지는 주요 사회운동단체와 기관들이 위치한 수도 프놈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았던 돈사홍 댐 영향지역인 북동부 국경지역 스텅트렝 주(Province of Stung Treng),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찬란한 고대유적지 앙코르와트로 더 유명하지만 캄보디아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식량원(단백질 공급의 약 60%를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됨)인 톤레샵(Tonle Sap)을 끼고 있는 씨엠립 등이었다.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캄보디아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강도 높은 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수없이 많지만, 지면상의 제약으로 메콩강의 멸종위기종 이라와디 돌고래(Irrawaddy Dolphin)와 이를 지키기 위한 캄보디아인들의 활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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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WWF-Cambodia에서 만난 Mr. Ath ©EOM

이라와디 돌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동남아센터 임미정 조교 동행)에게 들려준 첫 번째 캄보디아의 환경운동가는 WWF-Cambodia의 대표 Mr. Chhith Sam Ath(이하, Ath)였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짧게 그의 약력을 살펴봄으로써 캄보디아 시민사회의 한 측면과 그의 현재의 활동을 이해해보자.

캄보디아 사회는 1991년 파리평화조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외부 세계와 접촉을 시작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다수의 국제 NGO들도 캄보디아의 인권증진과 민주주의 확산을 지원하기 위해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캄보디아인들도 스스로 자국의 인권과 개발 이슈를 중심으로 현지 NGO들을 꾸리기 시작했다. Ath역시 이 시기에 시민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인권 활동가의 삶을 시작한 초기에는 외국인이 주도하는 국제 NGO들이 현지인들에게 주도권을 이양하던 때(1990년대 말)였고, 그는 NGO Forum이라는 우산조직(umbrella organization)의 설립에 앞장서며 캄보디아 시민사회의 기초를 쌓은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개발현장에서의 풀뿌리 주민조직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그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인권-개발-환경의 근원적인 연계고리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부터는 WWF-Cambodia의 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국제환경단체인 WWF의 운동방식은 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에 대한 옹호활동과 캠페인을 전개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캄보디아의 경우엔 메콩강 유역의 이라와디 돌고래와 동부 산간지대의 아시아 호랑이 복원사업을 주요 현안활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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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ure 2,  메콩강의이라와디 돌고래 (출처: WWF-Cambodia 홈페이지 캡쳐)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이라와디 돌고래는 동남아시아의 해안가와 미얀마의 이라와디 강, 메콩 강,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마하캄 강 등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지역의 메콩강에서 80여 마리만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멸종위기종이다.

민물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한 이라와디 돌고래는 친근한 생김새, 온순한 성격, 새끼를 낳고 폐호흡을 하는 포유류의 습성으로 인해 메콩유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스텅트렝 주에서 만난 어민들은 현지어로 이 동물을 프샤핫(Phout)이라 부르는데, 불교식 윤회를 믿는 이들은 프샤핫이 환생한 자신의 친척이거나 물에 빠진 사람들을 물 위로 들어올려주는 고마운 동물로 이해하고 있다.하지만 불법어업과 다양한 개발압력으로 인해 이라와디 돌고래의 개체수는 현저히 줄어들어왔고, 이에 따라 2000년대 중반 이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캄보디아 국경 내의 메콩 지역, 특히 라오스-캄보디아 국경 이하의 메콩강 유역은 람사르 협약에 따라 보존해야 할 습지로 지정된 국제적인 생태자산이다. 넓은 평원을 사행하는 캄보디아 영내의 메콩 강은 건기와 우기에 따라 수심이 크게 변하는 탓에 소택지, 하중도(river island), 여울 등이 잘 발달해 있고, 이에 따라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처이자 회류성 어족의 산란 및 양육 장소로서의 환경을 제공해왔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이라와디 돌고래, 시암 악어 등 그 밖에 수많은 수생동식물들이 이 지역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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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어릴 적 프샤핫이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이야기를 해 주는    마을 부이장님 ©EOM

사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이라와디 돌고래는 친근한 수생동물 그 이상이다. 국경지역의 주민들 중에는 돌고래를 보러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홈스테이, 식사, 관광 가이드 등을 제공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국제사회는 이 곳의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해 2000년대 초 이 지역을 람사르 습지로 지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 지역주민들과 막 시장경제에 눈 뜬 국가 및 엘리트들의 개발욕망 앞에서 환경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는 환경과 주민과의 공생을 위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기반 생태관광”을 제안했다. 주민들은 불법어업 대신 이라와디 돌고래와 물고기들의 수생생태계를 보호하기 시작했고, 보호받는 이라와디 돌고래는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되어 국내외의 많은 이들을 이 곳으로 불러들여오게 되었다.현재 메콩강의 이라와디 돌고래는 라오스-캄보디아 국경지대인 프리아 롬켈(Preah Rumkel) 지역에 5마리, 그보다 80km 남쪽의 크라티에 시(Krong Kratie) 인근에80여 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지역 모두 이라와디 돌고래로 인한 생태관광이 지역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최근 메콩강의 이라와디 돌고래는 다른 종류의 개발압력으로 인해 멸종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바로 라오스에 의해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돈사홍 댐(Don Sahong Dam)이 국경지역의 돌고래 서식지(dolphin pool)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만약 댐 건설이 강행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이 지역에서 이라와디 돌고래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경제발전 수단을 갖추지 못한 라오스는 개혁개방 이후 자국 내 수력개발 잠재력에 눈뜨게 되었다. 수력발전과 전력수출은 현재 라오스의 선도산업이다. 라오스는 1990년대 중반 이래로 해외자본을 동원해 수력댐을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주변국가에 팔아오고 있다. 2000년대까지는 주로 지류에 댐 건설을 추진해 왔는데 2011년부터는 사냐부리 댐(Xayaburi Dam)과 돈사홍 댐의 건설을 추진하며 메콩강본류댐 건설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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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돈사홍 댐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국경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국경선에서 라오스 뱡향으로18km 떨어져 있음). 국제하천 개발의 복잡한 역학관계 안에서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나 개발에 따른 잠재력이나 경제적 이익은 라오스에 집중된 반면, 이에 따른 환경영향은 하류국가인 캄보디아에 주로 미치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는 이 지역의 깃대종(flagship species)인 이라와디 돌고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스텡트렝 현지에서 만난 다양한 주민들은 대부분 이라와디 돌고래 관광으로 먹고사는 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지만, 돈사홍 댐 건설로 인해 돌고래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임에도 이들이 접할 수 있는 돈사홍 댐 건설에 대한 정보는 제한되어 있었고, 댐 건설을 둘러싼 국제적 논의의 장에서 이들이 들어갈 틈은 매우 비좁아 보였다. Figure 4, 돈사홍 댐 건설 현장 ©International r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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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 6,  댐 건설에 대한 우려를 털어놓는 지역주민과 현지 코디네이터 ©EOM

