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경계와 그 경계를 출입하는 사람의 이동에 주목해 중국 고대 국가 형성 과정에 나타난 공간 지배의 원리와 특징을 살피다

이 책은 경계의 출입과 그 형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중국 고대 공간 인식과 공간 지배의 성격 변화뿐 아니라, 지역 간 교류 형식과 ‘타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본다. 중국 고대 제국은 청조가 멸망할 때까지 전근대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황제지배체제의 골간이 마련된 시기다. 고대 제국의 통치 구조와 원리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 계승된 지역 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고대인의 주술적 사유와 전통 역시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어 온존했다. 이는 정치적 영향력의 범위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상주(商周)시대부터 진한(秦漢)시대까지 경계와 경계 출입 문제에 대한 통시적 연구는 시대별 공간 지배의 성격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접근 방법이다. 경계를 출입하는 것은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행위로서, 정치권력의 성격에 따라 그 ‘열림[開]’과 ‘닫힘[塞]’의 정도가 결정된다. 이 책을 통해 한 사회에 존재했던 다른 세계와 ‘타자’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학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북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평택대학교 피어선칼리지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다. 저서로 『중국 역대 장성의 연구』(공저)가 있으며, 논문으로 「漢代通行證制度與商人的移動」, 「秦漢時代 券書와 제국의 물류관리 시스템」 등이 있다.

 

차례

여는 글

제1장 들어가며

제2장 상주시대 경계 출입과 통과의례

  1. 상대 경계의식과 통과의례

1) 상의 공간구조와 경계의식

2) 경계의 출입과 그 절차

(1) 상읍의 출입

(2) 상읍 이외 지역의 출입

3) 접빈과 통과의례

  1. 서주시대 경계의 출입과 통과의례

1) 서주 금문에 보이는 왕래 사례

(1) 주 왕실의 방문

(2) 사자(使者)의 파견과 사행

2) 영빈 장소와 의례 절차

3) 향례(饗禮)와 예물 증여의 의미

(1) 영빈과 향례

(2) 영빈과 예물의 증여

소결

제3장 춘추전국시대 경계 출입과 그 성격 변화

  1. 춘추전국시대 경계의 성격 변화

1) 춘추시대 성역과 국의 경계

(1) 성역으로서의 도성

(2) 변읍의 경계와 경(境)

2) 전국시대 군현지배의 등장과 국의 경계

(1) 군주 직할지와 군현의 경

(2) 지배 영역의 범위와 국경

  1. 춘추시대 경계의 출입과 통과의례

1) 국의 출입과 의례 절차

(1) 도성의 출입 의례

(2) 교(郊) 지역의 출입 의례

2) 제사 예물의 교환과 통과의례

  1. 전국시대 경계 출입과 통행자 관리

1) 내지의 통행과 징세

(1) 성문의 출입 관리

(2) 관(關)진(津)의 통행과 징세

(3) 시(市)의 출입과 화물의 검색

2) 변관의 통행과 검문

소결

제4장고대 제국의 경계와 그 출입

  1. 제국의 내부 경계와 그 출입

1) 경기(京畿)와 군현의 경계

2) 내지 통행과 출입 관리

(1) 경기의 출입 관리

(2) 주요 통과소(通過所)에서의 검문

  1. 제국의 외부 경계와 그 출입

1) 변군과 제국의 국경

2) 변관의 통행과 검문

소결

제5장 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 중에서

지리 공간에 형성된 경계는 인간의 정주생활과 함께 등장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취락 주변에 해자나 담을 만들어 외부와의 경계로 삼았다. 현재 확인되는 중국 초기 취락 유지를 보면 그 외연에 환호(環壕)를 파서 외부 세계와 경계를 구분했다. 그러나 취락 주변에 형성된 경계가 정치적 경계는 아니다.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은 정치적 경계인 변경과 국경은 국가 형성 과정에 따라 단계별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1단계는 국가가 무한한 공간에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중심부와 주변 지역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2단계는 무주지(無主地)에 타국이 등장하여 공간제약현상이 나타나면서 선점과 편입조치의 확대로 쌍방의 주변 지역에는 지배력이 중복되는 변경지대가 성립한다. 3단계는 인접 국가들이 각각의 배타적 지배영토를 구별하는 경계선을 구체화하면서 국경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2쪽