이라와디 돌고래 그리고 그 돌고래에 기초한 생태관광에 기대어 살아가는 캄보디아 주민들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게 될까?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먼저 주민들의 목소리가 고공전으로 진행되는 국제사회의 댐 개발 이슈의 토론장에 스며들 수 있도록 다양한 통로가 마련되는 것이 급선무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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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ure 7, Irrawaddy dolphin status of Cambodian side Mekong River ©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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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ure 9, tourists on the  boats watching dolphins @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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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0~12, Cambodian people depending on Mekong River ©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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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3, Homestay house in Stung Treng (no electricity and no tap water) ©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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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4, simple meal for homestayer @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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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5, mendicant monks in rural Cambodia (distrct of Preah Rumkel) ©EOM

처음 가 본 말레이시아


이응철(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2월 7일부터 11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다녀왔다. ‘동남아시아’에 속한 곳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름에 좀 더 길게 현장연구를 하러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익숙함이라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8월의 타이베이와 상하이를 경험했던 적이 몇 번 있으니 더위는 그리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가본 곳인 만큼 낯설음은 막을 수 없었다. 가기 전에 들었던 것처럼, 영국과 얽힌 과거의 흔적은 자동차의 운전석 위치, 콘센트의 모양 등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알고 간 것이라 할지라도 현지에서 체감하는 낯설음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요소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이 가장 낯설었다. 숙소 한 쪽에 메카의 방향을 표시한 것이라든지, 쇼핑몰이든 길가의 휴게소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기도실 등은 분명 처음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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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숙소 천정에 표시된 메카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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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쇼핑몰에 있는 기도실 안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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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이슬람 문양 그리는 방식(이슬람예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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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말라카의 해상 모스크

20150406153732_83690레이시아 화인(华人)들의 소비에 대해 연구를 하기로 했으니 중국과 관련된 요소들을 찾아내고 그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했다. 중국 혹은 화인과 관련된 요소들을 찾는 것은 이슬람의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어렵지 않았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10명 중 4-5명은 화인일 것이라는 통계학적 정보는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실이 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모든’ 쇼핑몰의 정문들은 곧 다가올 음력설, 즉 춘제(春节)를 기념하는 장식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중국 상하이의 백화점과 위위안(豫园) 주변에서 봤던 화려한 붉은색 장식들과 비슷한 것을 그곳으로부터 비행기로 4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보는 것은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익숙함이었다. 이런 장식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장식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화인이거나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사진 5 ~ 7> 쇼핑몰들의 춘절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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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말레이시아에 화인들이 정착한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작심하고 다니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역사적 흔적을 두루 훑어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텐데 일부러 찾아 다니지 않아도 오래 전 바다를 건너 이곳에 정착한 중국인들의 자취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진씨서원(陳氏書院) 이나,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불교사원으로 알려진 말라카의 청운정(靑雲亭)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진씨서원은 말레이시아에서 주석 광산을 운영하며 재력가로 성장한 진씨 가문의 조상을 기리는 곳이며 청운정은 15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사원으로 청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축,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원의 지붕 장식은 중국 광동의 방식과 유사하게 자기에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었는데 비가 많이 오고 더운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진 8> 한 쇼핑몰의 중국 전자 제품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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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쿠알라룸푸르 진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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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말라카 청운정의 지붕장식

20150406153939_99626지막으로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이곳에서는 맞지 않았다. 화인들이 모여 살며 자신들의 상품이나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차이나타운의 정형화된 이미지와 달리 쿠알라룸프르 Jalan Petaling의 차이나타운은 상하이의 옛 샹양시장과 같이 중국산 모조품(“짝퉁”)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고 상당히 많은 상점들은 인도계 점원들을 내세워 판매를 하고 있었다. 화인들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마주칠 수 있는 확률은 차이나타운 바깥이 오히려 더 높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은 화인들이 모이고 자신들의 상상된 과거를 추억하는 곳이 아니라 관광객을 대상으로 값싼 물건들을 파는 곳, 화인과 다른 종족 집단과의 계층/계급적 관계들이 명확하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나는 곳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면서 말레이시아의 화인들과 관련하여 다양한 요소들을 검토하고 이를 다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진 11>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의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