 

갑골문 중 외부에서 상읍으로 들어오는 문제와 관련된 복사를 보면, 상읍으로 들어오는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 대해 그 길흉 여부를 점쳤다. 왕이 출행했다 상읍으로 귀환할 때는 상읍으로의 귀환 자체를 점치거나 미래의 특정 일자 혹은 당월당일의 귀환과 같이 귀환 시기를 자세하게 점쳤다. 그런데 상왕이 상읍으로 돌아오는 문제가 점복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상읍의 최고 통치자 역시 자신의 정치적 중심지로 들어갈 때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갑골에 왕의 귀환 시기에 관한 여러 점복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왕은 상읍으로 귀환하는 시기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20쪽

 

서주시대 향례는 일족이나 사자가 방문했을 때 제주를 사용하여 빈(賓)을 자신의 신(神)․인(人) 공동체에 맞아들이는 제의의 일부였으나, 서주 후기 종묘 의례의 성격이 변하면서 향례는 제사를 지낸 후 진행되는 성대한 향연의 절차로 확대되었다. 춘추시대 열국 간의 빙문 절차에서도 향례는 여전히 제의의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자에 대한 향례인 구헌(九獻)을 초(楚)․오왕(吳王)에게 행했던 것과 같이 주왕의 의례적 권위는 더는 통하지 않게 되고, 조상신을 배알하기 위한 재계의 성격을 지닌 향례 역시 점차 빈(賓)에 대한 연회의 성격으로 변했다. 이는 나라의 안위를 결정하는 권한이 조상신에서 점차 실제적 권력을 장악한 세속 군주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신(神)․인(人) 공동체를 방문하는 영빈 의례의 절차 역시 제의의 성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65쪽

 

상주시대는 물론 춘추시대까지도 군주는 기본적으로 종묘에 모신 조상신의 권위에 의탁하여 자신의 권위를 내세웠으며, 제의에 기초하여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행사했다. 춘추후기 이후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군주는 더는 종묘를 중심으로 형성된 의례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그 대신 법제와 관료행정에 기초하여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정치권력의 성격이 변하면서 자연히 공간 지배의 원리나 성격도 변했다. -182쪽

 

진한시대 관료제와 문서행정에 기초한 제민지배체제는 전국시대 변법이 지향한 토지와 인민에 대한 군주의 일원적 지배의 완성형이었다. 국가에서는 국 내부에 거주하는 민 역시 개별 호(戶) 단위로 파악하여 장부에 등재한 후 그 이동을 관리했다. 최근 발견된 진한시대 간독 자료는 문서행정을 통한 제국 통치가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다. 현도후국 등의 경계[界]에 위치한 각종 문과 관진 및 정 등은 통행자에 대한 실제적인 검문이 진행되었던 주요 경계 지점이었고,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목적에서 이동하는 민은 물론이고 공무수행을 위해 이동하는 관리까지 자신의 이동 목적과 신분이 명기된 통행증을 소지해야 했다. 이는 제국 내부에 존재한 경기 및 군현도후국 등의 경계가 관할 구역을 표시한 행정상의 구분선임과 동시에 출입하기 위해 일정한 검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실제적인 경계이기도 했음을 의미한다. -247쪽

 

중국 고대 공간 지배의 성격이 변하면서, 경계 출입의 절차와 형식은 전국시대를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 춘추시대까지의 공간 지배는 궁묘(宮廟)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술적 권위에 근거했고, 주술적 지배의 한계로 인식되었던 경계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제의의 성격을 띤 통과 절차가 필요했다. 전국시대 이후 세속 군주에 의한 군현지배가 등장하면서, 군주의 지배 영역은 관할 범위를 의미하는 다중의 경계로 획정되었고, 경계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명령이나 관부의 허가를 상징하는 증빙이 필요했다. 이는 중국에서 전국시대 이후 법제에 근거한 공간 지배가 시작되어, 지리상에 형성된 배타적 성격의 정치적 경계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252쪽